제 27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공모 <언니에게> 외 1편

by 월야 posted Dec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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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언니, 나 세상이 너무 어렵다. 요즘 지나치게 나를 검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너무 들뜬 건 아닌지, 너무 축 처져 있는 건 아닌지. 너무 예의가 없었던 건 아닌지, 필요 이상으로 상냥했던 건 아닌지. 언니가 말했지, 언니와 내가 있으면 모든 건 별거 아니라고. 그런데, 그런데 언니, 나 너무 힘들다. 이런 내가 있으면 저런 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수틀리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서 너무 괴롭다, 나. 웃기지. 뭐든 지나치면 안 좋다면서, 지나침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나에게 알려 준 적 없는 게.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내 세상의 절반을 언니가 차지하고 있다고 엄마에게 고백했을 때, 마주본 눈동자에 내가 아닌 경멸이 비추어졌다는 걸 나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말아야 했을까. 왜 우리는 우리일까. 미래에게 던지는 질문은 지금부터 답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는데, 저 질문에는 언니도, 나도 대답하지 못했잖아. 나는 그때 우리 맞잡은 손가락 사이로 영원이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니, 붙잡아 두지 못할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언니가 스스로 언니의 미래를 앗아갈 줄 알았다면 그러지 말걸.


언니, 잘 모르겠다는 말도 언제까지 먹힐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이라는데, 사람들은 자꾸 그 아직을 없애. 이것 보세요, 내가 아직이라잖아. 이렇게 외쳐도 다 없던 게 되는 거야. 아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면 나도 아직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자꾸 누가 기다리라고 하는데 못 들은 척해. 그럴 때면 엄청 깊은 늪 같은 곳에 빠지는 기분이야.



언니,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인데 언니를 좋아해도 될까.



<독백의 문법>


아무쪼록 장고분은 혼자 걸으면서 해방감을 주기에 좋은 곳이었고,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과 오면 몇 시간은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였다. 오래 못 봤지만 항상 보고 싶은 친구와 오겠다고 다짐했다. 장고분 한 바퀴로 산책의 운을 떼고 지난 3년간 왕복했던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인 것이 많았고, 그대로이지 않은 것이 많았고, 기억하고 싶은 기억이 많았고,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많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3년의 절반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미화되는 대부분의 기억을 부정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운석이 떨어졌고, 사진을 찍었다. 운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따위를 보면서 운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나는 운석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달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별똥별도 아닌 내 멋대로 정의한 운석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다. 억지로 했던 축구와 억지로 했던 리액션. 중학교 때 나는 억지 부리지 못해서 억지로 했다.


지평선 아래로 천천히 해가 쏟아졌고, 그대로 대지 위 피사체에 스몄다. 하늘에서 붉음을 찾아볼 수 없을 때 놀이터에 갔다. 어릴 때 마셨던 흙먼지의 주인.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재생 시켜 두고 오가는 인구를 보는 게 영 껄끄러워서 그 방향을 등지고 풀숲을 보면서 즐겁지 않을 정도로만 그네를 움직였다. 느닷없이 종지부를 찍은 것들이 생각났으며, 나는 조금은 심각해졌고 어느 정도는 신나 있었다. 필기구가 없어서 휴대폰 메모장을 켠 다음에 생각나는 모든 언어들을 썼다. 내가 여과시키지 않고 뱉는 멍청한 말들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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