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18
어제:
23
전체:
305,699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6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Amy
조회 수 233 추천 수 1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꽃 피고 새 우는 우리들의 작은 집

 

나의 기억은 서울의 언저리를 돌고 돈다. 내 집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경기도 안양시의 한 산골 마을이었고, 두 번째 기억은 이천과 광주 사이의 폐가이며, 세 번째 기억은 돌무지가 있는 광주시의 집이다.

묘하게도, 옛 기억 속의 나는 종종 피아노 앞에 앉아 낭랑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아마 그건 내가 노래를 곁들여 칠 수 있게 된 첫 번째 곡이었던 것 같다.

나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 대한 나의 기억은 항상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시작되거나,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끝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내어놓고자 한다면, 역시 안양시의 산골 마을.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겠다.

 

첫 번째 집. 그 집에는 가재가 살던 우물과 빨간 전화기가 있었다. 낡은 시멘트벽과 빛바랜 슬레이트 지붕, 다소 신경질적이었던 주인집 할머니와 멀고 먼 시가지. 입구에서 사나운 목청으로 짖어대던 커다란 도베르만.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낡은 우물의 입구에는 쥐똥이 난잡하게 널려 있었고, 빨간 전화기는 결코 고운 소리로 울지는 않았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노래를 부르다 지치면 폭이 두 뼘이나 될까 싶은 텔레비전으로 날아서 온 세계를 쏘다니며 평화를 지키는 푸른 얼굴의 영웅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았다. 고요한 집안과 동네를 쏘다니는 일에 지치면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이불을 폭 덮고 엎드렸다. 그 냄새에서 왠지 푸른 얼굴을 가진 기괴한 사나이가 떠올라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집.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의 사이에는 사라진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깊은 산골짜기에 우리 가족을 버려두고 집을 나섰다. 내 두 번째 집에는 첫 번째 집에서 가져온 피아노가 있었고, 나는 조금 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폐가에 살게 된 까닭은 물론, 제대로 된 집을 구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 사는 동안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다락에서는 쥐들이 달음질을 치는 소리가 밤마다 울렸고, 마당의 버려진 창고에서는 고양이들이 울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배수로 곁으로 샛길을 낸 굴다리를 건너야 했고, 버스는 자주 오가지 않았다. 그 집에서 나는 무릎에 난 상처를 꿰매야 했고, 왼발에 깁스를 해야 했고, 빛이 잘 들지 않는 뒷방에서 인형놀이를 했으며, 썩어가는 개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개를 보고 목 놓아 울었다.

 

세 번째 집. 두 번째 집과 세 번째 집의 사이에도 이별이 있었다. 정들었던 친구들은 모조리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양 어깨의 가방끈을 꼭 쥔 채로 땅을 보며 걸었다. 마을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자주 신발을 버려야 했고, 이사 온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즐거운 곳에서는⋯⋯.”

나는 이 오래된 노래를 부르는 것을 그만두었고, 세 번째 집까지 나를 따라왔던 피아노는 벼룩시장에 실렸다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영영 떠나버렸다. 연립주택에서 이웃들의 얼굴을 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낡은 빌라에 사는 이웃들은 충분히 히스테릭했고, 몇 번의 언쟁을 거치자 포크레인 날에 부서진 화단이 창문 앞에 무덤처럼 쌓였다. 나는 좀처럼 집에 일찍 들어가려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세 번째 집에서 열 번이 훌쩍 넘는 겨울을 났다. 내가 거치고 머물렀던 모든 집들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중 한 겨울 날의 일이었다.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게 된 것이 힘에 부쳤고, 날이 추워 짜증이 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수차례 문을 두드려도 불 켜진 집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끝내 복잡한 가방 안을 뒤적거려 안주머니 구석에 처박혀 있던 열쇠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본 것은 훤히 켜진 텔레비전 앞에서 몸을 웅크려 잠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왜 문을 열지 않느냐고 있는 대로 짜증을 내어 볼 생각이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뒤꿈치를 들어 살금살금 엄마의 곁으로 다가갔고, 그 때가 엄마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을 실감하게 된 첫 번째 날이었다. 나는 엄마가 잠든 소파 아래 무릎을 모으고 앉아 내 집들을 떠올렸다.

 

첫 번째 집, 그곳에서 나는 엄마와 푸른빛이 도는 새알을 발견했었고, 며칠씩이나 같은 자리를 맴돌며 아기 새의 부화를 기다렸었다. 볕이 좋은 날이면 높다란 빨랫줄에 이불을 널었고, 슬레이트 지붕 위로는 도토리가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가 났다. 자그마한 오디오로 동요를 틀어두고, 우리는 잠자리들의 날갯짓에 맞추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었었다.

 

두 번째 집, 그 폐가의 모든 귀퉁이는 엄마의 텃밭이었다. 엄마는 중고 책들을 부지런히 사다 모으시며 폐가에 이야기들을 채워내었고, 화단에서는 철마다 다른 꽃들이 피었다. 저녁이면 석양 아래로 그림자를 늘이고 동네 오솔길을 산책했었고, 구석구석 반지르르 닦인 집의 모양새에 친구들은 물론, 나조차도 그 집이 폐가인 줄을 모르고 있었다.

 

세 번째 집. 우리는 드디어 우리들의 집에 터를 잡았다. 벽지부터 장판과 찬장까지, 모든 것들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빛깔이었다. 부서진 화단은 둥그런 반구형의 꽃무지가 되었고, 우리 빌라는 물론이고 앞 동의 아이들과 작은 새들까지가 이 화단 옆에서 재잘대며 놀았다. 나 또한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이 집에서 어른이 되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나지막한 소리로 오래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엄마가 가르쳐 주었던 노래였고, 엄마는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첫 번째 집에서도, 두 번째 집에서도, 그리고 세 번째 집에서도 말이다. 어쩌면 그건 그 모든 집에 우리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꽃 피고 새 우는, 우리들의 작은 집. 우리는 그곳에 산다.








낯선 아버지

 

찰칵. 납골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울렸고, 연신 눈물을 찍어내던 이들 중 몇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유리벽 너머의 작은 항아리에게 말을 건네듯 입을 오물거렸다.

돌아가는 길, 출입문 옆 게시판에 메모지 수백 장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로 보내는 편지’. 나는 그렇게 인쇄된 빈 메모지 몇 장인가를 몰래 가방에 챙겼다.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첩을 열자 모자를 눌러 쓴 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천진한 얼굴이 보였다. ‘아빠하고 낯선 단어를 발음하다가 어색한 마음에 웃고 말았다. , 나의 아버지. 그는 나에게 너무도 낯선 존재였기에.

그리고 며칠 전, ‘하늘로 보내는 편지에다가 몇 글자를 꾹꾹 눌러 담아 보았다. 아버지, 하고 썼다가 이내 아빠라고 고쳐 적었다.

<아빠, 이야기 할 곳이 없어 이렇게 편지를 써. 어린 내게 맛있는 거 사온다고 하고 집을 나갔던 당신. 내가 다 자라고 나서야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났던 내 아빠. 사실 나는 어깨까지 오는 장발에 귀걸이며 팔찌, 목걸이를 주렁주렁 단 아빠가 조금 부끄러웠어, 그래서 조금 떨어져서 걸었지.>

메모지란 게 그렇게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글씨를 적어갈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고, 나는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그에게 하고픈 말 또한 그 조그마한 메모지의 공간처럼, 그리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메모지를 꺼내어, 나는 이렇게 썼다.

<오랜만에 아빠가 우릴 만나러 올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아빠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 그래서 상자에다가 구슬이랑 예쁜 낙엽 같은 걸 잔뜩 담아놨었지. 그런데 막상 2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난 아빠가 너무도 어색하더라. 그래서 아빠에게 그 박스를 줄 수가 없었고, 멀어지는 아빠의 차를 보며 그 박스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말았어.>

여기까지 썼을 때, 나는 입술을 비쭉이며 연필 끝을 깨물었다. 세상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데 이렇게 철없는 내용들을 담아 넣는 딸이 또 어디 있을까 하고 잠시 반성해 보았다. 그래서 다음 메모지를 꺼내어 이렇게 덧붙이고는 스테이플러로 연달아 쓴 두 장의 메모지를 고정시켜 두었다.

<아빠도 내가 많이 어색했지? 아빠 나이 고작 서른아홉, 지금의 나보다 딱 열두 살이 많았으니까 말이야. 내가 그 때 그 초라한 선물을 아빠에게 주었더라면, 마음 약한 아빠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몰라.>

하하, 하고 마른 헛웃음이 나왔다. 하늘에 있을 아버지는 이런 글자들을 써 넣는 동안 눈물을 글썽이기는커녕 코끝도 찡해지지 못하고 있는 딸내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내 도리질을 했다. 아버지라면 분명, ‘넌 임마, 걱정이 너무 많아.’하고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두어 번 툭툭 쳐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괜히 뒤통수를 어루만지다가 잠이 들었다.

세 번째 편지를 쓰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 없기는 했지만, 그 말들마저 곧 허공에 흩어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커다란 지우개를 들고 내 머릿속을 걸어 다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하나 둘씩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같은 것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고작 4년째,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의 기일을 잊고 지나칠 뻔했었다.

<아빠. 엄만 내게 아빠가 밤무대 기타리스트란 걸 비밀로 했고, 그래서 난 아빠가 프로그래머였던 줄로만 알았어. 그래서였을까, 아빠가 두 번째로 우릴 만나러 왔을 때 아빠는 내게 컴퓨터를 선물했지. 그런데 난 컴퓨터를 조립하려 진땀을 빼고 있던 아빨 두고 놀러 나가버렸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빠가 어색했거든.>

아빤 그 날 돌아가서 울었을 거야.’

나는 입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스무 살이 된 내 앞에 홀연히다시 나타났던 아버지는, 나를 두고 떠났던 것을 많이 후회했다고 했다. 용기를 내어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나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아버지에게서 뒷걸음질을 쳤고,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못 견디게 슬픈 일이었다고. 그래서 내가 보고 싶을 때면 나를 만나러 오는 대신 아무 초등학교에나 들어가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고 했다. 까불까불 구르듯 운동장을 달리고 있는 낯선 아이들의 웃음소리라도 훔쳐 들으며 내가 내던 웃음소리를 상상해 보았다고 말이다.

<아빠. 우리 집에 있던 빨간색 전화기를 기억해? 아빠가 매일 전화한다고 해서, 나는 매일같이 전화기 앞에 붙어 앉아 있었어. 하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내게 전화를 해 주지 않았지. 나는 아빠가 미웠어.>

청계동 산골의 작은 집 우물에서 가재를 잡아 올려주던 아버지는 정이 많았다. 삼십 대 중후반의 젊었던 아버지. 그는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다가 술을 파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렸고, 아이처럼 천진한 얼굴로 작별 인사를 건네며 어머니와 우리 남매를 떠났다.

나는 아버지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려 노력했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지만, 어렸던 나는 온 집안의 아버지 사진들을 죄다 꺼내어 찢어 놓은 적도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며 미움은 잦아들었지만, 내가 그렇게 아버지를 미워하게 했던 사랑도 함께 잦아들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는 내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갓 성인이 된 나를 찾아왔던 아버지를 보고도, 놀라거나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멀뚱한 얼굴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빠. 난 아빠 얼굴을 잊어가고 있어. 우리 집엔 아빠 사진이 한 장도 없거든. 이러다 정말로 아빠를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우리는⋯⋯.>

집에 아버지의 사진이 한 장도 남지 않게 된 것이 나 때문이라는 말은 슬쩍 빼 두었다.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건 조금 슬픈 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로 찍어 온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며,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메모지에 써 넣을 말들을 골랐다. 납골당에 붙어 있던 사진은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다던 그 여자의 것이었다. 분하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 여자가 붙여 둔 사진을 찍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긋나버렸어.>

스무 살 때부터 이어진 너댓 번의 만남 또한 낯선 것이었다. 뒷걸음치는 어린 딸을 보는 것이 두려워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던 겁쟁이 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내 오래 된 기억 속 아버지의 뒷모습을 불러 세워, 간신히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쉰 살의 아버지는 서른일곱 살의 아버지보다 주름이 많았고, 얼굴빛이 탁했으며, 야위어 있었다.

아마 아버지는 스무 살이 된 나를 만나러 오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으리라. 밤무대에도 설 수 없게 된 아버지는 문자 그대로 백수였지만, 내 통장에는 매주 꼬박꼬박 아버지로부터의 용돈이 입금되었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 짧은 통화를 했었고,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의 늦겨울이었다. 아버지는 학비에 보태 쓰라며 제법 큰 액수의 돈을 건네셨고, ‘너 이게 무슨 돈인 줄 알면 깜짝 놀랄 거다!’하고 웃으셨다. 그리고 그 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주 오랫동안 손을 흔드셨다.

그 후 우리들의 전화는 사흘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자꾸만 줄어갔다. 아버지에게서 먼저 연락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내가 하는 전화를 받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아버지가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울었다. 혹시 돈 때문에 나를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아빠. 아빠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많이 당황했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거든. 아빠는 왜 아빠 약값이랑 수술비를 나한테 줬어? 왜 나한테 한 번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지? 왜 마지막까지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어?>

내가 보고 싶었을 텐데.”

영화를 보러 갈 때에도, 커피를 마시러 갈 때에도. 그는 종종 하던 동작을 멈추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순간이 아니면 영영 나를 보게 되지 못하게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면 나는 그 시선이 낯설어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고, 아버지는 , 넌 그러고 있으면 인상이 너무 사납다.’며 웃었다.

아빠. 아버지.”

여전히 낯선 그 단어를 되뇌며,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내가 아버지의 뒷모습만을 기억할 수 있듯이, 아버지가 가졌던 나에 대한 마지막 기억 또한 종종걸음으로 멀어져가던 뒷모습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좀처럼 몸을 돌려 서로를 마주볼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며 가늠할 수 없는 거리를 좁혀 간다. 아버지는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마침내 그와 나의 등이 닿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조금 공들여, 그 표정을 상상해 보려 애쓴다.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아마 그의 표정에는 죄책감과 슬픔, 기쁨, 애정, 후회와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모두 담겨 있을 것이고, 그건 초등학교 한 쪽 구석 벤치에서 낯선 아이들에게서 어린 딸의 모습을 떠올리던 젊은 아버지의 얼굴에 떠올랐을 표정과 같을 것이다.

나의 낯선 아버지. 그의 뒷걸음질은 영영 멈추어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여전히 뒤를 향해 걷고 있다. 몸을 돌려 달려가 안길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주춤주춤 걷는다. 아버지의 표정을 상상하며, 어리숙하고 서툴렀던 그의 마음을 상상하며. 아버지. 나의, 낯선, 아버지. 나는 그런 식으로 그를 사랑할 것이다.



이름 이승혜

이메일 주소 illusiono_o@naver.com

HP : 010-3413-0229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16.01.24 20:56
    즐거운 집이라고 좋네요..
  • profile
    korean 2016.02.28 23:58
    잔잔한 감동이 묻어나는 좋은 수필입니다.
    열심히 정진하시면 좋은 결실을 반드시 걷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6 file korean 2014.07.16 2769
593 제 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분 응모작 -아름다운 동행 外 1편 1 짱명희 2015.12.10 140
592 제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보고싶습니다', '착한 아들' 1 프레리도그 2015.12.10 263
591 ▬▬▬▬▬ <창작콘테스트> 제8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9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5.12.10 64
590 그 남자 외 1편 1 아리하라 2015.12.19 67
589 손목시계로부터 떠오른 생각(외1수) 1 file 김춘식 2016.01.01 219
588 제 9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부문 응모작 - 새해 소망 외 1편 1 비니 2016.01.06 86
587 제9회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 응모-지적장애2급과 지적장애 3급에 연애의차이의 감상문 외 27편 1 윤제헌마누라다 2016.01.09 291
586 {제 9차 창작콘테스트-수필부분} ㅡ 12월 31일 외1편 1 현진 2016.01.11 113
585 제 9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 - 사진 외 1편 2 혜빈 2016.01.11 127
584 제 9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 - 착한사람 외 1편 1 됴스 2016.01.13 103
» 꽃 피고 새 우는 우리들의 작은 집 외 1편 2 Amy 2016.01.13 233
582 제 9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 ㅡ그냥, 문득 외 1편 1 송예슬 2016.01.23 78
581 제 9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 : 넌 아름다움 그 자체였어 외 5편 1 글을씁니다. 2016.01.25 129
580 제 9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 -독서에 빠지는 방법외1편 1 푸른장미 2016.01.29 221
579 제9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 - 아빠를 용서해라 외 1편 1 일아 2016.01.29 175
578 제 9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분 응모 : 아버지의 손 외 1편 1 보리 2016.01.30 142
577 제9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 - 털보아저씨 외 1편 1 한우 2016.02.01 163
576 나에게 주어진 시간 외 1편 1 이은유 2016.02.03 91
575 제 9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분 응모 : 어머니의 최근 검색어 외 1편 1 산속의카프카 2016.02.04 214
574 나는 다둥이 엄마 1 file 열정왕비 2016.02.05 100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