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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최근 검색어

 


  여자 하나 있다. 이 곳 저 곳에서 관심 받지 못하는 여자 하나 있다. 달님이 잠 못 이루는 이들을 달래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하고, 쪽잠을 뒤척인 듯 깊게 패인 두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 표정 하나 담기지 않는다. 몇 걸음 옮겨 부엌이라고 구분지은 곳을 간다. 물을 한껏 머금어 통통해진 쌀알들로 밥을 안치고, 나물 몇 가지를 무친다.


  그녀는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꺽꺽 되새김질하는 세면대에서 간단히 씻는다. 그녀가 나서고 난 후에도 세면대에는 하얀 치약거품이 둥둥 떠 있다. 그녀는 얼굴이 다 담기지 않는 작은 거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값싼 화장수를 바른다. 의자에 걸쳐진 거무튀튀한 옷가지를 입고 현관문으로 가려다, 이불 사이로 삐져나온 아이들의 발이 보인다. 그녀는 발을 이불속으로 넣어주고서 몇 초간 토끼거나 강아지일 그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것으로 되었다. 이름만 보면 참 고운, 그녀 이름 석 자가 아닌 누구의 엄마로 살아갈 이유가. 그렇게 그녀에게 그녀가 없는 채 또 하루를 시작한다.

 

.

.

.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단골 소재로 모성애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그럴 때면 내심 내 안에선 반항기 가득 18세가 깨곤 한다. 신경숙 작가의 책 엄마를 부탁해를 누구 못지않게 눈물과 함께 읽어내려 갔지만 나의 어미가 연상되지는 않았듯이.

 

  너의 어미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까. 그냥 싫어하겠지. 그 질문으로 인해 나의 어미를 떠올려야 하니까. 그녀와 내가 공유한 시간과 사건, 감정을 데이터로 하여 그녀를 분석해야 할 테니까. 미움까진 아닌 텁텁함. 이유 모를 미안함과 안쓰러움. 그러나 그 안쓰러움을 느끼고 싶지 않은 대상. 그러니 그 질문만은 알아서 거두어 주길 바라는 편.

 

  하루는 수년간 써오던 그녀의 휴대전화가 쓸 만큼 썼다며 배를 까뒤집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하나 장만해드린 최신형 휴대전화. 거 뭐, 숫자판이 없고 이래 밀기만 하는 거를 뭐라카노? 마이 비싸나? 엄마랑 일 하는 아지매들도 요새 다 그거 쓰대.’ 50대 아주머니들은 전부 갖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하나. 가격을 알려드렸더니 이미 여럿 산 것 마냥 고개를 격하게 저어셨다. 그래도 하나 장만해드렸고, 요금 걱정을 하시면서도 내심 그럴싸한 휴대전화에 기뻐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참으로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한 번은 전화벨소리가 너무 작아서 일 할 때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며 키워 달라, 한 번은 전화벨소리가 너무 요사스럽다고 바꿔 달라, 또 다시 전화벨소리가 너무 커서 버스 안에서 자신의 전화벨소리만 울려댄다고 줄여 달라, 기상알람을 알아서 삭제하기도 수십 번. 그렇게 스마트폰의 자잘한 기능들을 부탁하시는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혼자 이것저것 만져보며 배우라는 말을 수십 번째 해서가 아니라 내가 없으면 이것들을 못할 생각하니 짜증스러웠다. 이것 하나 부탁하려고 늦은 시각 귀가하는 나를 기다린 것도 짜증스러웠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걸로 샀냐며 나를 타박하는 것이 괜스레 나에게 한 마디라도 더 붙여보려는 걸 알면서도 짜증스러웠다. 아니 그것을 알기에 더욱 째지는 소리로 휴대전화를 뺏듯 가져가 고쳤다.

 

  또 전화는 중요한 일 아니면 하지 말라하고, ‘까똑괴상한 소리를 내는 이 요물도 돈 드는 게 아닌 지 그냥 없애 달라한다. 친구니 선배니 쉴 틈 없이 울리는 내 휴대전화와 달리 그녀는 가끔 양심에 찔려서 하는 자식들의 연락이 고작 일 텐데 참 답답했다. 밖에서 몇 백 원이 아쉬워 정작 먹고 싶은 것을 마다하는 나는 넘어가도 그녀가 푼돈으로 궁상 부리는 것은 열이 받는다. 그 돈을 아낄 바에 차라리 살림에서 돈을 아낄 것이었다. 집에서 밥을 잘 먹지도 않는 자식들. 그런데도 모든 음식을 꼭 인원수에 맞게 했다. 버리는 게 아깝기도 하고, 그 모습이 마냥 미련하다.

 

  이렇게 스마트 폰 때문에 늘어나는 그녀에 대한 짜증이 극에 치달아 갈 때 쯤 우연히 그녀의 휴대전화를 잠시 쓰게 되었다. 인터넷 어플을 키고서 검색을 하려는데 눈에 들어오는 최근 검색어들. 대놓고 퉁명스러운 내 태도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검색하는 것 정도는 깨우친 듯 보였다. 24시간을 온통 나를 중심으로 돌리고 있던 내가 한 순간 그녀의 하루하루들을 엿볼 수 있는, 근 일주일 간 그녀가 찾았던 낱말들이다.

 

도시근로자월평균소득 / 토지공사영구임대 / 장기임대아파트 / 골다공증 / 근로장려금 / 노안 / 잡코리아 / 부추겉절이 / 로또 / 파산신청 / 단기알바 / 꽃게탕 / 매운la갈비양념

 

  내 생활에서 이 낱말들을 궁금한 적은 없다. 이 낱말만 궁금한 적은 더더욱 없다. 20대인 나와 50대인 그녀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 그렇다면 내가 50대에 이런 검색목록을 가질 생각을 해본다면? 굳게 닫힌 입이 더욱 굳게 닫혔다. 이렇게 진정으로 정신 차리게 하는 회초리는 무서운 긴장감도, 바람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도 없이 내려쳐진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좋은 것을 보면 함께 한 번 더 보고 싶고, 멋진 옷가지가 레이더망에 들어왔으면 선물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내가 그를 찾아갈 때가 더 빈번했고 내게 있어 무엇보다 그가 우선이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낌없이 주고 싶었던 사람. 그렇지만 무조건적이지는 않았다. 아무런 바람 없이 행했던 나였다면 그렇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주었던 것과 양의 차이는 있더라도 무언가는 받아야 했다. 균형이 맞지 않아도 다른 형태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마치 그가 그것을 줘야만 내가 계속해서 내 마음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듯이.

 

  허나 그녀에겐 계산이 없었다. 회초리의 여파로 없던 가족애도 다 고개를 드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겐 계산이 없었다. 학창시절, 그녀를 책망한 날이면 난 내 가슴을 더 내려쳤다. 악에 바쳐 그녀에게 소리를 치고 나면 증오의 화살이 외려 나를 가리키곤 했다. 또한 막둥이로 자란 그녀가 기피하던 집안일들을 어린 나이의 내가 해나갔다. 소위 부모를 위해 행한 행동이라 일컬어 질 수 있는 것들에 있어서 줄자는 필요 없었다. 그저 내가 자라온 시간들 중에 한 부분일 뿐 의심의 반문도, 밑지는 장사라 생각한 적도 없었다. 가끔 무조건적이지 않다 느꼈던 그녀의 사랑에도 나는 무조건적이어야 했던 까닭은 내가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도 참 츤데레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하나 더 에피소드를 추가해본다. 취업의 길을 마다하고 내가 하고 싶던 일이자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두었다. 가세가 많이 기울어가서 번듯한 직장을 다니기를 그녀가 부탁했다. 20대에 열정을 쏟고 싶은 일에 돈과 세월을 투자하는 것은 탕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여유로웠다. 그런데 가족 생각 없이 너무 내 기호만 좇았나. 나는 왜 남에겐 관대하면서 내 가족들에겐 야박했을까. 왜 내게 가족들이 치댄다고 느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내가 가장 억울했던 순간도, 가장 슬펐던 순간도, 가장 기뻤던 순간도, 가장 죽고 싶음과 동시에 가장 살고 싶었던 순간도 그들의 앞이었는데 말이다. 내 방황의 꽃도 그들의 품에서 피었고, 곱게 그 꽃잎을 지워 책장 사이 꽂아준 것도 그들이었다.

 

  자식에게 마저 자존심이 강했던 나의 아비와 어미. 그들의 이가 빠지고 머리가 쇠어간다. 머리털이 하얗게, 하얗게 쇠어가다 후 풀면 먼지처럼 날아갈 것만 같다. 가끔 찍어드리는 사진에서 늙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새삼 놀라할 때가 있다. 그런 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 나는 그 무엇을 이유로 하여 못 본 척 할 수 있을까. 그 까슬까슬한 손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진 게 있긴 할까. 알량한 내 욕심도, 박차를 가하던 내 꿈도 그러진 못했다. 참 야망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저 조급했던 사람은 아닐까 나 자신도 의심했다.

 

  급작스럽게 글의 서두에서 꺼냈던 책 엄마를 부탁해이야기를 해보자면, 여느 작품이 그렇듯 이 책도 쓴 소리를 들었다. 현대사회의 변화된 모친상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너무도 지고지순한 시대착오적인 모성애를 그려냈다는 비판. 그런데 자식의 각도에서 어미를 대상으로 쓴 소설이라면 이는 당연한 결과지 않을까.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를 이따금 각색하는 것을 즐기니까 말이다.

 

  간혹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 되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더욱 불우하게 만들 때가 있다. 합리화의 일종이다. 합리화라는 것이 그러하듯 이 또한 참 못났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애잔하다. 내 생활을 불우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무난한 소재는 부모이다. 부모 자체를 각색하는 것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내게 닥쳤던 사실들을 더욱 치욕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행한 사람들의 태반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 정작 자신인 것과 비슷하다.

 

  나 또한 나를 불우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나의 가정환경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머리를 약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때부터 최근까지도 그 나쁜 습성은 이어지고 있다. 성장담을 보다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을 살려 쓸 때도 있다. 그런데 그것들로 하여 딱히 삐뚤어진 적도 없고 나의 표현들이 예측하게 해주는 상처들을 오롯이 받지도 않았다. 이것도 애정결핍의 한 양상이라고 자체진단을 내렸다.

 

  이렇듯 각색에 일가견이 있는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성애라는 낱말에 심드렁한 태도가 바뀌진 않는다. 대게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그녀의 휴대전화 검색어에 맞은 회초리의 효과는 길어야 며칠. 나는 엄마라는 단어 하나에 울음을 쏟을 순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귀찮고, 내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두어 번씩 꺼내어 원망할 존재이다. 나는 치료가 필요한 이 상태로 계속 살아가며 이로 인해 해야 할 후회라면 할 것이고, 성장할 감정이라면 성장할 것이다. 다만 그녀가 여전히 어린 자식에게 너무 짧은 기회를 주시지 않았으면, 감당하기 힘든 후회를 남겨 주시지만은 마셨으면 한다.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아픈 사람. 지나온 감정이자 현재에도 유효한, 훗날 그녀 없이 이 삶을 지탱해야 할 때에는 더욱 짙어질 그것. 그녀를 향한 사랑. 다소 어그러진 모습이지만 성장이라는 사포로 깎아가려고 한다. 오늘 저녁으로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이젠 얼추 흉내를 잘 낸 것도 같은데, 그녀의 그 국물이 그립기만 하다. 찌개를 움푹 퍼 밥에 비빈다. 퍽퍽한 밥이 퍽퍽한 마음으로 넘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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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럿이 둘러앉아 TV를 볼 때면, ‘이 배우는 지난번 주말드라마에서도 악역 했는데, 또 하네. 이미지 괜찮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저번에 세일해서 8900원이었는데 오늘은 정가대로 받네. 다른 거 사자.’ 길을 찾아 갈 때면 저번에는 저쪽에서 돌아서 왔었어. , 그때 누구가 혼자 집에 가기 무섭다고 해서 같이 갔었잖아. 그 날 식당 종업원이 초고추장을 누구 바지에 쏟았었잖아.’

 

  정작 수학능력시험 때나 빛을 발할 것이지, 쓰잘머리 없이 일상에서만 신통방통한 기억력. 방송사 별로 프로그램 뿐 아니라 출연 배우들, 그들의 출연작품을 줄줄 꿰던 나였다. 또한 근 일주일 동안 먹은 식사와 그 가격을 맞추면서 괴상한 성취감을 느꼈고, 길 찾기에 있어선 인간 네비게이션이었다. 이런 우스꽝스런 암기력도 암기력이라고 우쭐했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나보다 하수인 자를 보면 까칠한 성격이 더욱 모나지곤 했다. 연애에 있어서는 더욱.

 

  ‘어떻게 우리 기념일을 까먹어?’, ‘내가 그 행동 싫어한다고 했잖아. 바뀌려고 노력은 하는 거야?’, ‘사랑하면 다 기억이 나는 거야. 상대를 챙겨주고 싶으니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말하는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나에게 관심이 적어서 라고 생각된 데에서 그쳤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기억을 못하는 그에게 왜 기억을 못하냐고 추궁을 하고, 사랑을 구걸해댔던 과거의 나. 내가 연애정신학 전문의를 취득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연애불능자에서 몇 걸음 벗어난 선배로서 과거의 나를 진단해본다. ..히 연애불능에 불능이었고, 그 연애가 실패로 간 것은 지당한 결과였다.

 

  오늘, 오랜만에 나의 단골 막걸리 집을 찾았다. 서로에게 연애불능을 진단해줬던 친구 하나와 함께. 만날 때면 연애문제에 있어 더 실시간 고충이 많은 사람이 먼저 입을 열곤 했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었다. 열변을 토하는 친구의 막걸리 사발에 술을 따라주며, 짐짓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듣는 듯 끄덕거림도 곁들였다. 권태기를 진단해주며 연애에 대한 소위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 나도 그랬어.’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친구도 뭔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더욱 깊은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도 전에 했던 연애에서 똑같이 행동했어. 아니 더했을 걸? 너도 알잖아. 내가 어땠는지. .’ 여자들의 대화에는 단 1초의 정적도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연애를 논함에 있어서 전문의는 환자 앞에서 버벅거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자꾸 ,.’만을 반복했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잊고 싶어 몸서리 쳤던 적이 있다. 흔히 연애불능자들의 이별대처법이 그러하듯 나 또한 감정이 격해지면 그에게 전화를 거는 미련하고 미련한 버릇이 있었다. 여기서 감정이라 함은 그리움, 억울함, 미련, 분노, 사랑 등 명명하기에 달려있었다. 전화를 걸면 두 번의 신호음이 간 후에 끊기던 전화. 나의 연애상담 주치의가 진단하기를 나를 수신거부 했다는 것이다. 시를 달리 하여 전화를 걸어도 두어 번 신호가 가고서 끊기는 것은 필시 수신거부를 했다는 것. 전화를 차단 당함에 있어서는 친구가 선배였던 거다. 그 외에도 전화번호, 함께 타던 버스번호, 막차시간, 옷 치수, 좋아하던 색, 좋아하던 음식, 자주하던 말버릇. 이것들에 갇혀 지낼 때 가장 괴로웠던 질문은. ‘이것들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이 올까?’

 

  자, 다시 막걸리 집으로 가보자. 버벅거리는 입모양으로 멈춰있는 나와 일시정지 되어있는 주변 상황들이 보인다. 이때, !

 

 

내가 말한다. “. 아씨, , 있잖아.”

친구가 답답했는지 ?”

, 내가 헤어지고서 더럽게 힘들어했던 자식!”

~, 그 누구누구?”

  

 

  권태기인 친구에게 뼈가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고서 상담 페이로 막걸리 값도 잘 받았겠다, 기분 좋게 귀가를 했다. 그럼과 동시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들어서도 계속 입에 맴도는 말 하나. 바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싶은데, 나는 왜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단순히 내 기억력이 감퇴한 걸까, 궁금했다. ‘월요일 점심 돈까스, 화요일은 부대찌개, 수요일은 닭갈비, 목요일은 바쁜 관계로 식사 패스. 제 작년 절친에게 받은 생일선물은 절친을 끊을 뻔한 유치한 알람시계. 내 핸드폰의 알람기능을 의심했던 거라 단념하며 넘어갔지만 작년에는 정확히 한 달 전부터 받고 싶은 선물리스트를 넘겼지.’ 기억력 테스트용 질문을 던지는 족족 곧바로 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정말 그가 흐릿해진 걸까. 떠올리기 싫어서 말을 않던 게 아니라 정말 그 이름, 석 자가 내 마음 속 점등한 추억의 방으로 이동한 걸까. 진정한 의미에서 그 이름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것이 된 걸까.

 

  연인이건 친구건 가족이건 상대 불문하고 , .’라고 꺼낼 때면 답답함에 인상부터 쓰곤 했다. 그러던 내가 기뻐하고 있다. 다른 이유도 아닌 내가 답답한 사람이 되어서다. 질색하던 답답함이 그리 나쁘지 않기는커녕 유쾌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면서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베개의 사방을 축축하게 적시며 궁금하던 그의 안부가 아닌, 쿨 워터 향수를 뿌리고서 미련을 애써 숨기며 궁금해하던 그의 안부가 아닌, 진심으로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며 궁금한 그의 안부였다.

 

  오늘은 성격 급한 내가 답답함을 대하는 자세 내지는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였지만, 이따금 내가 격하게 고갯짓을 했던 것들이 살랑살랑 내게 넘어올 때가 있다. 그것은 솜뭉치 같은 강아지의 꼬리처럼 앙증맞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하다. 홀로 방에 누워 엄마 미소로 마음 속 훈훈함을 양성하다, 오랜만에 나의 다이어리를 열어보았다. 한 줄 끄적거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노트의 가장 앞장부터 읽게 되었다. 몇 해 전부터 몇 개월 전까지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써내려갔던 글들. 그 중에서 지금 내 기분과 얼추 어울리는 듯한 글을 발견했다. 당연히 이 노트의 모든 글에서 오글거림은 필수항목이다.

      

  ‘타인이 보기에 행복한 사람처럼 무리 속에서 깔깔 눈물 고이게 웃는 것보다 마음 속 잔잔히 홀로 기뻐하고 형태 없는 미소를 짓는 것이 더한 행복감을 주는 줄 그땐 몰랐다. 내가 내 마음을 미미하게 울려나가야 기쁨도 맞추어 울려 들어오는 줄 미처 몰랐다. 모두 다 생각하기에 달렸다. 내가 생각을 바꾸기에 달렸다. 고집스레 고개 저어지던 것도 마음을 1도만 따스하게 하면 어느새 감사함으로 나를 맑게 마주하고 있다. 내 키와 발 치수는 이미 성장을 멈추었지만 이렇게 나의 내면은 아직도 꿈틀꿈틀 커나가려고 작은 움직임에 한창이다.’

 


  • profile
    korean 2016.02.29 00:04
    잔잔한 감동이 묻어나는 좋은 수필입니다.
    열심히 정진하시면 좋은 결실을 반드시 걷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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