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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의 일기장

2018년 5월 1일

어느 날엔가 엄마께서 내게 책 한 권을 말없이 건네주셨다. 책인 줄만 알았는데 펼쳐보니 이리저리 휘갈긴 글씨가 있는 빛바랜 일기장이었다. 할아버지 댁에서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이 일기를 한 장 한 장 넘겨보시면서 가슴이 꽤나 먹먹해져 왔다고 하셨다. 누군가의 젊음을 통해 자신의 젊음을 느끼기라도 하신걸까. 원래 남의 일기장은 함부로 열어봐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본디 버려진 것이었기에 염치없이 읽어버리고 말았다.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는 누런 종이 위에 까만 글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글자들 사이사이로 어떤 감정들이 녹아들어 있을지는 읽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감정들이 궁금해졌다. 작은 외삼촌 청춘에는 어떤 일들이 수놓아져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첫 장을 열어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후의 내 감정은 어땠을까? 예상외로 일기장은 반절도 채워지지 않을 채 입대 이야기로 그 끝을 맺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 문체들이 가볍거나 일정하지는 않았다. 모두 다른 생각으로 다른 깊이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나 가슴은 조금씩 먹먹해져 왔다. 마냥 어른인 줄로만 알았던 외삼촌께도 이런 젊음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도, 아빠도, 주위 친척 어르신들 등등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젊음, 청춘이 있었음을 왜 간과했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만 있을 것 같았던, 혹은 특별할 것 같았던 청춘이라는 시기는 결국 누구에게나 스쳐 지나갔었다. 그 시기를 어떻게 채워 나가느냐는 그 사람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 시기를 얼마나 붙잡고 있느냐도 그렇다. 청춘을 거쳐간 모든 이들에게는 고통도, 기쁨도, 사랑도, 슬픔도 다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그 시간 또한 내 시간처럼 존중해 주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 일기장에는 한 이름이 굉장히 많이 등장했다. 바로 외삼촌의 첫사랑 이름이었다. 청춘과 함께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첫사랑'이다. 수없이 등장하는 그 이름을 보며 꽤나 큰 아픔을 느꼈다. 안타깝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이렇게 아파할 수 있구나, 이렇게 기억하고 가슴에 담아둘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내겐 아직 찾아오지 않은, 고작 한 단어일 뿐이라 내게 '사랑'은 순간의 느낌일 뿐이었다. 설렘과 사랑은 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기장을 읽고 나니 어떠한 감정일지는 대충 느낌이 왔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지만 어느샌가 스며들어 깨닫게 되는 그런 감정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감정의 깊이로 후에 따라오는 아픔의 척도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날이 갈수록 과거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추억들을 쌓았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그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살펴보게 된다. 때론 아쉬움도, 기쁨도, 외로움도 모두 느낄 것이다. 대게 사람들은 과거에 머무르지 말라 충고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과거에 젖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추억일 뿐일지라도, 과거에 대한 기억의 파편뿐일지라도 그 감정들은 모두 지금 다시 느끼는 것이니 말이다. 만일 외삼촌께서 지금 이 일기장을 읽으신다면 어떤 감정들을 느끼시게 될까? 알 수는 없지만..여기에 적혀있는 모든 힘들고 슬픈 일들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으면, 가슴 아렸던 일들도 모두 추억이라 치부할 수 있으셨으면 좋겠다는 게 내 작은 바램이다.


시내

복작복작 사람들이 움직이고 경적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고요한 내 동네와는 다르게 가지각색 옷차림의 사람들과 다양한 언어가 그곳의 분위기를 알려주었다. 그곳은 '시내'였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일상 속에서 단 하루의 휴식 같은 날이 주어졌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단 하루도 학교, 집과 학원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딱 하루, 새로운 곳을 정처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정처 없이 들뜨게 만들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사라져버릴 그 하루를 위해 최대한 힘을 주어 걸어 다녔다. 한여름 찜통더위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보면 말이다. 빙판 위를 걸어 다니듯 쉼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제동을 걸었던 것은 횡단보도 앞 신호등뿐이었다. 시내에는 유난히 횡단보도가 많은 편이다. 교통량이 많은 만큼 사고가 일어나기에 적합한데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신호등이 제격이다. 이게 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푹푹 찌는 더위와 긴 신호 탓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괜히 걸어 다녔나 싶기도 했고 이쯤 해서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쯤이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던 것은. 의아해하던 찰나에 네모난 박스 같은 것이 내 시야각 안으로 들어왔다. 연세가 조금은 지긋하신 분께서 그 박스를 앞쪽으로 매고 계셨다. 그 앞면에는 선명하게 '도와주세요'라고 적혀져 있었다. 피부엔 검게 그을린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고 심지어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오셨다. 나 또한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을 했다. 괴이한 것을 보기라도 한듯 행동한 내 모습에 당황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엔 이미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열에 섰을 때였다. 곳곳에서 수군거림이 들러왔다. '왜 저래 진짜', '무서워' 등등. 또는 표정들이 수많은 말소리를 대신했다. 그 순간 나는 몹시도 기이한 혐오감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나 또한 저들과 같은 행동을 했으면서 왜 불쾌한 기분이 들었을까. 떠오르는 궁금증의 실마리가 한껏 꼬인 채로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 마지막 물음은 '나는 왜 지금 이다지도 괴로운 걸까?'였다.

 부끄럽지만 날 때부터 큰 부족함 없이 자란 편이다. 성실하시고 열심히 살아오신 부모님을 둔 덕분이다. 나는 이유 없이 그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왔다. 가끔씩 불만을 토로할 때도 있었다. 주위의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들을 하나씩 이야기해왔다. 3년째 똑같은 패딩만 입고 있다는 둥, 에어컨을 좀 틀면 안 되냐는 둥 말이다. 나는 가난을 잘 몰랐다. 항상 뉴스나 드라마에서만 접하던 단어였을 뿐이다. 심지어 드라마 속 가난이 현실의 가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엄마께서 잔소리 같지 않은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가난을 믿지 마라. 너 저게 진짜 가난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날인가 진짜 가난이 무엇인지 궁금해 여쭈었다. 우리 부모님은 생각보다 힘들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정말 가난할 때는 귤 한 봉지를 마음 놓고 사 먹기 어려워 두 개만 사드셨다고 한다.

"아이고. 젊은 사람들이 왜 그래!"라는 시장 아주머니의 핀잔을 들으며.

귤이 너무 먹고 싶은데 그것을 제대로 사 먹을 돈조차 없는 게 가난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가난이 가슴으로 와닿은 건 아니었다. 딱히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살갗으로 확 와닿았던 것 같다. 눈으로 한 번, 귀로 한 번. 내가 그 날 그토록 괴로웠던 이유는 가난을 처음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었고 그와 동시에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가난을 혐오하면서 정작 사람들을 가난으로 몰아넣고 있다. 연속적인 경쟁구도 속에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 그런 셈이다. 떨어질수록 빛의 크기는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그 세상 속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아이들은 또 배우기 시작한다. 가난은 무서운 것이라고. 그 가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좋다고 배운다.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니다. 그저 현실을 너무 잘  투영해서 가슴 아픈 말일뿐이다.

 가난에서 비롯된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계속해서 낳는다. 당신의 혐오는 어디까지인가. 어디서부터 그 뿌리를 뽑아버릴 수 있을까. 해답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의식적인 혐오는 그만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생각들을 갈무리하고 걷는 동안에 생각했다.

'역시 나는 오늘 하루는 걷고 또 걸어야겠다. ' 

다양한 사람들을 보기에 이처럼 제격인 곳은 없었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가장 큰 영감을 얻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영감이 될 사람을 둘러보고 그런 내가 누군가의 영감이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 profile
    korean 2019.09.01 20:05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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