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투고작-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삽입곡 calling you를 들으며> 외 두 편

by 먼지깡통 posted Oct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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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삽입곡 calling you를 들으며>

 

 

그 전날은 일요일이었고 상당히 낙담할 일이 있었다.

그 전날은 냉장고에 달걀 다섯 알이 전부였고, 낙담한 마음에 정신이 없어 달걀이 설익은 줄도 모르고 달걀을 삶아 비닐에 담았다. 답답한 마음에 거리를 배회하며 까서 입에 넣을라치면 손가락과 입가에 터져 흐르던 설익은 달걀...

그 전날은 급전을 당겨 아무 곳이나 가는 막차를 한 대 잡아탔고,

우연히 도착한 곳은 새벽녘의 속초였다

 

그날 나는 청명한 유월의 하늘 밑에 다시 깨어났고,

7번 국도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텅 빈 해변을 차창에 끼고 달리던 중,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해변을 발견하곤 막 다시 출발하려던 버스를 급정차 시켰다.

 

버스는 해변에서 날아온 모래알들을 긴 먼지로 뿜으며 가던 길로 향했고,

나는 천천히 트렁크를 끌고 내려 국도를 대각선으로 무단 횡단했다.

개장직전의 한적한 해변에 들어서자 횟집 앞에 홀로 쪼그려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던 그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훑어봤다.

 

그는 나보다 여덟 살이 어린 특수부대출신의 건장한 체구의 사내였고,

그 후 내가 그곳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가 나를 도와준 이유는 내 눈빛이 크게 사고 칠 느낌이었고,

그가 처음 그곳에 온 까닭도 낙담이었으며,

그가 처음 온 날 그의 주머니엔 칠만 원이 전부였고

그 돈을 털어 산 소주를 바람 세찬 방파제 끝에서 짝으로 마시다가,

아침에 깨어보니 파도에 휩쓸려 방파제 옆에 쌓아놓는 세발달린 콘크리트 더미들 사이에 의식을 잃고 끼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새 삶을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그 해변의 명소 <솜다리 수제버거>의 사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언젠가 오랜만에 양복을 차려입고 나를 찾아온 그가,

', 저 서울에 어엿한 직장 구했어요. 가을엔 새 장가도 가요!' 라며 활기차게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

그 해변과 스치던 국도변의 풍경

급출발하며 뿌리던 버스의 먼지와

덜컹대며 구르던 트렁크 바퀴소리, 그리고

이 영화의 첫 장면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에 대한 의문,

그리고 살아있는 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에 관하여>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단순히 정을 나누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랑은 '신탁'에 의함이며, 그러한 섭리에 의한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의 의미는 너무 싼값에 넘쳐나느니, 대부분 사랑 비슷한 것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사랑의 순간은 퍼제션(possession)이다. 그것이 정점에 이를 때 엑스터시(ecstasy)를 맞본다.

뭔가, 식은땀이라든가 눈물이든가, 여하튼 그 순간은 육체가 말라갈 듯 액체가 몸 밖으로, 온몸의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 한다.

이것은 간절함이며, 간절함이 넘쳐 터져 나오는 통제 불가능의 사정이다.

 

땀도

눈물도

정액도 말이다.

 

이것은 한번 시작되어지면 멈출 수 없는 것에 대한 도단의 이야기이다.

사랑은 도단이며, 그에 대한 역설로서의 넘어섬이며, 저편으로의 순간이동이다.

 

그리하여,

사랑이여

그대는 시공 저편의 영원이여......

 


 

<글쓰기라는 형벌>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 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문득 이 가사가 떠올랐다.

넷킹콜의 It’s only a paper moon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의 제목과 가사가 시사하는 바가 뭘까?

종이로 된 허상의 달도 믿어주면 진짜가 되듯이

어쩌면 종이 세상이라는 허상에 속고, 때로는 진짜라 믿어주며

허상을 실상이라 착각하여 믿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은 어쩌면 조감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허구의 세계는 아닐까?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어딘가 존재할 이데아와

이데아의 그림자로써의 현실.

이데아의 그림자(현실)의 그림자로서의 예술.

그 중에도 문학 혹은 글쓰기라는 것.

 

글쓰기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언어는 어떠한가?

라깡은 기표 하에서 기의의 끊임없는 미끄러짐에 대해 이야기 한다.

데리다는 낱말이 부정확하기에, 아니 차라리 불충분하기에 그것을 지우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필요하기에 판독할 수 있도록 해둔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결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한 적도 없는 허상의 세계에 대한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부유하는 느낌이나 관념을 언어라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그물로 포획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끊임없이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결코 이길 수 없는 경기이며,

시시포스의 끝나지 않는 형벌과도 같다.

마치 이 글을 가상의 사이버 종이 위에, 역설적이게도 언어라는 매체로 써내려가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름: 임상태

이메일: jouet68@hanmail.net

핸드폰: 01099653586


(글은 파일로도 첨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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