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수필공모)_나그네 지니의 인생친구, 여행

by 나그네지니 posted Oct 18,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그네 지니의 인생친구, 여행 


   어렸을적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을 보고, 성인이 되면 언젠가는 세계여행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었다. 한 때 잘되었다던 아버지 사업이 1990년 후반 IMF때 흔들리다가 결국 운영하시던

사업체의 문을 닫고 난 이후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장 먹고 살일이 우선이었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교를

가야하는지도 걱정해야했던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대생이 된 나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엔 아르바이트로,

공강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도서관에서는 주로

반납된 책이나 새로 입고된 책을 정리하고, 요즘은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만해도 익숙하지 않았던 전자도서관의 사용법 문의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일을 했었다.

  학업과 일종의 생업을 병행하다보니 취미 생활이나 연애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는데,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 활동 중의

토막 여유시간에 책을 읽은 것이 그나마 낙이었다. 당시 학생들이 많이 빌리던 책이 있어서 호기심에 읽게된 책이 있는데,

바로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였다. 공대생이지만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어서 이 책의 매력에 홀딱 빠지고야 말았다.

전국 주요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 문화유산에 대해 역사적 사건과 건축학적 지식을 결합하여 설명한 내용들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그 책을 보고 우리나라 곳곳의 문화유산답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잊혀졌던 옛꿈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래 한 때 나의 꿈은 세계여행이었지...’


  그러던 중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 영장을 받게 되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지만, 한 곳에서 26개월간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결정은 이대로 군대에 가기는 나의 청춘이 너무 아까워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형편이 괜찮거나 도전의식이 있는 친구들은 유럽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장기간

그만두기 어려운 나는 우리나라라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곤 소장용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구매하여 오가는 버스에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첫 여행 목적지는 경주였다. 가서 숙박을 할 여력은 안되어서 금요일 저녁 야간 우등버스를 타고 새벽 5시 경엔가

경주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불국사와 석굴암.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많다는데,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안개가 거치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도 뚜렷하게 잘 보여 가슴 속에 감동이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 최고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는 석굴암이 일제 강점기 때 부실하게 복구되어 예전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자전거를 빌려 반월성, 남산, 첨성대, 안압지와 박물관 등을 둘러보았다. 유홍준님의 한문장 한단어를

되새기며 옛 조상들의 유산을 돌아보다보니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야간 우등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올라왔다내려가는 버스에서 불편하게 자고온종일 돌아다니느라 온몸이 피곤했지만, 올라오는 버스에서

첫 여행의 설레임과 감동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옛 백제의 수도인 공주와 부여를 다녀왔다. 주머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거의 무전여행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공주 버스터미널에 내려 근처 국밥집에 갔을 때 공주와 부여 옛 모습 보기 위해 여행온

학생이라고 하니, 사장님이 이렇게 와주어서 고맙다면서 국밥을 곱빼기로 주시고 가는 길에 먹으라며 간식까지 챙겨주셨어서

시작부터 마음이 든든하고 포근해졌었다. 공주 박물관과 공산성을 둘러보고 저녁엔 공주대학교 도서관에 찾아가게 되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24시간 개방하는 도서관도 있었어서 여관비를 아끼려고 찾아간 것인데, 안내판에 ‘24라는 글씨만

얼핏보고 기쁜 마음에 들어갔다가 ‘24시까지 개방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한밤중에 여관을 찾아 전전하기도 했었다.

다음날 아침 부여행 버스에 몸을 실어 이동하면서 우리나라 서남쪽의 평야를 보며 우리나라도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착한 부여에서도 유홍준님의 답사경로를 따라 부소산성과 낙화암을 둘러보게 되었다. 남화암에 올라가는 길에

초등학교 여학생이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걸어가고 있어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정상까지 가는 거면 같이 가요~”라고 하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올라가다보니 조그마한 가게가 나왔다.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곳이어서 잠시 쉬었다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아이가 그 가게로 들어가서 엄마를 찾는 것이 아닌가. 아이와 인연이 되어 찾아간 그 가게에서 파전을 먹으며

낙화암을 둘러보니, 그 옛날 백제가 평화로운 시절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여유를 즐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낙화암을 보니 3천 궁녀가 몸은 던졌다는 것이 정말 가능해?라고 되물으며 그 시절 망국의 백성들의 아픔을 담은 얘기였을 꺼라 추측도 했었다.

  한달정도 후엔 국내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 가장 오래되고 멋스러워 국보로도 지정된 건물이 있는 예산 수덕사에 갔다.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산채비빔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동양화가 이응로님이 사셨다는 수덕여관에서 하루밤을 청하게 되었다.

옛 분위기에 취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 수덕사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사찰에 올라가보니 그 시간부터 마당에서

비질을 하는 스님들이 있었다. 이른 새벽에 들리는 비질 소리는 나의 마음도 깨끗하게 정돈을 해주는 듯 하였고, 지난 몇 년간

복잡하고 원망스러웠던 마음들도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절을 둘러본 후 수덕사 뒤편 덕숭산도 천천히 둘러보게

되었는데, 10대 중후반부터는 잘 느껴보지 못한 평화로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채워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이후 경주를 2~3번 더 가보고 남해와 강원도도 다녔었는데, 요즘은 쉽지 않은 히치하이킹도 해보고, 실제 두눈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유산을 접하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어서 인생이 좀더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2001

15일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군생활은 철원 GOP에서 하게 되었는데, 철책선 너머

비무장지대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쟁과 분단의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인데, 수십년간 인간들의

손길을 타지 않다보니, 다양한 생명체들이 다시 태어나고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이루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대자연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이어, 내 인생 두 번째의 인문학

서적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유럽의 기초를 만든 고대 로마제국의 탄생부터 멸망까지를 담은 책인 로마인 이야기는 작가가 매년 1권씩 출판으로 하여

15권의 책을 다 보기까지 15년이 걸렸으며, 그래서 오랜 기간 나의 인생친구가 된 책이기도 하다. 군복무를 하던 시절

3권까지 읽을 수 있었는데, 통상 패자를 노예로 삼던 다른 고대국가들과는 달리 패자까지 자신의 일부로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자세와 공동체 의식 등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는데,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에 세력을 떨치던 그리스의 경우 너무 바다로 영토가 치우쳐져 있어 통상과 식민지 활동은 활발했으나

결국 자신의 본토와 본질을 잃고 말았다. 한편 북쪽의 강자였던 에트루리아인은 뛰어난 건축술과 기술력을 보유하였으나,

높은 산지에 방어적으로 폐쇄적으로 살다보니 결국 고립되고 점점 힘을 잃어 로마의 일부분이 되게 된다. 반면 중부의

테베레강 근처 7개 낮은 언덕에 자리잡은 로마의 경우 자신의 본질의 잘 지키고 주변의 장점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도시의

구조이자 위치여서 결국 고대 인류문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도시를 건설할 때 얼마만큼의 장기적이고

인문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바뀔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보고 싶은 도시가 두곳이 생겼었는데,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와 동로마의 수도이었다가

나중에 오스만투르크의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 다른 이름으로는 이스탄불이었다. 특히 동서양의 문명이 융합한 모습을

가지게된 이스탄불은 유럽내에서도 유명하여 파리보다도 더 많은 관광객이 간다는 말을 듣고 꼭 가고 싶었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외에도 전쟁3부작이라는 시리즈로 책을 썼었는데, 그 중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배경이 된

도시의 주요 장소와 지중해, 금각만 등을 보면서 당시 주요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 등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2006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영혼의 동반자와 결혼을 하면서 신혼여행지로 터키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과 카파토키아를 가보게 되었는데, 둘다 첫 해외여행이었어서 휴양지보다는 오랫동안 추억에

남을 문화유산도 보고, 역사적 명소에도 가보자 이곳들을 가보게 된 것이었다. 여러 문명의 산물이 하나로 융합이 된 그곳이,

29년간 서로 다른 삶을 산 두사람이 한 가정을 이뤄 미래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있어 큰 의미를 준다고도 생각했었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마르마라해 앞 쪽의 돌마르체 궁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아야소피아

성당, 메메드 2세가 대형 대포로 공격하고 육지를 통해 배를 실어날랐다는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금각만 등은 평생의 소중한

기억이 될만한 멋진 장소였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꼭 온가족이 다시 한번 오자는 약속을 와이프와 굳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2년이 흘러 2018년이 되었다. 맞벌이 부부여서 둘다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여가생활이라는 것을 잘 하지 못하고

시간은 많이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소중한 아이도 훌쩍 커서 올해 초등학교 5학년 12살 소년이 되어 있다. 그래도 간혹 아이와

함께 가족의 추억을 만들고자 예전에 읽었던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떠올리며 옛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는 도시들도 찾아보긴 했었다. 매우 안타까웠던 기억은 몇 년 전 예산 수덕사를 찾아갔을 때 하룻밤의 추억이 있었던

수덕여관이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그 근처에서는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졌었던 것이다. 그래도 수덕사를

둘러보고 나서 와이프, 아들과 함께 산채비빔밥을 먹으면서 아빠의 옛날 여행담을 얘기하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시간적, 경제적 여력은 아직 안 되어서 신혼여행 때 약속했던 터키로의 가족 여행은 아직 버킷리스트에서 지우지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예전 세계여행의 꿈을 언젠가는 이루고 싶어 조금 힘들더라도 1년에 한나라씩은 가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 몇 년전부터는 근처 국가들부터 다니고 있다. 그래서 일본, 대만, 홍콩 등을 가보게 되었고,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가능한

그나라 박물관은 꼭 코스에 넣어서 둘러본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홍콩 시립박물관과 대만의 고궁박물관이었다. 역사를

알면 현재를 현명하게 살 수 있고 미래준비도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에 아이를 위해 이러한 인문학 여행은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꼭 눈에 보이는 건축물과 유물 등에 집중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언제가

말씀하신 내용 중에 해외에 나가서 거대하고 화려한 문화유산을 보면 대단하다고 느끼기 보다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고통받았을 수많은 민초들과 그것이 가능하게 한 강력한 권력에 대해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끼셨다는 것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우리나라에는 왜 중국이나 유럽처럼 장대한 문화유산이 없는지 의아해하고, 우리 조상님들은 왜 그런 것을 못

만들었는지 아쉬움이 있었는데, 어느순간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훌륭한 우리 선조들은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물질적인

유산보다 정신적/문화적 유산을 더욱 중시하셨고, 그러기에 우리나라에는 작지만 아름답고 신비로운 유산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와 후손들도 그러한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도 그러한 유산들을 많이 남기기를

바랄 뿐이다.

 

   청소년기부터 집안의 아픔이 있었지만, 든든한 힘에 되어준 책과 여행들은 어느덧 40대에 들어선 나에게는 과거의 추억이자

미래로 더욱 힘차게 나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 중 하나이다. 앞으로도 또 다른 서적과 여행을 통해 나도 성장하고, 나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성숙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명 : 임세진

이메일주소 : orion_love@naver.com

HP연락처 : 010-3936-7950


 




Articles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