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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 라디오라는 매체가 일상 속에 파고들어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 라디오는 내게 지겨운 일상 속에서 유일한 친구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다. 그저 심심해거 듣기 시작했던 라디오는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되었고 대부분의 일과를 라디오를 들으며 시작해서 라디오로 끝났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사연과 음악 소리에 눈물 흘리기도 했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때로는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가 되었고 때로는 방황하던 내게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했던 라디오. 이제는 라디오가 일상인 내 삶에 가장 오래된 절친한 친구는 라디오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라디오는 더 이상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처럼 급속도로 성장했고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텔레비전에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라디오를 즐겨 듣는 내게 라디오는 구시대적이고 요즘 누가 라디오를 청취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라디오는 사람들 속에 여전히 깊이 존재한다. 운전을 직업으로 삼으신 분처럼 일상적으로 듣는 분들도 여전히 많다. 비록 시대가 흘러 텔레비전에 밀리고 이후 핸드폰에 밀렸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

내가 라디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야자 시간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일상의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대인 관계도 나락으로 떨어져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던 나는 어쩌다보니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여름방학에도 학교에 나와서 종일 자습을 해야만 했던 우리 학교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공부는 잘하는 친구들만 했고 나머지는 거의 노는 분위기였다. 한여름의 햇빛이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어떤 녀석이 라디오를 들으며 재미를 느끼자 주위에 라디오를 권했고 자연스레 라디오는 반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듣게 되었다. 그렇게 퍼지고 퍼져 라디오는 인기를 끌게 되었고 나 역시 자연스레 라디오를 듣게 된 것이었다. 주로 아이돌이 진행하거나 개그맨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인기가 끌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 되고도 나는 라디오를 열정적으로 들었다. 수업 시간에는 라디오를 어쩔 수 없이 못 듣지만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학교에서도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듣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야자 시간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선생님 몰래 책을 읽거나 틈틈이 시를 쓰는 게 어느새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되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정한 진행자의 목소리와 다양한 코너들은 내게 크나 큰 즐거움이었고 힘겨웠던 고교 시절을 버티게 해주는 최고의 친구 같은 존재로 내 곁을 지켜 주었다. 그러기에 라디오는 어느새 내 삶 속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친구 관계도 좋지 않았기에 아웃사이더로 지냈고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던 내게 학교생활은 고역이었다. 당시의 나는 모든 학생들에게 공부만 시키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하고 싶은 꿈도 다르고 능력도 다른데 공부만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는 늘 내 곁에 존재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최고의 파트너였다. 아침에 학교로 가는 길부터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수업 시간을 빼고는 내내 라디오는 늘 내 곁에 함께 있었고 즐거울 때나 힘겨울 때나 항상 함께 하는 존재였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원하지 않는 대학에 입학하고 한동안 힘겨워하던 시기에도 대학 졸업 이후 한참 동안이나 방황하고 배회하던 시절에도 라디오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인생은 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기에 태어나서 처음 맛본 실패와 방황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독했다. 친구도 없고 집안에서는 갈등이 있었기에 더욱 힘겨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방황을 멈추고 어느덧 나는 꿈을 찾게 되었다. 라디오에서 나온 나처럼 방황하다가 꿈을 찾아 살아가는 어떤 이의 사연이 내 인생을 바꾸게 한 것이다.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혼자였던 그 사람의 사연에 나는 큰 공감을 했고 지금은 꿈을 향해 걸어가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펑펑 울었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린 시절 꿈꾸던 시인의 길을 걷기로 했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 그리고 시인의 꿈을 가진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리며 시인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막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나는 여전히 라디오를 듣고 있다. 시는 내가 원하는 꿈이기에 시를 쓰는 순간에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종종 힘들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글을 쓸 소재가 없거나 글을 쓰다가 막히는 순간이 온다. 이건 글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다못해 일기를 쓸 때도 생각이 안 나서 잘 안 써지는 경우가 있는데 글 쓰는 것 자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오죽 하겠는가? 그리고 시를 쓰다보면 감정에 지나치게 빠져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시를 쓸 때가 있는데 감정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시를 완성 시키고 나서 후유증이 오기도 한다. 특히 슬픔이나 고독에 관한 시를 쓰고 나서는 감정적 후유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라디오에서로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도무지 적당한 소재거리가 떠오르지 않고 막막할 때도 라디오는 내게 큰 도움이 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 그리고 노래는 각종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내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글로 적을 때는 아무래도 소재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라디오는 일종의 간접 경험이 되기에 그러한 단점을 보완해준다.

어느 날 우연히 들은 라디오는 어느새 내 일상이 되었고 오래된 친구가 되어주었다. 때로는 위안이 되고 때로는 지독한 고독 속에서 방황하던 내게 길잡이가 되어주고 때로는 조언자가 되어주는 라디오는 내 생의 최고의 친구다. 이제 일상 속에서 항상 듣는 라디오는 항상 내 곁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는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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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이다.


 

나는 지체 장애 5급의 장애인이다. 선천성 척추 측만증으로 태어난 해부터 매년 정기 검진을 받아야 했다. 최근에 척추 측만증이라는 단어가 척추 옆굽음증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척추 측만증이라는 병명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척추측 측만증은 심해졌고 결국 14살의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성조숙증으로 인해 남들보다 성장이 지나치게 빨리 시작되었고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정용 철심을 8개를 박는 대수술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의 학창 시절은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여름방학 무렵 나는 수술을 받게 되었고 한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 이후에도 거동이 불편해져서 학교에 한참 동안을 등교하지 못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고서야 겨우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한동안 집에서 누워만 지낸 탓에 답답했었고 친구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사실 수술 후로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어서 보조기를 착용하고 가야만 했다. 그리고 출결일수 부족 문제로 더 이상 결석 상태이면 유급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어서 사실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2학기가 한참이던 학교에 오랜만에 등교하던 그날의 기억을 13년이 흐른 지금에서도 결코 잊지 못한다. 나는 당시 허리에 보조기를 찬 채로 등교를 했는데 나를 보는 순간 반 아이들이 동시에 이상한 시선으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 것이다. 하긴, 한참 동안 학교에 나오지를 않았고 그 이유를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몰랐으니 갑작스레 보조기를 착용하고 나온 내 모습이 이상하기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당시에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단체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결코 잊지 못하는 상처로 남았다.

학교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내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저 호기심으로 왜 학교에 그동안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오는 급우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이었다. 초반에만 잠깐 말을 걸어오는 몇 명의 같은 반 아이들이 있었고 그 이후로 내게 아무도 말을 걸지도 다가오지도 않았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5시까지 의무적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보충학습을 했었는데 나는 정규 수업만 받고 하교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보다 나만 1~2시간 먼저 하교를 하는 셈이었다. 거기에다가 체육 수업에도 한 번도 참석을 하지 못했으니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이 나를 멀리 하는 게 느껴졌다. 사실상 왕따나 다름없었던 나였다.

2학년이 돼서야 보조기 착용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체육 수업이나 체육 대회와 수련회 등에는 모두 불참하는 상황은 계속 되었다. 수술로 인해 허리가 불편하니 어쩔 수 없이 참석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보조기를 착용하지 않은 이유로 체육 수업을 받게 되었지만 나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들이 축구를 하는 것을 구경하기만 했다. 그로 인해 친구들의 시선은 결코 좋지 않았다. 내겐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걸 곱게 보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 생활이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내 이어지니 나는 시간이 갈수록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이런 내게 유일한 친구이자 취미였고 즐거움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같은 장르 문학의 책을 즐겨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독서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늘 혼자 다녔고 친구가 아무도 없었던 내게 책은 커다란 위로였고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는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혼자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에는 그다지 흥미가 있지 않았고 또한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같은 재단이었기에 상당수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숫자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 내내 보던 급우들이 그대로 이어지다 보니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내내 혼자였다. 허리로 인해 운동 능력이 남들보다 뒤떨어졌고 체육 수업의 수행평가 등을 할 때도 나는 점수가 좋지 않았고 또한 뒤에서 나를 비웃거나 은근히 따돌리는 일상은 지속되었기에 나는 더욱 더 독서에 매진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새 27살의 나이가 되었다. 이젠 시간이 흘렀기에 힘겨웠던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는 사라지 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심정 또한 일정 부분은 이해는 한다. 너무 어렸던 시절이었고 언제나 외로웠지만 오히려 내게 그로 인해 작가라는 꿈이 생겼으니 그 시절이 그렇게까지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년에 문학 공모전에서 시 부문에 등단하게 되었고 시집도 여러 권 낸 작가가 되었다. 또한 현재는 에세이와 소설을 집필하는 중이다. 비록 학창 시절의 기억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지만 삶 속에서 나는 꿈을 꾸게 되었고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제 과거의 상처는 과거로만 남기고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나는 작가로서 활동하며 장애인 관련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그래서 자격증 공부도 하고 여러모로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앞으로는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 profile
    korean 2018.08.31 22:43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쓰시면 좋은 결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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