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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밥

 

어릴 적에는 뭔가를 주워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장난감 총알이며 색깔이 이상한 돌 따위를 온종일 주워 모아 그것이 쌓인 모양을 보고 한참 동안 뿌듯해하고는 했다. 그렇게 찾은 보물들을 한 보따리 그득이 집에 들고 가면 부모님은 질색했다. 그런 쓸데 없는 것들을 들여놓기에는 집이 좁았다. 부모님은 집의 비좁음과 통장의 비좁음, 직장의 비좁음을 어깨에 이고 살았다. 덕분에 그 비좁음이 내 어깨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끔 일고여덟 시간을 주워 모은 것들을 깨끗이 버리고 와야 하는 열 평짜리 원룸이 미웠다.

 

그러나 내 괴벽이 칭찬받는 시기가 딱 한 번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가을이었다. 가을이면 은행이 사방천지에서 꼬릿한 냄새를 풍기며 후두두 떨어졌다. 또래들은 은행 없는 놀이터를 찾아 동네를 헤맸지만, 나는 은행 노다지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은행을 주워 모아 제 머리통만한 비닐봉지를 끌다시피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 많은 은행의 껍질을 벗겨야 하는 아빠는 귀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보따리를 밖에 두고 오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며칠 후에는 노란 은행이 송송 박혀 있는 은행밥이 상에 올랐다. 입이 짧던 나도 은행밥이 올라오면 참 맛있게 잘 먹었다.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나이가 되기까지 난 계속해서 은행을 주웠다. 은행이 나름 고급음식이었던 탓에 다른 계절에는 맛보기 어려웠지만, 가을이면 팝콘 대신 구운 은행을 먹을 정도로 심심찮게 먹을 수 있었다. 은행은 여러 비좁음들 사이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작은 사치였다. 그 사치를 내 게임이 가능케 한다는 게 좋고 또 좋았다.

 

그래서 나는 비좁음이 버거워질 때면, 가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유일하게 다니던 영어 학원을 끊어야 했을 때도, 친구 집에서 난생 처음 보는 외국 초콜릿을 봤을 때도. 수학여행을 못 간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던 날도, 비싼 사발면과 싼 사발면 앞에서 오래도록 서성이던 날도. 학업이 바빠져서 은행을 주우러 나가지 못했을 때도 나는 가을을 기다렸다. 가을이 되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그 시간이 오래되면서 나는 은행이 아니라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됐다. 그것도 은행을 마트에서 사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은행을 먹지 않는다. 그 시절이 너무 물리고 지쳐 은행은 쳐다보기도 싫다. 대신 다른 종목의 게임을 시작했다. 피규어와 음반과 예쁜 소품들을 모은다. 그리고 검은색 비닐봉지 대신 고급스러운 장식장과 책장에다가 예쁘게 정리해둔다. 어릴 적 집 밖에 놓고 와야 했던 그 쓸데없는 보물들을 대신하듯 열심히 모으고 또 열심히 쌓아놓는다.

 

쌓다 보면 아직까지 드리워진 어린 시절의 비좁음이 조금쯤 옅어지는 느낌이 든다. 내 게임들 중에서 은행만이 승인되던 시절을, 그리하여 은행을 모을 수 있는 가을을 기다려야만 하는 시절을 나는 끝내 지나쳐온 것이다. 장식장을 보면서 나는 가끔 그러한 승리감에 도취되고는 했다. 그런 날이면 자랑을 하듯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필요한 것 없냐며 용돈을 부쳐드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직도 가을이면 은행밥을 지으신다. 그리하여 매 추석이면 나는 상 앞에서 노란 은행이 콕콕 박힌 밥과 눈싸움을 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밥 식겠다,” 하시면 나는 결국 ,” 하고 숟가락을 들고 만다.

 

사실 내가 주워 온 그 은행이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냄새나는 껍질을 벗기고 또 딱딱한 껍데기를 깨는 지난한 노동이 필요했음을 이제 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은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다는 것도.

 

희망조차 요원해서 기다림에 매달려야 했던 그 시절이 나에게 소중해질 수는 없을 테다. 견디어냈다기보다는 견딜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 앞에서 은행밥을 먹는다. 당신들이 내 게임을 지켜주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이렇게 세월이 지나 잔영처럼 남은 얼마만큼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먹는다. 밥이 식기 전에





뻐끔뻐끔

 

비 오기 전 먹구름을 냉큼 몇 자 띠어다가 볕에다가 말리는 겨. 그러면 요맹크름 줄어서 빳빳해지는디, 그걸 돌돌 말아논기지.

 

할머니는 판잣집 앞에 옹송그리고 앉아 담배를 폈다. 가끔 내가 그게 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구름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뻐끔, 뻐끔 할 때마다 나오는 허연 연기가 구름인 것 같기도 해서 나는 오래도록 그 거짓말을 믿었다. 소식이 끊어졌다던 엄마가 불쑥 찾아와 아이 앞에서 무슨 담배에요!” 하고 기겁을 할 때까지. 할머니는 엄마 앞에서 죄인처럼 담배를 숨겼다.

 

그러니까, 그랬었다.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장례식은 조촐했다. 할머니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아는 사람 중에서도 장례식을 올 만큼 친분을 유지한 이는 손에 꼽혔다. 해봤자 나, 엄마, 그리고 요양원 직원들 정도. 할머니는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시장에서 1000원짜리 고무신을 살 적에도 20분은 퍼질러 앉아 깎아달라고 소란을 피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흔 노인이 제 목숨과 손주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좋은 평판이나 자존심은 사치였다.

 

열 살까지 나는 그녀와 함께 살았다. 매년 터지는 보일러를 고칠 돈이 없어 탕파를 끌어안고 잠을 청하고, 아침에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십 년을 컸다. 고급 파마 머리에 달착지근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엄마라며 나타났을 때 냉큼 그 쪽에 붙은 건, 반쯤은 영악함이었지만 반쯤은 그 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절박함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행이라고 한숨처럼 뱉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3평 남짓한 집으로 도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가끔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그녀가 담뱃갑 안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할머니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새로운 집, 새로운 가족들에게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담배는 하얗게 말린 구름 따위가 아니라 108여종의 발암물질을 담은 나쁜 것이라 했다. 나는 새로운 집에서 나는 새로운 냄새들이 좋았다. 나는 그 뒤로 할머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여기, 유품입니다.”

검은 상복을 빼입은 직원이 상자를 하나 건넸다. 박스는 가벼웠다. 안에는 낡은 담배 한 갑이 있었다. 요양원 직원이 말을 붙였다.

할머님이 마지막까지 미안해하셨어요. 담배 나쁜 줄 모르고 어린 손주 앞에서 많이 피웠다고. 나중에 늙어서 자기처럼 아프면 어쩌냐고 걱정 많이 하셨어요.”

 

그녀는 그 10년간, 고작 그 생각을 했을까. 저를 홀랑 버리고 간 손자에게, 그저, 미안하고, 미안해서, 다시 담배를 피웠을까. 입 안을 씹다가 감사합니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비가 왔다. 먹구름이 컴컴했다.

 

담배갑을 열었다. 한 개피가 남아 있었다. 사실은 나도, 할머니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 인생에 자욱했던 먹구름을 그나마 하얗게 태워버릴 수 있는 방법이, 담배뿐이었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 하얀 연기에 할머니의 시큰거리는 무릎과, 퉁퉁 부은 발목과, 허벅지에 엄지손톱만하게 난 종기 따위가 들어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매번 기침이 나와 켈록거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뻐끔뻐끔하고 하얀 연기를 뿜었다. 할머니는 향보다 이 연기를 좋아하실 것 같았다. 할머니가 담배연기로 만들어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으면 했다. 그래서 뻐끔, 뻐끔뻐끔. 할머니, 안녕. 뻐끔.

 


이단아. 01099830986. cjtrkddkwl@naver.com

 

  • profile
    korean 2018.08.31 23:08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쓰시면 좋은 결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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