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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0 08:54

말없는 노인 외 1편

조회 수 40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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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노인


 시골의 풍경은 선량하기 이를 데 없다. 몰려드는 빛과 바람이 시시각각 풍경을 변화시켜도 그 기품은 한결 변함없다. 계절에 따라 겪는 삶의 풍파에도 마찬가지다. 차디찬 입맞춤에도 사랑의 혼을 품고, 뜨거운 입맞춤에도 사랑의 혼을 품은 채 잔잔한 미소를 잃는 법이 없다.

허름한 집을 나와 들길로 접어드는 주름지고, 구부러지고, 거칠어진 노인의 발걸음 속에는 어김없이 느긋한 여유가 묻어있다. 답답한 듯 빨리 지나쳐 가기를 초조히 기다릴 필요가 없다. 길옆에 비켜서서 그냥 해바라기 같은 미소만을 짓고 있는 편이 옳다.

 하지만, 낯익게 지내왔으며, 서로의 생활을 다소 아는 사이로서는 최소한의 인사 정도는 필요한 법. “안녕하십니까, 밭에 나가십니까?”라고 인사했다. “응!”이라는 답변만이 들려왔다. 더 이상의 말은 사치이다. 이 시골 노인의 평생은 발길, 손길에 의해 유지되었지 유창한 대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말없는 자연의 소유물이다. 그래서 말없이 성장해 왔고, 말없이 전답을 일구며, 말없이 삶의 경과를 거쳐 가고 있을 뿐이다. 도시의 위락에 몸을 담근 자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 것일까?”라고 애잔한 눈빛을 띄우겠지만, 그것은 마치 “도대체 왜 평화가 필요할까?”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시를 떠나 고요한 시골풍경을 바라볼 때 어김없이 빛나는 갈망의 눈빛. 눈물로 혼을 적시며 평화를 갈망하는 저 자신의 애잔한 눈빛을 깜빡 잊은 것이다.

 하긴 고도의 기억력을 요구하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는 그만큼 기억력을 잃기도 쉽다. 청명한 의식이 생겨난 때가 아득하리라 여겨진다. 정제된 언어가 있을 리가 없다. 쉬 싸움판이다. 싸움의 백미는 역시 언어이다. 자동차와 자동차가 부딪쳐도 언어가 먼저 나서며, 국가 간의 충돌이 일어나도 언어가 먼저 나선다. 싸움뿐만이 아니다. 그 싸움을 말리고 경계하는 도덕의 백미도 역시 언어이다. 사랑엔 간섭이 없으랴. 토라질 때나 달콤한 밀어를 나눌 때나 언어는 어김없이 나타나 서로의 심기를 대변한다.

 언어처럼 부지런한 것도 없으며, 언어처럼 피곤한 것도 없다. 문명의 어머니인 언어로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노인이 찾아가는 들길 위를 가로질러가는 전선에도 언어는 흘러가고 있다. 아득히 먼 곳의 음성들이 다양한 옷을 걸치고 마구잡이로 종횡하고 있다. 슬프고, 아름답고, 정다운 음성들도 있겠으나, 그러나 웬일인지 도시의 번잡스러움이 먼저 느껴진다. 그런 까닭에 슬며시 뚝 자르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전선의 이편저편에서 당황과 의심의 혼들이 갑자기 물 끓듯 보글거릴 것이다.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이렇게 혼란한 재앙이 된다. 전선 아래를 지나 들길로 가는 말없는 노인 역시 재앙이 된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언어를 숨기거나 나타내는 일에도 지혜가 따른다. 근엄하게 보이고자 침묵을 지키는 사람 앞에 서면, 나도 몰래 침을 꿀꺽 삼킨다. 긴장되고 불안해서다. 당연히 그가 불편하다. 그 사람의 그런 태도는 마치 상호 간의 화합을 원치 않은 처사와도 같다.

 물론 자기 자신을 간추리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간추린 자아를 안으로 갈무리하느냐 밖으로 표출하느냐에 따라 상호관계의 곡조는 달라진다. 나는 안으로 갈무리하는 편을 옳게 여긴다. 마음 편하면서도 겸허한 까닭이다. 하지만, 밖으로 표출되는 자아는 대체로 사나운 개를 만난 것처럼 경계심을 품게 한다. 종속적인 계층이냐, 영원한 남남이냐의 갈림길에서 서성이다가 그냥 되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런 자는 당연히 그의 지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성격에 의한 침묵은 그나마 낳다. 내성적인 사람은 대체로 군중 앞에서 자기표현을 꺼린다. 그러면서도 누구 못지않은 수다를 가슴에 담고 있다. 만약 군중이 아닌 친구와 단둘이서라면, 그의 수다는 해안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철석이게 된다. 어쨌든 그는 많은 시간을 침묵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물론 사악한 음모는 없다.


 「침묵은 금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그 말을 교훈으로 삼고 진종일 말 한마디 없다면, 산더미 같은 금을 준다 한들 좋아 할 리 없다. 봄의 훈향과도 같은 달콤한 입김을 풍기며 종달새처럼 명랑한 언어들로써 맛보아야 할 사랑의 진미. 그것이 사라지다니, 참으로 안 될 말이다. 연인의 침묵은 누구라도 달갑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바꾸어야 한다. 「가려서 하는 침묵만이 금이다.」라고. 그렇게 되면 사소한 일로 토라진 채 잠시 입을 굳게 다물어버린 연인의 태도는 매우 성공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누구라도 안절부절 못할 테니. 그리고 그 결과는 더욱 밀착된 애정이다.

 정신과 의사도 그 효능을 알고 있다. 그들이 가장 요구하는 일은 정신질환자의 입술을 벌리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십 분이건 한 시간이건 귀만을 열어놓고 있다. 그 묵묵한 침묵으로 말미암아 거의 대체로 질환의 원인을 알아내고야 만다. 이 침묵이야말로 틀림없이 금이다.

 간혹 거의 완전한 침묵에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느낌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떤 경지에 오른 달관의 소유자다. 하지만 「경지에 오르다」라는 표현을 얻기까지는 그만큼의 어떤 심층적인 경과가 있어야만 한다. 대표되는 것은 역시 장인(匠人)의 연륜이요, 인생의 연륜이다.

 말없이 지나가는 80대 노인의 가슴 속에서도 그러한 연륜이 있다. 그리고 달관의 경지가 자연의 섭리처럼 펼쳐져 있다.


묵묵히 멀어져가는 그의 조그만 등판은 조그만 들판처럼 평화롭다. 물론 평생의 희로애락을 통하여 만들어 온 언어도 그 속에 있다. 이웃과 가축에게, 자연과 곡식에 던지는 말이 있고, 추억과 그리움, 회한과 희망, 그리고 하늘에 던지는 말이 있다. 타인이기에 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바람에 씻기고 물결에 씻긴 청결한 감회처럼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그러니 말없는 노인을 스쳐 지나는 것은 늘 영광스러운 일이다. <끝>




고가의 뜰에서



 소리 낮게 대문을 닫는다. 대문은 정적과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내며, 진종일 떠다닌 행적을 소멸시킨다. 이른 아침 신선한 안개 속에서 어떤 제전을 준비하듯 정성스럽게 쓸어 놓은 뜰에는, 그 누구의 흔적도 없이 오직 대빗자루의 흔적과 내 발자국만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그 위에 참나무 잎이며, 오랜 무궁화나무 잎 등이 떨어져 있어 하루의 고적한 경과를 말해 줄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생각이 들고,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도 상상할 수 없다. 오직 뜰을 쓸 때와 쓸고 난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아침녘에 이 뜰을 쓸고 있을 때, 사방은 안개로 자욱했다. 한순간이나마 무엇인지 모를 초월적 신비감에 휩싸였고, 알 수 없는 이념의 환영에 사로잡혔으며, 세상의 모든 소요로부터 일시에 벗어나 초연한 심적 상태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심적 상태야말로 우리네 가슴의 유일무이한 영원의 안식처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내가 만약 저급하고 비천한 하인이었을지라도 하루의 고매한 일과를 예감했을 것이며, 신앙만큼이나 거룩한 이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느낌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내일 아침, 또는 어느 때 다시금 재현될지라도 매양 한순간에 머물고 말뿐이다. 영영 깃들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태양이 밤낮을 비추지 않는 것처럼 오히려 적절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느낌은 사랑이 갖는 의미만큼이나 무게 있는 영혼의 형질인 것만은 분명하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면, 나는 이렇게 어김없이 마당을 잠시 바라보고, 그리고 서쪽 마당가에 다가선다. 담은 없다. 남쪽 담 귀퉁이에 흔적만을 남겨 놓은 채 오래전에 허물어져 버렸다. 그 자리에 아카시아 나무들이 자라 그 기세 좋은 성장력과 유월의 짙은 향기로써 한때를 풍미했지만, 넓은 들녘을 향한 시야를 죄다 가리는 통에 나날이 가지를 뚝뚝 꺾이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더니, 어느 날 기어코 베이고 쪼개어져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오래된 그때는 낙엽에 묻히고 잡초에 가려져 이제는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어쨌든 원하는 대로 들녘의 지상은 기분 좋게 활짝 열려 눈부신 은빛 개울을 건너고, 넓디넓은 전답을 가로질러 아담한 소도시에 다다른다, 부족하다면 더 멀리 내달려 그윽이 늘어진 산맥을 더듬다가 구름 위로 뜀박질할 수도 있고,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갈 수도 있다.


 발아래에서 밑으로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산비탈은 참나무 숲이 남북으로 좁다랗게 펼쳐져 있다. 나무들 사이로는 숲 가장자리를 따라 마을을 휘둘러 다니는 자갈길이 뽀얗게 들여다보이는 데, 들녘을 산책하러 나갈 때면 맨 먼저 걷게 되는 친숙한 길이다. 그러나 눈여겨보는 일은 없다. 그 누군가가 내 마음의 애정을 가져간 이가 있다면 진종일이라도 바라보았을 테지만, 기다림은 아직 내게 다가온 적이 없다.

 지금도 시선은 들녘으로만 향한다. 이곳으로 온 날부터 수백 번은 이렇게 해 온 것이다. 간혹 딴전을 피울 때가 있다면 그것은 필경 지천으로 늘려있는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노려 볼 때이거나, 다람쥐가 나를 무시할 때이거나, 커다란 왕도토리가 투두둑 떨어질 때임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그들과 나 사이에 눈싸움이나 돌팔매질, 숨바꼭질 같은 놀이가 시작되는데, 나의 일방적인 그 놀이가 오래갈 턱이 없다. 한 호흡을 내쉬면 이내 모두 제 취향으로 돌아가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무심한 행적을 이끌어 갈 뿐이다.


 마냥 들녘을 바라본다. 해맑은 공기가 정겨운 인사처럼 여겨지나, 실제로 누구를 향해 인사하는지는 모르겠다. 풍부한 상상력이 미치는 바도 없고, 그것에 애태울 마음도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만 내 의식의 것인지 아닌지조차도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내 육신조차도 사라지고 없다. 무엇인가 거대한 동공만이 지상의 풍경을 감싸고 있다. 분명한 이유도 없이 그저 그런 느낌이 든다. 만약 시선의 움직임만 없다면, 나는 필경 이 지상의 그 무엇도 아니리라! 도와 같은 것, 천체와 같은 것. 뭐, 그런 것일 수도.

 나는 휴식을 마친 농부처럼 들판에 입성한다. 들판은 푸른 이불을 덮고 고요히 잠들어 있다. 그러나 저 들판은 조만간 다시 한 번 황금빛 머리를 출렁이며 일어나 분주한 소요를 일으킬 것이다. 그 이후에는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듯 또다시 깊은 적막에 잠길 테지. 그때 들길을 걷는 자라면, 어떤 연민을 품고 온 그의 마음만큼이나 쓸쓸해하고 깊은 공허에 침식당하리라!

 하지만, 들판으로서는 아무래도 천혜의 휴식이 아니겠는가! 물론 인생에 연루된 들판이고 보면, 당연히 계절 따라 웃음 짓고 울음 짓는 법. 거기서 나는 오히려 지고한 생명의 애정을 느낀다.

 들판과 계절, 그 무궁한 미학을 노래하지 않는 자에게도 뛰는 맥박이 있을까? 이처럼 언제나 한자리에 서서 들판을 쓰다듬고 가는 계절의 미모를 죄다 바라볼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따라 갈대숲의 휘파람 소리처럼 청아한 기적소리는 언제부터인지 나를 기상학자로 만들어 놓고 있다. 가까이서 아주 크게 울리면 대기는 저기압 상태이며, 바람은 대체로 남동풍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북서풍이 분다면 기적소리는 더욱 멀어져 가고, 제대로 된 고기압이라면 아예 산화되어 버리는 것인지 행적조차 묘연해진다. 지금은 저 맑은소리로 보아 약간의 서풍이 불 테고, 기압은 고저 없이 균등하리라! 물론 유추이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들판을 빙 둘러 가로지르는 철둑을 바라본다. 조금 있으면 기차는 어김없이 소도시 변두리의 우중충한 풍경 사이로 불쑥 나타날 테지. 그리고 철길을 따라 빙 돌아서면 객차의 차창은 죄다 조그만 액자가 되어 아련한 무채색 흉상의 회화를 담고 있으리라. 나는 그 회화를 바라보며 어떤 숙명도 지니지 않은 영원의 여정을 느끼게 될 테지. 이런 생각에 도달할 때쯤이면 기차는 다시 한 번 맵시 좋은 기적소리를 울리게 된다. 숲과 산기슭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이 마을 어귀쯤에 「양자동역」이라는 간이역이 있고, 그곳에 서겠다는 신호인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도착하고, 누군가는 또 떠나겠지만, 그때는 이미 그들만의 일이 된다. 나는 어느새 들녘의 지상으로 돌아가 또 다른 그 무엇을 기웃거리고 있을 테니. 저편 개울 건너 제방 위로 흐느적흐느적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으매, "저분이 누구신가?" 하고. <끝>

  • profile
    korean 2018.04.30 22:43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쓰시면 좋은 결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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