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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무한함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함께-



난 발음이 좋지 않다. 혼자 있을 때는 잘 말하는데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만 하면 말이 꼬여서 나왔다. 상대방이 못 알아들어서 두세 번 반복해서 말하는 게 이제 습관이 됐다. 어눌한 발음 때문에 말할 때마다 긴장을 했다. 할 말을 머릿속으로 되짚어 본 다음, 천천히 말로 꺼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꼬여서 발음도 꼬일 때가 많았다. 주걱턱 때문이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화난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난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건데 심통 나 보인다는 말이 따라왔다. 하지만 나보다 주걱턱이 심한 김구라는 말도 잘하고 발음도 정확하다. 혀 때문이다. 혀가 뭉툭하고 길면 발음이 어눌하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혀가 앞니를 밀고 입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턱에 닿을 만큼 긴 혀를 가진 김신영은 발음이 정확하다. 아빠 때문이다. 아빠는 나처럼 말한다. 나도 아빠처럼 말한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아빠의 발음은 나보다 더 어눌했다.

 

그래서 발표를 정말 싫어한다. 싫다기보다 무섭다. 울렁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오고 목소리가 떨렸다. 목이 막혀서 말을 하다 끊길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발표에 대한 기억이 잠시 바뀌었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이었다. 한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발표하는 게 수행평가였다. 응급실에 실려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매번 발표 때마다 그렇다. 그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너무 떨려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때의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대본을 보고 읽기만 하는 건 떨려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칠판을 활용했다. 책에 대한 내용을 칠판에 쓰면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칠판과 친구들을 번갈아가면서 보니 발표가 진행될수록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반응이 좋아서 신이 났다. 그때 처음으로 아주 만족스럽게 발표를 끝냈다. 발표했던 사람들 중에서 나만 칭찬을 받았다. 발표를 즐기면서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성공적인 발표가 끝난 뒤 한 번의 발표가 더 남아 있었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 선생님께서 저번에 잘했으니까 이번에도 기대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저번보다 재미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부담감을 가지고 신경숙의 외딴방을 발표했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발표하면서 내가 지금 뭘 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말이 엉키고 내용이 꼬이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계속 멈추는 바람에 몇 번의 정적도 생겼다. 발표가 끝났을 때 선생님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번엔 잘했는데 이번엔 왜 그러냐는 말도 하셨다. 다시 발표에 대한 기억이 안 좋아졌다.

이번에 『이방인』을 다시 읽어보기 전까지 나는 책에 나온 야한 장면만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장면에 대한 기억도 드문드문 났지만, 가장 선명했던 건 역시 야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가진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와 모래의 깔깔한 촉감 그리고 습한 공기가 같이 떠올랐다. 눅눅하고 텁텁한 기억이었다. 책을 읽을수록 그때의 감상이 파편적으로 떠올랐다. 발표를 하기 위해 이방인을 처음 접했던 열여덟 살의 나는, 뫼르소가 이상했다. 담담한 그의 말투와 감정에 혐오감이 들었다. 법원에 모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뫼르소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엔 마지막 장면이 책을 덮은 후에도 잔상으로 남을 만큼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저 그랬다.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정도의 담담함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일까, 책에 대한 감상이 확실히 그때와는 달랐다. 지금의 감상을 말하자면, 뫼르소는 모든 일에 감정적이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엄마의 장례를 치른 뒤에 밀크 커피를 마셨는데 그게 무척 맛있었다고 말하며 여자와 섹스를 한다. 결국은 그게 문제가 돼서 사형에 처하지만, 나는 오히려 법이 무심하게 느껴졌다. 물론 사람을 죽였다는 건 사형에 처해도 마땅하지만 그 외의 이유가 작용해서 한 인간을 단정 짓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감당하는 크기가, 관계의 점성이 모두 다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은 이해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뫼르소처럼 비틀린 인물을 보면 독자가 충격을 받는다. 반대로 인물의 감정이 독자보다 먼저 폭발해버리면 독자가 느낄만한 게 사라진다. 1940년대에 나온 소설이 아직까지 평가받을 수 있다는 건 독자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장도 마찬가지였다. 문장이 오래될수록 낡은 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느낌이었다. 그게 바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

책을 봐서 좋은 게 바로 이런 점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책을 펼쳐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모든 걸 다 기억하고, 매번 같은 감상을 하면 책을 보는 재미가 덜 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니까, 매번 더 많은 감각을 느끼고 생각이 다채로워진다. 정말 좋게 읽었던 책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 건 조금 슬프지만 또 읽으면 되니까, 다시 한 번 독서의 무한함을 느낀다.

 





urhain@daum.net

  • profile
    korean 2018.04.30 22:45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쓰시면 좋은 결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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