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차 창작콘테스트-수필> [엄마가 울었으면 좋겠다]

by 22088 posted Ap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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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울었으면 좋겠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엄마의 손은 성할 날이 없었다. 옴 때문에 가려워서 피가 날 때까지 긁고 소독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서 습진을 달고 살았다.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말하면서 긁었다. 긁지 말라고 해도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긁었다. 그런 엄마가 내 습진이 걱정된다고 전화했다. 바셀린을 꼭 바르고 자라고 했다. 날씨가 추우니까 감기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감기에 걸린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코맹맹이 소리에 감기 걸렸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닐 수도 있지만 난 알겠어, 하고 끊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울음을 억지로 삼킨 것처럼 목이 쓰렸다. 우리 가족은 유난히 눈물이 없었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렸고,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매정하다기보다는 우는 건 창피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참거나 숨겨왔는데 그게 터진 날이 있었다. 설날 때였다.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여자들은 부엌에서 전을 부치고 남자들은 안방에 누워서 TV를 보는 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렸을 때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때도 엄마는 습진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피부가 갈라져서 피가 나올 정도로 심했었다. 그래서 내가 아빠랑 같이 설거지하려고 고무장갑을 끼던 참이었다. 설거지를 시작하자 할머니가 역정을 냈다. 어디서 아빠를 시켜 먹냐고. 남자가 부엌 일 하면 못쓴다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우리 할머니가 그런 할머니였다는 것에 놀랐다. 할머니가 화내자 아빠는 자리를 피했고, 나는 설거지를 마저 하려고 했다. 그렇게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와서 자기가 한다고 비키라고 했다. 습진 때문에 약 바르는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 고무장갑을 끼는 게 서럽고 억울했다. 그런 손으로 뭘 하겠다고 고무장갑을 잡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엄만 아프지도 않냐고. 말 대신 참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내가 울자, 할머니랑 엄마랑 아빠 그리고 커피를 마시던 고모까지 당황했다. 결국, 설거지는 아빠가 마무리했고 할머니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부엌은 여자들만의 공간이었고, 엄마의 습진은 낫지 않았다.

엄마는 통곡하며 울었던 나를 흉내 내면서 지금까지도 놀린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그때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난 슬퍼 죽겠는데 엄마는 호탕하게 웃었다. 괜찮지 않은 어느 날, 내가 울어주지 못한 날 엄마가 울었으면 좋겠다. 흐느낌이 통곡이 될 때까지 열렬히 울었으면 좋겠다. 눈물은 내가 닦아줄 테니,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urha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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