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을 동행하는 친구 / 나의 활력소, 영하

by 나도될까 posted Dec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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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을 동행하는 친구



내가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계를 보는 것이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시계 바늘처럼 나의 아침도 목적지를 향해 정신없이 시간을 맞추려 분주하다. 다른 이들은 출근 시간, 약속 시간 등 그 시간에 맞추면 되지만 나는 그 중간과정에 하나 더 추가된다. 바로 내가 가는 길을 함께 해줄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 친구는 내가 기다라기만 하면 언제나 그 자리에 멈춰서 나를 반겨준다. 그 친구는 바로 만인이 애용하는 버스다.

말 그대로 나 뿐만 아니라 내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나는 항상 버스가 올 시간을 확인하고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버스 시간에 맞춰 나의 하루가 바쁘기도하고, 여유로워지기도 하는 것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다. '내가 운전할 차가 있다면 버스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그동안 버스와 함께 한 의리를 생각하며 여전히 내가 가는 길을 버스와 동행하고 있다. 비록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질 때도 있고, 조금도 더 기다려주지않고 먼저가는 버스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버스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친구다.

내가 버스를 처음 스스로 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입학 후 부터였다. 그때부터 내가 가는 길에는 항상 버스와 함께 하였다.

학교가는 길부터 하교하는 길까지 언제나 나를 데려다 주는 건 버스였다. 그래서 버스와 관련된 추억도 많다. 버스를 통해 처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하는 예절도 배웠고, 만원 버스에 억지로 꾸겨 타 버스에 완전히 내 몸음 맡겼던 적도 있고, 버스 통로에 있던 짐에 교복치마가 걸려 본의 아니게 속된 말로 '아이스 께끼'를 당한 창피한 기억도 있다.

지금에야 버스를 많이 타왔기 때문에 서서 가더라도 안정적인 자세, 그리고 명당자리를 파악해가며 버스를 탈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다가오는 버스에 사람들 얼굴이 가득 차 있으면 식은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긴장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땐 그냥 마음 편히 택시타고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래도 버스는 이렇게 내가 어린 시절부터 대학 졸업까지 마친 지금도 함께 하는 추억이 있고, 늘 같은 길을 동행하는 친구같은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비록 버스 때문에 난처한 적도 많이 있고, 자가용이 있는 사람들에 비해 제한되는 것들도 많지만 버스로 인해 얻는 좋은 점들도 많다. 시간에 맞춰 부지런을 떠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도, 묵묵히 한 곳에서 기다리는 끈기도, 새로운 길을 갈 때 불안하지 않고 침착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나의 친구, 버스 덕분이었다.

요즘 같이 서로에게 무신경하고,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 것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은 '허무하다'는  한마디 처럼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친구들 만날 시간조차 엄두가 안 나는 현실이 안타깝고, 매일같이 누군가에 쫓기듯 바쁠때면 오히려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여유롭게 느껴 질 때가 있다. 언제나 내가 기다리는 곳에 와주고,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기억하고 나를 데려다주는 버스가 어쩌면 다른 것들보다도 진정 고마운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형편이 좋아지고 생활이 편리해지면 이런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정거장 마다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달려가고,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며, 한 공간 안에 같은 길을 나아가면서 다른이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버스가 나는 좋다. 빨리 간다고 해서, 다른이들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서 편하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버스가 말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답답하지만 듬직한 버스와 내가 갈 길을 동행하려 한다.

 

나의 활력소, 영하



사람은 언제나 혼자 있을 때, 가장 외로움이 사무치는 것 같다. 나는 외동 딸이라는 귀한 이름 값 때문에 친구가 아니면 내 편이 없었고, 소통할 대상이 없었다. 친구라는 단어 속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가까이는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친구부터 멀게는 내가 관심을 갖는 텔레비전 같은 매체가 바로 친구라는 단어에 속해있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늘 나와 마음을 나눌 존재를 찾았었다. 그리고 친구와 싸운 날이면 나는 더더욱 그런 존재를 그리워했다. 내 주위에 친구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늘 친구를 갈망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나는 동물들에게 정을 주기 시작했다. 특히 친구와 싸우고 내 마음에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집에 있는 강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나의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면 꼭 동물과, 나의 위로자와 함께 생활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 꿈은 내가 영하를 만나 이루어졌다. 대학교 4학년부터 혼자 자취를 했는데 그때는 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두려웠다. 두려움 뒷면에는 내가 그 동물을 책임지고 그 동물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그 무게감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책임지는 것보다 더 큰 무게에 짓눌려 나의 첫 반려동물을 스스로 선택하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그 동물은 '영하'라는 이름의 토끼다.

처음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기도 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여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지금 환경으론 불가능할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방음 안 되는 오피스텔에서 키우다가 그 녀석이 마음대로 의사표현도 못하게 내가 저지를 시킬 것도 같고, 다른이들의 질타로부터 내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할 거 같아 고민 끝에 토끼를 데리고 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녀석이 중형견만한 크기로 성장할 때까지 거의 1년정도 시간이 흘렀다.

사실 토끼는 보기엔 귀엽지만 막상 키운다고 생각하면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동물 중 하나이다. 그만큼 키우기가 까다롭다. 불러도 대답없는 도도한 성격에 자기 집 청소해주는 나의 손길을 '콱' 깨물어 버릴 정도의 은혜도 모르는 까칠한 녀석이다. 이런 속사정을 아는 나의 지인들은 왜 토끼를 키우냐며 부르면 오기라도 하는 강아지를 키우라고 야단이다. 주인인 나를 못알아보고 물려고 난리치는 영하를 보면 가끔은 예전에 아빠가 데리고와 키우던 개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영하가 정말 좋다. 좋아하는 것에 관심이 가듯 나도 영하에게 많이 관심이 간다. 그러다 발견된 영하의 무수한 매력은 아마 나밖엔 모를 것이다. 밥먹다 갑자기 기분 좋아 발라당 누워 자는 모습, 나무꾼이 선녀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것처럼 두 발을 높이 올려 뭔가에 집중하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던 모습, 자기 오줌 냄새 맞다가 코에 오줌 한 방울로 포인트 주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 등 내 머릿속엔 무수히 많은 영하의 사진첩들이 저장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나혼자 좋아하고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영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막막한 취업 길로에서 만난 영하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영하로 인해 어떤 것에 책임지는 것이 스트레스에서 자신감으로 변화되었다. 또 영하로부터 사랑도 받았다. 어렸을 때와 같이 위로 받고 싶어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은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다 다투고 헤어질 뻔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슬퍼 이불을 덮고 펑펑 울고 있는데 나에게 잘 오지 않던 영하가 내쪽으로와 마치 나를 위로하는 듯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그 어떤 위로보다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믿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하를 통해 위로를 받고, 활력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하다.

토끼라는 동물이라서가 아니라 '영하'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 어떤 반려동물도 마음을 열고 대하면 정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론 동물이 아니라 나의 마음 한 켠을 떼어주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처음엔 내가 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특별한 존재를 통해 더 많이 마음을 얻고,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영하를 통해 깨달았다. 나의 첫 반려동물, 영하는 나에겐 가족, 친구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때로는 힘들게도 하지만 언제나 기쁨도 같이 주는 나의 활력소, 영하가 나는 정말 고맙다.

 

 

이름: 강하나

E-mail 주소: godgksk5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