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고치와 명주

by 금자 posted Jan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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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와 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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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뽕잎이 파랗게 돋아나면 아빠께서 면사무소(주민 센터)에서 누에알을 가져오신다. 소쿠리에 담아 따뜻한 아랫목에 검정수건으로 덮어놓으면 며칠 후에 새까만 누에새끼가 오물오물 나온다.

뽕을 따다 곱게 썰어서 누에 위에 얹어 주면 까맣게 뽕잎위에 올라와 잎을 갉아 먹는다. 하루하루 누에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매일 누에 잠박(누에 얹어 놓는 채반)이 늘어난다. 뽕을 먹는 량이 늘어나 뽕을 많이 따야했다.

뽕잎 크기도 누에 크기에 비례해 점점 크게 썰어 줘도 잘 갉아 먹는다.

한 달 가까이 크면 누에가 손가락만큼 커서 뽕을 썰지 않고 가지채로 큼직하게 줘도 잘 먹고 큰다.

 잠실(누에 기르는 방)에 들어가면, 습기가 가득차고 따뜻한 방안 공기에 뽕 갉아 먹는 쇄∼하는 소리가나며 향긋한 누에 똥 냄새가 싫지 않았다.

누에가 허물을 네 번 벗어야 고치를 짓는다.

허물을 한 번 벗을 때마다 한 잠을 잔다고 했다. 그 때는 뽕을 먹지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머리를 고추 세우고 가만히 있다.

그 때마다 누에가 부쩍부쩍 커져서 잠박 수가 많이 늘어나 계단식으로 층층이 올려놓아 천정 끝까지 올라간다.

봄에는 아버지께서 뽕나무를 잘라 지게에 한 짐 지고 오시면, 뽕을 따서 커다란 광주리에 담아 놓는 일이 나의 담당이었다.

봄에 뽕따는 일은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먹는 이득이 있어 신이 나고 즐거웠다.

그리고 오디 따먹는 재미로 동네 친구들이 와서 거들어 줘서 쉽게 할 수 있어 좋았다.

막잠(마지막 허물 벗는)자고 나면 누에가 제일 크고 뽕도 많이 먹어, 똥 치우는 일(잠박을 갈아준다)이 하루에도 두 번 갈아줘야 하니 엄청 바쁘다.

엄마와 언니는 밤새도록 뽕을 주고, 돌아보면 먼저 준 누에는 벌써 다 먹어 치워 또 줘야한다고 했다.

마지막 허물 벗고 삼사일 양껏 먹고는 몸이 누르스름하게 변하면, 섶에(볏짚을 썰어 병 씻는 솔 모양으로 만들어 졌음) 누에를 한 마리씩 간격을 두고 올려놓는다.

누에 입에서 실을 뽑아 바쁘게 집을 짓는데 어쩌면 똑같은 모양으로 집을 지을 수가 있는지 한참 동안 바라보면 탄복할 수밖에 없다.

며칠 후에 단단하게 예쁜 누에고치가 완성되어 있는데, 집도 짓지 못하고 시커멓게 죽어있는 누에 송장을 보면 만지기가 무서웠다.

누에고치를 따서 겉에 붙어있는 실을 손가락에 감아 깔끔한 고치로 골라주면 뽀얗고 참 예쁘다.

누에고치가 유달리 큰 것이 있는데 쌍둥이 고치라고 불렀다.

그 것은 두 마리가 사이좋게 한 집을 짓고 살아 번데기도 두 마리가 나왔다.

일 년에 봄가을로 누에고치를 두 번 길렀다.

 

농한기 겨울에 엄마는 커다란 솥에 물을 펄펄 끓여 누에고치를 넣고 실을 뽑아 물레에 돌려 명주실을 뽑아낸다.

실이 다 뽑아져 나오면 솥에 번데기가 익어 둥둥 뜨면, 조리로 건져 먹는 고소한 그 맛은 표현할 수 없이 맛있었다.

그 날은 온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우리 집에 와서 번데기 잔치가 벌어진다.

실을 다 뽑으면 마당에 쌀겨로 불을 지펴 놓고는 실오라기에 솔로 풀을 바르고 불에 말려서 틀에 감아주었다.

그렇게 한 후에 방에다 명주 짜는 베틀을 채려 놓았다.

엄마가 날줄을 걸어 놓고 고무신을 한 짝 달아 신고 당기고 늦추고 하며 실이 담긴 북통을 씨줄로 오른쪽 왼쪽으로 갈 때 마다 바디를 치면 천이 짜졌다.

가는 명주실로 하루 종일 짜도 몇 뼘 짤 수가 없었다.

엄마가 베틀에서 내려와 비어 있으면, 나는 너무 해보고 싶어서 올라 앉아, 북통을 넣으려고 하면 들어가지도 않고 명주실이 몇 오라기가

끊어진다. 겁이나 도망가 숨어있으면‘말을 안 듣고 일을 저질러 놓았구나!’하며 한 올 한 올 힘겹게 이어서 다시 짠다.

짠 천은 배에다 감아 안고 밤잠도 설치며 딸그락딸그락 겨우내 짜서 완성한 것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많이 수고해서 만든 명주(실크)를 곱게 물을 들여서, 부모 자식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고는 흐뭇해 하셨다.

빨래할 때마다 다듬이 손질해서 옷을 만들자니 고생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데도 불평 없이 사신 엄마께 감사드린다.

예순을 한껏 넘긴 딸이 엄마가 그리워 눈시울 적시는데 계신 곳은 어디쯤인가요?

‘그곳에서는 명주 짜는 힘겨운 일은 하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나요?’

꿈길에서 철없던 막내딸 손 좀 잡아주세요.

소 속 : 산 문 (수필)

주 소 : 부산시 사상구 학장동 정남맨션 2동 208호

성 명 : 공 금 자

전 화 : 010-9436-4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