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우리나라 국어에서 ‘젊다’와 ‘어리다’는 진행형과 미래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순간은 현재이자 과거일 뿐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젊어지기’위해, ‘어려지기’위해 계속해서 발버둥을 친다. 또 그들은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 말을 되풀이한다. ‘초심을 잃지 말자.’ 만약 정말로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그들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현재가 아닌 과거를 택할까. 어른들이 웃으며 말하는 과거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한없이 벅차기만 하다.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걸까. 왜 내가 뛰어넘고 싶은 순간들을 그들은 부러워하는 걸까. 지금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어른들의 말은 나의 즐거웠던 유년 시절의 추억과 앞으로 내가 펼쳐나갈 모든 순간들을 한낱 모래 부스러기로 만들어 버렸다. 얼마나 더 늙어야 어른들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밤을 보내야 오늘을 과거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엔 나는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미성년에 불과하다.

 내가 처음으로 철이 들었다, 즉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12살의 나이에 7년간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둘 때 나는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 나와 같이 피아노를 시작한 친구는 어느덧 피아노 전공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친구와 달리 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에디슨의 명언 중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명언이 담고 있는 에디슨의 속뜻이 ‘99퍼센트의 노력을 해도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천재가 될 수 없다’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천재들의 1퍼센트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에 수긍하고 부딪힌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덜컥 포기해 버린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자신은 도망친 것이 아닌 그저 사실을 인정했을 뿐이라고 합리화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꿈을 잃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현실이 아닌 그들만의 환상, 혹은 작은 착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말티다. 물론 그들도 언젠가는 어른이 될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변해있는 존재이다. 자신은 그 변화를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변화는 항상 낯설고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환상 속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아주아주 느린 속도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성장은 눈에 보이는 신체적 나이가 드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들의 햇살 같은 맑은 웃음에 씁쓸함이, 바다를 담고 있는 그릇과도 같은 그들의 입 밖으로 ‘포기’라는 단어가 새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떠한 색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투명한 빛으로 일렁이는 한없이 영롱한 파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