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오늘도 무사히

by qqro posted Apr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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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굉음을 내며 달린다. 눈을 질끈 감고 암흑 속에서 소란스레 터지는 폭죽들의 포물선을 가만히 좇습니다. 행선지는 하나요, 각국의 언어들이 리드미컬하게 노래 가사처럼 귀 언저리에 맴돈다. 손끝, 가슴께의 각피에 선명하게 맞닿는 타인의 촉감과 숨결들에 나는 자신 없다는 투로 눈을 희미하게 떠본다. 마치 한창의 기도 중에 불순하게 눈을 뜨는 신도처럼.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감싼 흰, 검 혹은 어두운 빛깔의 마스크들 그리고 초점 없는 눈동자들. 나는 줄곧 타인에게 이런 황당무계한 질문들을 쏟아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당신은 지하철에서 무엇에 시선을 두곤 합니까?’. 소위 생략되거나 작은 혹은 하찮은 인생의 순간순간들에 방점을 두는 인생에 집착하는 나에는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해당 질문에 대한 자의는 ‘손끝’이라고 해두겠다. 인간의 신체 부위 중 손만큼 그 사람의 인생을 반추하기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노화로 인한 작은 떨림, 금속 물체를 붙잡은 두 손에서 느껴지는 고집스러움, 무심결에 자유자재로 뻗어보는 손. 얼굴을 보자 하니 민망하고, 억지로 휴대폰을 보자 하니 머리가 지끈거려서, 바닥만 뚫어지게 보자니 우습지만 비참함이 느껴져서, 이러니저러니 해서 흘겨보는 타인의 가지런한 손가락들. 십여 분 언저리, 땅속을 가로지르는 고철 안에서 다양한 반동들의 움직임에서 문득 생명력을 느끼는 나였습니다. 대관절 우리는 무슨 힘과 목적을 가진 채 물고기가 떼를 지어 다니는 것 마냥 각자의 간격을 유지한 채 움직임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성인의 하루 눈 깜빡임 횟수는 1만 5천 회에 달한다고 한다. 쉼 없이 조우하는 세상과의 초점들을 현상하기를 매일 같이 반복. 결국 삶은 수없는 실패작들과 사소함들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 예술, 과학 그러니까 교양이라는 울타리 안에 속하게끔, 속하기를 바라는 근간의 분위기에 혐오감을 표한다. 교양이라며, 추상성이 가득한 색채의 문장들과 언변들은 실제의 삶을 마주하기를 얼마나 흐릿하게끔 만드는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철학과 예술, 종교, 과학 그리고 그 외의 것들. 하지만 삶이 없는 철학은 없으되, 삶이 없는 예술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수해 전 나는 매일 같이 새벽이슬을 맞으매 매일같이 사도신경을 외우곤 했다. 흑묵으로 물든 하늘 위로 잿빛 실구름이 촘촘히 스며있었다. 넘쳐흐르는 새벽녘의 채취의 나는 정신이 몽롱하다. 사흘 만에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셨고, 단어 하나하나, 아니 모든 음소와 음절들에서 오직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미 수없이 되뇐 사도신경인데,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온 힘을 쏟는다. 더럽혀진 몸을 기도로 회개함으로 씻는단다. 교회 강당 한쪽 눈알이 나간 전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깜빡거리는 속도에 맞춰 남은 눈알 한쪽이 미세한 섬광을 일으키며 반짝거린다. 전등 유리 위로 불에 타 말라죽은 벌레들이 나뒹군다. 하찮음과 사소함만이 분명한 나의 삶이 구제되기를, 내일은 한결같이 나아져있기를 가슴 저리게 바라고 또 바랬다. 형형색색들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물들메, 삶에 완전하게 변화를 시켜줄 신의 메시지들에 밑줄을 긋고 또 그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기도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전해주는 메시지들 그리고 얼마 안 가 다시금 마주해야 하는 사소한 삶과의 괴리감들. 내가 있는 곳에 내가 없는 것 같은, 내가 없는 곳에 내가 있었으면 하는 모순적인 욕구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삶으로부터의 사소하고 진실된 현상들에 대한 관찰이었다. 지하철 안, 딸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가늘게 뜬 어머니의 잗다랗게 떨리는 눈 자락을, 삶에 대한 원성 대신 가득한 침묵들을 택한 승객들의 숭고함. 일사불란한 삶의 물음표들이 마침표로 끝나게 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김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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