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합니다.

by 石情 posted May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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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사랑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동상이몽의 해법을 찾아 나선다.

 

천연기념물이나, 인간문화재 몇 편에 포함되지 않은 대부분의 일반인은 동상이몽이라는 그 축에 매달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 역시 그런 틈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시민이기에 구차한 변명 같은 건 늘어놓고 싶지가 않다.

 

사춘기 시절, 청소년 월간잡지 소년중앙 비둘기 집을 만나게 된다. 비둘기 집이라 하면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벗을 사귈 수 있도록 교량적 역할을 해주는 일종의 안내 게시판이다. 홍난파 선생님께서 남겨준 봄 처녀가곡이 생각나는 춘삼월 어느 날, 소년중앙 3월호 비둘기 집에 열거된 목록들을 뒤적인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한 사람을 찾게 된다. 내가 어렵게 발견한 그 학생이 바로 인천에 사는 여중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그 당시 나는 포항의 중학교 2학년으로 유별나게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다. 아마 그 여학생도 그런 부분은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대등 소의한 입장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거주하는 지역이 위치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다 보니 둘은 오직 편지만을 열심히 쓰게 된 입장이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그녀를 향해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걸쳐 열심히 정성 들여 편지를 쓴다. 그 편지는 우편이라는 날개를 빌려 월요일 아침이면 인천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그러고는 늦어도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그 여학생의 손때가 묻은 답 글이 메아리를 타고 포항 하늘로 날아와 나의 손에 쥐어진다. 애당초 편지쓰기의 출발시점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둘 다 철없는 햇병아리 이다보니 이성의 느낌보다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름다움과 청순함이 간직된 싱그러움 그 자체였으리라.

 

철없는 나이에 펜팔로 처음 만나 열심히 편지글을 열심히 써온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어언 십 대를 지나 이십 대 중반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십 년 동안 시간이 흐를 동안 둘이가 직접 만나 데이트를 만들어낸 건 고작 인천 송도에서 한 번이 다다. 그렇지만 포항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포항으로 넘나든 수많은 글 속에 두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 수놓아진 애틋한 학창시절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 천진난만하면서도 진지함의 아름다움이 간직된 십 년의 시간을 과거 속에 묻어버리기엔 너무도 애석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긴 시간 동안 둘이가 주고받았던 편지글의 길이를 분량으로 환산해보면 아마도 라면박스 크기의 5박스는 훨씬 넘을 정도로 추정한다. 애간장을 태우며 콩 볶는 고소함이 애절한 글로 공허한 부분을 가득 메웠건만, 불행히도 최후엔 가슴 아픈 미완의 사랑으로 매듭짓고 말았다. 그때는 몰랐으나 문학의 길에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나름 원인을 분석해보니 동상이몽의 영향이 너무도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의 마음과 마음은 동상동봉이면서도 막상 현실이 주는 동상이몽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원인이 가장 큰 자책이었다.

 

일반적인 가정의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부부도 동상이몽이라는 잣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는 내숭을 떨어대며 현실도피 식 삶을 펼쳐가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 보편적이면서도 직설적인 경우를 비추어 볼 때 십여 년을 함께해온 그녀와 나의 경우는 원거리에 위치한 견우와 직녀처럼의 삶에 대한 운명체 과정 극복이 선행 되었어야 했다. 어려운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삶의 매듭들이 하나. 둘 풀려나갔을 때 비로소 불가능을 가능의 길로 전환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과제들을 당시는 느끼지 못했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와서는 해답을 보는 듯하다.

유치환 시인과 이영도 시인이 남긴 미완의 사랑이 주마등을 스친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두 분의 사랑이 미완이 아니고, 나와 그녀의 애절한 사랑 역시 미완의 한계를 극복한 참사랑으로 승화되었다면 각박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빛과 소금으로 기억될 가뭄의 단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기루의 사랑을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에게 제대로 된 사랑이 이런 것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부분에 애석한 마음 가득하다. 은근과 끈기의 정신력으로 마무리 순간을 해피엔딩으로 끝맺지 못하고 중간지점에서 멈춰버린 미완의 사랑에 대한 애석함이 오늘따라 밀물처럼 밀려온다.

 

내가 베토벤의 운명. 영웅 교향곡 보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더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이 부문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이다음 생애에 한 번 더 태어나 오늘처럼 이 찬란하고도 거룩한 사랑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지난 시절 어리석었던 기억을 거울삼아 이제는 바보 같은 사랑만큼은 안 할 자신이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존재가 뭐냐는 질문을 누군가로부터 받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깊은 산 속의 호랑이도, 전설의 고향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주인공 저승사자도 아닌 바로 동상이몽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상이몽이란 두려움의 존재를 상상해 볼 테면 눈앞에 펼쳐진 외면의 적보다 내 마음속에 간직된 내면의 적이 더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을하기 때문이다.

동상이몽을 일컬어 불치병으로 표현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마음의 벽을 허물기만 하면 간단히 치유된다고 생각하기에 마음먹기에 따라 손쉽게 치료가 가능한 병 또한 동상이몽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기에 아주 간단하고도 명료한 서로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만 하면 우리의 가정도 사회도 동상이몽이란 불치병에서 벗어나 새로운 광명을 되찾게 되리라

 

세상 사람들아, 남의 탓 만하지 말고 나 하나쯤이 아닌 나 하나부터라는 개념으로 손을 맞잡고 마음의 벽을 허물도록 하자. 그러면 눈 깜짝할 새 동상이몽이란 낱말은 한여름 밤의 꿈 조각처럼 조용히 사라질 것이며 더 밝아진 아름다운 사회가 먼 발취에서 미소 지으며 우릴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더 찬란한 내일의 꿈은 바로 동상이몽으로부터 해방되는 날.

 

 글제: 나의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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