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콘테스트 수필 공모 2

by now posted Jun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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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ㅇㅇ상회



 11월 중순의 그 해.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낯선 공간에서의
2년간 생활이었던 군 생활이었습니다. 남들은 운이 좋아서 집 코 앞에도
배치를 받는다고 하던데 저는 그와 반대였습니다. 신교대 교관님들도 이런
경우는 거의 드물다며 동기들 전부가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로 흩어졌죠.
거리라고 하기엔 그저 점포 몇 개와 시골길이 쭉 펼쳐지던 그 곳, 하지만
이 곳이 경기도라는 사실만으로 제 몸도 마음도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인사행정병이란 보직을 받았지만 사수는 이미 말년휴가를 가버린
상태였고, 급한 마음에 휴가 중인 그에게 연락을 하면 오히려 제게 왜 전화를
하냐며 화를 내곤 했죠. 어쩌면 당연한 '니가 혼나고 부딪히면서 배워라'던
사수의 말이 당시엔 정말 무책임하면서도 개념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쩔 수가 없었죠.

 오후 6시 행정업무를 마치면 저는 선임들의 눈치를 받아가며 저녁 9시까지
행정반에 남아 캐비닛에 있던 몇 년치 종이서류들을 훑어보며 하나씩 깨우쳤고,
그런 저를 똑부러진다며 칭찬하는 이도 있었지만, 벌써부터 개념이 빠졌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던 서러움이 사무치던 제
이등병 시절의 낙이 있었다면 첫째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부모님께 콜렉트콜로
안부를 묻는 것이었고, 둘째는 공용이라는 핑계로 위병소 밖에 있는 ㅇㅇ상회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대 바로 앞이자 등산로 입구에 자리했던 ㅇㅇ상회. 당시 부대 내 행정 관련
물품들은 거의 이 곳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들어서던 저를 바라보시던 어르신과의 만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기..충성..아니지..안녕하십니까..저기 파일철이랑 보드마카 좀 사려고.."
"이등병이시네? 고생이 많겠어요. 얼굴이 완전 애기 같은데 나이가 몇 살이죠?"
"스물 한 살입니다.."
"아이고 그럼 우리 막내아들 뻘이네. 군 생활 힘들죠? 일단 가방 내려 놓고 여기
난로 앞에 좀 앉아 봐요."

 까까머리에 주름 하나 다려지지 않은 펑퍼짐한 군복을 한참이나 바라 보시던
주인 부부께서는 제게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빵 두개를 제게 쥐어 주셨고, 저는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 밖을 몇 번이나 돌아보곤 했죠.


 "괜찮아요. 우리가 보고 있으니까 마음 놓고 드셔요.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부모님도 마음 아프시겠어.."
"아 네..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그래도 부대 밖에 자주 나올 수 있으니까 가끔 나오면 우리 가게에 놀러 와요."

 그 곳은 일상에서 행정병이나 휴가복귀병에게는 아지트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없는 것 빼고 다 판다는 만물가게이기도 했지만, 부모님 같으신 주인 분께서 어찌나
군인 한 사람마다 아껴 주시는지요. 그러던 제게도 기다리던 100일 휴가가
다가 왔고, 10분이라도 집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 헐레벌떡 부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게 문을 열 때면 오프닝 음악처럼 'bee gees'의 'holiday'가 나오는걸 보니 어르신께서
셔터 문을 올리는 중인가 봅니다.


 "버스 오려면 10분 더 기다려야 해. 얼른 들어와 춥다 추워."

 마음만으로 감사했지만 오직 집에 빨리 가야한다는 제 표정을 읽으셨는지
어르신께서도 제 건빵 주머니에 까먹는 소시지 대여섯 개를 넣어 주시며 말씀하셨죠.


 "그 마음 나도 잘 알아. 일찍 나온다고 밥도 안 먹었지? 열차 안에서 이거 먹어."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 계급이 올라 가면서 행정업무도 적응이 되고, 이젠 요령껏 틈이
날 때마다 공용업무를 마치고 가게를 방문하는 일도 많아졌는데요.


 "충성! 야 뭐하냐 너도 얼른 경례해. 어르신, 이 친구가 제 부사수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친구한테도 어르신께서 좋은 분이라고 얘기했어요."
"이야..엊그제만 해도 눈만 말똥말똥한 이 이병이 벌써 병장인가? 곧 집에 갈 날도
얼마 안 남았겠네? 뭐 좋은 일이지만 왠지 섭섭하구만..이 친구는 내가 잘 보살필테니까
걱정마."

 10월의 어느 날, 제게도 전역이라는 가슴 벅찬 날이 찾아 왔고, 후임들의 축하와
응원을 뒤로 한 채, ㅇㅇ상회 가게 문으로 들어 갔습니다.


 "충성! 저 오늘 전역했어요."
"오늘인가? 이야..역시 군인은 개구리 마크를 달아야 폼이 나지! 여보 얼른 나와 봐.
이 병장 집에 간대."


그 말씀에 가게 안 쪽방에서 나오시던 아주머니께서는 금새 눈시울을 붉히시며
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막상 간다고 하니까 섭섭하네..고향 가서도 늘 건강하고 잘 지내야 혀. 뭐 굳이 안 와도
되는디 또 생각나면 한번씩 와도 돼. 간다고 하니까 품 안에서 자식 떠나는 기분이네.."


마지막날까지도 저와 동기에게 어묵과 떡볶이를 챙겨 주시던 어르신.

 사람의 정이란게 참..저 역시 고마우면서도 아쉽고 왠지 죄송스런 마음에 표정을
숨기느라 힘들었습니다. 전역을 하고 나서도 후임들과 연락을 하며 ㅇㅇ상회 소식을
접하곤 했는데 이후 등산용품 전용가게로 바꾸었다가 건강이 편찮으셔서 이젠 그 자리를
내어 주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제 기억에 남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던 두 분, 아침과 정오 때면 위병소 앞까지 군가처럼 들리던 'holiday'도 생생합니다.


 군인 한사람, 특히 멀리서 오거나 계급이 낮은 병사를 보면 엄마아빠처럼 다정하게
대하시던 어르신의 관심과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