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콘테스트 수필 공모 3

by now posted Jun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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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하루는 온 가족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부업의 변천사에 대해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

옛날처럼 인형 눈을 달거나, 봉투 접는 것에서부터 블로그로 홍보하는 부업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한 부업을 한참 동안 보시던 어머니께서 말문을 여셨다.



 "나도 요즘엔 부업이나 하나 맡았음 좋겠다."

"그렇게 부업 많이 하셨으면서 뭔 부업을 또 해요?"

"시간도 잘 가고, 용돈벌이도 되고, 내 집에서 하고 싶은거 하면서 하는건데 힘들게

뭐 있어?"



 어린시절 내 기억 속에는 부업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채 다니기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작은 사업을 운영하셨는데 늘 투자금과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분주하셨다. 누군가는 사장님이라 불리어서 좋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왠만한 월급쟁이보다 더 못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업을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각자의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직원들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밤 늦게 퇴근하신 아버지께서는 늘 식사도 마다 하시며 혼자서 소주잔을

연신 들이키시곤 했다.



"아무나 사업하는게 아닌가 봐. 마음 같아선 진작 때려 치우고 싶은데.."



 이런 시간들이 잦아지면서 어머니께서는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부업을

결심하셨다.


 신발 관련 부품을 조립하는 것에서부터 원단에 보석 박기, 봉투를 접어 풀 붙이기 등등

10여 가지의 부업들을 하던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는데 멀리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눈에도 무거운 포대 자루를 작은 카트에 싣어 오르막길을 오르는

모습.



"엄마, 이게 뭐야?"

"아..이거 부업거리야..신발 고리 만드는건데 이게 가격이 세거든."


 그 날부터 어머니께서는 목장갑을 끼시고는 기름 냄새 폴폴 나는 그것들을 니퍼로 조립

하셨다. 내 기억에 하나 만드는데 8원 정도로 생각이 난다. 어린 마음에 나 역시 숙제를

마치면 어머니 맞은 편에 앉아 고사리 손으로 그것들을 조립하곤 했다.



 "넌 손목 힘이 약해서 아직은 안 돼. 그러다 손 다쳐."



 때로는 마감일이 다가왔음에도 완성하지 못해 온 가족이 부업에 매달릴 때도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좀 더 많은 양의 부업거리를 원하셨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사모님이

이런 일을 하냐며, 오히려 수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오직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눈과 귀를 닫으셨다.



 "아니 사모님이 뭘 이런 일까지 한대? 남들이 보면 오히려 욕해요."

"용돈 삼아 내가 한다는데 누가 욕하면 뭐 어때요?"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이 흐르면 부업 정산과 월급날이 다가온다.



 "이거 봐라. 엄마 월급 탔어. 이걸로 뭘 살까. 아참 그동안 우리 아들이 많이 도와줬으니까

아들도 용돈 받아야지. 자 2만원이야."

"뭘 이렇게 많이 줘?"

"너 아니었음 엄마는 이런거 시작도 못 했어."



 내 어린시절 기억 속에 하루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부업을 마친 적이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돕는 내 모습에 어머니께서는 찬장 안에 숨겨 둔 땅콩과자를 쥐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알아 주겠지?"


 어느덧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젠 중년의 할머니가 되신 어머니. 늘 어깨와 무릎이 편찮으셔서

고생 중이신 모습을 보면 괜히 지난 날 고생만 하신 어머니, 아니 내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게는 가족의 소중함과 돈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부업이란 단어. 그 때는 부업거리를 싣고

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창피해서 숨은 적도 많았지만, 어머니의 그런 정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한 우리 가족이 존재했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