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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뱃살공주에게 삶을!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대한민국에서 한가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답게, 지하철은 퇴근시간이 아닌데도 앉을 자리가 다 차있었다. 나는 평소대로 MP3를 귀에 꽂으며 서있었다. 한 정거장을 채 가기 전, 내 앞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아가씨, 여기 앉아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상황인걸까? 보통은 젊은 내가 앉아 있다가 할아버지가 서계시면 자리를 양보해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 아닌가? 세상이 장유유서의 웃어른 공경이 아닌 젊은이 공경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일까?

   “할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전 괜찮으니까 할아버지 앉으세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대답을 하였다.

   “아유, 뭐가 괜찮아! 아가씨는 임신했는데 나보다 더 힘들지.”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이비인후과부터 들러야겠다. 들러야한다. 들리고만 싶다. 요즘 하도 MP3를 귀에 자주 꽂은 데다 볼륨도 제일 크게 들었더니 내 귀가 이상해진 게 분명하다. 아니면 당장 사전에서 임신이라는 단어를 찾아봐야겠다. 찾아야한다. 찾고만 싶다. 새로운 뜻이 추가된 게 분명하다. 평소 얕은 어휘력에 대한 나의 안일한 태도를 탓해야겠다. 그러나 내 눈은 참 쓸데없이 정확하다. 내 발은 병원을 찾고 내 손은 사전을 찾는 와중에 내 눈만은 나의 배를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 뱃살을.

 

   지하철을 타기 한 시간 전, 나는 언니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고 집을 나왔다. 언니,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는데 옷 좀 빌려주라. 이 돼지 식충이야, 살부터 빼고 빌려 달라 해. 몇 년 째 똑같은 레퍼토리. 지하철에서 내리고 한 시간 후, 친구들에게 이 사건을 말해주니 박장대소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미리 네가 확실히 중학교 때에 비해 살이 찌긴 쪘어."

   "맞아. 중학교 때는 학교에 과자 가지고 와서 친구들과 나눠먹는 아이였는데! 요즘엔 식탐이 늘은 것 같다야~" 

   그렇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정상인들처럼 먹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급식실에 맨 처음으로 입장하고 맨 마지막에 퇴장했다. 남은 음식들은 더 받을 수 있었기에 받고 또 받았다. 화장실에 양치질하러 가는 길에도 음료수와 과자가 내 손에 쥐어있었다.

 

  부대찌개로 유명한 의정부에 사는, 부대찌개를 참 좋아하는 중학생 소녀는 엄마와 선생님의 권유로 의정부에서 좋다고 소문난, 물론 의정부에서만 좋다고 소문난 의정부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소녀는 의정부에 있는 306보충대에 가본 적도 없었지만, 입학과 동시에 306보충대의 이등병쯤 되는 계급으로 입시라고 하는 전쟁에 나간다. 분명 총소리 하나 나지 않았지만 소녀는 계속해서 총알을 맞았다. 중간고사 총알, 기말고사 총알, 스펙 총알, 모의고사 총알 등. 쏟아지는 총알 속에 앞을 볼 수 없었던 소녀는 오로지 식량에만 매달렸다.

   수능 전 수능 점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는 9월 모의고사. 소녀는 그 모의고사를 본 후 도저히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곧장 독서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책상에 앉아 자신의 시험지만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소녀는 자신을 주변을 둘러싼 어둠이 마치 자신의 미래일 것만 같았다. 스탠드 조명만이 유일하게 소녀를 비춰주었다. 소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쯤, 소녀의 배 속에서는 뜨거운 국물을 찾았다. 하는 수 없이 소녀는 집으로 향했다.

   “미리야, 왔어? 어서 와서 저녁 먹어.”

   다행히 소녀의 엄마는 소녀에게 시험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신경을 안 쓰셨던 건지 안 쓰는 척하셨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녀가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지글지글 부글부글음악이 소녀의 귀를 기분 좋게 간질이기 시작했다. 무지개의 1인자와 2인자를 담당하는 빨간 색과 주황 색 사이에서 어디에도 끼고 싶지 않다는 묘한 색깔의 바다 속에서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김치, , 라면들. 그들은 소녀가 질리도록 보았던 의정부여자고등학교 부대도, 외국어 영역에서 막강한 힘을 펼쳤던 외고 부대도, 수리영역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과학고 부대도 아니었다. ‘그냥 부대였다. 소녀는 유일하게 총알이 없던 그들을 자신의 입안으로 모셨다. 그러자 그들은 마치 바이러스인 마냥 행동하며 백혈구인 밥과 한판 겨루겠다며 아우성쳤다. 소녀는 즉시 한 그릇의 백혈구를 대령, 또 대령, 또 또 대령하였다. 그 당시 소녀는 두 그릇은 기본이요, 세 그릇은 선택이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다 해치워야 직성이 풀렸다. 힘들 때마다 미친 듯이 먹었다. 미래를 계획하기는커녕 꿈꾸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머리를 비우는 대신 배를 채웠다. 그렇게 현실을 회피해버렸다. 입시 세계보다는 맛의 세계가 주 무대였던, 3년의 군 생활동안 끝까지 이등병으로 남았던 소녀는 말 그대로 성적에 맞춰대학교에 입학한다.

 

   내가 지금 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아주 새빨갛진 않더라도 9월 모의고사 후 먹었던 부대찌개 색깔만큼은. 그래도 이제는 수능이라는 게 영원히 선으로 지속될 것만 같았던 수능이라는 게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가 다가 아닌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이 날 친구들과는 곱창을 먹었다. 곱창 2인분에 볶음밥 3인분을 시키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생긴 나의 평소 먹는 습관이 나와 버렸지만, 이제 서서히 그 습관을 버려야겠다. 버릴 수 있다. 버릴 것이다.






알바, 인생의 현장

 

 

12학번, 1학년, 신입생 시절. 당시 4학년 학회장 선배는 굉장히 학회다운 분이었다. 올해부터는 상담심리학과답게 선후배끼리 멘토와 멘티가 되어보자고, 그리고 그 전통을 쭉 이어가보자고 큰 소리로 외치신 것이다. 그리하여 멘토링은 그 해 처음 시작하여 다음 해에 마무리가 되는 아름다운 전통, 아니 전설로 남아있다. 멘토링이 전통이 되었든 전설이 되었든, 그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내게는 어색했던 멘토 오빠가 있었고, 내게는 멘토 오빠가 어색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어느 날인가 멘토 오빠는 교내식당 파인하우스와 프렌들리 밖에 가보지 않은 신입생을 안타까워하며 후문이라는 신세계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거기는 매해볶(매운 해물볶음밥)이 끝내준다고, 여태 이것도 안 먹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냐고 했다. 신입생이 뭘 그렇게 잘 알겠냐고 물음 아닌 물음을 하고 싶었지만, 그 물음이 따지는 것이 되기 전에,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어색함을 택했다. 그 날 중국관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에 따라 대기 시간도 부쩍 늘어났다. 고로, 어색할 시간이 늘어났다. 어색한 사람과의 어색한 식사자리라니. 밥이 코로 들어갈지 입으로 들어갈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이 많았는지, 사람이 어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걸로 치자면) ‘엄청난기다림 끝에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다행히도 음식은 입으로 들어갔다. 그만큼 음식이 맛있었던 것이다. 중국집만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매운 맛의 볶음밥이었다. 그 후로는 동기들과 모처럼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갈 때면 중국관을 찾았다. 중국관은 내게 가끔씩 특별하게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부터 중국관은 내게 매일같이 평범하게 가는 곳이 되었다. 알바생이 된 것이다. 평일에 월화목 1시간, 금요일 3시간, 일요일 9시간. 알바 첫 날은 금요일이었다. 내가 주방에 들어서자 사모님이 내게 장화와 앞치마를 건네주셨다. 평소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신은 적이 없던 장화와 내 키가 3cm만 더 작았으면 질질 끌리고도 남았을 길이의 앞치마를 보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굳이 어부 차림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입고 나니 당장이라도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야 할 것 같았다. 설거지를 시작하자, 비로소 깨달았다. 이 차림은 어부 차림이 아니라 설거지 차림이 맞다는 것을. 장화가 아니었으면, 끊임없이 바닥에 쏟아지는 물들에 발이 흠뻑 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앞치마가 아니었으면, 설거지를 하면서 더러워진 물이 하도 튀어서 옷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른 학생들도 나처럼 수업이 별로 없는 금요일이니, 다른 요일들보다는 매장이 한가할 거라는 내 예상은 경기도 오산에나 가 있었다. 다들 여태껏 집에 꿀도 안 발라놓고 뭐했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은 수업이 마쳐도 곧장 집으로 가는 것보다 짜장면을 먹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듯이 중국관을 찾았다. 당연히 설거지거리는 그에 비례했다. 다음날은 쉬는 토요일이었지만, 쉬지 못했다. 일요일에는 금요일의 세 배인 아홉 시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벌벌 떨렸기 때문이다. 기어코 일요일은 와버렸고, 평소 내게 밥 먹는 양 좀 줄이라고 잔소리하던 엄마는 그 날만큼은 내게 밥을 많이 먹고 가라고 했다.

 

   만약 어린 왕자가 다시 지구라는 행성에 들른다면, 중국관 주방 왕국에서 설거지만 하고 있는 공주를 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23살의 꽤 늙은 공주는, 머물고 싶었던 다섯 번째 별을 떠나서 기껏 지구를 찾아와준 어린 왕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할 것이다. 어린 왕자가 용기 내어 설거지 공주에게 다가가 봤자, 면 삶는 국물의 뜨거운 맛만을 보게 될 터였다. 주방 왕국의 왕비는 공주에게 왕국의 자산인 그릇들이 중국집 그릇임을 국민들이 모르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릇에는 기름이 절대 껴서는 안 됐고, 면 삶는 뜨거운 국물만이 퐁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기름을 잡아주었다. 풀이 죽은 어린 왕자가 다른 대화 상대를 찾고자 눈길을 돌려보지만 찾을 수 없다. 왕은 짜장을 대하고 있고, 왕비는 탕수육을 튀겼으며, 중국 출신의 또 다른 공주는 면을 삶고 있으니 말이다. 끝내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한 어린 왕자는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고 가고 싶겠지만, 그마저도 앉을 자리를 찾지 못 해 떠나는 수밖에는 없다. 그만큼 홀에는 국민들이 넘쳐나니까.

 

   저녁 8,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의자에 앉았다. 전에는 그저 이동 시간에 불과했던 이 시간이 이제는 하루 종일 서있었던 다리를 편히 해주는 휴식 시간으로 변해 있었다. 고무장갑에 구멍이 뚫렸었는지 손이 퉁퉁 불어있었다. 손의 지문은 물로 인해 튀어나온 나이테로 변해있었다. 그건 마치 어릴 적 목욕탕에서 뽕을 빼야 한다는 엄마의 압박에, 뜨거운 탕 속에 오랫동안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의 손과 흡사했다. 불은 손으로 내가 한 일은 SNS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가수들은 여느 때와 같이 <인기가요>에서 멋진 공연을 선사했고, 친구들은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기념사진을 올렸다. 그들이 공연을 하고 데이트를 할 동안,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릴 수도 없었다. 굳이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결코 보여 지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씻고 침대에 눕자 저녁 9시 반이었고, 눈을 뜨니 아침 10시 반이었다. 월요일에 1교시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로 변해 있었다.

   월요일, 학교 가는 길. 평소 같았으면 졸기 바빴을 내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제 난 대체 무슨 일을 한 걸까.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중에 커서 하지 말라 말하는, 단순히 몸 쓰는 일은 아니었다. 난 분명 머리도 쓰고 있었으니까. 내 눈은 그릇들만을 쳐다보고, 내 손은 그릇들만을 만졌지만, 내 머리는 그릇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내 어부차림의 옷과 어울리는 그물처럼, 많은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복잡했다.

   문득 <체험, 삶의 현장>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에 했던 TV 프로그램으로, 연예인들이 하루 고된 일을 하고 나서 스튜디오의 하얀 말을 타고 올라가 하트 모양의 통 속에 급여를 넣는다. 땀까지 흘려가며 일하는 연예인들을 일요일 아침 한가로이 누워서 보고 있자니 은근히 미안해지곤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연예인 처지가 되었다. 아니다, 연예인들은 그 날 하루만 하면 끝이네. 나는 다음 주에도 나와야 하는 걸.

   학교 도착. 주말에 뭐 했냐고 안부를 묻던 사람들은 내게 당장 그 일을 그만 두라고 했다. 그 일보다 훨씬 쉬운 일도 많은데 왜 힘든 일을 하고 있냐고 했다. 취업지원센터 담당자 분은 알바도 스펙이니 경력에 도움이 되는 알바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겐 그 어떤 일보다도 힘든 일이었는데, 결국 어느 회사의 사장님도 알아주지 않는다니 힘이 빠졌다. 그런데 신기한 건, 힘이 빠져버린 자리에 오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내가 내 일을 말해줄 때까지만 해도 분명 나도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들의 말을 듣자 버티고 싶어졌다.

   역시나 그만두라고 할 줄 알았던 친구들은 오히려 내가 버티는 데 힘을 실어주었다. 한 친구는 네가 무슨 일이 하느냐보다는 네가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니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당장은 취업에도 도움 되지 않는, 별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이 경험이고 그 경험의 끝에는 무언가가 남아 있을 거라고 했다. 이 고마운 조언들은 내가 일주일을 버티자 비로소 와 닿기 시작했다. 사모님께서 일주일치의 급여를 주셨고, 나는 내 마음 속 하트 통에 그 돈을 넣고 있었다.

 

   나는 <알바, 인생의 현장>을 찍고 있었다. 중국관에서 일을 하면 인생 그 자체를 배울 수 있었는데, 첫 번째 스승은 호는 초록이요, 이름은 수세미인 양반이었다. 수세미 선생은 자신을 아무렇게나 잡지 말라 하셨다. 수세미를 잡는 방식은 곧 설거지를 하는 사람의 태도를 반영한다. 수세미를 아무렇게나 잡는 순간, 그릇은 아무렇게나 닦인다. 초록색의 큰 수세미는 반으로 반듯하게 접어야 제 역할을 한다. 반으로 접어진 수세미를 대접의 벽 사이에 끼우고 한 바퀴를 돌리면, 그릇도 제대로 닦이고 일도 훨씬 쉬워진다. 자신을 성의 있게 잡아준 사람에게 수세미가 그만의 방식으로 보답을 하는 것이다.

   또한, 수세미의 서열도 알아두어야 한다. 막연히 짜장을 볶는 쇠 냄비는 철수세미로, 일반 그릇들은 천수세미로 닦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릇을 제대로 닦지 못할 것이다. 내가 쇠 냄비의 겉을 철수세미로 낑낑대며 닦고 있을 때, 같이 일하는 중국 출신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그러고는 내게서 냄비를 가져가시더니 그을린 부분에 천수세미를 갖다 대셨다. 그랬더니 철수세미로 아무리 빡빡 문질러도 닦이지 않던 그 부분이 마법을 부린 듯 잘 닦였다. 의외로 천수세미가 철수세미를 이긴다. 그래서 초록수세미 선생이 회색수세미 선생 위에 있다.

   천수세미가 철수세미를 이기는 건, 의외가 아니라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초록 선생은 이미 상담계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유명하신 분이었으니까. 선생은 내게 자꾸만 부딪히기보다 어루만지라고 말씀하셨다. 냄비 겉에 그을린 부분과 냄비 속에 탄 부분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을린 부분은 마음에 난 상처와도 같아서, 강하게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었고, 그럴 때마다 내 잘못이라고 나를 심하게 몰아세웠다. 그러자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그런데 이번 여름 방학에 따뜻한 상담자분을 만났고, 그 분은 내게 나 스스로를 따뜻하게 대해주라고 하셨다. 아마 초록 선생은 그 상담자분의 분신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스승은 그릇들이었다. 그릇들은 다양하지만, 넓게 나누면 큰 그릇과 작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큰 그릇에는 쟁반짬뽕, 쟁반짜장, 탕수육을 담는 쟁반그릇과 짜장면, 짬뽕, 냉면을 담는 대접이 해당된다. 작은 그릇에는 앞접시와 밥그릇, 국그릇이 있다. 순서는 큰 그릇부터 처리하고, 작은 그릇은 나중에 씻는다. 그 이유는 싱크대 공간이 한정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쏟아지는 그릇들을 감당하려면 부피가 큰 그릇부터 처리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큰 그릇을 다 처리하고 나면 작은 그릇들만 남게 되는데, 작은 그릇들은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좋다. 작은 그릇들은 큰 바구니 속에 전부 담기는데, 그 그릇들이 주방에서 홀로 옮겨지기 전에, 바구니에서 말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의할 점은 큰 그릇을 처리하는데 집중해서, 작은 그릇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저 큰 그릇만이 중요한지 알고 큰 그릇들만 닦다가, 홀에서 서빙하는 언니가 지금 앞접시가 없으니 얼른 앞접시부터 씻어달라고 부탁했었다. 나는 당황해서 큰 그릇을 놔두고 부리나케 작은 그릇들을 씻었다. 균형이었다. 큰 그릇이 내 할 일이라면, 작은 그릇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나는 할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되, 사람들과의 대화도 필요로 한다. 나는 가끔이라도 친구들을 꼭꼭 만난다. 이 일의 경우도 친구들의 조언이 없었다면, 나는 일을 하긴 하더라도 기분 좋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은 그릇 같은 친구들과의 만남은 큰 그릇인 내 할 일을 위해서도 참 필요했다. 큰 그릇을 닦다가도 작은 그릇도 닦고, 작은 그릇을 닦다가도 큰 그릇도 닦아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 번째 스승은 요리였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탕수육이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고기를 튀긴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 사모님이 탕수육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먼저, 고기에 밀가루 반죽을 한다. 반죽된 고기를 하나하나 띄어내고 기름에 투척한다. 고기는 한꺼번에 다 넣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양만 넣고 건진다. 건지면 또 고기를 띄어내고 투척한다. 그렇게 반복하고 나면 애벌튀김이 완성된다. 일명 일차 튀김이다. 한 번 튀긴 걸로는 맛이 없기에, 일단 그 튀김들을 다 펼쳐서 식히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이차로 튀겨야 한다. 그 번거로운 과정을 다 거친 탕수육에게 우리는 비싼 값으로 대접해준다.

   그 다음은 이다. 면의 운명은 가혹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뜨거운 바다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는 살기 위해서 헤엄을 치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어난다. 그래도 구해지지 않아서 적응이라도 해볼라치면, 갑자기 엄청나게 차가운 폭포를 만나게 된다. 게다가 주인은 그 차가운 폭포에서 면을 엄청나게 괴롭힌다. 조물딱 조물딱! 아주 그냥 물고문이 따로 없다. 그래도 착한 면은 또 적응해보려 하지만, 주인은 또 뜨거운 바다로 데려간다. 차가운 물고문까지는 면이 탱글탱글 강해지는 과정이기에 놔뒀지만, 다시 뜨거운 물에 담가지는 건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주인의 배려였다. 면은 결국 뜨거운 육수에 담가질 운명이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뜨거운 면이 되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육수에서 오래오래 버틸 수 있었다. 극단적인 경험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한 면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운명을 타고났다.

    버섯을 포함한 모든 재료들은 내게 함께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다. 엄마가 배추를 절일 때나 쓰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구니에 버섯이 가득 담겨 있다가 싱크대에 쏟아진다. 물을 틀어놓고 씻기다가 이내 옆 싱크대로 몽땅 넘어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체로 여러번 버섯들을 퍼내야 한다. 또 한 번 씻긴 뒤 다시 원래 싱크대로 넘긴다. 이렇게 다섯 번 이상을 반복하면 버섯이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져서 냉장고에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다. 만일 우리만 먹는다면 버섯의 양이 적어서 대충 씻어도 쉽게 차가워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손님들을 먹여야 한다. 그것도 몇 백 명의 손님들을 말이다. 재료는 대량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고, 요리 과정은 더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버섯을 소량씩 따로 따로 준비할 수는 없다. 버섯은 같이 움직여야 한다. 남을 위한 삶이 결코 쉬운 삶은 아니지만,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한 것처럼.

 

   마지막 스승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 사장님, 사모님, 그리고 중국에서 오신 아주머니. 나는 중국 아주머니와 말 한 마디 나눠본 적이 없다. 그 분은 안녕이라는 단어보다 짜장이라는 단어를 훨씬 더 잘 알아들을 분이셨다. 그래도 우리의 대화는 통한다. 내가 일을 할 때 어설픈 부분이 있으면, 아주머니는 몸으로 시범을 보이며 설명해주신다. 그러면 나는 깨달았다는 의미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하는 중간 중간, 아주머니는 사과 같은 간식들을 반으로 쪼개서 내게 건네주신다. 나는 밥을 먹고 와서 괜찮다고 팔로 가위표를 그려보지만, 그에 대한 답으로 반으로 쪼개진 사과를 또 반으로 쪼개서 아예 입에 먹여주신다. 내 입에 사과가 들어가면, 그제야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신다. 우리 대화의 끝은 언제나 웃음이다.

   홀서빙 언니가 짜장 둘, 탕수육 하나요.”하면, 사장님과 사모님은 곧바로 아주머니에게 짜장 양거, 탕수육 이거.”라고 바꿔서 다시 말해주신다. 아주머니를 위한 배려이다. 심지어 사장님과 사모님이 서로에게 말하실 때도 이거와 양거를 쓰신다. 이제는 배려가 입에 베신 것이다. 그 배려는 손님들에게도 향한다. 그건 숟가락과 젓가락만 봐도 알 수 있다. 솔직히 수저는 세제 칠만 해도 다시 쓸 수 있다. 그런데 중국관에서는 수저에 세제 칠을 한 다음 헹궈서 물이 담긴 수저통을 가스 불 위에 놓고 펄펄 끓인다. , 수저가 면처럼 삶아지는 것이다. 손님들은 그 사실을 모를 테지만, 손님들이 알든 모르든, 그건 사모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모님에게는 그저 위생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사모님은 내게 아무리 설거지 하느라 바쁘더라도, 주변을 깨끗이 하는 일이 언제나 1순위라고 하셨다. 이렇듯 이 분들은 내게 귀로 들리는 것과 눈으로 보이는 것 이외의,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내가 사장님과 사모님을 단순히 고용주가 아닌 스승으로 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분들이 먼저 나를 알바생으로 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내가 평일 점심시간에 잠깐 와서 일하고 다시 수업을 가려고 할 때면, 그 분들은 그 귀하다는 소고기 탕수육을 만들어서 먹고 가라고 하셨다. 정말 급해서 아무 것도 못 먹고 갈 때는 삶은 옥수수를 바리바리 싸주셨다. 그렇게 나를 딸처럼 대해주셨다. 금요일 오후, 손님들이 빠져나간 시간이자 우리들의 늦은 점심시간. 그 날 메뉴는 간짜장이었다. 나는 간짜장과 짜장의 차이를 물었고, 사장님은 간짜장은 원래 건짜장(마른 짜장)으로 이게 원조라고 하셨다. 일반 짜장은 다 같이 가난했던 시절, 보다 많은 사람들이 먹기 위해 건짜장에 물과 전분을 더 넣어서 만들어졌다고. 사장님은 내 간짜장에 식초를 쳐주시며, 간짜장은 식초를 쳐야 제대로 먹는 거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내 혀는 전생에 식초와 원수를 졌는지, 그 맛이 그 맛이었다. “어때? 식초 치니까 훨씬 맛있지?” 그래도 원수는 맺으면 안 되기에, 식초와 사이좋은 을 했다. “! 훨씬 맛있어요!” 그 식초에는 내가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길 바라는 사장님의 마음이 들어있었으니까. 짜장에 물을 더 넣은 것도, 간짜장에 식초를 뿌린 것도 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이었다.

 

   사장님과 사모님은 내게 설거지를 늦게 해도 된다고 하셨다. 심지어 못해도 된다고 하셨다. 부탁하신 것이라곤 오직 꾸준히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원래 알바를 구하시진 않았기에, 내가 알바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상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사장님이 덧붙이신 말은, “꾸준히 해야 학생이 뭔가를 배울 거야.”였다. 알바를 한지 한 달,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엄마 증언에 따르면, 아빠가 한창 잘 나가셨을 때, 그러니까 아빠가 마트의 사장이셨을 때, 삼촌들은 배달을 하는 직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는, 나름대로 한참을 고민해보다가 삼촌들에게 물어봤었다. “삼촌들은 장사가 잘 되는 게 좋아, 잘 안 되는 게 좋아?”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고. 장사가 잘 되면 좋은 것 같지만, 삼촌들은 똑같은 월급을 받을 테니 결국 우리 아빠만 좋은 거 아니겠냐고. 장사가 안 되면 슬픈 것 같지만, 삼촌들은 편히 쉴 수 있으니 더 좋은 것 같다고. 둘째 삼촌이 말했다. 장사가 너무 잘 될 때는 솔직히 장사가 안 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고. 그런데 정말로 장사가 안 되는 날들이 오자 몸은 편해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잘 되기를 바란다고. 그 말을 들은 첫째 삼촌이 말했다. 장사가 적당히잘 되는 날은 없는 것 같다고. 하루는 너무 잘 되다가도 하루는 너무 안 된다고. 그건 어느 쪽으로 바란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그래도 나는 둘째 삼촌처럼, 중국관이 매일 매일 잘 되기를 바라본다. 내가 힘든 건 둘째로 치고라도. 중국관이 매일 매일 잘 되면, 나는 설거지의 속도를 높여야 하고, 설거지를 잘 해야 한다. 나는 설거지를 빠르게, 그리고 잘 하고 싶어졌다. 몇 달 후에는 달인이 되어있기를!



최미리 / cml3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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