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울리다
김동오
요즘 들어 아침 잠이 많아졌다. 알람의 개수를 두 배로 늘리고 소리도 좀 더 과격한 것으로 바꾸었다. 아침 잠은 점심까지 침범하여 애매한 반 수면 상태로 오후 다섯 시까지 자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다섯 시까지 잠을 자는 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남기는 데, 가장 많은 비중은 자괴감이다. 수면은 자괴감을 낳고 난 그 속에서 또다시 잠을 청하였다. 밤을 새서 그렇다. 너무나 간단한 인과관계가 내 하루를 무너뜨리고있다. 어쨌든 알람 덕에 일어났으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정발산역을 향한다. 인생을 여정이라고 하지만, 매일 1시간 30분의 통학은 그 수많은 여정 중에 가장 지독하고 지루한 움직임이다.
계속 반복되는 대중교통의 진동은 내 몸과 지하철을 저 지구 아래로 끌어내린다. 어둠, 어둠, 어둠. 그 옆에 자리하는 벽, 벽, 벽. 까마득한 어둠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달리는 나와 벽의 간극은 1미터도 안된다. 이러한 답답함에 몸은 방어책으로 다시 졸음을 택한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잠이 들었다.
"옛날에 한 선비가~"
할머니의 목소리다. 저 문장을 들은 지 15년이 지난 듯하다. 당신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문을 열면 반겨주는 사람이지만 저 이야기를 듣는 나는 너무나 달라져 있다. 15년은 무언가를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짧은 이야기는 더더욱 말이다. 바쁜 일상에 다 큰 내가 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보채는 것도 이제 시계와 달력은 허락하지 않나 보다. 5년 동안은 저 이야기의 제목조차 모르는 채 살아왔다. 은혜 갚은 까치 또는 까치와 구렁이. 이야기의 제목은 다양하다. 하지만 내게는 "옛날에 한 선비가~"라는 3 어절 자체가 어느새 이야기 제목이 되어있다.
할머니. 할머니의 목소리가 꿈에 들리는 순간 아침 8시 30분의 바쁜 사람 꽉 찬 지하철이라는 것을 까먹고 말았다. 어둠, 어둠, 어둠과 벽, 벽, 벽이라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안경에 김이 차기도 전에 눈물이 났다. 다섯 정거장, 여섯 정거장, 먹먹하게 흘리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난 드렁큰타이거의 "8:45"라는 노래이다. 그 또한 할머니를 떠올리며 만든 노래이기만큼 가사 하나하나에 공감한다. 그 중에서도
"그 누가 뭐래도 절대 날 탓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당신의 사랑은
기적과도 같은 기적을 만드는
신 다음 가장 완벽한 완벽한 아름다움"
가사가 당신이 내게 준 감동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할머니께서 내게 해주시는 말이 있다. "이 할미는 동오가 정말 큰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 동오처럼 착한 사람이 없어요" 이 뒤에 살도 빼면 너무나 좋겠다는 말이 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무조건적인 믿음. 실제로 20대의 중반의 시점에서 누군가에게 큰 사람이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은 조금은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70대 후반의 할머니에게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새싹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난 아직 너무나도 어린 사람이다. 그에 비하여 당신은 너무나 현명하다 까치의 입장 뿐만 아니라 남편을 잃은 구렁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옹호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어른이 이 어린 꼬마에게 계속 믿음을 주는 것은 어떠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직도 덜 자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있었다.
을지로 3가, 을지로 3가
어느 누군가와 오래 동안 살게 되면, 당연히 그 사람의 모습이 내게 흔적처럼 남아있기 마련이다. 유년기 시절을 거의 같이 보낸 사람이기에 어찌 흔적이 안 남았을까? 그 은혜 갚은 까치의 생각이 다시 든다. 할머니는 어떠한 바람을 가지시고 매일 밤마다 귀중한 잠을 조각 내어 이야기 하셨을까? 선비가 잠에서 깨어나 여자가 구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그 곤경을 내가 겪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믿었던 나의 능력들은 자만심으로 변질되어서 되려 나를 갉아먹고있는 상황이었다. 자만심은 나태함으로 변질되어 구렁이에게 몸이 감겨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유일하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종을 울리는 것이다. 아. 이런 뜻이었구나. 선비는 나였고, 구렁이는 나의 능력이었다. ‘딱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이제야 나를 조여오고 있었다. 종을 울려야만 한다. 나의 구렁이 같은 이 능력을 용처럼 승천할 수 있게 하고 나 또한 할머니가 말하신 “큰 인물”이 되는 방법은 종을 울리는 것이었고 그것은 바로 지금 내 머릿속에 할머니와 조우하며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까치는 종을 한 번 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까치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죽음이란 공포의 한계를 극복하며 종을 울렸다. 결국 할머니의 이야기에 등장한 까치, 선비, 구렁이는 모두 내 자신이었다.
처음이다. 2호선에서 내린 나는 처음으로 해답을 얻은 상쾌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열심히 습작을 거듭해나가다보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