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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버리고 조화를 가르치는 텃밭 할아버지

 

삭막한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학생들의 무미건조함이 심성을 아름답고 착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환경적인 조건이 심성의 변화에 악영향을 도래하여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비행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학교 교정의 장점을 이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배우고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의 특징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나 사회적 구조로 인하여, 급격한 산업 환경의 변화로 다양한 욕구와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특징 속에서 자라나는 어린 청소년들이 좀 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에 의한 가르침보다는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자연과의 교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어 주는 어느 할아버지 선생님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출근하던 첫 날 정문을 들어서면서 느낀 교정의 분위기는 너무나 나에게는 황송하고 기쁨 그 자체였었다.

학교 뒤편에 있는 작은 동산이 교정을 아름드리 품고 있었으며,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모여 하나의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연못 속에서 빨강, 노랑, 하얀 아름다운 색색별 물고기가 물질을 하며 한가롭게 다니고 있었으며, 연못 주변에 펼쳐져 있는 텃밭에는 아이들이 심어놓은 상추니, 고추니, 고구마니, 각종 채소가 자라고, 텃밭 주변에는 각종 암석들이 자기 이름표를 달고 자신의 족보를 말하여 주고 있었다. 또한 수많은 나무가 각자의 옷을 갈아입고 학교를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곳곳 빈 공간 텃밭에는 각종 들풀들을 기르고 있었으며, 뒤뜰 등나무 밑에는 적당하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어린 여학생들이 등나무 밑 벤치에 앉아 깔깔거리며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참으로 누군지 몰라도 공을 들여 학교를 아름답게 일구어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교정을 가지고 있기에 학생들도 3년 동안 이런 학교를 다닌다면 보고 듣는 것이 자연의 아름다움이요, 자연의 소리이기에... 그들의 졸업식 때에는 졸업장과 함께 아름다운 마음을 함께 가져 갈듯 싶었다.

학교 교정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것도 잠시, 첫 출근이라 아침 교직원 회의에서 교감 선생님의 소개와 함께 “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나름대로 크게 인사말을 하고 다른 선생님들 눈치를 보며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잠시 첫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보이는 검은 머리 반, 흰 머리 반인 반백의 한 선생님이 나에게 ‘교육계획서’라는 책을 한권 책상 위에 던지다시피 하며, 무뚝뚝하게 “ 한번 읽어봐요.”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뭐, 저런 선생님이 다 있어. 나이만 먹으면 다야.”하고는 혼잣말로 내뱉었다.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이 내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채셨는지, 그 무뚝뚝한 반백의 선생님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다. 우리 학교의 연부부장 선생님이시고, 국어 선생님이라는... 하지만 그 선생님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그리고 며칠 뒤 점심시간에 학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유독 그 국어 선생님만 혼자서, 그것도 다른 선생님들과는 멀찍이 떨어져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신임 교사가 찾아가서 왜, 혼자서 식사를 하시냐고, 여쭈어 볼 수도 없고, 하여튼 묘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았다. 식사하고 담배를 피울 때도 혼자서 피우시고, 다른 선생님들과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가끔 옆자리에 있는 교감 선생님과 업무 때문인지, 말다툼도 심하게 하셨다. 독불장군과 같은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그렇게 재미없고, 무뚝뚝한 양반이 학생들과는 매일 같이 학교 교정에 있는 텃밭에 나아가 텃밭을 가꾸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것도 즐거운 표정으로...

얼마 뒤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학교 텃밭을 바로 이 분 국어 선생님이 거의 일구어 놓은 것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학교 텃밭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학교 설립자이신 전 재단 이사장님께 사정도 하고 때를 쓰기도 하고, 한마디로 햇볕도 못 말리 위인이었던 같았다.

첫 출근할 때 학교를 보고 참으로 학교 교정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다고 생각하였는데 바로 그런 분 중에 한 분이 바로 독불장군 할아버지 선생님 국어 선생님이셨던 것이었다. 점점 국어 선생님에 대해 재미있기도 하고,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나름대로 교육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다. 입바른 소리만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들을 수 있었지만, 선생님은 잘못 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가차 없이 지적을 하셨던 것이다.

모름지기 교사는 학생들에게 마음을 주고, 거짓이 없는 가르침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어 선생님은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담배를 무는 독불장군 왕따 선생님이시지만, 스스로 왕따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사람들이 하는 때 묻은 이야기, 잘 난척하는 이야기, 뒤에서 남 호박씨 까는 이야기, 어설픈 인생살이 이야기가 너무나 당신에게는 싫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주면 주는 대로, 받으면 받은 대로 다가오는 흙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어린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휘경여중에 부임하고 2년차 되던 그 다음해부터는 담임도 맡고 해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국어 선생님께 말씀드려 학교 텃밭 한 곳을 분양을 받았다.

국어 선생님께서 텃밭 이름도 지어 주셨다. ‘소새와 아이들’이라고...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텃밭에 상추도 아니고, 고추도 아니고, 벼를 한번 재배를 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의아해서 “ 아니 선생님! 이 작은 땅에 벼를 심어 보았자 쌀 한말도 안 나올 텐데 무슨 벼를 심어요.” 하고 대꾸하듯이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 남이 안하는 것 해봐.” 하시더니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와 같은 불만 없이 벼를 열심히, 당번을 정해 가며 매일 같이 텃밭에 나와 애지중지 하며 가꾸는 것이었다. 한 번도 보지도 못한 쌀나무를 열심히 물도 주고, 거름도 주어가며.... 벼를 재배하라고 할 때 이미 나는 얼마만큼 생산이 될까하는 결과물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사꾼이 이익에만 눈이 먼 것처럼... 그러나 때 묻지 않는 우리 아이들은 가꾼다는 그 자체만 가지고도 너무나 즐거워하고 신기해하였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국어 선생님의 말 없는 가르침을 또 한 번 받게 된 셈이었다.

이후 가을이 되어 거둬들인 얼마 안 되는 쌀이지만, 아이들이 집에서 라면 봉지에 가져온 쌀을 보태어 떡을 해서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께는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떡을 돌리고 학교에서 일하는 아저씨들께는 고마운 마음의 떡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거둬들인 결실의 기쁨과 추억의 떡을 먹었던 것이다. 벌써 졸업을 하고 세월이 흘러 숙녀가 되어버린 아이들이지만 이 때 1학년 4반의 추억은 잊어버리지 못 할 것이다.

텃밭에는 벼를 심었지만, 아이들 마음에는 자연에서 가져온 사랑과 추억이 심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묵묵히 말없이 쳐다보는 국어 선생님의 마음도 심어졌던 것이다. 이 당시 우리 반 반장이었던 정미선이라는 아이가 쓴 학급문집 속의 국어 선생님에 대한 글을 잠깐 소개를 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새학기. 꽃씨로 우리에게 자상한 할아버지로 인상을 심어주신 우리 할아버지!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선생님의 가면은 벗겨집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가시가 두루두루 박힌 가시나무로 우리를 때릴 때면 그렇게 선생님이 미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을 위해서 그러신다는 것을 알기에, 저희는 선생님을 미워하려 해도 미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 국어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항상 우리들에게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예를 들어가시며 재미있게 설명해 주셔서 저희는 국어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어쩔 땐 선생님의 방 자랑도 하십니다. 밤이 되면 선생님의 방 천장에는 온 우주별이 반짝 반짝 거리고 있다고 하십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는 텃밭의 상추와 오이와 고추와 그리고 들풀과 이야기 하시고, 밤이면 별들과 이야기 하나 봅니다. 저희는 이런 선생님이 오래도록 휘경여중에 남아 계시길 바랍니다.

정말 아이들에게는 항상 꿈을 이야기 하는 분이셨던 것 같았다. 교사가 교실 교단에 서서 칠판에 판서해 가며 수업하는 것만이 수업이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연의 조화로움을 알고, 조화로움 속에서 인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텃밭 속에서 깨닫도록 제시해 주신 것이었다.

많은 글을 지면 통해 할애하기가 어렵지만 국어 선생님이 지어주신 우리 반 텃밭 이름인 ‘소새와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쓰여진 손수진이라는 학생의 글을 하나 더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유월의 푸르름이 한창일 때 우리는 텃밭에 관심이 쏠렸다. 우리가 처음 입학하였을 때 제일 마음에 들었던 텃밭들... 이제는 모두다 텃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4반만은 텃밭이 없다는 게 속상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반장이 선생님들께 말씀드려서 드디어 우리의 텃밭도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반과는 다르게 우리는 벼를 심게 되었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벼를 잘 키워라. 벼는 논에서 자라지만 특별히 밭에다 심어 놓았으니까 만약 잘 키우면 선물을 주겠다.” 라고 하셔서 열심히 가꾸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혜림이 이렇게 우리 둘은 밭에 물을 주기로 하였다. 며칠은 열심히 밭에 물을 주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밭에 물을 주는 게 적어졌다. 어느덧 뜨거운 햇볕이 우리 밭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밭에 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밭에 물을 주었고 또한 반장도 우리를 열심히 도왔다. 잡초도 뽑아주고 우리는 벼에 사랑을 주면서 우리도 크면서 벼도 자랐다. 비가 많이 내릴 때도 학교에 와서 벼들을 지켜보고 벼들이 자라는 게 뿌듯하였다. 이렇게 밉던 여름도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우리는 이제 벼를 추수할 때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들의 벼가 잎마른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국어 선생님과 상의를 하여 벼의 잎사귀를 자르기로 하였다. 벼가 아프니 엄마의 심정이 된 것 같았다. 우리의 간호로 벼는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벼와 집에서 조금씩 가져온 쌀로 떡을 했다. 고사도 지내고 선생님들께도 떡을 돌렸다. 그런데 우리의 텃밭이름은 우리 반장이 소새 같다고 국어 선생님이 지어 주신 것이다. 우리의 텃밭은 국어 선생님의 많은 도움으로 멋진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우리의 벼는 우리들의 추억으로 쌓일 것이다.

이 학생의 글을 통해 얼마나 아이들이 사랑으로 벼를 재배하였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텃밭이라고 해서 시각적이거나, 학교 홍보용으로 해서 만들어 놓은 일반적인 그 흔한 텃밭이 아니다. 이야기를 거슬러 텃밭을 가꾸어 오게 된 텃밭에 대한 역사에 대해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다른 선배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나름대로 애완도 있고 희생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았다.

IMF 이후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혀 경제가 뿌리 채 흔들리자, 우리 교육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고 한다. 인정은 메말라 서로 믿지 못하고 냉정하고 암울한 나라가 되었고 부모가 직장에서 버림받았으며, 부도가 나고 가정이 붕괴되면서 우리의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함께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학생부와 상담실은 부적응 학생으로 넘쳐났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피어난 것이 텃밭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여학교라 따로 텃밭이 있을 리 없었지만, 장미원에 농작물을 조금 심어 본 것이다. 원래 장미원은 학교 설립 때 이사장님이 490명 입학생을 상징하여 심은 49그루의 장미가 세월이 지나면서 늙고 병들어가서, 그 빈터에 상추, 고추, 쑥갓, 배추, 고구마를 심으면서 차츰 텃밭으로 바꾸어 나갔던 것이다.

학생들이 이러한 농작물에 무척 관심을 보이고 모여들어, 다음 해에 지금은 원로교사이신 국어과 선생님과 생물과 선생님 등, 뜻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아예 몇 그루 남은 장미를 구석으로 옮기고, 80여 평 장미원 전부를 갈아엎어 20여 두렁의 밭을 만들고 원하는 반에게 분양하였다고 한다.

텃밭을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들과 함께 상추와 고추, 오이 모종을 사다가 심고 물을 주고 유기질 거름을 뿌려 알뜰하게 길렀으며, 반 단합대회 때는 이처럼 스스로 땀 흘리면서 기른 상추와 고추를 따서 구운 삼겹살을 곁들여 먹거나 참치와 상추 등을 밥과 비벼 먹는 보람과 공동체의 맛을 나무며, 멀리서 떠오르는 희망의 무지개를 보았던 것이다.

농작물 재배와 함께 빛을 발하는 것이 들꽃이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직접 산과 들을 찾아다니는 ‘뜰꽃 기행’을 하면서 피나물, 애기나리꽃, 오이풀, 은방울꽃, 둥글레, 궝의 종아리 등 야생화를 옮겨 심었으며, ‘우리 식물 살리기 운동본부’에서 한라구젙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등 10여종을 얻어다 길렀다고 한다. 또 야생화 꽃집에서 금낭화, 매발톱, 용담, 비비추 등 20여종을 사다 심어 들꽃밭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주로 장미원 둘레와 단풍나무 그늘, 그리고 위 텃밭 라일락, 꽃사과 나무 그늘에 심어서 방치된 땅을 살려나갔다. 이러한 들꽃 재배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리 선생님들에겐 나름대로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장미가 아무리 아름답지만 우리 교정에는 우리 꽃이 넘쳐나야 옳지 않은가? 그렇게 노력을 해서 지금은 120여종의 꽃들이 자연 학습장이 되어 학생들의 눈을 빛내고 있다.

금년에도 국어 선생님이 계신 상담실에서 텃밭을 분양하여 관리하고, 특별활동으로 자연학습반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자기 학급의 개성을 살린 ‘꿈밭’, ‘아롱다롱’ 등의 이름을 지어 푯말을 세우고 비료를 준 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비닐을 씌워 고추와 토란도 가꾸어 나 갈 것이다. 아이들은 비록 작은 텃밭이지만, 보이지 않는 씨앗이 땅속에 숨어 있지만, 언젠가 보기 좋은 열매가 열리 것이라는 꿈을 심으며...

이와 같이 국어 선생님의 텃밭 가꾸기는 이제 학교의 특색 사업이 되어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교육의 장이 된 것이다.

이러한 자연 학습의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은 농작물과 잡초, 들꽃과 벌레도 함께 사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인생의 참 의미도 깨달을 수 있었고, 도시 속의 자연에서 일하는 기쁨과 수확의 벅찬 감격, 그리고 땀의 소중함과 일 의 신성함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마음이 순화되며,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깨달아 사회생활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또한 자연처럼 조화롭게 살아야 함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묵묵히 텃밭을 일구는 텃밭 할아버지 국어 선생님을 보게 된다. 정년을 얼마 앞두고 반백의 머리는 이제 백발로 바뀌어 가지만 그 마음만은 지금 막 피워난 텃밭 속의 들꽃처럼 항상 아름답고 향기로울 것이다. 남들이 인정하여 주지 않던 텃밭을 20여년이 넘게 일구어 오면서, 휴일을 마다하고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들꽃을 채취하면서, 본인을 희생하고 노력한 결과 지금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텃밭 속에서 자연의 가르침을 받고, 즐거움을 얻고, 수확의 기쁨을 느끼고, 생명의 탄생을 신기해하고, 미움과 질투보다는 사랑과 헌신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당신이 좋아하시던, 싫어하시던 30년이 넘게 머물며 가꾸어 온 학교를 떠나시기 전에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봉사와 희생의 가르침을 알리고자 글을 써보게 된 것이다.

멋대가리 없던 선생님이시만, 왕따를 즐기는 선생님이셨지만 학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꿈을 주던 선생님으로 나에게 진정한 교사의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던 분으로 기억한다. 텃밭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전해주고 그 자연 속에서 편견을 없애고 조화의 추구를 일깨워 주신 국어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자라 생각한다.

오늘도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텃밭 한 가운데서 구름과자(담배)를 먹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국어 선생님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는 그 분의 시를 한편 소개하면 이글을 마감한다.

 

바람을 좋아하는 나무

 

바람을 좋아하는 나무는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수수한 꽃을 피우는 소나무

꽃이 없는 듯이 겸손한 참나무를 보아라 잎사귀 뒤에 꽃을 감추고 있었던

저 은행나무를 보아라.

 

그저 혼자 서서, 아니면

소나무는 소나무끼리, 참나무는 참나무끼리,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어우러져서

숲을 이룬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가을이면 가지를 흔들어 잎새를 떨어뜨리는 바람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 profile
    korean 2014.11.03 11:49
    참으로 의지가 대단한 선생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주위에 상당한 부담을 주시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요즘 세상에 정석대로 사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얼렁뚱땅, 눈치가 판 치는 세상에...
    그런 선생님이 계시기에 세상이 이정도라도 되는게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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