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커피에 대한 감상

by 마침 posted Nov 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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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에 대한 감상


  고등어 자반을 올린 조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문득, 커피와 함께 담배가 피우고 싶어져 근처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저녁 식사가 늦은 탓에 땅거미가 이미 어스륵하게 깔려 있더군요. 커피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 해서, 공원 벤치에 가 앉았습니다. 앉아서 사위를 한 번 둘러보고, 다리를 꼬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가져 물었습니다. 

  그래, 살다보면 뜻과는 다르게,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을 맞이 할 때가 있습니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시간이 빨리 흘러가서 나의 이 어두운, 침묵의 시간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그런데 요즘 저는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하면서도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고 있자면, 끝을 향해 가는 하루가 미치도록 아쉽고 또 무척 외롭다고 느낍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도 저와 같은 아쉬움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도, '오늘' 이라는 하루 끝에 제가 많이 아쉽고도 외롭기 때문이겠지요.

  지구는 꼭 같은 시간을 두고 꼭 한 바퀴를 돌아 냅니다. 저는 그저 지구에 딛고, 살아가며, 아쉬움을 느낍니다. 저의 힘으로는 지구의 자전을 막을 수가 없기에, 단지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아쉬움을 격하게 받아 낼 따름이지요. 저물어가는 하루가 아쉽듯, 저는 지금 사위가 어두워진 순간에 타들어 가고 있는 담배가 아쉽습니다. 니코틴에 중독된 저는 저의 의지인 듯 또 다른 누군가의 강제인 듯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습니다.  불이 붙은 발암덩어리는 연푸른색 영혼을 대기로 흩뿌리며 타들어 가지요. 삶이 그렇듯, 제가 강제로 필터를 물고 연푸른색의 영혼을 들이 마셔도, 혹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한 번 생명을 얻은 불꽃은 주어진 명이 다 할 때까지 꺼지지 않습니다. 저는... 담뱃불을 쉬이 털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니코틴과 타르에 중독되어 그럴만한 용기가 생기지 않을 따름이지요. 그냥 더 이상 태워나갈 담뱃잎이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냥 아쉬워 합니다.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시기' 속에서의 하루라는 '시간'. 그 어정쩡한 곳에 있노라면 무척이나 외로워 지지요. 저는 외로워 지면 커피를 마십니다. 그 순간의 커피는, 커피를 담고있는 커피잔은 너무나도 따듯합니다. 한 모금. 따듯한 커피가 나의 위장속으로 떨어집니다. 혀 끝에서 느껴지는 맛은 저의 마음과 같게도 쓴 맛 입니다. 그러나, 지릿하게 남아있는 그 쓴 맛이 바로 커피의 맛 아니겠습니까. 쓴 맛을 '맛있다' 라고 표현 할 수 있는 어떤 '존재' 혹은 '현상' 이 세상에는 얼마나 있을까요? 진하고 쓴 커피는 역설적이게도 더 진하고, 더 쓴 맛일수록 나의 외로움을 맛있게 느낄 수 있도록 위로해 줍니다.

   뜻하지 않게 맞이하게 된 길고 긴 침묵의 시간. 어서 지나가버려! 하고 외치고픈 힘든 시기. 그 시기의 단편에서, 내면의 지층속으로 스며들 듯이 묻혀가는 하루 끝의 아쉬움과 외로움을. 그대들은 잘 이겨내고 있으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