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1
어제:
25
전체:
305,707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6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4.11.18 21:08

얼룩 없는 얼룩말

조회 수 195 추천 수 2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얼룩 없는 얼룩말


  얼룩이 없는 얼룩말은 얼룩말 무리에 낄 수가 없다. 얼룩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말 무리에도 낄 수가 없다.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룩이 없는 얼룩말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문득 할아버지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다. 얼룩이 없지만 말도 아닌 그들은 어느 무리에 속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얼룩이 없는 얼룩말이 낄 수 있는 무리는 얼룩이 없는 얼룩말 무리밖에 없다. 그래서 얼룩이 없는 얼룩말은 혼자 지내거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얼룩말 무리와 함께 지내게 된다. 얼룩말 무리에도, 말 무리에도 끼지 못하는 불쌍한 얼룩말. 나의 할아버지는, 나의 아빠는 얼룩이 없는 얼룩말이다.


 이상하게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아주는 따스한 기운이 없던 그 날,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경찰서에 계신다는 엄마의 이야기는 내 모든 것들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내 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내 발부터, 오늘은 무슨 공부부터 해야 할 지를 고민하던 나의 생각까지, 순식간에 모두 멈춰버렸다.


 한없이 인자하시며,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무슨 일로 경찰서에는 계신 것 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냐는 나의 질문에 엄마께서는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셨다.


 얼마 전, 우리 집 앞에서 한창이던 공사. 할아버지께서는 그 공사장의 아저씨께 우리 집 앞의 하수관을 트럭으로 밟아 놓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 하셨고 공사장의 아저씨께서는 갑자기 할아버지께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셨다고 했다. ‘중국 놈이 뭘 안다고!’ 라는 아픈 말과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시던 슈퍼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의 국적을 이웃들에게 말씀을 하신 모양이었다. 70평생을 한국 땅에서 사시며 온갖 차별을 견뎌내며 오늘을 일구어내신 할아버지. 평생을 차별과 차가운 시선들 속에서 살아오신 할아버지께서는 울컥하셨고, 결국은 화를 내셨다고 했다. 그러자 공사장의 아저씨께서는 손에 있던 안전모로 할아버지의 머리를 치셨고 옥상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삼촌이 내려와 화를 내서 싸움은 커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설날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기쁘게 해주던 오향장육의 향도, 할아버지로부터 받던 세뱃돈이 들어있는 빨간 봉투도, 대추가 나오면 기뻐하던 물만두까지도, 그 날 처음으로 싫게만 느껴졌다.


 나의 할아버지께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단지 외국인등록증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아빠와 큰 아빠, 삼촌도 마찬가지이다. 할아버지께서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에 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국인이라고 불렸으며,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가끔 중국에 가서 친지들을 만나시고 조상님들을 위한 비석을 그곳에 세우셨지만, 중국에서는 그들을 한국인이라고 불렀다. 그렇다, 그들은 화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슬퍼 보이는 얼굴로 변해가는 나의 할아버지도, 귀화신청을 받아주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의 큰 아빠도,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자꾸만 피하려는 나의 아빠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살아온 터전인 한국을 ‘우리나라’ 라고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나의 삼촌까지도……. 그러나 나는 화교가 아니다. 단지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일 뿐이다.


 나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은 내가 차별 받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랐던 엄마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다. 엄마의 고집에 의해 나는 한국인인 엄마의 호적에 올려졌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 차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들은 차별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미 모든 힘을 다 써버려 더는 발버둥 칠 기운도 없는 할아버지, 잠시라도 벗어나보려 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는 큰 아빠, 체념한 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아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원망만 하는 삼촌. 각자 보이는 모습은 달라도 그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파하고 있었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에 산다는 이유로 그들은 어디에도 제대로 끼지 못했다. 그런 그들은 마치 얼룩이 없는 얼룩말처럼 보였다. 그들은 얼룩이 없는 얼룩말들이 그러하듯이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화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들은 때때로 얼룩이 없는 자신의 몸에 얼룩무늬를 그려 넣고 얼룩말 무리에 끼어 생활하고는 했지만, 비가 오면 얼룩이 지워져 다시 혼자가 되고는 했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얼룩이 없는 얼룩말 무리뿐 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며 그렇게…….


 이제 나는 얼룩말 무리의 일원으로 살아가려 한다. 얼룩이 없는 아빠 얼룩말과 얼룩이 있는 엄마 얼룩말 사이에서 태어난 얼룩무늬 옷을 입고 있는 얼룩이 없는 얼룩말인 내가 말이다. 다행히도 얼룩무늬를 그려 넣었던 그들과 달리 얼룩무늬 옷을 입은 나이기에 비가 와도 얼룩이 지워질까 걱정할 일은 없다. 아마도 내가 이 얼룩무늬 옷을 벗지 않는 한 얼룩말들은 내게 얼룩이 없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룩이 없는 우리 집의 얼룩말들은 언제나 나를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혹시 나의 옷이 벗겨지지는 않을까, 혹시나 얼룩이 없는 나의 모습을 얼룩말들에게 들켜 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나에 대한 걱정에 그들은 매일 밤 밤잠을 설친다. 혹시나 내가 얼룩이 없는 얼룩말임이 밝혀지더라도 나는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나는 내가 얼룩이 없는 얼룩말임이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나는 나의 아픈 사람들의 관절을 교정해 주는 나의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사람들을 위해 약을 조제하는 큰 아빠가 자랑스럽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람들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는 나의 아빠가 자랑스러우며, 언제나 열심히 공부하는 나의 삼촌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함부로 얼룩무늬 옷을 벗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받게 될 상처를 너무나도 많이 걱정하고 있는 우리 집의 얼룩말들이 슬퍼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나는 당당하게 나의 얼룩무늬 옷을 던져버릴 지도 모르겠다. 얼룩무늬가 없는 얼룩말이 모두와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되는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 나의 얼룩 없는 얼룩말들을 사랑한다





성명: 유성혜

이메일주소: lucy.u92@gmail.com

연락처: 010-2826-1800


  • profile
    korean 2014.11.18 21:25
    힘내세요^^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형님이 한 분 계신데.
    그 분도 10년 가까이 부산에서 사시는 조선족이랍니다.
    연세가 많은데도 노가다 일을 하시며 근검하게 사신답니다.
    얼마나 마음이 순수하고 착하신지 정말 법 없이도 사실 분이십니다.
  • ?
    루시 2014.11.19 17:37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
    모두가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편견없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조금 더 따뜻한,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될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 있는 것을 보니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가 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6 file korean 2014.07.16 2769
73 우정 여행 첫 번째. 블루레몬티 맛이 나는 겨울 바다 / 장윤희 이도의꽃 2015.01.23 459
72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외1편 file 장명희 2015.01.21 411
71 누에고치와 명주 금자 2015.01.18 331
70 치과 과민 반응 증후군 청솔 2015.01.17 171
69 술, 이제는 끊어야 할 친구 청솔 2015.01.17 152
68 어느 시인의 귀농 일기/ 중국인 친구 안방 아버지의나무 2015.01.13 473
67 할머니와 양말 file 샹그릴라 2015.01.10 392
66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잊기싫은 사람 외1편 쟁쟁 2015.01.06 314
65 무한 외1편 매미 2015.01.03 225
64 새마을 운동, 빗방울의 추억 까르보 2015.01.02 343
63 스마트폰에 빠진 남녀노소 1 컨츄리보이 2014.12.27 280
62 고마운 아내 1 컨츄리보이 2014.12.27 193
61 2009년 이후밖에 못 간다니! 1 Mysteriouser 2014.12.26 73
60 그땐 세계 테마기행이 더 재밌었다. 1 Mysteriouser 2014.12.26 205
59 제목 아시는분? 1 Mysteriouser 2014.12.26 123
58 터키 이스탄불 친구와 떠나다 외1 1 소요산방 2014.12.23 368
57 괜찮아, 모두 잘 될 거야 1 비상 2014.12.17 330
56 ▬▬▬▬▬ <창작콘테스트> 제2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3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4.12.11 69
55 일상과 함께 하는 승강기 외 1편 민녹두 2014.12.10 182
54 홀로서기 외 1편 불가마 2014.12.10 128
Board Pagination Prev 1 ... 31 32 33 34 35 36 37 38 39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