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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미줄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 아닌 할머니의 손길이었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에 나는 할머니 꽁무니를 쫓아다녔고, 30년이 넘은 낡은 맨션에서 7년 가까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유치원이 끝나면 옥상에 올라가 뱃고동을 뱀 꼬리처럼 길게 늘어뜨리는 부둣가의 배들과 바다를 적시고 있는 석양을 보는 것이 나의 유일한 오락이자 취미생활이었고.

 

아이고, 아침에 거미를 보면 재수가 없다 켔는데.”

 

유치원을 나서기 전 가끔 문지방에 나타나는 거미를, 할머니는 늘 그렇듯 혼잣말을 하며 죽이곤 했다. 그렇게 죽여도 거미는 어디선가 계속 나타나 끊임없이 거미줄을 쳤다. 항상, 너무나 당연하게 곁에 있는 것이어서 내게 거미줄은 영화나 책에서 묘사하는 것만큼 음산하거나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낡고 오래된, 그렇지만 아늑한 할머니의 집에 언제나 그렇게 존재하는 것.

 

할미 소원은 뭐꼬?”

내는 미국 한 번 가보고 싶다. 비행기도 한 번 타보고.”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머리를 한 올 한 올 땋아주며 대답했다. 소원이라는 게 생각보다 시시해서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진 나는 가만히 안방 천장의 거미줄을 응시했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거미줄은 정확한 모양을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어린 마음에 꽃모양이나, 별모양으로 더 예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거미는 살기 위해 줄을 친다. 알을 낳아 두거나, 먹이를 잡으러. 모양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쁘게 그물을 짜는 가여운 존재. 문득 거미줄은 거미 인생의 궤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의 인생은 어땠을까. 우리 할머니가 거미줄을 만든다면 무슨 모양일까.

 

초등학교 입학을 거쳐, 반항심만 가득한 중학생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도 별 탈 없이 졸업했다. 정신 차리고 공부한 덕에 대학을 무사히 입학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다. 그 사이 방 구석구석 거미줄이 가득했던 낡은 맨션은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할머니는 고모네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있고 지하주차장이 있는 깨끗한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그렇게 할머니는 그 집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사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은 그렇게 많이 울지 않았다. 급하게 휴가를 내고 내려가면서도 핸드폰으로 잔업을 처리했다. 병상에 누운 지 오래 되셔서 이번 달은 넘기실까, 하고 살아왔던 게 한참 되어서일까. 생각보다 멀쩡한 상태로 3일 장을 치르고 할아버지 곁에 할머니를 뉘였다. 차가운 흙을 다지고 밟아주니 그제야 심장이 서늘한 게 진짜 가셨구나 싶어 목 놓아 엉엉, 하고 거미줄 가득한 맨션에 살던 어린 나처럼 울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회사로 복귀했다. 상무님과 팀원들이 챙겨준 부조금을 받아 들었을 때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가슴이 꽉 막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그런 모습은 언프로페셔널하니까.

 

 

감만동에 한 번 가볼까?”

 

간만에 본가에 내려가 늘어져 쉬고 있는 내 옆구리를 엄마가 쿡 찔렀다. 할머니 집이 이사를 하고 나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던 게 이십년이 넘게 흘러 내 나이 29. 불현 듯 더 이상 미루는 건 할머니에 대한 불효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섰다. 지독히도 좁은 골목 몇 개를 지나 놀라울 만큼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그리움이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저기 옥상 보이나. 저기서 맨날 부둣가 보고 놀았다.”

 

5층 남짓한 낮은 맨션 옥상을 쳐다보며 흘리듯이 말했지만, 엄마는 대꾸가 없었다. 나는 저 옥상에서 부둣가만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오래되어 심하게 삐걱거리는 시소가 있는 놀이터, 하교를 하는 사촌언니의 단발머리, 점빵에서 찬거리를 사서 돌아오는 할머니의 굽은 등도 보았다. 물감이 번지듯 선명한 색상으로 기억의 세포가 살아나고, 미국 한번 가보고 싶다, 하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제사 아주 예쁜 모양으로 내 마음에 끈끈하고도 촘촘한 거미줄을 치고 있다.

 

 


2. 서울 언니

 

나는 20살 때 처음으로 언니를 만났다. 언니가 21살 때다. 나는 부산에서, 언니는 대전에서 상경한 여대생들이었다. 언니는 나보다 한 학번 어린 나를 아가 다루듯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보살의 현신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언니는 한 살 어리다는 동생이란 이유만으로 아낌없이 퍼주었다. 그러다 우리는 하우스 메이트를 하게 되었고, 타지 생활을 하는 우리는 매일은 아니라도 심심하면 서로의 방으로 건너가 수다를 떨고는 했다.

 

내가 첫 인턴 원서를 쓰던 날도 언니는 기억했다. 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일인데 내가 쓸까말까 고민을 엄청 했다고 한다. 조급증이 있어 자주 안절부절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내가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털어놓아도 언니는 너는 항상 잘할거라 했다.

 

나는 참 나이에 맞지 않게 무거운 인간이었다. 좀 오버스럽게 내면이 어둡기도 했다. 그러다가 유독 모든 것에 대해서 물음표가 달리는 가슴 먹먹한 날이 있었다. 그것에 대한 솔루션은 어떠한 족보사이트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물론 당연히 내가 풀 수도 없다. 그것은 내 능력 밖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예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 와 있지 조차 않은 것들. 그런데 언니는 기가 막히게도 그 물음표를 계란 노른자 풀듯이 아주 부드럽게 풀어줬다. 언니가 딱히 기똥찬 답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의 맘을 녹일 뿐이었다.

 

한 번은 갑자기 밀려오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고독감에 방에 틀어박혀 울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나는 이리 새털 같은 일로도 새까맣게 고독할까. 왜 나는 나 스스로 가슴을 까맣게 까맣게 태우는걸까. 인생을 가볍게 살아요, 좀 가볍게. 누가 나에게 했던 말인데 가볍게란 말은 참 나하고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쓸데없이 무거운 인간이란 것에 자책하며 언니, 왜 모든 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요, 라고 푸념했다. 언니는 세상이 마음대로 되면 이미 멸망 했을거란다. 그 말이 참 맞다. 이렇게 언니의 포근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나를 도닥여 주었다. 나는 걱정을 업고 사는 인간이었다. 업기도 하고, 들기도 하고, 내 안에 가득 껴안고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일이란 게 한 해 한 해 살아오면서 너무도 자명하게 밝혀졌는데 나는 여전히 그 시꺼멓고 무거운 덩어리를 안고 사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의 그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러나 따뜻한 말이 내 까만 무거움을 같이 안아주는 것 같았다.

 

언니가 취업을 먼저 하고, 나도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바빴던 시기를 지나 우리는 따로 살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언니는 나를 살뜰히 챙겼고, 내가 언니 앞에서 징징대는 못된 버릇을 못 버려 '언니' 라고만 연락해도 내게 무슨 일이 있구나 하고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나는 31살이 되었고 언니는 32살이 되었다. 나는 오년 다닌 회사를 그만 두었고, 새 출발을 축하한다는 빌미로 언니를 졸라 이태원 나들이를 했다. 언니는 여전히 나를 푸지게 먹였고, 횡설수설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나에게 또다시 귀를 기울여주었다.

 

내 몸이 너무 뜨거운데 팔짱껴도 괜찮지? 라는 언니에게 달라붙어 녹사평 근처 오르막길을 헥헥대며 올랐다. 너는 여전히 걱정이 하나도 안 돼, 라는 언니의 매크로같은 말에 이상하게 더위에 지친 피로가 다 가시는 기분이었다.






작성자: 소녀

메일주소: kissdap@naver.com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20.04.08 04:58
    거미줄 개미집 구룡성채 만리장성 피라미드 코엑스 수족관
  • profile
    korean 2020.05.03 17:03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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