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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결혼식.


 

우리 형의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92. 결혼식은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열린다고 했다. 결혼식이 다가오자 부모님은 더욱 분주해지셨다. 아버지는 미리 준비한 혼수품을 찾아오셨고 어머니는 초대한 지인들에게 확인 전화를 돌리셨다. 나는 조용히 등굣길에 올랐다. 날마다 걷던 등굣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내뱉었다. ‘형을 더 못 보겠네.’ 형은 내가 어릴 때 자취를 시작하였다. 형과 나는 열 살 차이가 났고 그렇기에 사는 세상이 달랐다. 형을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쉬웠지만 형의 행복을 위해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예정 되로 결혼식은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열렸다. 교회로 올라가는 길에는 나무가 많았다. 그 나무들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세 살 어린 동생과 교회 입구에 서 있었다. 하객을 맞이하는 일을 돕게 된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축의금 상자를 지키는 것이었다. 축의금 상자는 생각보다 크고 단단했다. 결혼식은 열 한시였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었다.

 

교회의 본관에서는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형의 지인들과 신부의 지인들은 결혼식장에 일찍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있는 본관 밖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다. 바람을 타고 문 안쪽으로 들어오는 낙엽뿐이었다. 갑자기 댕 댕소리가 났다. 교회의 지붕에 있는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교회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빨간 글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신랑 장남 김성민 신부 차녀 하연수...’ 장남 이란 글씨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장남 김성민’...

 

장남인 우리 형은 사실 둘째다. 형 위로는 다섯 살 많은 누나가 있었다. 김지은. 그 이름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와 동생은 막둥이어서 누나와 보낸 시간이 적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담긴 누나의 얼굴은 선명했다. 누나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가수에게 정성이 담긴 편지와 선물을 보냈고, 답장을 받았다.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끈기가 있었고, 재수를 해 목표했던 대학교에 들어갔다. 누나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즉각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밴드활동을 했다. 구슬비. 단조로운 멜로디에 잔잔한 가사였지만 그 당시 대학가에서 나름의 음악성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누나는 밴드활동을 그리 길게 하지는 못했다. 그 무렵 아버지의 모자 공장이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할머니가 사시는 홍성군으로 내려가 살게 되었고, 누나는 홀로 서울에 남겨졌다. 누나는 스무 살 겨울부터 스스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 나가야 했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고 누나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 아는 사람이 없는 이국땅으로 갔다. 여행을 다녀와서 결심을 했는지 곧바로 취업준비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도에 있는 한 전산회사에 취업했다고 한다. 누나는 한 번도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여행도 오로지 자신의 돈으로 갔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 누나의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지은이가 혼자 여행을 가겠다는데 걱정이다.’ ‘지은이 취업준비 내가 조금이라도 도와줘야 하는데...’ 하지만 어머니는 하루 종일 식당 일을 하셨고 누나를 도와줄 물리적인 시간이 없으셨다. 누나 소식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얼마 전 마지막으로 듣게 되었다.

 

회사의 연례행사로 가게 된 산에서 누나는 절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언덕길에는 모래가 얼어 있었고 절벽 아래는 모난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누나는 안타깝게도 심장은 뛰었지만 머리가 살아있지 않았다. 누나는 응급실에서 전문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되었다. 뇌수술을 잘한다는 의료진을 어렵사리 만났지만 돌아 온 답변은 참혹했다. ‘수술이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 성공해도 평생 식물인간으로 사셔야 됩니다.’ 잔인한 말이었다. 적어도 초등학생의 내가 들었던 말들 중에 가장 잔인했다. 얼마 뒤 하나뿐인 나의 누나는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할아버지 산소 옆에 묻히게 되었다. 나는 매번 가던 할아버지의 산소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처음으로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누나와 같이 보낸 시간은 적었지만 가슴속의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진 듯했다. 사진으로 만난 우리 누나는 여전히 이름도 얼굴도 아름다웠다.

 

이제는 나로서 어쩔 수 없는 말들이 전광판에서 나오고 있었다. 장남 김성민. ‘사실 우리 형은 둘째에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에게는 형만큼 멋있는 누나도 있었어요. 사실 누나가 장녀에요... 장남 김성민은 그 뒤로 내게 슬픔을 가져다주는 단어가 되었다. 틀렸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열일곱 살의 나는 아직 장남 김성민을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결혼식장 한 구석에서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형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셨다. 어머니는 형의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희미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오셨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에서 눈물이 글썽이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없는 구석으로 가셨고, 혼자서 눈물을 훔치셨다. 어머니도 나처럼 누나 생각이 나셨나보다.

 

형의 결혼식이 끝나갔다. 예쁜 웨딩케이크가 나왔고 형과 신부가 나란히 칼을 잡고 케이크를 잘랐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박수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도 자리에 계셨고, 나와 동생을 포함한 모두가 환호를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형과 신부는 준비된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형은 신부의 볼에 뽀뽀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었다. 새로운 가정의 탄생은 주변의 박수소리와 잘 살아라’ ‘행복해라라는 덕담에 힘입어 더욱 밝은 빛을 뿜었다. 그 광경은 무척 따듯했고 그 온기가 나의 가슴속으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낙엽에 쌓인 풀꽃을 보았다. 풀꽃은 낙엽에 눌리지 않고 힘차게 솟아있었다. 초록색 줄기에 보라색의 동그란 꽃잎을 가진 풀꽃이었다. ‘가을에도 꽃이 피는 구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보라색 꽃은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이제 막 피운 봉우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꽃을 보면서 느껴졌다. 생명이 지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는 것을. 우리 누나의 뒷모습과 형의 웃는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가을바람이 불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꽃 덕분인지 전혀 서늘하지 않았다. 누나를 잊어버리진 않을 거지만 나는 계속 나의 삶을 살아가야겠구나 생각했다.


* 필명 : 어린패랭이꽃

* 이메일 : terryahn971@naver.com

* 전화번호 : 010-3562-2327

  • profile
    korean 2019.12.31 18:50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