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차 공모전]수필-이별

by wlgus posted Dec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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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세상에는 수많은 이별이 있다. 가족과의 이별일 수도 있고, 친구 혹은 연인일 수도 있으며 반려견과의 이별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지금가지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대상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비가 내린 후 우리 동네 아파트 근처에는 유난히 달팽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지상과 지하가 이어져있는 통로가 있었는데 그 통로의 벽을 자세히 보면 다양한 크기의 달팽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가끔씩 달팽이들을 잡아도 보고 느리게 기어간 진득한 흔적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라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달팽이를 잡아다가 다시 풀숲에 놓아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가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상추와 당근 등 여러 채소가 담긴 플라스틱 통 안에 담겨져 있었다. 엄마가 길을 가다 만난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나는 초록색 채소를 먹으면 초록색 똥을 싸고 당근을 먹으면 주황색 똥을 싸는 달팽이가 신기했다. 그리고 야금야금 동그란 무늬로 채소를 먹은 흔적이 귀여워 계속 쳐다보기도 하고 통 안이 이미 촉촉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물뿌리개로 물을 자주 뿌려주기도 했다. 물이 닿을 때면 머리에 달린 길쭉한 두 개의 더듬이가 움찔움찔하며 작아지는 것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달팽이에게 정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동생과 함께 달팽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면서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처럼 관심을 쏟아 주었다. 가끔 통에서 빠져나오면 주위에서 찾아다가 다시 집으로 넣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달팽이가 눌린 채로 죽어버린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을 이러했다. 새벽에 잠이 깬 아빠가 물을 마시기 위해 어둠 속을 걷다가 간밤에 통에서 나와 버린 달팽이를 모르고 발로 밟아버린 것이었다. 그 전의 형태를 잃어버린 채 눌려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달팽이를 보는 것이 너무 슬펐다. 더욱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를 봤으니....... 난 정신도 다 차리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내 동생은 아빠에게 왜 밟았냐고 막 졸라대며 물었다. 그 날 함께했던 달팽이를 떠나보낸 이별을 겪고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기억이 난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이별은 달팽이 사건 이후 몇 년이 흐른 뒤 남자친구와의 이별이다. 나는 남자친구와 900일을 넘게 사귀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우리는 학교는 달랐지만 서로 교복을 입고 데이트도 했으며 다양한 곳에 방문하며 자주 놀러갔다. 이월드나 영화관뿐만 아니라 당일치기로 부산도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고3이 찾아오면서 우리는 서서히 서로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대입의 스트레스도 한 몫을 했지만 서로 잘 보지도 못하고 싸움이 일어나도 잘 풀 수 없어서 우리 둘의 사이에 있던 간극이 점점 커져버린 것이었다. 더구나 이제 입학할 대학교마저 멀리 떨어져있어 많이 봐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볼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잘 지내보려 했지만 상황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고 남자친구와 마지막으로 본 날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화해를 다 하지 못한 채 남자친구는 학교를 가기 위한 기차를 타러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태로 또 멀어지는 것이 너무 싫었고 슬펐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은 나의 의지와는 달리 눈치 없이 눈물은 계속 흐르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별다른 위로나 화해를 건내는 말없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남자친구는 인천으로 올라갔고 나는 힘이 다 빠진 채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 그 후로 나는 시험기간과 여러 가지 제약으로 약 두 달간 남자친구를 볼 수 없었고 우리는 기나긴 만남의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정과는 다른 정을 나누고 오랜 시간 함께 의지하며 보낸 시간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이별이라는 상황이 잘 믿기지 않았고 슬펐다.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오래 만나본 적도 처음이고 서로 기념일을 챙기거나 손 편지를 이렇게 많이 써 본적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별 뒤에도 휴대폰이 속 같이 찍은 사진이나 방 안 곳곳에 선물로 받은 흔적은 나로 하여금 그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노래방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를 의도치 않게 들을 때에도 슬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의 삶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 덧 이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때는 정말 좋아했던 사람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 없어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나를 보며 놀랄 때도 있었다. 이제는 함께 놀러갔던 장소를 가거나 노래방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불러도 슬픔이 먼저 생각나기보다 나의 학창시절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십대에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에 후회가 남지 않았다.

  만남이 있기에 이별이 있고 또 이별이 있기에 새로운 만남 또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을 두려워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훗날 젊었던 나의 행동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와 함께하는 사람, 나의 옆에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달팽이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었던 것, 그리고 전 남지친구를 좋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정을 아낌없이 주고 나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을 주고 싶다.

  6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만날 확률은 매우 적다. 우리는 그 적은 확률을 뚫고 만나 정을 나누고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로 만난 이 관계를 소홀히 여기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날의 이별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별을 맞이하게 될 두려움을 걱정하기보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후회남지 않은 행동임을, 그리고 현재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소중함을 알기에 나 역시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특히 항상 옆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쉽게 잊는 가족에게 더 잘하는 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허지현/wlgus105234@naver.com/01066533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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