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차 공모전]수필 부문-비가 알려준 세상

by wlgus posted Dec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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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알려준 세상


  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학교에서 축제 준비를 끝내고 집으로 가려던 찰나 우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보슬보슬 흩날리며 내리기보다 추적추적 나의 온 몸을 다 적셔버릴 것처럼 내리는 비에 교문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멈칫멈칫하며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아 대충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쯤 걸었을까 옷의 색깔은 점점 짙어져가고 머리카락은 물과 함께 얼굴에 붙어있을 무렵 반대편에서 우산을 쓰고 걸어오던 두 명의 남자 분을 발견했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막아줄 우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을 마음 가득 안은 채 앞으로 걸어가던 중 두 분은 우산을 씌워 주겠다며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이런 친절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더 이상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뻐 함께 쓰고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집 앞까지 데려다주어 남은 길은 비를 맞지 않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잠시 나눴던 짧은 대화는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경찰의 꿈을 가지고 공부하는 중인데 지금부터 본보기를 보여야하지 않겠어요?”

어린 나이었지만 웃으며 이 말을 전하는 그 두 명의 사람으로부터 저는 경찰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지나칠 수도 있는 나를 도와줬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아직 세상이 그런대로 살만한 곳임을 알게 해주는 인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저는 대학교 1학년생이 되었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한창 태풍이 요란을 피울 때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밖은 이미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계단은 빗물로 인해 걸을 때마다 찰박찰박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하필이면 설마 비가 내릴까 하는 마음으로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날, 비가 내린 것이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버스를 타고 내렸을 땐 그 전보다 더 많이 내리는 비를 원망하며 터벅터벅 빗물이 가득한 보도블록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몇 발자국을 남기며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같이 버스에서 내려 앞서 가던 한 아주머니께서 힐긋 뒤를 돌아보시더니 멈춰 서서 함께 우산을 쓸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뒤에서 멀뚱히 서있는 저를 보며 얼른 안으로 들어오라는 눈짓에 저는 조심스레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며 우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분과 좁은 우산 아래에 나란히 붙어있는 것이 어색하여 최대한 멀리 떨어져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행동을 아신 아주머니께서는

왜 그렇게 떨어져서 걸어요. 비 다 맞겠다. 이리로 붙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걸어가는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우리는 어색한 침묵을 뚫고 어디에 사는지, 고향은 어디였는지 등의 몇몇 대화를 나누다가 같은 아파트에 같은 동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다며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같은 동이었지만 다른 건물이었기에 그날 이후 그 분을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그때 나눈 따뜻한 정은 아직 저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중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5년의 시간 속에는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으며 사회 여러 방면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사가 떠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관계 속에서 불신과 배신을 경험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으로 신뢰를 져버리는 등 긍정적으로 기억될 만한 사건보다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았다고 믿으며 비관적인 생각이 뇌리에 더욱 박혀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기적이고 각박한 인심에 치이고 상처받으며 세상의 불평등을 탓하던 시간들도 분명 존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며칠 전 겪은 사건을 통해 5년 전에 겪은 일을 환기하면서 그때도 지금도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인정은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에 대해서는 잊고 살았던 저의 지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 우산을 씌워준,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도와줄 수 있는 경찰을 꿈꾸던 두 사람 역시 떠올랐습니다. 경찰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이로운 방향으로 사회를 이끄는 삶을 살고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은 없지만 분명 타인을 도와주는 마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선을 행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의도치 않게 만난 비와 그로 인해 생겨난 우산 아래의 작은 공간은 누구든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를 맞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 역시 누구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나 하나도 살기 벅찬 세상이 아니라 벅차지만 함께 나아가는 세상은 하루아침에 소수의 사람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걸음씩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는 이타심이 발휘되었을 때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습니다. 비록 한쪽 어깨가 젖고 물웅덩이를 피하기 불편할지라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뿌듯함은 하루의 끝에 소소한 행복으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그랬듯이 도움을 주고받았던 일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마음을 진하게 울리는 경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 나도 그분이 없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었지’, ‘그때 도와드린 건 참 잘한 것 같아.’하는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로 인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인정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면 아직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여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에게도 이 정을 나누어 주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 초등 교사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교실 속에서 들을 수 있다면 이는 들리는 이야기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교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해지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제게 알려준 세상은 따뜻한 인정이 돋아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바로 제가 초등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세상입니다.


허지현/wlgus105234@naver.com/01066533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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