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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02:03

후천적 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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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적 집

권보경

 

   내게 이사란 집 터의 이동보다는 가정의 변화다. 셋방 집, 큰 외삼촌 네 집, 어떤 아줌마네 집, 작은 외삼촌 네 집, 이모네 집. 처음만큼 끝이 좋았던 집은 없었다. 의 상하는 꼴만 눈에 보여 엄마는 보육원 집 앞에서 생각이 서성였다고 한다. 그 곳에서 등 돌릴 적마다 이 악문 노력이 있었겠지만 엄마는 터전이 없는 분이었고, 사람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게 세상일이라 집시의 딸은 아무래도 누구네 집에 덤처럼 덧붙어있을 따름이었다-암울하지 않은 이유는 애는 적응이 빠른 덕이다-. 입이 짧고 숟가락 놀리는 속도가 느려 먹성 좋은 이종 사촌들 틈에서 나날이 말라가던 나를 어느 날 외할머니가 습격적으로 데려가셨다-왜 습격적이냐 하는 것은 윗분들의 어른다운 사정이니 생략한다-. 할아버지를 보낸 뒤 홀로 살던 할머니네 집은 처음으로 내 집이었다.

   할머니는 젊었다. 그리고 친척 중에 제일로 여자였다. 학부모 참관일 같은 날에는 어떤 젊은 엄마들보다 성장(盛粧)을 하고 와서 가슴에 꽂은 코사쥬처럼 활짝 피었다. 누가 보경이 어머니세요, 하고 물은 것을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머리카락과 옷이 언제나 향기로웠다. 외모의 젊음에 그만치 노력하고 자랑스러워 뽐내는데 비해 내면이나 지적인 것에는 그닥이었다. 나이보다는 살아 온 타성 때문에 그런 욕구는 ‘9시 아침 햇살생활 정보나 유행하는 발라드를 벨소리로 정해두는 것 이상으로 뻗지 않았다. 그 정도로도 소녀 감성이었다. 박하사탕은 손녀에게 쥐어주기 위해서보다 자신의 입가심으로 쓰기 위해 가방에 챙겨두었다. 경한 결벽증에 가깝게 깔끔해 넓은 집을 쓸고 닦고 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다. 좋지 못한 건강을 깜박할만큼 정정도 아니고 쩡쩡하게 기운이 좋았다. 좀은 사나운 기운이었다. 털 달린 짐승을 질색한다면서도 맡았던 고양이와 강아지가 떠날 때면 아닌 척 아쉬워하고, 시들시들한 풀떼기를 얻어다 되살려 집안을 채웠다. 매년 매 절기 믿지 않는 부처를 찾아뵈러 가면서 나를 교회에 보냈다. 아파트와 도시의 모든 세속적인, 현대적인 것들을 최고로 두면서 허리에 디스크가 오기 전까지 매일 새벽 산을 찾아갔다. 부지런히 사람을 사귀고 어울리면서 뒷말하기를 좋아했다. 요리를 참 잘했다. 소금 맛을 보지 못하기 전까지.

   이웃이고 행인이고 간에 시비가 붙으면 끝까지 달겨들었다. 적을 만드는데 두려움이 없어보였다. 그러면서 또 남우세스러븐 건 싫다 했다. 애미애비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 버릇없다는 소리 듣지 말라며 남에게 예절 지키라고 늘 일렀다. 누구도 그런 시비를 걸지 않았다. ‘남 말이란 엄마의 인생이 실패했다는 할머니의 자격지심일 것이었다.

   나는 도벽이 있었다. 대상은 오로지 할머니의 지갑이었다. 남의 것, 파는 것에는 염도 없다가도 틈만 나면 할머니 돈을 훔쳤다. 돈을 달리 쓴 것도 아니요, 군것질거리나 장난감 따위를 찝쩍거리다 다시 빼앗기고 했다. 돈이 크게 비어서 난리가 나면 친척이며 엄마까지 날 의심했는데 할머니는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기 전까진 난 아니라고 믿었다. 이유도 없이 그저 애는 아니라고. 매번. 돈 훔쳤다고 때리지도 않고 왜 훔쳤느냐 따지지도 않았다. 친척들 앞에서 명절마다 무안을 주면서도 제대로 뜯어 고치려고는 안 했다. 할머니의 훈육은 대부분 그랬다. 비슷한 종류의 것들이 중요했다 안 중요했다 했고, 고치려는 건지 마는 건지 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새지 않았으면 싶어 보였다. 그리고 그걸로 만족되는 것 같았다.

   몇 번,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쩔 땐 웃다가 어쩔 땐 눈을 가늘게 떴다. 할머니는 할머니였기 때문에 나를 맡았다가 언젠가부터 내가 손녀라는 걸 조금씩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무어라고 부르건 딸의 딸에게 그녀는 엄마도 아빠도 아니었다. 그런 행세를 하려고도 안 했다. 사촌들은 다들 괄괄한 할머니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 없이 혼자 보낸 첫 밤의 캄캄함을 안다.

   사춘기의 나는 우리 집을 정의하지 못했다. 이미 있는 말은 어떤 것도 맞지 않아 보였다. 할머니는 집 안의 사람이었다. 집 안이라는 거리는 할머니와 내가 싸우거나 서로를 싫어해도 늘 같았다. 어찌됐건 든든했다. 할머니랑 따로 사는 지금 밖에서는 존대 안에서는 반말을 쓴다. 할머니는 더 이상 내 가정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처음은 잊지 못하는 법이다. 태어난 나를 처음 안아 준 당신의 품은 내 생에 첫 집이었다




 






개와 가족이 된다는 것

권보경

 

   우리 집엔 개가 두 마리 있다. 하얀 소시지 같은 애가 8살인 몽돌이고, 헝겊 좀 비슷하게 생긴 아기 시츄가 봄이다. 엄마는 게네를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돌본다. 한 마리도 정신없는데 두 마리나 기르다니 개를 정말 좋아하겠구나 싶을 수 있겠다. 절대 아니다. 나는 물론 엄마도 개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다만 만남이 취향에 맞춰 찾아오지는 않을 뿐.

   엄마는 귀가하고 있었고 개는 빌라 앞을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생명을 책임지기에는 모자란 사람들이 많아 유기견이야 심심찮게 주변에서 봐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 눈에 밟히는 존재란 한겨울의 전기 장판같은 행복한 감옥이다. 옷이라면 그냥 살텐데, 인형이라면 그냥 집을텐데. 개는 도망도 안 가고 엄마는 빌라 앞을 맴돌았단다. 흔해빠진 연애보다야 운명적인 사랑의 시작이었다. 주워 온 개는 희고 긴 털이 몽실몽실한 암컷 페키니즈였다. 이름을 몽실이라고 지었다. 엄마 너무 유치하잖아, 하니까 생긴데로 이름을 지어야겠단다. 사람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를 지능의 척도로 보곤 하지만 어떤 개는 사람 말을 잘 알아듣고도 그걸 그냥 똥같이 생각하고 씹는다. 몽실이는 그런 류의 도도한 개였다. 허나 목줄을 놓아도 사람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전의 상처가 잊지 못할 가르침이 되었을 것이다. 어렸던 나는 안쓰럽기보다 신기해서 산책 나갈 때마다 목줄을 놓고 놀이터를 빙빙돌았다. 엄마는 몽실이를 좋아하면서 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몽실이가 차에 치어 죽었다. 아저씨가 많이 울었다고 한다. 차 주인에게 십만 원을 받았지만 아무데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십만 원에 십만 원을 보태 같은 종의 강아지를 데려오는 일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게 몽돌이다.

   모든 아기들은 어미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생명을 보호하고 앞으로 무리에 섞여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요한 시기다. 어떤 이유든 어미를 잃은 짐승은 대부분 죽게 된다. 인간과 개만은 예외다. 사람이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데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개들의 경우는 더 단순하다. 누군가가 살피고 어루고 만지는 그 때가 생명이 가장 귀여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여운 개는 돈이 된다. 몽돌이도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운이 좋은 편이었던 몽돌이는 사랑받았다. 몽돌이가 주는 것 이상의 애정을 주는 건 불가능했지만 필요한 지출에 있어서 엄마는 아까워하지 않았다. 돈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몽돌이에게 디스크가 생겼을 때 치료비는 백만 원이 넘었다. 누군가는 그걸 같은 종의 더 귀엽고 어린 새끼를 몇 마리나 데려올 수 있는 돈이라고 계산한다. 그런 계산법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건, 정말로 돈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이가 응급실에 갔을 때 그의 어머니가 놀라고 슬퍼하는 이유가 수술비 때문이 아닌 것과 같이, 엄마는 몽돌이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도 몽돌이는 우울증에 걸렸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 가고 엄마가 일을 하는 동안 몽돌이는 가족을 기다리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만큼 가슴 애리는 일이 있을까 묻는 시를 안다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다면 매일 10시간 씩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막막하게 어린 개의 가슴을 짓눌렀는지 이해 할거다. 몽돌이는 기다리느라 병이 났다.

몽돌이가 혼자 외롭게 지내지 말라고 봄이를 데려왔다. 몽돌이는 곧 스트레스성 장염에 걸렸다. 지나치게 어린 개가 사람 손을 타면 지가 사람인 줄 안다. 몽돌이도 그랬다.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좋아 어쩔 줄을 모르면서 개한테는 관심도 없었다. 사람과 잘 어울리지만 사회성이 부족했다. 게다가 집은 좁았다. 몽돌이가 적응할 동안만이라도 둘을 떨어뜨려놓았다면 좋았을텐데 엄마는 온순한 몽돌이가 봄이를 잘 돌볼거라고 생각하고 두 개의 영역을 구분해놓지 않았다. 느닷없이 밥그릇과 이불을 빼앗긴다면 당연히 분통이 터질 것이다. 몽돌이의 장염이 나은 뒤 봄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데려온 가족을 내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약이 되어 주었다. 봄이가 몽돌이의 귀로 이갈이를 해댈 때 빼고는 둘은 나름 잘 지낸다. 엄마를 기다리는 엎드린 모습이 둘로 늘어버린 게 아이러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후회스럽다. 공부가 부족했었다. 병아리부터 햄스터, 관상용 물고기, 거북이까지 내 손으로 끝장 내 버린 동물들의 최후가 그 때는 퍼뜩 생각나지 않았다. 원래 몽돌이는 '엄마의 개'였다. 내가 엄마와 살면서부터 '우리집 개'가 됐다. 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와 가족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몰랐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 생각이 없는 가족과 산다는 건 개에게도 심란한 일일 것이다. 그 가족이 선인장조차 말려 죽일만큼 자연과 소통이 안되는 사람이라면 살아 숨쉬는 재앙으로 보일 지 모른다.

   마당 딸린 큰 집에 살아야만 개를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동물을 좋아한다면, 최소한 나보다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일은 책임이 따른다. 장난감은 질리면 버리면 된다. 책이 보기 싫어지면 내다 팔면 된다. 개는 아니다. 한번 집에 들인 순간부터는 죽을 때 까지 내 가족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개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귀여움을 좋아해주면 개는 나를 사랑한다. 그 감정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건 보호소의 철창에 갇혀 죽어가는 개들의 수가 증명한다. 가족 모두가 그 개를 사랑하고 그 중 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주 집에서 놀아주는 건 말만 쉬운 일이다. 사룟값만 생각하고 쉽게 분양받은 개가 온갖 접종에 맞고도 병이 생겨서 지갑이 얇아지다보면 그때서야 자신이 개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바쁘다.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다.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봐야 할 친구는 또 얼마나 많나. 그러고도 남은 시간에 뒹굴거린다고 해도 재밌는 건 많다. 개에게는 나밖에 없다. 개와 산다는 건 사람에게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준다. 분명 긍정적인 방향의 다름이다. 딱 그만큼 많은 걸 포기할 수 없다면 개를 키우지 않았으면 한다.


    



권보경

g_cat36@duam.net

010 2211 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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