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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0 23:23

잔상! - 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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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상

 

지 수 현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온 몸을 감싸며 피부에 와 닿는다. 이제 제법 선선한 공기를 실어 나르는 느낌이다. 이른 가을의 에메랄드 색을 닮은 상쾌한 공기는 늘 살아 있음에 대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모처럼 혼자 집에 우두커니 있다. 나는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마흔 셋. 도둑맞은 시간. 베란다에 방치된 화분의 화초들은 다 말라 비틀어져 있다. 집 안에 살아있는 생명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다. 그 흔한 어항 하나 없고 애완동물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았다. 키우지 못할 것을 당연히 아니까. 참 을씨년스럽다. 이렇게 살아왔다는 사실 조차 느끼지 못한 채 정신없이 살아왔다.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다.

 

 

  나는 청소기를 꺼내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흡입했다. 천천히. 새삼 안방구석에 나뭇결 장판이 일어난 것도 보인다. 화장대 옆 손때도 발견되었다. 하나하나.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 구석구석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이 놓치고 가는 많은 것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가 보다. 아마 내가 바쁜 일상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걸레를 들고 먼지와 전쟁을 했지 않았을까. 이 많은 먼지들과 헛된 일들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어린 시절, 잦은 기침과 호흡기 질환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레질을 하고 예민하게 소독을 하곤 했었다.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그 옆에서 머리카락 한 올 먼지 한 톨 다 세고 있을 지경이었다. 세균과의 전쟁이었다. 이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 시절 내가 소독하고 씻고 닦고 해서가 아니라 서서히 면역이 생기면서 세상에 익숙해지고 야물어져 있었다.

 

 

  오래된 검정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 걸레로 닦아 내렸다. 음이 내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내 나이보다 오래된 피아노. 처음 피아노를 치던 열 살 무렵, 고모가 치던 이 피아노가 우리 집에 배달되어 왔다. 얼마나 좋았던지. 두근거려 밤새 한 잠도 못자고 들락거렸다. 누가 훔쳐갈까 조바심이 나서였다. 이 피아노 앞에서 바이엘을 치고 체르니를 치고 명곡들을 배웠다. 그래서 결혼 후 몇 번의 이사에도 악착같이 데리고 다녔다. 그 많은 운반비와 조율 비용에 남편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뚜껑만 열린 채 하루 종일 소리 나는 일이 별로 없을 지경이다. 아이들이 가끔 휴일이면 몇 곡 치는 것이 전부다. 나는 모처럼 피아노 앞에 앉았다. 생각나는 곡을 짚어보았다. 몇 마디 다 못치고 손이 헛돌았다. 세상은 역시 공짜가 없다. 정성과 노력을 게을리 하면 늘 사람이나 물건이나 멀어지게 마련이다.

 

 

  거실 서재 한 쪽에 꽂힌 아버지의 책들. 나는 천천히 먼지를 털어냈다. 남편이 허용한 아버지의 유품. 너무 오래되어 가끔 햇볕에 쬐어야 하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전집류 백 여 권을 꺼냈다. 그리고 베란다에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책 냄새. 펼치면서 계속 소독 액을 뿌렸다. 햇살이 눈부셔 책 말리기 좋은 날씨다. 나는 그 옆에서 천천히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보바리 부인, 이범선, 박경리 단편선, 천일야화, 한국사, 흑인문학전집........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갑자기. 이 책들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 모습. 혼자 ‘닥터 지바고’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반대쪽 거실 책꽂이에는 남편과 내 책들이 꽂혀있다. 오래 전 누군가 그랬다. 부부가 결혼을 할 때는 책도 합방을 하는 것이라고. 각자 살아왔던 세월이나 생각만큼의 책들이 결합하는 것이라고. 내 전공 책들과 남편의 전공 책들. 사상서들. 결혼 후부터 남편의 책 취향은 갈수록 얕은 지식서와 베스트셀러로 향했고 내 책들은 두꺼운 전공서적으로 점점 변하고 있었다. 서로를 조금씩 못마땅해 하면서. 그래서인지 꽂힌 책들도 철저하게 선을 넘지 않고 반으로 갈라져 있다. 절대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지도 넘어서려고 감히 비집고 들어차지도 않고 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책을 꽂은 적은 없었다. 그저 오랜 시간 살아내면서 서로 적당히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행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 그것이 아닐까.

 

 

  경이 사용하는 방문을 열었다. 한 쪽 벽이 온통 민트 색 페인트칠이다. 자신의 작품인 듯 그 위에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베란다 창문에는 빈틈없이 연예인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나는 도무지 더 이상 외울 수조차 없는. 경은 참 독특하다. 그림을 그리는 중학교는 아이에게 안성마춤이다. 며칠 공휴일에 아이는 조바심을 냈다. 학교 안에 사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우산으로 집을 만들어주고 용돈을 다 털어 참치를 사서 며칠 먹이를 만들어 주고 고양이를 목욕까지 시켜주고 따뜻하게 담요까지 사서 덮어주고 돌아왔다. 겨우 버스비만 달랑 남기고 다 써 버린 것이다. 죄송하다고 하는데, 그게 죄송할 일 같지는 않았다. 그저 가끔 경이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를 세상에서 어떻게 잘 살게 할까, 고민이 되었다. 길에 지나가다 할머니들이 거리에 앉아 뭔가를 팔고 있으면 전부 다 사야 발길이 떨어지는 그런 아이다. 역시 책상 위와 옷장 안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온통 정리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고의가 아님을 안다. 도저히 잘 되지 않는 아이다. 하는 수 없다.

 

  나는 이번에는 석이 방을 열었다. 깔끔하다. 빈틈없이. 벽에는 석이가 좋아하는 축구선수들 사진이 몇 장 붙어있다. 프로 선수들 사인이 가득한 축구공이 책상 밑에 덩그러니 있다.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 얼마 전부터 석이는 내게 식단표를 요구했다.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려면 반드시 먹어야 되는 식단을 짜서 먹여달라는 것이다. 참치나 고기를 갈수록 찾기 시작한다. 내가 가끔 긴장하는 아이다. 내 빈틈을 너무 잘 아는 아이니까. 그렇다고 배려가 없지도 않아 더 그렇다. 어른을 가끔 부끄럽게 하는 아들이다.

 

  찬찬히 돌아보니 내 집이 천국이었다. 추억의 물건들, 공간들, 그 속에서 매일 자라는 아이들. 이 공간을 둘러싸고 지나가는 시간들. 세월들. 이 소중한 공간을 버려두고 밖에서 행복을 찾고 명예를 찾고 돈을 쫓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아다니고 있던가. 추억과 세월이 묻어나는 이 많은 시간의 선물들을 이제는 더 기다리게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가끔 만져주고 닦아주고 아이들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도 하고 아버지 책을 읽으며 햇살 아래 낮잠을 자기도 하고 온 가족이 부엌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장난질도 하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이제.

 

  나는 이미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며 이 찰나를 사랑해 버리고 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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