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건

by 하이에나김 posted May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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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건


 

   잔디가 일어선다. 젊은 캐디의 세찬 고함소리에 놀란 모양이다. 언제나 첫 스윙은 여지없이 코스를 벗어난다.

   “볼~”,

   목청껏 외치는 캐디가 왠지 얄밉다. 온 동네 소문내는 것도 아니고. 슬며시 동료 눈치를 본다. 옹졸한 성격인 K는 간절한 내 눈빛을 애써 외면한다. 마음약한 L을 공략해 본다. ‘한 번 더 처’, 다행히 듣고 싶은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지막이 새어나왔다.

   긴장 속 두 번째 샷, 역시 엉망이다. 캐디와 동료들의 냉정한 시선 탓으로 돌린다. 다행히 OB는 면했다. 대가리를 세차게 얻어맞은 공은, 놀라 일어섰던 잔디를 툭툭 치며 기어간다. 뒤돌아서는 내 발자국도 풀이 죽어 기어간다.

 

   우드를 꺼내들고 홀로 걷는다. 동료들을 태운 카트가 무심히 지나간다. 고개를 떨 군건 외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얄미운 공을 한 번 쬐려보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세컨드 샷을 준비한다.

   저 멀리 도착한 카트, 분명 동료들은 날아올 공을 응시하고 있을 터. 본때를 보여줘야지, 혼자만의 긴장 속, 야심찬 스윙, 볼은 떠났다. 느낌이 좋다. 쨍하는 소리가 손과 귀로 전달되는 걸 감지했다.

 

   ‘굿 샷~’, 기분 탓인지 건성으로 들렸지만 동료들의 외침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걷다 살짝 왼쪽을 쳐다본다. 버려진 공에 한 동안 미련을 남긴다. ‘로스트볼로 칠 걸.’ 아쉽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다.

   동료들과 합류할 때 쯤, 가장 멀리 친 K가 이제야 빈 스윙으로 몸을 풀고 있다. 약간의 경사, 잘 하면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될 듯, 역시나 공은 방향을 틀었다.

   언덕배기에 걸린 공을 다리근육 좋은 캐디가 한 걸음에 올라가 줍는다. 얄밉게도 페어웨이 쪽으로 휙 던지고, K는 굳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으로 그린을 밟았다. 힘겹게 따라온 내가 불쌍했는지 캐디는 오래도록 라이를 봐 준다. 오른쪽 한 클럽 정도 꽤 비스듬한 경사다. 캐디를 믿어야 한다. 겨드랑이를 바싹 붙이고 홀을 한번 힐끗 보고는 펏을 날린다. 느낌이 좋다.

   “ok, ok.”, 당연히 줄 수밖에 없는 거리인대도 동료들은 선심 쓰듯 외친다. 얼른 공을 집어 들고 멀찍이 뒷걸음을 친다. ‘투 온 투 펏, 기본 파를 한 J가 위로하듯 말한다.

   “그래도 보기로 잘 막았네. 잘했어.”

   그의 말에 위로를 받으며 겸손하게 화답한다.

   “멀리건 썼는데 뭘.”


작성자 : 김희정, 010-6575-7662, gold03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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