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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복녀

 

 

그녀도 나와 같은 나이 쉰 넷이 되었을 것이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까만 머리카락보다 흰 머리카락이 더 많고,

비가 내리기도 전에 언젠가부터 무릎부터 시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들과 비슷한 연령의 자식도 있을 것이다.

 

복녀!

그녀는 아랫마을에 살았다.

두 해 전 어디선가 이사를 와서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늘어뜨리며 검정고무신을 신고,

복녀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우리 집 바로 밑에 있는 옹달샘 물을 긷느라 오르내렸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온갖 병든 어머니 대신 복녀가 감자밥이나 옥수수밥을 짓고 있었고,

고추밭 깨밭 마늘밭마다에도 언제나 복녀는 호미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무렵엔 저만치 마당 멍석에 앉아

다음날 읍내에다 내다 팔 깻잎을 묶고 있곤 했다.

복녀나 나나 같은 열세 살인데도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복녀는 집에 있었다.

복녀도 나도 똑같은 나이건만, 나는 집에서 놀았고 복녀는 읍내 길바닥에 앉아 깻잎을 팔았다.

가여웠다. 자꾸만 가여웠다.

학교도 못 다니는 복녀가, 아버지도 없는 복녀가, 아픈 어머니만 있는 복녀가,

나보다 더 가난한 복녀가.

 

어느 날이었다.

곧 해빠지려 하는데 어디를 가느냔 어머니 말도 귓등으로 안 듣고,

동생과 나는 새우깡과 뽀빠이를 사 먹으러 읍내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기 위해 나섰다.

그리로 가기 위해선 당연히 복녀 집 앞을 지나야 한다.

복녀 집 앞에 다다르자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안을 살폈다. 복녀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이면 저녁밥을 짓기 위해 부엌에서 한창 아궁이에 불을 뗄 시간일 텐데.

감자 익어가는 냄새도 옥수수 알갱이 익어가는 냄새도 풍겨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동생과 나는 구멍가게로 발길을 재촉했다.

집에 가서 아껴 먹으려 새우깡과 뽀빠이를 사들기만 한 채 다시 복녀 집 앞에 도착했다.

복녀가 보였다.

쪽마루에 걸터앉아 붉게 노을 든 저녁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복녀.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초등학교를 2년도 채 다니지 못한 복녀라 했으니 아는 동요라곤 저 노래밖에 없는 건가.

복녀는 항상 나의 살던 고향만 부르는 듯했다.

아무튼 애처로웠다. 더욱 더 가여워졌다.

 

다음 날, 학교 오전반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가는데 물동이 머리에 인 복녀와 딱 마주쳤다.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물 받아 가나?‘

.”

안 무거워?”

. 괜찮아.”

내가 대신 집에까지 들어다 줄까?”

, 아니야. 안 무거워.”

물동이 인 그대로 집 쪽을 향하는 복녀 뒤에서 나는 잠시 우물쭈물했다.

아마도 왠지 복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여 이내 용기를 내 복녀를 불러 세웠다.

좀 쉬었다 가.”

?“

그냥 뭐 아무 얘기나 나랑 좀 하고 가라고.”

그래. 그럼 잠깐만 있다 갈게.”

그렇게 복녀와 나는 풀밭에 나란히 앉았다.

복녀는 쭈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풀을 툭툭 치며 있었고 나는 책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뽀빠이 한 개를 꺼냈다. 뽀빠이는 어젯밤 먹지 않고 남겨둔 거였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새우깡은 가루까지 탈탈 핥아 먹었으면서 뽀빠이는 어찌 남겨 책가방에 넣어 두었는지 모른다.

이거 먹을래?”

뽀빠이네.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 난 많이 먹었거든. 너 먹어.”

고마워. 잘 먹을게.”

그리곤 서로 아무 말 없었다.

아니, 엄마 기다리시겠다며 복녀가 곧장 일어났기에 더는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복녀의 헤진 윗옷 주머니에서 행여 뽀빠이가 빠져버리면 어쩌나 잠시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가 개떡을 쪄도 복녀부터 생각났고, 아버지가 어디서 사탕을 사 오셔도 복녀부터 생각이 났다.

어떻게든 조금 덜어 복녀에게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런 나는 도둑고양이마냥 그것들을 챙겨 살금살금 복녀집으로 갔다.

호롱불 희미한 방에서 바느질 하고 있는 복녀의 그림자.

컹컹 개가 짖자 복녀가 창호지 덧바른 문을 빼꼼 열었다.

그리곤 내가 기웃거리는 사립문으로 나왔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그냥. 아니 이거 먹으라고.”

붕생이네?”

.”

이러다 너희 어머니께 혼날라. 이제 이런 거 가져오지 마.”

아니야. 엄마가 갖다 주랬어.”

그래? 그럼 고마워. 잘 먹겠다고 전해드려.”

그날 저녁 달빛은 어찌 그리 밝았는지. 복녀의 얼굴은 마치 달맞이꽃 같았다.

잠시 후 옥수숫잎에 싼 붕생이를 손에 꼭 든 복녀가 내게 물었다.

넌 소원이 뭐야?”

? 난 음... 글쎄. 모르겠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너는 소원이 뭔데?”

나는 우리 엄마 병 다 낫는 거.”

그렇구나. 꼭 나으실 거야. 아무 걱정 마.”

그래. 나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

나 그만 들어가 봐야겠다.”

 

푸석푸석 낙엽 밟히는 늦가을이 되었다. 그동안 복녀와 나는 많이 가까워졌다.

어디서 왜 이 산골 초막까지 이사를 오게 되었는지, 복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머니는 대체 어떤 병들에 걸린 것인지,

무엇보다 학교는 또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선 나도 묻지 않았고 복녀 역시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복녀와 함께 있으면 좋았고 복녀도 그렇게 보였다.

사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냐는 이 흔한 말은 어쩌면 복녀로 인해 처음 경험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날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회색 연기가 마구 치솟고 있었다.

저기는 복녀집이 있는 곳인데 대체 뭘 하기에 저런 연기가 나고 있는 걸까. 나는 마구 뛰어 올라갔다.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내 심장도 쿵쾅거렸다. 밥 짓는 연기가 저 정도일리 없다.

그렇다고 개밥 끓이는 연기도 저렇게까지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숨도 안 쉬고 치달은 두 발이 맥없게 멈췄다.

복녀집이 타버렸다. 불길은 꺼져있었고 연기만 매캐하게 솟고 있었다.

나는 뿌연 연기를 헤치며 복녀를 찾았다.

그러자 온통 시커멓게 그을음 잔뜩 묻은 복녀가 넋을 잃은 채 마당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

...어머니는?”

“...”

정신차려봐. 어머니는 어디 계셔?”

돌아가셨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그날,

볼 일 있다며 큰댁 있는 여량으로 가지만 않았어도 불길을 보자마자 냉큼 달려가 껐을 텐데.

그랬다면 복녀 어머니는 무사했을 지도 모르는데.

복녀가 읍내 내다 팔 보리똥을 따러 산으로 들어간 사이, 방에 누워있던 복녀 어머니가 불을 냈던 것이다.

어떻게 불이 번진 건지는 복녀도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두었으므로.

 

겨울이 왔다.

얼어붙은 옹달샘을 돌로 깨내고 여전히 물을 긷던 복녀가 어쩐 일로 한 이틀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꼭 복녀에게 가 봐야지. 동생 몰래 숨겨둔 왕사탕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방학 중이라 일찌감치 일어나 학교에 갈 일은 없었으니 해가 훤히 뜨고 나서야 아침을 먹자마자 복녀집으로 갔다.

복녀를 불렀다. 이제 혼자 살고 있는 복녀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엌 나무문에는 빗장이 쳐있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자 싸늘한 공기만 덩그러니 내려앉아 있었다.

복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복녀는 떠났다. 옷가지 몇 개와 어머니 영정사진만 보따리에 싸서는 멀리멀리 떠났다.

내게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리 야속하게 떠나버렸다.

읍내에 사시는 복녀의 먼 친척 말로는 복녀가 서울로 갔다 했다.

서울에 복녀의 작은아버지가 계시는데 거기서 공장에 다닐 거라며 갔다고 했다.

그나마 성한 남은 세간 몇 개는 그 뒤 누군가 리어카로 실어갔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찌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나하고 작별의 말 몇 마디는 나누고 갔어야지.

봄이 되면 복녀 생일 날, 꼭 연두색 머리핀 한 개 사주려고 했는데.

한 달 후 편지 한 통이 왔다. 보낸 이는 복녀였다.

-잘 지내지? 작별인사도 없이 와서 미안해. 괜히 눈물이 날까봐 안 했어.

난 공장에 다녀.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 거야.

, 그리고 검정고시도 칠거야. 나한테 잘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우리가 늘 앉아 있던 그곳에 달맞이꽃이 한 열 번 피고 지면 그땐 너 한 번 보러 갈게.........-

복녀의 두 번째 소원은 어쩌면 공부를 하고 싶은 거였을까.

아무튼 이상했다.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편지가 복녀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았던지, 아니면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던 것인지.

아니, 아니, 배신감이 너무 깊었던 탓인지.

그저 복녀 말대로 달맞이꽃이 열 번만 피었다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복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다리자. 아무런 내색 없이 말도 없이 다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자.

 

복녀와는 그 편지가 마지막이었고 나는 얼마 후 부모님을 따라 울산으로 이사를 내려왔다.

수신자도 없는 나의 옛집으로 혹 복녀가 편지를 또 보냈었을까?

나는 복녀에게 편지를 쓰다 지웠다.

달맞이꽃 순정을 내내 유지하기엔 울산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너무나 삭막했던 탓일 테다.

미안하다, 복녀야.

달맞이꽃 열 번 다 피고 지더라도 나의 살던 고향 꽃 피는 산골 그곳으로 찾아가지 마라.

네겐 눈물겨운 그 곳으로 절대 찾아가지 마라.

 

지금도 거기에 내 첫사랑 복녀가 있다. 수십 번 지고 핀 달맞이꽃으로.


*붕생이-가난하던 시절, 감자와 밀가루를 섞어 찐 강원도 토속음식.



이름-원남희

연락처-010 3815 3766

  • profile
    korean 2019.12.31 18:09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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