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차 창작콘테스트] 네가 만족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by 손정훈 posted Dec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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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족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1학기 모든 과 행사를 마치고 종강이 얼마 남지 않을 무렵이었다. 2학기를 위해 과대표를 뽑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의 말이 들린다. “! 네가 해!”, “싫어, 네가 하던가!” 과대표 공지가 올라온 후 동기들끼리 많은 얘기가 오고 갔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모두 다른 친구에게 떠밀고 자신을 뒤로 숨는 말들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내게 말한다. “네가 한다며. 녹음한 것도 있다.” 난 뒤 늦게 깨달았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덜컥 과대표를 한다고 했던 적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반쯤은 등에 떠밀려서 반쯤은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과대표를 한다고 나섰고 과대표를 한다고 한 사람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아무런 경쟁도 없이 과대표를 하게 되었다. 내가 과대표로 결정된 후 별다른 일 없이 1학기가 끝났다. 여름방학이 되었고, 나는 본가에서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카오톡 알람이 울렸다. 대구교육대학교의 축제인 대동제를 준비하기 위해 모든 과의 과대표를 초대한 방이었다. 사실 많은 친구가 과대표를 맡을 능력이 있었지만, 나서지 않은 이유는 2학기 과대표가 축제 진행을 도맡아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선배들한테도 수시로 굉장히 힘든 일이다.”, “2학기 과대표는 하지 말아라.”라고 들어왔기에 많은 친구가 과대표를 피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과대표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축제를 위한 첫 회의 일정이 잡혔다. 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본가에서 왕복 9시간에 다다르는 일정을 했다. 나에게 첫 회의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과대표로서 하는 첫 번째 공식적인 일이기도 하고, 다른 과 과대표들과 만나는 첫 번째 시간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고 보람찬 하루였다. 첫 회의가 끝나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축제 진행이 예년 해왔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체육과 주막에 다른 방향성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번 축제부터 식품위생법이라는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식품위생법상 요리를 만들어서 팔도록 허가를 받지 못한 우리는 주막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큰 문제였다. 이로 인해 축제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후로도 몇 번 더 회의가 진행되었고, 그냥 원래의 방식을 유지하는 방법과 요리로 돈을 벌지 못하는 대신 테이블비를 받고 대신 음식은 푸드트럭을 섭외하는 방법 중 후자의 방법으로 최종결정이 되었다. 나는 과대표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회의감, 후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까지도 잘 해오던 방식이 왜 하필 나부터 바뀌게 된 것인지, 내가 이 상황에서 축제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와 같이 나의 능력에 대해 나 스스로 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의 결론은 나와 부과대표만이 아닌 추가적인 집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축제준비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축제준비위원회는 우리 학번을 대표하여 축제를 준비해나가고 축제 진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음식으로 돈을 벌 수 없어졌기 때문에 테이블비 이외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총학생회 측에서 음식을 만들 수는 없지만 콘텐츠나 게임을 준비해서 추가의 수익을 창출하기를 바랐고 축제준비위원회는 그 부분을 중점으로 축제를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축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막의 콘셉트가 필요했고 투표를 통하여 회사를 컨셉으로 축제를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다양한 게임을 회사라는 컨셉에 맞추어 생각하기로 했다. 첫 번째 게임은 도장 많이 찍기였고, 회사에서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을 떠올려 만든 게임이다. 두 번째는 물풍선 던지기로 회사 상사에게 쌓은 스트레스를 풀어라.’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 외에도 포스트잇 빨리 떼기, 제기차기 등 많은 게임을 준비했다. 그러는 동안 축제는 성큼성큼 우리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만큼 나의 걱정과 근심도 커져만 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축제를 위해 우리는 축제 때 필요한 점을 듣기 위해 선배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고 조교님께도 조언을 구했으며 축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기 위해 노력했다. 축제하기 위해 준비한 물품들도 모두 사고 드디어 축제 당일이 되었다. 축제 천막 밑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하고 손님이 많이 오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지나가고 첫날의 수익을 정산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축제 당일까지 끊임없는 걱정을 했던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렇게 둘째 날까지도 무사히 축제 진행을 마쳤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악조건은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태풍 예보였다. 18호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많은 비와 바람이 불었고 결국 야외 천막은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대안으로 인문사회관 강의실을 빌려 축제를 진행했다. 축제 때 비가 오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태풍으로 축제가 실내에서 진행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또한, 이번 축제 때부터 변경된 사항으로 푸드트럭 음식을 우리가 배달해야 했으므로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서 배달한다는 것은 악조건 중에서도 악조건이었다. 과대표로서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나부터 한발이라도 움직이자고 생각했고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을 찾아서 움직이고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 주막은 악조건 속에서도 3일 중 최고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

과대표로서 축제를 진행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축제 전까지만 해도 축제 진행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축제는 잘 마무리되었고, 그 이유는 내가 아닌 다른 친구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대표라는 이름으로 주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키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6시간에 다다르는 시간 동안 비까지 맞아서 다 젖어가며 배달을 하는 고생을 했고 그 와중에서도 자신이 하나라도 더 배달하고자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함과 동시에 동기들에게 고마움 마음이 너무나도 컸다. 솔직히 어느 정도열심히 하고, ‘어느 정도일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 같이 최선을 다해 일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실감할 수 있었다. 때로는 어떤 일이든 혼자 해결할 수 있다면 아무리 많은 일이라고 혼자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번 축제를 지나고는 무슨 일이든, 같이 도와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일 처리를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모두가 함께 최선을 다한 축제였기에 상황상 수익은 예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지만, 모두가 만족하고 있었다. 우리 동기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너가 만족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손정훈/wjdgns9676@naver.com/01090236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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