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김밥
- 아빠를 닮아가는 딸의 모습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 중 ‘삼각김밥’을 아침 대용으로 먹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사람 많은 여기서 꼭 저렇게 체신머리 없이 음식을 먹어야 해?”
끼니도 거른 채 각자의 위치로 향하는 그들의 뒤통수를 향해 못된 말을 서슴지 않는 나. 여간 고약한 성질머리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음식물이 내 후각을 자극한다거나 간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설사 그렇다 한들 내가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4호선 끄트머리에 위치한 노원역과 길음역 사이. 외가댁이 위치한 곳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어린 시절 아빠는 운전 하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련만 예전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래서 초등학생 시절 내내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를 가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을 횡단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지금처럼 지하철이 자주 다니던것도 아니고 에어컨이 쾌적하게 틀어진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외가댁에 도착하기도 전 우리는 늘 녹초가되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런 어린 새끼들이 못내 딱했던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백화점으로 이어지는 연결 통로가 있었는데, 그곳 지하를 지나 버스로 환승하는 곳을 향할 때면 달콤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우리의 후각을 자극했다. 지금처럼 삶이 풍요롭거나 음식을 사는데 씀씀이가 넉넉지 않던 때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우리에게 밤알이 송송 박혀있는 빵 한 덩어리를 고민없이 건네주었다.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았겠는가. 그네들에게 제어력이 존재하긴 했을까. 우리는 엄마의 손에서 빵을 채 건네받기도 전 정신없이 한입, 두입빵을 뜯어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문제는 원리원칙만을 고집하는 아빠였다. ‘식사 전에는 군것질을 하면안된다’라는 논리에서 시작해 차와 사람이 붐비는 이 위험천만한 곳에서 빵을 먹느라 정신이 헤이해져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조목조목 차근차근 빵을 먹으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했더라면, 적어도 언니와 내 코 끝이 시큰해지더니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아빠는 지금보다 더 주변머리가 없는 꼬장꼬장한 남자였다.
“길에서 그걸 왜 먹고 난리야?"
채 한입을 베어물지도 못한 채 우리는 하던 행동을 멈춰야만 했다. 엄마는 애들 무안하게 왜 그러냐며 어린 것들을 품으로 이끌었지만 당최 그 밤 식빵을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
아침의 단상. 그 때 이후로 바깥에서 무슨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 식도 언저리로 달큰한 덩어리가 느껴진다. 삼각깁밥을 먹고 있는 그대들에게, 나도 왠지 아빠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은 아닐까.
월간 예민보스
- 모든 여성들이여, 월경증후군은 질병이리라!
척추 마디마디를 날카로운 송곳으로 긁어대는 느낌. 출산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써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최악의 월경증후군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나 역시 유난스러운 월경증후군을 겪는다. 그리고 이번 달은 유난히 그 징후가 뚜렷했다. 나는 예민해진다. 쉽게 짜증을 내거나 까칠해지는 수준이 아니라 혼자 울먹이다 화를 내고 나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또 운다. 세상에서 나란 사람이 제일 불쌍하고 가엽게 느껴지고,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소년 소녀들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슬퍼 보인다. 그리고 다시 화가 난다.
월경증후군 증상이 나타나면 대체로 나는 누군가와 꼭 한 번 싸우게 된다. 가족의 확률이 가장 높으며 애인이라도 예외없다. 하지만 나의 타깃이 되는 대상은 의외로 친구들이다. 평소에는 그 혹은 그녀들의 별다른 악의 없는 장난들과 애정어린 말들이, 꼭 이 시기만 되면 가슴에 비수로 꽂히곤 한다. 딱히 친구들에게 억화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달에도 또 친구들과 싸웠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빽' 한번 소리를 지르고 바로 꼬리를 내렸지만, 왜 그렇게 정색하냐고 되려 짜증을 내는 친구들에게 내심 서운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네들에게 퍽이나 자상하고 마음씨 고운 친구였(다고 믿고 싶)다.
이것은 질병이다.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면 그 어떤 것도 나의 마음을컨트롤하거나 추스릴 수 없다. 텔레비전 안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적 박탈감을느끼게 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묘한 질투와 시기 그리고 분노가 차오르더니 마침내 눈물샘으로 폭발하게된다. ‘영차영차’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고 코끝 언저리까지 올라온 슬픔이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해소되는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우울하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는 환자다. 그래서 애써 이를 극복하려다보니 더욱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라는 생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우울의 바닥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상상할 필요도 없다. 몸에 힘을 쭉 빼고 그냥 가라앉힌다. 발이 닿지 않는 어딘가까지 끌려 내려가다보면, 어느샌가 반등할 수 있는 지지대가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 때 다리에 힘을 주어 튀어 오를 필요는 없다. 발버둥쳐봤자 언젠가 때가 되면 내 자리에 다시 머무르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한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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