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창작콘테스트 - 노을빛 가득 머금은 학회실 외 1편

by aoike posted Feb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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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빛 가득 머금은 학회실 테이블

 

  학회실. 다시 이야기하면 학생들의 방이다. 학과의 많은 학생이 발 도장을 찍고 숨 섞인 흔적들을 남기는 가장 익숙하고도 붐비는 장소이다. 내가 처음 입학했을 때 학회실의 풍경은 바로 위에 표현했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배라는 전제하에 거의 무조건적인 인사를 해야 했고, 학회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조차 눈치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이것 또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이지 않을까?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긴장 아닌 긴장도 했었고, 말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은 선배를 무진장 졸라 밥을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 없는 말 있는 말 지어내 가며 겸연쩍은 미소를 곁들인 점심 자리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공짜로 얻어먹는 그 점심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학년 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1년을 학회실을 드나들며 학교생활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친해진 선배가 동기보다 더 많아졌다. 같이 술 먹고 어깨동무하고 귀가했던 08학번 선배, 밤새도록 시험공부 하면서 학회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던 09학번 선배, 밥 사준다고 3월부터 이야기해놓고 12월이 다 되도록 밥 한번 못 얻어먹어 본 10학번 선배 등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긴장하고 어색했던 학회실이 있었기에 그때 나의 주변에 이렇게 많은 선배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살이 되어 대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었지만, 이 평범하고도 대단한 선배들 덕분에 그래도 기억에 남는 1학년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20163월 봄, 학회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을 때 그 많던 우리 과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고, 16학번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신입생과 잘 알지도 못하는 학번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나도 모르게 실소를 띠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섭고 어려운 선배들과 지는 노을빛으로 가득 머금은 테이블이 자리한 학회실의 긴장이 머릿속에 선명했는데,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과 신입생들로 인해 학회실 안의 색다른 긴장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기한 장면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이 많은 사람과 새로이 친해지고 잊지 못할 추억들을 다시 쌓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감정과 느낌으로 그렇게 3월이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다. 여전히 예전의 기억을 품고 있던 나는 그때처럼 밤샘 시험공부를 할 생각으로 학회실을 찾았다. 설렘 반 긴장 반으로 학회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다소 놀라움을 느꼈다. 지금은 시험 기간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중요한 시기인데 학회실 조명은 불이 꺼진 채 어둠만이 날 반기고 있었으니까. 불을 켜고 가만히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들었다. 시험 기간이면 밤샘하는 선배들과 동기들로 학회실 테이블이 가득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나와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 이 학회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새벽 늦도록 달려온 내 기특한 의지를 생각해서 책 한 줄이라도 보고 가자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집중력은 오히려 떨어졌고 이내 점점 졸음이 왔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누구 하나라도 와서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학회실의 기억 탓이었을까, 그냥 나 혼자만의 집중력 저하였을까, 2시간을 못 버티고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된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은 항상 그대로인 것 같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던 사람들만 다시 모인다면 그때의 추억은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학회실도 마찬가지다. 3년 전 붐비고 조용할 날 없던 학회실의 주인은 이젠 풀벌레 소리다. 비록 지금 내 주변에 그때만큼 많은 사람과 추억이 없지만, 추억이야 다시 쌓으면 되는 것이다.


  학회실은 휴식의 공간이고, 학습의 장소이며, 만남의 공동체이다. 현실은 오히려 가장 흔했던 만남의 공동체적인 성격마저도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학회실에 비추는 노을은 늘 그대로인데 그 노을을 맞으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은 아직 미처 채워지지 못했다. 예전엔 선배들이 노을 가득한 자리의 주인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그 뒤를 이어 추억을 쌓고 여러 학우들과 웃음 가득한 공기를 채우고 싶다.


  그때처럼 선명했던 노을과 행복했던 사람들로 채울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다 그때라고 부르며 기억하기 마련이다. 추억은 지워질 수는 없지만, 잠시 잊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와 같은 사람이 그때를 회상하고 학회실 문을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들어가 보지 않을까? 학회실은 누구나 추억이 될 수 있고, 어느 누구라도 노을 가득한 테이블을 바라보며 모든 걸 잊은 듯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곳이었으면 한다.







 군대 휴가복귀의 은인

  때는 바야흐로 내가 군에 복무하고 있었던 머나먼 과거다. 당시 난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는 날이었다. 항상 동서울터미널까지 가서 거기서 강원도 화천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었다. 애초에 그 노선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루트이긴 하다. 여하튼 그날은 평소와 달리 집에서 일찍 출발했고, 더군다나 가는 길 역시 차가 굉장히 막히지 않아서일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고 만 것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고, 앞으로도 이런 경우는 쉽게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서울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 구경을 하고 싶었다. 아직까지 내 개인적인 용무로 서울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곧이어 난 재빠르게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동서울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건대 입구로 갔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그쪽 번화가는 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롯데백화점도 가보고 그밖에 예술회관, 자양동 성당도 가봤다. 그러다 뚝섬유원지 푯말을 보고 그만 두 눈이 왈칵 뒤집힌 나는 부대 복귀는 생각도 못 하고 무작정 그리로 갔었다. 그땐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던 정신이 나간 상태였던 것 같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터미널까지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지 않다니. 정말로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였다.

 

  기분 좋게 뚝섬유원지를 구경하던 나는 순간 등골이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아뿔싸! 시간이 꽤 늦었다. 이대로 가면 다음 버스를 놓치는 건 손바닥 뒤집기였다. 혹시라도 다음 버스에 자리가 없으면 그야말로 게임 오버다. 그냥 완전히 끝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머리로는 온갖 불길한 생각과 함께 두 다리는 건대 입구로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한강 현대 아파트를 지날 때, 난 지쳤고 이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무서웠다. 부대 복귀가 늦어지다니. 어떤 징계가 내려질지 두렵고 가슴이 갑갑했다. 그렇게 억수 같이 무너져버린 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문득 내려온 것이다. 잠깐 숨도 고를 겸, 뛰는 걸 그만두고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면서 멈춰 선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난 뭔가 싶어서 고개를 숙여서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분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강변에서 지하철을 탈 때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였다. 그때의 기억이 분명히 난다. 모델 뺨치는 모양새의 내 군복과 모두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구형 전투화를 유심히 보시던 아저씨가 나에게 휴가 나온 거냐고 물으셨다. 그렇다, 바로 그분이셨다. 그래서 난 오늘 휴가 복귀고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는 바람에 그래서 이참에 서울 구경 좀 하러 가는 거라고 말했었다. 고작 짤막한 대화를 했던 아저씨인데, 정말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저씨는 나를 위해 내 앞으로 온 것이었다(물론 우연이겠지만). 내 군 생활 휴가 부분에 있어서 절체절명의 순간이던 그때 내 앞에 구세주처럼 등장하신 거다. 이윽고 아저씨의 짧지만 엄숙한 한 마디가 내 가슴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 시간 없잖아.”

 

  아저씨의 이 말 한마디에 비로소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당시 너무나도 감사한 나머지 입이 닳도록 감사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저씨 차를 타고 직행으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난 다행히 시간에 맞춰서 부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조금만 늦어서 다음 시외버스를 탔었다면, 화천에 1시간 늦게 도착했을 테고 그렇다면 거기서 당연히 시내버스를 놓쳤을 것이다. 하마터면 휴가 복귀 시간이 늦어질 뻔했던 아찔한 사건이었다.

 

  아저씨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만수무강하시길 제가 간절히 기원합니다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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