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창작콘테스트 수필 부문

by 전은경 posted Feb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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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의 엄마>


22번째 생일날이었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내 생일상을 차린다며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했다.
20살 넘으면서 매년 하는 말이지만 이제 성인이 되기도 했고 힘에 부치니 그만하는 게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그래도 우리 딸 생일인데 어떻게 그래" 하며 부랴부랴 음식을 준비했다.
새벽부터 정성스레 차려진 생일상 위에는 미역국, 굴비, 나물, 과일, 등 한눈에 봐도 정성과 수고로움이 보이는 상이었다. 생일상은 고마운 마음이 크지만 그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훨씬 컸다.
매년 차려지는 생일상을 앞에 두고 엄마 와 나는 똑같은 대화를 한다. 그날을 회상하는 듯 엄마는 "오늘 너 낳으러 눈 맞으면서 병원 갔다 너 정말 안 나오더라" 하며 웃으며 말한다. 나는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미역국을 먹는다. 그럼 나는 엄마에게 말한다. "나 낳느라 고생했어" 하고 그리고 엄마와 나는 웃는다.
정말 고생하셨다. 꼬박 열 달을 배 속에 품고 걷기도 힘들고 잠자기도 불편한 몸으로 자식이라며 품었다.
낳을 때는 또 엄마나 큰 고통이 따르는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견디며 나를 낳았다. 그러고도 20년이 넘도록 자식을 위해 여전히 미역국을 끓인다.
미역국을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 내 생일날 가장 고생하고 힘들었을 사람은 엄마였고 미역국을 먹어도 엄마가 먹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엄마에게는 내가 태어난 게 큰 기쁨이었겠지만 그냥 받아만 먹는 나는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고 한 여자로서 나이가 먹어갈수록 엄마의 모습에 나를 대입해 보기 시작하면서 그런 마음은 배가 되었다. 생일날이면 많은 것들을 받았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일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 생일이니까 어는 순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온전히 나의 날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정작 그날의 아픔을 생생히 겪고 기억하는 사람은 엄마 한 사람이었고 나를 위해 모든 것들을 희생하며 해주기만 하고 나는 그것들을 받기만 했다. 그러니 이번 생일에는 엄마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생일날 오후 내가 태어난 그날과는 다르게 겨울 날씨치고는 포근한 날이었고 덕분에 나는 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곧 장 백화점에 들러 평소 엄마와 잘 어울리는 살구색 립글로스를 사서 예쁘게 포장한 뒤 집으로 들고 와 방에 숨겨 놓았다. 저녁에 가족들끼리 외식을 한 뒤 12시가 되기 전에 엄마를 부엌으로 부른 뒤 "낳아주고 키워줘서 고마워"하는 말과 함께 선물을 건넸다. 엄마는 밝게 웃으며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어" 하는 말과 함께 선물을 풀어 본 뒤 거울 앞으로 가 바로 발라 보고는 "어때, 이뻐?" 하며 내게 물었다. 나는 ", 이쁘네" 하며 답해 주었다.
이상하게 선물을 받는 것보다 엄마에게 뜻깊은 선물을 해 주었다는 게
더 기분이 좋았고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졌던 생일날 이어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었던 날이었다. 앞으로 매년 생일날이 되면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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