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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한 번, 두 번, 모든 게 휩쓸려 갈 듯 비가 쏟아져 내리던, 장마의 한가운데,

일주일 째 덥고 눅눅한 생활을 했더니 짜증마저 녹아버린 듯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냥 자고 싶기만 했다

땀에 가득 차서는, 의미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에 알람보다도 훨씬 일찍 잠에서 깼다

늦잠을 밥 먹듯이 하는 나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리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찬물에 몸을 맡겼다. 이대로 물 따라 녹아버리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교복을 입는 것도, 머리를 말리는 것도, 다 의욕 없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움직이기만 했다.

머리를 말리며, 오랜만에 따갑도록 햇볕이 내리쬐는 창밖을 째려봤다.

느릿느릿 준비하고 느릿느릿 나가는 동안 역시 시간은 제때에 맞춰 흘렀다. 일찍 눈을 뜬 보람은 없었다

'지각이야!' 집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꾸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냥 거슬렸다.

벌써 매미가 우나 봐.’


생각보다 땅이 보송보송했다. 비가 완전히 갰는지 물웅덩이 하나 없었다.

걷고, 걷고 걷는 동안 그늘 하나 없어 점 점 더 지쳐만 갔다.

'그늘이다.'

신호 등 앞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을 발견한 후로는, 내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겉으로는 티 안 내며 빨리 걸어가느라 표정을 더더욱 굳혀야 했다.

빨리, 빨리 빨리 시야가 흔들릴 정도로 빨리 걸으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시원한 내음이 훅-하고 밀려왔다.

'아직 이곳은 비가 안 갰어.'

열기는 뜨거우나 몸의 온도는 내려가고 있었다. 비가 안 갠 그늘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맑기만 했다

몸이 시원하니까 하늘 볼 여유도 생기는 게 퍽 우스웠다.

바로 어제의 지구 멸망할 것 같은 빛의 하늘과는 다른 하늘인 듯 맑고, 맑기만 했다.

바로 곧 도착한다는 버스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일단 지금 더워 죽겠는 나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널널한 자리에 감탄하며 올라섰다. 자리에 앉기 전 잠깐 숨을 멈추고는 숨을 멈췄다

온전히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

 

자리에 앉은 나는 더위에 완벽하게 패배한 모습이었다

교복 와이셔츠까지 벗고 아저씨 같은 차림으로 부채질만 재촉하고 있었다.

나아지지 않는 무더위에 그늘을 그리워하며 책상에 엎드렸을까

엎드려서 올려다보는 창밖은 새로웠다. 아까까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에 휩쓸려서 죽어버릴 만큼 내 몸의 크기가 작거나 연약하지 않아 안타까워하던 나와는 달리

그 거센 비를 이겨낸 작은 새가 위풍당당하게 울고 있었다.

마치 오늘도 살아났다는 듯이, 소리 높여서.

우거진 풀과 소리 높여 우는 동물들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반대로 돌려 내 바로 옆에 소리 높여 우는 아이들을 보았다.

내가 버리고 싶은 생명이라는 게,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나만 빼고 밝게 빛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늘도 포기하기를 포기했다.




201512232116.

보보는 세상을 떠났다.

엄청나게 울거나, 아파하지는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보보는 내가 9살 때. 2009년 미리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아빠가 뒷짐에 숨겨 들고 왔던 작은 강아지였다.

어느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티컵 강아지-티컵 강아지-하는 떼에 못 이겨 동네 개장수들에게 백만 원을 주고 사온 강아지라 했다. 파피용인지 몰티즈인지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 할머니와 어린 손자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했고, 그 아파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금지된 아파트였다. 개를 다시 팔 수가 없어 시장의 상인들에게 넘겨주려 딸랑 강아지 하나 손에 들고 시장을 나오셨다 했다. 고속도로에서 강냉이 팔 듯, 한 손에 쥐고는 시장 상인들에게 강아지 키우지 않겠소, 강아지 키우지 않겠소, 하며 돌아다니셔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 엄마는 둥지에서 도로로 떨어진 새가 다칠까 봐 바가지를 들고 도로 한가운데로 달려갈 정도로 동물에 정이 퍽 많기에.


우리는 아빠가 등 뒤에서 꺼낸 작은 강아지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파피용도, 몰티즈도, 티컵 강아지도 아닌 그저 새끼 똥개라는 걸.

엄마의 말로는 진돗개와 풍산개의 믹스견이랬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다리가 너무 짧고, 기껏 다 커봐야 중형 개 정도의 크기일 것 같았다.

아빠의 말로는 그냥 똥개와 똥개가 만나서 나온 발바리라고 했다. 그 말이 훨씬 설득력 있었다

다리가 무척 짧고, 딱 품종을 가리기에는 모호하게 생겼었다.


보보는 옅은 갈색에서부터, 짙은 갈색까지 꼭 카푸치노 같은 색의 털을 가진 아이였다.

귀는 얼굴에 비해 커서, 꼭 여우 같았고, 짧은 다리와는 대조되게 그 가슴 털과 꼬리털이 굉장히 멋지게 펼쳐져 있었다.

눈은 아주 동그랗고 검은색이라 꼭 인형 눈알을 붙여 놓은 것 같았는데

서글프게도 지금은 그 눈을 자세히 들여다본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큰 귀가 접히면 꼭, 수달이 따로 없었다. 아빠만 보면 수달마냥 귀를 접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어서 아빠의 앞으로 가곤 했는데, 아빠는 자신이 가장인 걸 강아지여도 다 아는 것이라고 똑똑하다 했지만, 우리는 아빠의 불같은 성격에 겁먹은 거라고 생각했다.

보보는 우리 엄마를 특히 좋아했다.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귀가 시간이 늦은 날이면

보보는 평소보다 더 끙끙 소리를 내며 엄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질투가 여간 나는 게 아니었다.


, 보보의 이름은 우리 세 남매가 이름 후보를 놓고 싸우다가 결정됐는데, 그 당시 나는 9, 언니는 14, 오빠는 16살로 죄다 초딩에서 중딩들이라 이름 후보들이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예쁜이, 언니는 사랑이, 오빠는 썬더. 꼬리 흔드는 작은 강아지를 가운데에 두고 피 터지게 싸웠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고

싸우던 와중 그 옆 테레비에서 방영되고 있던 만화에 우리는 금세 시선을 빼앗겨 버렸더랬다

그 만화의 제목이 바로 무적 코털 보보보’.

마치 누가 시트콤 각본을 짜 놓은 듯,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강아지 이름을 코털이라고 지을 수는 없으니 그냥 뒤 두 글자를 따, 보보라고 지었고

보보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그저 애완동물이 아닌 보보라는 대명사 하나로 존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보가 사람이고, 이름 작명의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서운하다며 집을 나가버려도 뭐라 할 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쨌든 그 허무한 이름을 갖고도 보보는 잘 지내왔다.


똑똑해서 배변 훈련이 따로 없어도 대소변을 잘 가렸으며, 6년 살면서 사람을 문 일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그 대상이 나인 게 조금 문제였지만) 또 빌라로 이사를 온 다음부터는 며칠 동안 발걸음 소리만 나면 짓더니, 조금 지나가 빌라 주민들의 발걸음 소리를 구분해, 외부인이 지나갈 때만 귀를 바짝 세우고 컹컹하고 짖어댔다.

동물의 감이라는 게 무서운 건지, 엄마가 현관문을 잠그지도 않고 잠이 든 어느 날에, 이상하게 목줄을 물고 산책하러 가자고 엄마를 자꾸 깨웠다는 것이다, 평소의 보보는 산책을 좋아했지만 그렇게 직접 조르는 일은 없었기에, 엄마는 애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산책을 나갔고, 엄마는 산책을 끝마치고 들어오며 경찰차와 구급차가 집 앞에 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옆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도, 옆집 아주머니가 강도에게 당해 몇 달 동안 입원을 해야 하신다는 것도, 강도가 베란다로 우리 집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주민이 발견하고는 경찰을 불렀다는 것도, 우리 가족을 멍하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보보는 참 똑똑한 아이였다.

보보는 언제나 우리를 좋아해 줬다.

다리를 다쳤으면서도, 엄마를 보고는 내 품에서 바닥으로 뛰어 내린 일도 있었고

똥을 싸다 엄마와 아빠가 오자 그 똥을 주렁주렁 달고 우스운 모양으로 조금씩 걸어가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똑똑함과 동시에 바보 같은 면도, 싸가지 없는 면도 많았다

자다가 방귀를 뽀옹 하고 껴 놓고는, 일어나 나를 쳐다보고 한숨을 쉬며 다시 잔다든가

테레비 앞을 지나가다가 다큐 채널에서 나오는 사자 소리에 화들짝 놀래 옆으로 자빠진다든가

라면을 먹고 있는 우리를 보며 대놓고 사료를 앞발로 엎는다든가.

또 한 번은, 산책 도중 강아지들끼리 한 데 모여 인사를 하고 있기에 보보를 보냈는데, 멀뚱히 서 있다가 고개를 획 돌려 우리한테 다시 와서는 나의 신발을 발톱으로 긁으며 신경질을 내는 것이다

이때 알아챈 건, 보보는 자신이 개라는 사실을 굉장히 자존심 상해 한다는 것.

이렇게 어이없던 일도 많았지만, 보보가 우리를 좋아해 줬듯 우리도 보보를 사랑했다.

털이 잔뜩 빠져 새 옷을 버려도 짜증 나지 않았고

돈이 없어 세 남매끼리 라면 하나에 밥 말아 먹으면서도 라면 두세 개 값인 보보 간식은 잘만 사 왔다.


그런 보보가 우리 가족들 품이 아닌 모두가 집을 나가 있을 때, 세상을 떠났다.

보보가 떠난 며칠 동안은, 울었지만 펑펑 울지 않았고, 눈에 띄게 슬퍼하지 않았지만, 멀쩡하게 지내진 못했다.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모든 것이 다 얼음 녹은 커피처럼 밍밍하고 맛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지금 읽어보는 그 다음 날의 일기에는 쉴 새 없이 울컥거렸다는 말이 가득하다.

무거운 가방과, 다 끝나가는 학기, 사람이 많은 버스, 차가운 물, 모든 게 느껴지지 않고 느릿느릿한 흑백으로 느껴졌다고.

색도 없고, 느리고, 의미 없는 고장 난 필름처럼, 보보가 없어진 다음 날은 그렇게 망가져서 지냈다.


보보가 떠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학교 뒤의 산책로에 앉아있으면, 3명 중에 한 명 꼴로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이 지나가는 데

강아지를 볼 때마다 보보가 생각이 난다.

우리 예쁜 강아지.

그 어린 9살은 자라서 19살이 되었고, 언니는 자라서 다른 강아지를 들여 보보에게 다 못 준 사랑까지 주고 있으며, 오빠는 자라서 아직도 강아지는 스스로 못 키우겠다고 고양이를 들여 키우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주변의 강아지들의 자기 자식마냥 예뻐하면서도 앞으로는 짐승은 키우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의 어린 동생, 보보가 떠나기 2년 전에 태어난 나의 동생은 우리 가족을 닮았는지,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동물들도 동생을 곧잘 따른다

강아지를 키우자고 말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말없이 웃음만 짓는다.

보보는 아직까지도 이렇게나 우리 가족 안에 숨 쉬고 있다.


이젠 보보 이야기에 눈물이 나오지는 않지만, 요즘처럼 벚꽃이 만개한 길을 바라볼 때면

꼭 보보가 곁에 있는 듯이, ‘꽃이 예쁘게 폈다, 그치하며, 천천히 길을 걷곤 한다.


오랜만에, 보고 싶다.

 











한아름

har00523@naver.com

010-2230-4169

  • profile
    korean 2019.04.30 21:42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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