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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수


 

고향 강원도 인제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어린 시절 기차를 타보기는커녕 구경조차 못 해본 아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 고향이 경상도라 어릴 적부터 기차를 자주 타곤 했다. 경주시 안강읍과 인동면에 살던 아버지,어머니가 중매결혼해서 강원도 땅에 정착하게 된 건 아버지의 직업이 군인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강원도와 경상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미국만큼이나 멀다.


 우리는 방학 때마다 기차를 타고 경주 외갓집에 갔다. 새벽밥 해먹고 첫 버스를 타고 가야 원주역에서 출발하는 부산행 비둘기호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비둘기호는 완행이라 모든 역에 정차한다. 오후 늦어야 목적지인 경주역에 도착한다. 경주역에서 다시 지하철처럼 생긴 안강행 기차로 바꿔 타고 안강역에서 내려 외갓집 마당에 들어서면 기나긴 여름해도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 간다. 집 떠난 지 열 시간 훌쩍 넘는 시간이다.


 그 시절 올망졸망한 딸 셋에 짐가방 바리바리 들고 그 먼 길을 가야했던 엄마의 고달픔과 달리 우리에게 기차여행은 신나는 일이다. 버스만 타면 멀미에 시달리던 나는 멀미가 나지 않는 기차가 좋았다. 과자며 음료수, 삶은 달걀과 귤 따위를 팔던 카트는 우리에게 가히 신세계였다. 하루에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는 그 카트를 절대 그냥 보내는 법이 없이 매번 뭐든 사달라고 졸라댔다고 한다. 또 오랜 시간 마주 보고 가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 친해져서 먹을 것도 나눠 먹고 헤어질 때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기차역 플랫폼 간이부스에서 파는 가락국수를 사 먹는 일이다. 정차시간이 긴 역에 도착하면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 설 때 국수 부스가 있는지부터 찾는다. 부스를 발견하면 기차가 서기 무섭게 달려가 국수를 사 먹고 돌아온다. 마치 국수 먹기 미션이라도 하듯 허겁지겁 먹었는데 그렇게 먹는 국수는 너무너무 맛있다.


강원도로 돌아올 때는 주로 밤기차를 타는데 새벽 4시쯤 원주역에 도착한다. 어두운 플랫폼 한 쪽에 환하게 불이 켜진 간이 부스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맑고 구수한 멸치국물과 굵은 우동면발, 거기에 얹어 먹는 아삭한 단무지는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인제로 돌아오는 첫 버스를 타려면 2시간 넘게 추운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하는 데 뜨끈한 가락국수 한 그릇 먹고 나면 배도 든든하고 추위도 덜 느껴진다.


그렇게 좋아하던 가락국수 때문에 기어이 일이 벌어졌다. 아마 초등학교 4,5 학년 때 쯤 이었을 것이다. 강원도로 돌아오는 밤기차였고 아버지와 나, 동생만 타고 있었던 걸로 봐서 중학생이 된 언니는 빼고 나와 동생만 방학 내내 외갓집에서 지내다가 개학 때가 되어 데리러 온 아버지와 함께 돌아오는 길이었나 보다. 같이 국수 먹으러 갈 엄마도 언니도 없었지만 기어이 가락국수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혼자 영주역에서 내렸다. 국수 그릇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먹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드니 내가 타고 온 기차가 서서히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국수 먹는 데 정신이 팔린 나는 그만 기차로 되돌아갈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나가는 기차를 향해 뛰어가는 내 모습, 그런 나를 붙잡고 만류하는 역무원 아저씨, 멀어져가는 기차를 망연히 바라보던 모습, 기차역 사무실에서 훌쩍거리는 모습이 흑백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나는 다음 기차 승무원에게 인계되었고 원주역에서 기다리던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었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더 이상 기차를 타지 않는다. 4시간 반 정도면 경주에 도착하니 무리하면 당일 왕복도 가능하다. 그때 먹던 가락국수 맛 때문인지 나는 면류를 무척 좋아한다. 요즘 면 전문 음식점이 많이 생기면서 멸치국수도 당당하게 메뉴로 자리 잡았지만 어느 곳에 가 봐도 그때 기차역에서 서서 먹던 국수 맛을 느낄 수 없다.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절대 현재 시점에서 비교분석이 불가능하다는 얄팍한 안도감 때문이 아닐까정말 그때 먹던 가락국수를 지금 다시 먹는다면 에이, 별 맛도 없구만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안도감이 마음껏 추억을 회상하며 그리워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올 여름은 시작과 동시에 장마가 겹쳐서 벌써 열흘 넘게 오락가락 비가 내린다. 오늘 저녁에 멸치와 무, 다시마, 대파를 넣어 시원하게 육수를 내서 멸치국수를 해봐야 겠다.

 

 



나의 치유기

 

 

휴가 갔다 일주일 만에 출근했어요.

그 사이 강릉은 완연한 봄이 되었네요. 봄꽃으로 뒤덮인 시내가 어지럽게 느껴집니다.

화사한 거리와 달리 사무실은 썰렁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곳에 다시 와야 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지만 어쩌겠어요.

 뒷정리며 이사 준비도 해야 하기에 출근했는데 입구에 쌓인 이사 바구니에, 텅 빈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폐지에 너무 어수선해 한참을 서성거렸답니다. 일 년 전 처음 이곳에 오던 날이 생각납니다. 아직 바람이 쌀쌀하던 2월이었지요. 평생 군청이나 면사무소 같은 관공서만 근무하던 저는 식당이나 편의점 따위가 있는 일반 상가 건물에 사무실이 있는 게 영 이상했어요.

 

처음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여기 왜 왔어요?”였어요. 왜 왔냐니... 30년 만에 우리나라 그것도 강원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왔는데. 물론 이건 다분히 공식적인 대답입니다. 이유는 따로 있지요.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학창시절을 제외하고 고향을 떠난 본 적이 없어요. 대학 졸업 후 고향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답니다. 익숙함과 편안함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권태는 때때로 저를 숨 막히게 합니다. 딸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자 자유의 몸이 되었고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절실했지요.

 

사실 진짜 이유는 두 번째예요. 연차가 있는지라 몇 년 전 팀장 승진했는데 승진의 기쁨은 잠시. 직장생활은 괴로움의 연속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충분히 예견된 불행입니다. 저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자기주장 똑 부러지게 못 하며 거절과 부탁을 어려워합니다. 평직원일 때야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되니 문제 될 게 없지요. 그러나 팀장이라는 자리는 많거나 적거나 직원과 협업해야 하는 상황이라 여러모로 부담스러웠어요. 그래도 잘하려고 노력했지요. 직원에게 업무 부담 주지 않으려고 매사 솔선수범하려 했고 가끔 자비로 회식도 하고요. 하지만 번번이 부하직원과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어요. 몇 번 부서이동 했는데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역시 문제는 나 자신 이겠지요.

 

내 나름대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데 일은 제대로 되어가지 않고 오히려 나의 선의가 조롱당하는 기분이 들자 결국 쌓이고 쌓였던 감정은 폭발하고 말았답니다. 저의 뿌리 깊은 자격지심이 상황악화에 크게 일조했지요. 상처 입은 나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겨냥한 가장 비열한 칼을 빼 들었어요. 그러나 그 칼에 찔린 것은 상대가 아닌 바로 나였어요. 내 의도와 달리 그것은 갑질로 변질 되었고 저는 주변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어요.

 

물론 제 잘못이 큽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선제 조치했어야 했고, 문제가 있다면 이성적으로 처리해야 했고, 내 선에서 해결 못 할 일이라면 상급자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은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고요. 그때 당시에는 억울하고 수치스러운 마음뿐이었어요.

저는 벽지 면사무소로 좌천되었답니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게 되었어요. 길고 지루한 터널같은 겨울이 끝나갈 즈음 이곳을 잠시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 없고 적당한 명분을 찾던 차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 파견이 눈에 띄었지요. 평창이라면 그리 멀지 않고 경비도 지원받을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지요.

 

그렇게 20172월 말 저는 평창이 아닌 조직위 강릉 사무소에 배치되었답니다. 경력 25년 차 중간관리자급이었던 저는 올림픽조직위에서 매니저급 평직원 게다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팀에서 막내 겪인 서무업무를 맡았어요. 불만은 없어요. 그동안 팀장이라는 위치가 너무 부담스러웠던 탓에 잡다한 일이나 처리하면 되는 상황이 차라리 속 편했지요. 게다가 천여 명이 넘는 직원은 서로 잘 알지 못하고 피차 관심도 없어요. 고향에서 늘 발가벗겨진 듯 타인에게 노출되며 지내온 제게 이런 익명성은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하루 종일 조용히 해야 할 일 하고 퇴근하면 숙소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지요.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요. 좌천 인사가 타인의 벌이라면 강릉에서의 고립은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벌이자 곧 치유의 시간이었어요.

저는 늘 남을 의식하고 타인의 평가에 목말랐으며 그것을 위해 기꺼이 나의 수고와 손해를 감수했지요. 그것은 선함과 배려를 가장한 책임 회피이자 비겁함이었을 거예요. 주변에 신경 쓸 게 없어지자 비로소 저는 필사적으로 입고 있던 거추장스러운갑옷을 벗어 던질 수 있었어요. 내게 중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만 생각했어요. 실로 오랜만에 오롯이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답니다.

 

강릉에서의 일 년은 확실히 좋은 시간이었어요. 고향에 있었다면 평생 알 수 없었을 일들,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경험하고 만났으니 손해 볼게 없습니다. 수많은 사연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올림픽도 무사히 끝났고요. 작디작은 부분을 담당했던 저에게도 성공한 올림픽에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덤으로 주어졌어요.

이제 강릉사무소는 철수하고 평창 주사무소로 이동합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대다수 직원은 복귀 또는 퇴사했지만 저는 복귀하지 않았어요. 아직 좀 이르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 보다 귀향을 전제로 한 방랑의 맛을 알아버렸거든요.

상처 입고 도망치듯 왔던 제게 먼저 손 내밀어 주고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 강릉에서의 일 년을 이야기한다면 정말 할 얘기 많을 것 같아요. 늘 건강하세요~~

  

 

  • profile
    korean 2019.04.30 21:47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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