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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쓴다. 글을


나는 쓴다. 글을.

 

  고작 몇 십만 원의 상금 앞에서 나는 벗겨질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 벗겨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즐겁고 좋다고 쓰는 글은 내게는 자긍심이었고 자랑이었다. 그 수준이 어찌됐든 간에 상관없었다. 예술 작품은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붓 또는 펜을 드는 작가의 일생까지도 포함하여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 작품들은 단돈 몇 십만 원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도 벗겨질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글은 수필이 아니다. 그래, 소설이다. 알고 보길 바란다. 그러니까, 내가 당장 내일의 밥값을 위해 발가벗겨져 암울한 학창시절의 감성에 젖어 들어도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나는 자신감과 별개로 창피함도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째 문단까지 썼으니 이쯤 되면 주인공을 제시해 볼까 한다. 글이 너무 지루해지는 것은 원치 않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제시할 주인공은 이다. 이름은 그래, 하나라고 하자. 이하나. 3남매의 중 가장 큰 딸에게 지어준다면 참 적절할 것 같은 이름의 평범한 주인공. 이미 진부해져 버린듯하여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의 예상대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이하나는 대학생으로, 가면 놀이를 참 좋아하는 학생이다. 알록달록한 가면들을 쓸 때면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이 행동까지 바뀌곤 한다. 하나의 방에 나열되어 있는 몇 가지의 가면들은 자주 쓰는 순서대로 방문과 가까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문을 오갈 때마다 발치에 치일 정도로 늘 가까이 두는 녀석이 바로 연한 분홍색의 웃는 얼굴 가면이었다.

 

  이 가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웃는 낯이라 눈이 반달로 접혀있어 가면을 쓰고 나면 앞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는 괘씸한 녀석이다. 쫙 찢어진 입꼬리 덕에 코는 동그랗고 납작하게 늘어져 있으며 웃느라 상기된 듯 광대엔 발그레한 홍조가 붙어 있다. 하나가 이 가면을 쓰고 주로 하는 말은 괜찮아.’고마워였다. 참 호구다운 말들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이 가면을 얼마나 써댔는지 손으로 잡는 턱 끝부분이 까맣게 물들어 닳아 있는 것을 보니, 이하나는 그냥 호구가 맞았다.

 

  물론 본인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참 영리하고 멍청한 녀석 같으니.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자신은 이 핑크색 낡은 가면을 쓸 때가 가장 마음이 편했고 가끔 쓰는 다른 가면에 혹시 자신의 연기가 완벽하지 않을까 봐 불안해했다. 마치 자신이 연기자라도 된 듯이, 관객도 없는 무대에서 오그라드는 짓을 하는 것이 참 우스울 뿐이었다. 이는 연기자인 동시에 감독과 관객까지 오가는 이하나 자신에게도 같은 생각으로 다가왔다. 그 때문에 어느 가면을 써도 느껴지는 괴리감에 하나는 매번 힘겨워했다. 가면을 벗으면, 그때엔, 자신의 눈이며 코며 할 것 없이 전부가 이미 가면의 모양에 맞춰 변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쓰는 것이 빨간색의 화난 가면. 일자로 꾹 다물린 입과 고저 없이 평평한 눈썹 말고는 전부 평범한 얼굴의 가면으로 사실 노란색이나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면 꽤 멍청한 얼굴이 아닐 수 없었다. 화난 가면.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니 직접 말해 보자면, 이 얼굴은 길길이 날뛰면서 모든 감정을 폭발시키는 의 느낌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먹는 가면이었다. 화를 비롯한 모든 감정을 그대로 꾹 눌러 삼키는 가면. 그 때문에 입은 조개처럼 꽉 다물려 있고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애매한 모양새의 눈썹으로 멍청히 앞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하나가 두 번째로 자주 쓰는 가면이었다.

 

  어느새 가면을 자랑하는 글이 된듯하여 뒤늦게나마 사과를 하고 싶다. 또한 앞선 글을 고치고도 싶다. 이리도 은유를 못 하는 글이라니. 내 글은 상한선이 십만 원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 다음 세 번째로 자주 쓰는 가면은 눈꼬리와 눈썹이 축 처진 회색의 가면이었다. 표면에는 식은땀 같은 하얀 잉크가 반점처럼 찍혀 있고 입술은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가면은 화를 내는 가면 뒤에 꼭 이어 쓰고는 하는 녀석으로, 이하나의 찌질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얼마나 찌질하면 화를 낼 때마다 곧바로 후회하며 미안한 마음에 사과도 못 하고 있겠는가. 딱 그렇게 곤란할 때에 숨어버리기 좋은 가면이었다. 사실 이하나는 이 가면을 쓸 때면 정말 미안하여 미안한 마음조차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눈썹이 팔자로 휘어진 이 작은 녀석 대신에 자신의 온몸을 가려줄 수 있는 바윗덩이 같은 가면이 있다면 냅다 달려가서 샀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하나의 연기엔 그런 표정이 없었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수많은 작가는 고민을 한다. 이는 멋진 연기자인 하나양도 똑같았다. 하나는 점점 지쳐가는 중에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나는 이 가면들을 제대로 된 때에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일까.

  자연스럽지 못하다면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게 될까.

  자연스럽다면 사람들이 보는 나는 내가 맞을까.

  사실 이하나라는 이름은 이 가면들을 쓴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것들을 계속 써야 할까.

  더는 떼어낼 수 없게 되어 버린 걸까.

  내가 쓰는 이것들은 정말 내가 원하는 연기가 맞을까.

  잠깐,

  원래 모두,

  이렇게 사나..?

 

  이것이 그 역겨운 순환의 띠였다. 한심하고 찌질한 이하나. 답이 없는 물음만 던지다 문득 바라본 단정한 현실에 또 좌절하겠지. 사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이하나처럼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서. 발가벗겨지기 위해서.

 

  인간은 소라게가 아니라서 변하는 몸뚱어리에 맞춰 소라 속으로 숨을 수가 없다. 참 멍청하게도 이 이하나과의 소라게들은 껍질 속의 살이 썩어 문드러질 때쯤에야 숨을 쉬려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온다. 사실은 밖의 공기가 훨씬 상쾌한 것을. 멍청하게도.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자조적인 수필이 아니다. 다행히도 나는 이미 껍데기를 버린 지 오래였다. 이것이 수필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스스로 판을 짜고 연기와 감독을 하는 당신의 이야기에서 당신은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아직도 젊은 당신에게 이렇다 할 해결책을 줄 수 없다. 그저 내일의 밥값을 위해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것 봐라, 멍청한 이하나.

 

  밖은 이리도 밝고 따스한 것을, 너는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구나







2. 나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나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방송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동물은 동정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죠. 강한 자만 살아남는 야생의 세계에서 그런 감정은 가장 쓸모없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치지요.’

 

  최대한 줄였던 소리가 담담히 어둠 속에서 울렸다. 그 검은 목소리는 작은 내 이불 성 안을 울리기에 충분했고, 작았던 나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야생의 세계.

 

  그건 분명 브라운관 너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슨 설치류였나. 약하게 태어나 곧 죽게 될 어린 자식의 몸을 뜯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얼룩덜룩한 얼굴의 나는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실은 별일 아니었다. 사람이 가장 친한 다른 사람의 목에 손을 대었을 뿐이었다. ,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끔 하는 장난이 아닌가.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었고 이것은 정말 큰 일이 아니었다. 단지, 작았던 내가 보기엔 낯선 풍경이었을 뿐. 그때만 해도 내가 가진 감정은 번지르르한 동정심 따위가 아니었는데. 그땐 그저 놀라움, 황당함, 당황스러움. 그래 그 정도였다. 마치 남을 보듯이.

 

  분명 그랬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언제부터 평평하던 세상에 알록달록한 색이 입혀져 버렸는지, 덜 자란 나는 참 당황스러울 뿐이다. 예쁜 벚꽃이 피는 운동회 날, 모두가 소란스럽게 모여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먹을 때 홀로 그늘에 앉아 외롭지 않은 척을 했던 때. 그때였을까. 이상하다. 배는 고팠지만 나름 행복했는데. 아니면 그때였나, 아는 것을 말해 버렸을 때. 멍청하게도 곧이곧대로 말해버렸지. 덕분에 얼굴에 꽃을 한가득 피우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내가 사는 곳도 같았다. 이곳은 야생이었다.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강한 척, 아프지 않은 척을 하는 것. 이는 당연하였다. 비로소 한 명분의 몫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문득 깨달았다. 왜 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 걸까. 왜 내 세상은 색이 입혀져 버린 것일까.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었다.

 

  동물의 범위 안에 있지만, 나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었다. 참 웃기지. 야생의 환경 속에서 짐승이 아닌 인간이 살고 있다. 이것이 내가 겪는 위화감의 핵심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도 하고.

 

  번지르르한 말로 잘난 체를 하고 있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뱉고 싶다.

 

  나는 차라리 짐승이 되고 싶다.

 

  울긋불긋해진 엄마를 보며 마냥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약해 빠진 나 자신의 상황에 안주하기 싫고, 이런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에 한없이 당당하고 싶다. 그러기 힘든 이유는 하등 쓸모없는 감정이 내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나기 때문이리라.

 

  옷을 벗고 다녀도 스스럼없고 언제든 익숙한 목적이 있는, 그래, 고양이가 딱 맞다.

그리하면 더 힘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더는 아프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응모자명 : 송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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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korean 2019.03.01 14:02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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