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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15:24

어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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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동안 두 분 아버지를 잃었다. 친정아버지가 전해질 부족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무렵 시아버지는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3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시아버지가 1년 넘게 삶을 잇는 동안 친정아버지께서 먼저 세상을 뜨셨다.

  친정아버지는 의지력이 대단해서 팔순을 넘기고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는데도 일을 계속 하셨던 분이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하자 기력이 하루가 다르게 쇠하더니 혼자서는 거동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 아버지를 직장 근처 노인 병원으로 모셔놓고 퇴근길에 들렀다 나오는 일을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눈 때문에 길이 언 걸 핑계로 이틀 만에 찾아갔더니 반기시는 얼굴이 달랐다.

  “왜 이리 안 왔냐? 목을 빼고 기다렸다. 얼른 나 좀 이리로 옮겨 봐라~”

  당신을 침대 가로 옮겨 달라셨다. 내가 한 게 성이 안 찼던지, 몸을 들썩여 침대 모서리에 바짝 붙이더니 이번엔 가까이 와 귀를 대보라 하셨다.

  “저 빨간 옷 입은 두 년이 나를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아주 흉측한 년들이다. 내가 목이 더 아픈 것도 저 년들이 나를 던져서다.”

  간병인을 대하는 아버지의 말투가 몹시 당황스러웠다. 가족에겐 엄격할지라도 타인에겐 배려심이 뛰어난 분이었다. 엉거주춤 몸을 구부린 채 아버지의 푸념을 한쪽 귀로 흘리며 서 있었다.

 “의자 갖고 와서 좀 앉아라. 저기 의자 있네. 저걸 좀 갖고 와라. 얼른~”

 “? .”

 “니 손 좀 보자.....

 아버지를 부축해 드리려고 몇 번 손이나 팔을 잡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먼저 내 손을 잡으신 건 처음이지 싶었다.

 “아버지와 딸이 이렇게 손도 잡고 좋구나...... 딸이니 이렇게도 하고..... 좋구나......”

 “.......”

  이불을 덮어주려 살짝 뺀 손을 아버지가 다시 잡으셨다.

  “니 엄마가 꿈에도 통 안 나와...... 꿈에서...... 한 번 나올 만도 한데.”

  “...... 엄마가 보고 싶으세요?”

  “? 허허허..... 보고 싶지...... 보고 싶어.”

 한참 뜸을 들이다 말을 잇는데 그 얼굴이 애틋하다. 아버지께 저런 표정이 숨어 있었다니, 명치가 저릿해지며 내 입의 빗장이 풀렸다.

  “아버지, 꿈에 망자가 나오는 건 안 좋은 거래요.”

  “그래. 알지....... 근데, 안 보이는 게, 좋은 걸까?”

  한동안 말이 없다. 아버지는 굼뜨게 손을 올려 눈언저리를 닦았다.

  “내가 병원에 온지 대여섯 달 되었지?”

  “아뇨. 아직 한 달이 안 됐어요.”

  “아니다, 대여섯 달은 됐어.”

  몇 번을 우기시더니 다시 눈물을 닦으셨다.

  “이제 한 달이냐? 지겹다. 지겨워서 못 살겠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이게 사는 거냐? 니 동생 불러서 아버지 태워 집에 가자고 해~. 얼른~ 얼른 가자고 해~.”

  한참을 성화를 놓다가 살풋 잠이 드신 틈에 병실을 빠져 나왔다. 차를 재빨리 주차장에서 빼서는 속도를 높여 달렸다. 비로소 아버지의 슬픔이 내게로 진하게 옮겨왔다.

    

  할아버지 방이 낯설다. 할아버지는 참 품위가 있으셨는데, 이제 할아버지 방에 할아버지는 냄새로만 남았다.

 

  아버지의 49제를 치르고 청소를 하다가 보게 된 초등학생 딸애의 메모였다. ‘품위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혔다. 아버지의 품위를 위해 나 자신을 버려야 할 때가 많았다. 아버지와의 벽은 그래서 더 높아졌고 아버지가 치매로 품위를 잃고서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시아버지의 장례식은 슬프지만 따사로왔다. 시아버지는 열흘을 병원에 계셨고, 그 열흘 중에 꼭 하루를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돌아가셨다. 의식이 있는 동안에는 난 아직 멀었다. 난 아직 끄떡없어.’라고 호탕하게 말씀하셨다는데, 내게만은 그러지 않으셨다.

  따릉따릉. 11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송신인을 확인하는 순간 불안감이 먼저 튀어 올랐다.

 “아주버님! 혹시, 아버님 돌아가셨어요?”

 “~ 제수씨. 그렇게 됐습니다.”

  며칠 전, 시아버지의 상태가 안 좋아 요양원으로 옮겼으니 주말에 한 번 다녀가라는 시숙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아버지 상태가 많이 안 좋네. 영양제를 놓아서 기운을 좀 차렸긴 한데, 이제 어려울 것 같다. 아버지랑 옛날 얘기하고 한참 떠들었더니 쉬어야겠다고 그만 가보란다. 니는 주말에 그냥 쉬어라. 애들 기말고사 끝나고 같이 내려오면 안 되겠나.”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는 남편은 아버지를 잃을 슬픔 때문에 독한 술을 들이부었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걱정스럽게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데 시숙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다들 왔다 갔는데 제수씨도 한 번 다녀가시는 게 안 좋겠는교? 아버지가 아직 끄떡없다고 하시는데, 의사는 준비하라고 하거든요.”

요양원의 중환자실은 넓고 조용했다. 바로 앞에 휴게실이 있어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정원이 보이고 어디에서도 다급한 죽음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시댁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더니, 동생 분이 온다고 해 기다리고 있으니 다녀가라고 하셨다. 혼자 누워 계신 걸 보고 일찍 올라가기도 죄송스럽고, 그냥 서 있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아버님, 저와 둘째만 왔어요. 큰애는 시험 끝나면 데려올게요. 큰애 보셔야 하니까 아직 가시면 안돼요. 90까지는 사신다고 하셨잖아요. 아버님 약주 하시면 제게 전화해서, ‘I can do it! 아버지는 아직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아버님, I can do it! You can do it! 하셔야지요.”

  “이제 그만 됐다. ~ 살았다. 이만하면 오래 살았다. 구십은 무리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렇게 정신도 맑으신데, 아직 아까우세요.”

  “됐다. 다 살았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고맙다~”

  계속 말씀을 하시는데 가래가 심하게 끓어서 더 이상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코에 낀 산소 줄도, 숨을 쉬는 것도 다 불편해 보이는데 얼굴은 뜻밖에도 평온해 보였다.

  “할아버지 손이라도 잡아드리면 어때? 외할아버지에게 한 것처럼. 기도를 해 드려도 좋고.”

  내가? 왜 내가? 엄마는?”

  딸애는 선뜻 내켜하지 않더니 한참 만에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늘 유쾌하셨지만 아이를 살갑게 대하지는 않던 분이었다. 어색한 얼굴을 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딸애가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다. 나는 주섬주섬 이불을 헤집고 시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시아버지의 말쑥한 다리에 친정아버지의 휘어지고 상처투성이였던 다리가 겹쳐졌다. 코끝이 시큰거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발을 주무르는 일에 더 열중했다.

  이틀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60여년을 함께 한 동지를 잃었다며 목을 놓아 우셨다.

  아이고, 미안해서 우짜노. 내가 옆에서 돕기가 힘들다고 병원에 있으라고 했는데. 아직 안 죽는다고 끄으떡읍다고 캤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집에 댈꼬 있는 긴데. 아이고, 내 원망하면 우짜노. 죽는 게 그리 싫다 캤는데 무서워서 혼자 그 길을 우짜 갔을꼬. 아이고, 내가 미안해서 우짜노.”

  시어머니의 심한 자책이 걱정스러웠다.

  “어머니, 고정하세요. 아버님이 가실 걸 예상하고 있으셨어요, 제가 요양원에 찾아갔을 때, 이제 다 살았다고 며칠 안 남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뭐라꼬? 그래? 내한테는 맨날 끄떡읍다고, 어제 저녁까지도 그캤는데, 야들한테도 다 끄떡읍다고 캤다는데, 니한테는 그랬나? 아이고! 이 양반이 죽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농담을 했나보네. 아이고, 이 양반이 날 위로한다고 그랬구나. 죽는 줄 다 알면서도 날 위해 그랬구나.”

 “아버님이 아주 깨끗하고 평화로와 보이셨어요.”

 “그렇지? 맞다 깨끗했다~ 얼굴도 평안했지? 고맙다. 내가 평생 짐을 지고 살 거였는데 니가 나를 살렸다. 됐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의 추억을 끄집어 내 웃다가 울다가 하셨고, 가족들은 어머니 옆에서 같이 웃고 울면서 장례를 치렀다. 햇살 가득한 산등성이에 아버님을 모시고 내려와서는 아버지가 마련해 준 식사이니 맛있게 먹자며 다함께 깔깔거리며 밥을 먹다가 또 울었다.

 

  친정아버지의 마지막 두 달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에게 들려줄 말이 많았다, 자식들에게 정을 잘 주지 않던 아버지, 딸이라고 설움을 주었던 아버지, 더구나 첩까지 두어 어머니를 서럽게 했던 아버지에게 평생 서운함을 안고 있던 형제들은 믿을 수 없어 했다.

 “아버지가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었다는 걸 알았으니 잘 보내드려야지. 엄마 옆에 가서 행복하시라고. 너는 좋았겠다. 아버지의 속 얘기를 직접 들었으니.”

  언니의 말이 맞았다. 의식을 놓아가면서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듯했다. 어떤 때는 회한이 많은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으셨고, 어떤 때는 요구르트를 숨겼다가 손에 쥐어주셨다. 당신이 자식들에게 왜 애정표현을 못했는지, 이제 와서 그게 얼마나 후회되는 일인지 눈물을 훔치며 고백하기도 했다. 내게는 그런 날들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시아버지의 병문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딸애가 말했다.

  “엄마, 내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자꾸 나를 쳐다보시는 거야. 할아버지 눈이 내려앉아서 눈동자도 안 보이고 나도 쑥스러워서 마주 보진 못했는데, 느껴졌어. 할아버지가 고마워한다는 게.”

  “그랬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나쁘지 않았네?”

  “.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상하게 편해지더라고. 외할아버지는 이쁘다고 하고 용돈도 막 주시고 괜찮았는데 할아버지는 안 그랬잖아. 근데 마음이 풀렸어, 오늘 온 거 잘 한 거 같아.”

  “고마워라. 엄마는 네가 옆에 있어서 덜 외로웠어. 나 혼자 왔더라면 많이 슬펐을 거야. 함께 와줘서 고마워.”

  딸애의 얼굴에 기쁨이 차올랐다. 내 마음도 덩달아 부풀었다. 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주저하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 그것이 내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두 아버지를 보내고서야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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