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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17:09

회한

조회 수 22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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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가 들뜨던 성탄절, 12 25일에 아버지가 85년의 구차한 삶을 마감했다. 난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형과 두 여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친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 형은 몰라도 두 여동생은 눈물깨나 흘렸을 것이다. 아마도 그 눈물 속엔 슬픔과 회한, 원망과 아쉬움 등 복잡한 여러 감정들이 어우러져 있었으리라. 하지만 확신하건대 그 복잡한 감정들 속에 축하의 그것은 들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비단 한국인 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보아도 죽음을 축하하는 경우는 없을 테니 말이다.
 
부친이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새 생명이 태어났을 것이다. 여건 상 그렇지 못한 경우를 배제하고 대개의 신생아들은 가족과 친지들의 기쁨과 축하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게 꼭 축하 받을 일이기만 한 걸까? 자궁 속 태아도 생명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위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해서 탄생, 즉 자궁으로부터의 놓여짐은 곧 고행의 시작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탄생이 축하 받을 일만은 아니라는 다소 엉뚱한 논리를 펼치는 것이거니와 그 연장선 상에서 죽음, 곧 고행의 마감이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탄생과 죽음에 대한 축하와 애도가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수한 돌팔매를 부를 섣부른 논리일 수도 있겠지만. 

21년 만에 뵙는 부친은 참 많이도 변해 있었다. 훤칠하진 않았어도 알맞은 키에 배도 좀 나오고…, 당당하던 모습이 마지막 인상이었는데…. 두 번째 뇌경색 후 병상에 누워 계신 모습은 다른 사람 같았다. 피골이 상접한 몸에 볼마저 움푹 패여 광대가 도드라지고뭣보다 예전의 당당함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반가움이나 설렘 따위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21년만의 재회를 어줍잖은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깡마른 손을 잡고 있는 동안 이내 눈물이 차 올랐다. 일그러진 웃음 사이로 부친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순간 부친의 머리 속엔 무슨 생각이 들어 있었을까? 말년에 당신의 실패를 답습하는 자식에 대한 안쓰러움과 그 자식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한 당신 삶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슬그머니 잡은 손을 놓고 화장실에서 소리 없이 한동안을 울었다.

 그 뒤로 두 번을 더 뵈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부친의 죽음은 생각보다 빨랐다. 당신 스스로 삶의 의지를 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거기엔 분명 21년의 타국생활을 포함해 25년간의 가장 자리에서 무일푼으로 퇴출당한 못난 자식의 초라함이 힘을 보탰으리라. 딸들의 입을 통한 자식의 초라한 귀환에 대해 부친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첫 재회의 순간 부친이 보인 반응은 자식의 면구함을 충분히 덮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준비하고 포용했으면서도 막상 부친은 그 자식이 희망을 말해 주길 은근히 바랐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랬는데자신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자식의 작은 그릇이 보이는 순간 부친은 그만 스스로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는지 모른다.
 
정면으로 문제에 맞설 용기는 없으면서도 문제를 만들지 않을 노력조차 없이 55년을 무위도식해 온 아웃사이더가 함부로 말 할 수는 없지만 부친의 삶은 질곡의 역사였다. 가난한 과부의 세 아들 중 둘째였던 부친은 장남에게만 올인했던 모친 덕에 어려서부터 신문과 우유배달 등을 통해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다소 이기적이었던 장남은 제 살기 급급했고, 가정 경제와 홀어머니 봉양은 온전히 부친 몫이었다. 가진 건 없었지만 부친의 근면성실함은 주변의 좋은 평판을 얻었고 당시 국영방송국이었던 KBS입사와 전주 유지의 사위가 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부친은 사 남매 자식들에게 적지 않은 자부심을 심어 주었는데, 이를테면 시내 오가는 길에 남산의 중앙방송국 앞을 지나며 당신 근무지를 가르쳐 준다든지, 누군가를 만나 명함을 주고 받을 때 부친의 명함을 받은 그 사람이 어이쿠! 좋은 데 계시는 군요하며 한번 더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인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뿌듯했던 건 부친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ABU(아시아방송연맹) 대상 수상자라는 점이다. 지금의 위상을 갖춘 대한민국에서 자라는 어린 세대들에게는 이런 것들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게 이상한 일일 수 있지만 40여 년 전의 어린 세대들에게는 충분한 자부심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심어 준 이런 자부심들과는 별개로 부친의 방송국 근무는 가정경제를 책임지지 못했다. 큰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한 빚을 고스란히 떠 안은 부친은 상당기간 월급이 원천차압 당했었고 그 기간 모친은 할 수 없이 친정에 손을 벌려야 했다. 모친의 수고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고 사 남매 양육 외에 큰집 조카 둘의 양육까지 한동안 떠 맡아야 했다. 이후로도 부친의 먼 친척 동생뻘이 되는 대학생의 수발을 드는 등 모친의 수고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부장적인 외조부 밑에서 부녀자의 행실을 교육받고 자란 모친은 이 모든 고행을 말없이 인내했는데 철없는 자식은 그 수고를 당연한 걸로 알았다.

그런데 그 수고를 당연시한 사람은 철없는 자식들만이 아니었다. 40대 중반에 이른 부친이 그만 바람을 피운 것이다. 다른 아내들에 비해 몇 곱절의 수고를 더한 조강지처에 대한 도리는 결코 아니었을, 그 잘못 끼워진 단추를 부친은 끝내 바로잡지 못하고 업고 다녀도 시원찮을 금쪽같은 아내에게 속병과 한을 안겨주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대한민국에서 40대의 직장인은 고 위험 군에 든다고 한다. 위로 가는 길은 좁고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고, 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한다. 부친도 그런 스트레스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실제 당시 승진에서 누락된 부친은 동기들보다 한 등급 아래의 근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 한들 외도로 눈을 돌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부친의 삶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건 80 5공 정권의 언론 통폐합이었다. 26년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 나온 그 낭패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은 시시각각으로 부친을 옥죄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이미 부친은 건강한 심신이 아니었다. 조강지처를 박대하고 잘못된 길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삶이 잘 될 턱이 없었다.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며 부친의 삶은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그리고 그 나락의 정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부친의 삶을 구차했다 표현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버렸다고는 못할지라도 조강지처를 박대했던 20년 세월과 그 조강지처 사 후의 20년 세월까지 인생의 후반부를 부친은 첩과 그 소생을 위해 살았다. 노구에 이렇다 할 수입이 있을 리 없다 보니 본처 소생의 자식들이 매달 보내는 약간의 용돈은 전부 첩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80노구가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뇌경색을 맞았다. 그러나 정작 2차 뇌경색 이후 자리보전한 부친을 거둔 건 형과 두 여동생이었다. 부친은 인생 후반부를 올인한 첩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불혹의 시점에 저지른 잘못을 되돌리는 대신 부친은 업보로 여기고 책임지는 삶을 택했다. 그러나 80노구에 병까지 얻어 책임감의 주체에서 객체가 되는 순간, 40년 전의 잘못이 엉뚱한 부메랑으로 당신을 찾은 것이다. 이런 연유로 부친의 삶을 구차했다 하는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부친의 삶의 마감이 축복받을 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 책임감의 이면에는 조강지처에 대한 당신의 도리를 장성한 자식들에게 부탁하는 믿음이 분명 있었으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부친의 소박한 바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는 말처럼 모친의 삶이 딱 그 짝이었다. 본가와 첩의 집, 두 집을 전전하던 부친은 어느 순간부터 아예 첩의 집에 눌러 앉았고 모친은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혼기마저 놓친 막내딸과 갓 결혼한 둘째 아들 부부와 함께 살았다. 젊어서 한 그 모든 고생이 여전히 모자랐던 것일까? 미욱한데다 사람 보는 눈까지 없던 자식은 어느 날 여편네의 꾐에 빠져 이민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 한번 남편에게 버림받은 모친을 그 자식이 다른 이유로 한번 더 버렸던 것이다. 그 이듬해에 모친은 천하의 불효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다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고작 60수도 채우지 못하고….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는 시앗에게 조차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속으로 삭이며 살던 유약한 성정의 모친이 그나마 의지하고 살던 자식의 이민 말이 오가는 내내 별다른 내색이 없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볼 수 있냐며 끝내 눈물을 보인 건 자식 배웅 나온 공항에서였다. 그 애절함을 택도 없는 큰소리로 눙친 자식은 호언과는 달리 모친의 임종 못 지킨 걸 포함해 20년 세월을 자식이나 오라비의 도리를 외면하고 살았다.   
 
모친의 다소 이른 듯한 죽음에는 남편에게서 받은 고통 보다 자식에게서 받은 배신감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게 아니었을까? 모친은 마지막 순간까지 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며 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자식의 도리를 내팽개친 자식이 잘되면 그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알량한 꼬임에 빠져 자식의 도리, 오라비의 도리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 이 자식은 결국 이민 21, 결혼생활 25년 만에 무일푼의 초라하고 쓸쓸한 혼자만의 귀국을 하고 말았다. 돌아가신 양친이나 형제들에게도 잘한 바가 없지만 부친이 주었던 것 같은 자부심조차 두 딸에게 하나도 주지 못하고 세월만 죽이고 있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

  • profile
    korean 2020.02.29 19:28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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