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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


  만나기로 한 날이 3일이나 지났지만, 아직 연락이 없다.  첫 만남의 두근거림과 설레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4일째 저녁식사 후,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익숙한 아픔이다. 동생들의 걱정스런 눈빛을 잠재우며, 나는 말했다. "일단 화장실 가보고 올게." 화장실을 가려면 겉옷을 입고, 신발도 신어야 한다.

  역시 똥배다. '저녁에 먹은 떡볶이가 양이 많았나?'안심한 듯 동생들은 잠이 들었고, 시계는 또 오늘을 넘기나 싶었는데...

심상찮은 기운이 배 주위를 맴돈다.


  위, 아랫배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 발상지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누우려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무래도 기다리던 연락이 온 것 같다. 이정도야 뭐 견딜만하네. '임신과 출산'잡지책의 뒷부분을 펼쳤다. 규칙적으로 배가 아프기 시작하면 병원으로 가라고 적혀있다.

'내 몸이 규칙적이어야 한다고?'

그것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규칙이 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나는 시골집에 와 있었다. 모천 회귀성 물고기 연어처럼. 물론 친정에 와도 도움을 줄 만한 어른은 없다. 홀로 계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떠난 오빠, 그리고 결혼 안 한 철없는 여동생 둘, 나에게 오로지 출산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책을 쓴 저자 뿐이다.

 

  사실 우리4남매 모두 아버지가 직접 집에서 받았다고 늘 자랑 삼아 말했다. 기억에 없는 엄마도 나를 만나기 위해 여기, 이 방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겠지.

  지금 아무도 만날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나와 아기 그리고 엄마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외롭지만은 않다.

'그래, 난 혼자가 아니야.'


  벽시계를 바라보니 밤 11시 50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자다 깬 목소리로 당직 간호사가 10분 간격으로 배가 아프면 오라고 한다. 참, 말이 쉽다.

  볼펜과 종이를 꺼냈다. 일어나기도 엎드리기도 힘든 상황, 옆으로 몸을 반쯤 뉘인 채로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웠다.

허리가 한결 편안하다. 누운 채로 한쪽 팔을 펼쳐서 내 얼굴에 팔베개를 했다. 그 상태로 왼쪽 눈을 아래로 향하니 바닥에 축 쳐진 배가 보인다. 뭔가 일을 낼 것 같다.


  오른쪽 눈을 희번덕 올려서 머리맡에 있는 종이에 배가 아플 때의 시각을 적었다. 종이에 볼펜 똥 자국이 콕 찍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규칙적인 10분 간격을 내 몸이 반응하기를 기다리며 밤새 시계 보고, 종이에 적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진통과 무통 사이에서의 고민의 흔적들을 남기고 싶었다.

  몇 초간의 고요는 나를 잠으로 빠져 들게 했다.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 오는 것처럼, 그렇게 무통과 진통이 무작위로 찾아왔다.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다. 보 고 싶 다. 엄마. '

 

  영원한 건 없다. 어김없이 새 날은 밝아왔고, 화장실에 가 보니 이슬이 비치기 시작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오는데, 화장실 앞 우사에 어미소가 되새김질을 하며 나를 '뻐이'쳐다본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병원 갈 시간이 되었군.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뭐라도 먹으려고 동생들을 깨웠다. 비상소집에 당황한 동생들은 오히려 차분한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언냐, 이번에는 확실하나?"

이것들이 밤새 역사가 이루어진 것도 모르고...


  병원 분만대 위, 이불 없는 침대에 혼자 누웠다. 눈에 보이는 익숙함이라고는 없다. 정신없이 바쁜 간호사에게 라디오를 틀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간호사도 싫지 않은 얼굴이다. 주파수가 내가 좋아하는 곳을 향했다.

"FM 골든디스크 김기덕입니다."

늘 그 시간을 지켜 준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힘듦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잠시 또 밀려가기를 수차례, 벽시계는 분명 가고 있는데 왜 나의 시간은 멈춰있는 걸까. 거친 숨소리에 입은 다물어지지 않고, 입술은 바짝 건조주의보, 안구는 마비가 온 것 처럼 초점을 잃었다. 온몸의 감각적 통증이 나를 후려쳤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간호사가 손을 잡아 주며 최후의 발언을 했다.

"힘주세요. 올~치, 올~ 치."


  바로 그 순간, 귀에 익숙한 남자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나에게 속삭였다.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노래입니다."

  희미한 노래 소리와 함께 힘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목덜미의 땀이 조용히 흘러 내리며 파도가 자자든다.









휴지(休紙)



  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찾아드는 혼자만의 시간,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아침에 정성들여 했던 화장의 흔적들은 온데간데없고, 입술은 또 이게 뭐람. 휴지를 뽑아서 천천히 마저 닦는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정신 줄을 놓아본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속삭였다.

'너 오늘 좀 지쳐 보이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가 물었다.

'너는 누구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종이지. 참 좋은 이름이제. 사람들은 나를 그냥 휴지라고 불러. 누군가에게 휴식을 주는 종이인데, 정작 그 사전적 뜻은 뭔줄 아나? 쓸모없는 종이, 밑을 닦거나, 코를 푸는 데 허드레로 쓰는 얇은 종이라고 해. 실컷 일하고 좋은 소리 못 드는 격이지.

또 버릴 때는 어떻고, 꼭 구겨서 버려요.」


  순간, 나는 립스틱 닦았던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재미있는 상상을 해 봤다. 만약 휴지가 없다면...


  임신했을 때, 남편과 함께 마을버스 첫차를 타고 재래시장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데 급똥이 오고야 말았다. 이른 아침이라 가게 문은 모두 닫혔고, 결국 한참을 걸어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갔다. 임신 중이라 뛰지도 못하고, 남편은 시장 본 봉다리를 들고 먼저 가라고 손사래만 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늘이 노랬다. 출산의 고통도 이것만 하겠는가. 그날따라 나는 왜 하필 빵바지를 입고 갔을까? 거기에 잠바까지 걸치고, 사람구실 못할 번 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고 생각했을 때, 화장실 안에는 휴지가 없었다.


  재밌네. 상상하다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거울 속의 나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휴지야, 나는 너를 결코 허드렛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리고 너를 아주 아끼는 사람이 또 있단다. 그 사람은 지금

회식 중이야.'


  남편은 군인이다. 군인정신은 꼭 어문 데서 발휘한다. 15평짜리 관사에 살 때의 일이었다. 식탁 놓을 공간이 없어서, 작은 상에 네 식구가 빙~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먹다가 무엇을 흘렸는지, 두루마리 휴지 옆에 앉아 있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늘아, 휴지 두 칸만 줘."

아무 생각 없이 휴지를 스륵스륵 손으로 몇 바퀴 돌려서 건네는 딸에게 남편은, 입안의 밥알을 튕기면서 화를 냈다.

"이게 두 칸 이야?"


  진정한 군인 정신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딸은 울고, 밥 먹는 내내 남편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휴지를 칸칸이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만해. 우리는 사병이 아니라 민간인이야."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나는 휴지 한 칸의 점선을 자른 다음, 그것을 다시 두 장으로 나눠서 남편에게 건넸다.

"자, 휴지 두 칸."

  조금 얄부리하지만 분명 휴지 두 칸이다.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오면, 우울감에 빠져보자. 휴지에게도 말을 걸어보자. 그러다 보면 곧 활기를 되찾게 된다. 슬픔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최인숙.

woideaa@daum.net

010-5088-4417



 









  • profile
    korean 2017.04.30 20:44
    수필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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