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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14:58

Coda의 열차-1

조회 수 186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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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의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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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 같이 살아가는데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들은 그걸 공감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사람들은 공감을 통해 소통하고, 이해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회를 살아왔다.

 

 

 

세상은 공감의 연속이며, 공감으로 살아가고 공감으로 발전한다.

 

 

 

공감은 3가지의 원칙에 따라 우리들에게 일어난다.

 

 

 

첫째, 자신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며

 

 

 

둘째, 남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셋째, 서로를 연결한다.

 

 

 

 

공감의 원칙에 따라 발생된 공감은 서로를 이어주고

 

 

 

 

신뢰라는 이름의 다리를 만들게 된다.

 

 

우리의 세상은 그런 무수한 다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개수를 제대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다리들은 생겨나고 사라진다.

 

 

 

 

이렇게 당연하게 존재하는 공감의 세상 속에서

 

 

 

 

공감이 없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단 하나 분명한 건, 그것은 절대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

 

 

 

 

 

[~♩♪~~]

 

 

 

차분한 느낌의 외국 팝송이 헤드셋을 넘어 귓가로 들려온다. 요즘 한국에서도 한창 인기몰이 중인 팝송 밴드 ‘tear's reconciliation' 의 신곡이다. 차분한 음색을 유지하면서도 격정적인 부분을 잘 표현해 낸 이 노래는 세간에서 감정을 잘 담아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이 노래를 듣고 감동적이었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sns와 팬카페 등에도 많이 올라와 있고 내 주위에서도 이 노래를 극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가가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래에 관심이 가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학교 근처 음반 가게에 들러 이 노래를 찾아 듣고 있다.

 

 

조용히 헤드셋을 벗어 걸어 놓은 뒤 가게를 빠져 나왔다. 역시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음색은 괜찮았던 것 같다. 듣기에 거북함도 없었고, 리듬도 마음에 든다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남들이 느꼈다던 그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시험도 끝났는데 진짜 여기서 이럴 거야?]

 

 

 

[그럼 이번에 xxx에 새로 생겼다던 화장품 가게 가보자. 지금 행사 중이래!]

 

 

 

[오 진짜!? 나 마침 BB 떨어져서 살려고 했는데, 가자가자!]

 

 

 

웃음이 가득 머금은 채 유쾌하게 달려 나가는 또래의 사람들을 보며 가끔씩 생각하고는 한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란 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아주 어렸을 때, 가족이 사고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단순한 교통사고였지만 그 충격은 엄청 났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상대편까지 포함해도 나 혼자. 모두, 그때 이후로 눈을 뜨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일이 엄청난 충격이었는지, 그 사고 이후,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병인 것은 아니고, 의사가 말하길 정신적인 충격 때문이라고.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들과는 유형이 다르다는 말을 의사는 조심스럽게 남겼다. 자신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고.

 

 

 

그 때 이후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건, 장례식장에 놓여 있는 가족의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나를 보며 기분 나빠하며 욕을 하는 친척들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

 

 

 

나는, 친척 중 한 분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얹혀살았고,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자취를 하며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지금도 내가 돌아가고 있는 곳은 집이 아닌 자취방, 중학생 때는 생활비를 얻으며 생활했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벌면서 살고 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집을 나온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나이를 먹으면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거니와, 무엇보다 거기는 살기에 불편했다. 육체적으로가 아닌, 정신적으로.

 

 

 

 

[터벅,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덜그럭!]

 

 

 

?”

 

 

 

 

길을 가던 도중 뒤쪽의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바닥에 떨어진 cd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스 위로 ‘tear's reconciliation' 이라는 타이틀이 그 곡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잘 꾸며져 있었다. 케이스 일러스트 역시 노래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순간 무슨 cd인가 생각했다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이 cd를 빌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노래가 궁금해 cd를 빌렸고, 집에서 듣기 까지가 뭐해 가까운 음반 가게를 들렸던 것인데, 이런 상태로는...

 

 

 

어떡하지... 이거, 이제 별로 쓸모가 없는데...”

 

 

 

친구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미 노래를 들어봤고 결과도 알았으니 이 cd는 어중간하게 되었다. cd를 들어 올리니, 글자를 통해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찔렀다. 마치 쓸모가 없어졌다는 말에 cd가 항의를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자주 이런 부류의 문화를 찾아 감상하고 있지만, 결과는 오늘과 마찬가지. 꽤나 오랫동안 이렇게 해왔는데 변하는 게 없다면, 그것도 이젠 그만둬야 하나?

 

 

 

 

뭐가 쓸모가 없는데?”

 

 

 

 

“?”

 

 

 

 

순간 머리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같은 반 친구이자 소꿉친구인 지은이가 허리를 반쯤 숙인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다란 노란 색의 머리카락이 귀를 간지럽혔다.

 

 

 

 

너였냐

 

 

 

뭔가 실망하는 말투다?”

 

 

 

실망은 뭘.”

 

 

 

뭐야 약간 실망하는 말투였잖아~! 길을 가던 여자애가 너한테 말을 걸어주는 해프닝을 기대한 거 아냐!?”

 

 

 

 

확실히 널 만나는 것 보단 그런 해프닝을 기대하는 편이 훨씬 좋기는...!”

 

 

 

 

말이 끝을 달려가던 도중 날카로운 주먹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덕분에 숨이 막혀 말이 도중에 막혀 버렸다.

 

 

 

 

......”

 

 

 

 

이 놈이 소꿉친구보다 외간여자가 좋다 이거지?... 근데, ? 이거 'tear's reconciliation'의 새 앨범이잖아?”

 

 

 

내 손에 들려있는 앨범에 눈이 간 모양이다.

 

 

 

 

너 이거 샀어? 들어보게? 좋지 이 노래~”

 

 

 

산건 아니고, 친구한테 잠깐 빌렸어

 

 

 

? 사지 않고? 노래 좋지 않아? 엄청 감동적이던데

 

 

 

 

너도 좋아하나 봐? ... 노래는 좋긴 좋던데...”

 

 

 

 

약간 말끝을 흐리자 바로 눈치를 채고 지은이가 화재를 재빠르게 돌렸다.

 

 

 

 

하긴, 인기가 좋다보니 앨범이 비싸긴 비싸지. 아니면 나중에 음원사이트에서 사서 들고 다녀. 그 편이 싸고 좋긴 해.”

 

 

 

... 그래볼까 하고.”

 

 

 

 

지금은 어디 가는 길? 자취방?”

 

 

 

 

가볼만한 곳은 이미 들렸으니까, 할 일도 없고 바로 가야지.”

 

 

~, 벌써 집에 가는 건 재미없는데. 모처럼 시험도 끝났는데. 너 집에 가봤자 tv보거나 인터넷 검색하는 게 전부잖아~. 완전 방구석 폐인이네.”

 

 

놀리는 듯 한 말투로 요즘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지적하는 지은이였다.

 

 

 

꼭 그것만 하는 건 아닌데

 

 

 

 

알바는?”

 

 

 

 

오늘은 없고 대신 내일 있어. 알바생 누나가 집안 사정으로 내일 펑크 낸다나 봐.”

 

 

 

, 그럼 나 오랜만에 네 자취방 가면 안 되냐? 오늘 애들이랑 했던 약속 파토 나서 나도 할 일이 없어졌거든

 

 

 

괜찮긴 한데, 놀만한 건 거의 없어

 

 

 

괜찮아 괜찮아~. tv 보거나 만화책 보거나, 그러고 있어보지 뭐.”

 

 

 

내 생활이랑 다를 게 뭐냐?”

 

 

 

네가 그 정도 밖에 안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 빨리 가자

 

 

 

 

납득하기 어려운 말만 하고 상큼한 느낌의 미소를 지은 채 나보다 앞장서서 자취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째 걸어가는 발걸음이 나보다 더 자연스럽다.

 

 

 

 

근데 이번 기말고사 잘 봤어? 오늘 좀 어려웠지?”

 

 

 

 

글쎄, 딱히 막혔던 건 없었는데...”

 

 

 

 

우와....진짜 가끔씩 너 재수 없는 거 알아? 난 진짜 얼마나 많이.......”

 

 

 

.

.

.

.

.

.

.

 

 

*

 

 

 

 

 

으앙...망했어... 진짜 망했어... 오늘 시험 진짜 망했어..”

 

 

“.......기운내

 

 

 

 

어떻게!!”

 

 

 

 

순간 폭주하는 지은이의 목소리에 놀라 나를 포함한 길거리에 대다수 사람들이 주춤거렸다. 자취방에서 같이 점심을 먹은 뒤,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 온 시험 답안지를 보며 오늘 본 시험을 채점했다. 결과는 기상 예보와 같았다. 내 시험지에는 해님이 뜬 반면, 지은이의 수학 시험지는 장마철이었다. 거의 울상이 된 지은이가 절망하듯 소리쳤다.

 

 

 

난 이제 죽었어! 엄마가 성적표 보는 순간 난 끝장이라고!”

 

 

 

 

“...그래도, 수학만 제외하면 다른 건 괜찮았잖아. 좀 봐주시겠지...”

 

 

 

아냐... 네가 우리 엄마 성격 몰라서 그래... 우리 엄마 이거 아는 순간....... 내 등짝...”

 

 

 

 

벌써 자신이 당하는 상상을 하는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자신의 등을 쓰다듬었다. 본인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절망스럽다는 건 알겠지만, 성적을 알고 난 뒤에도 즐길 건 다 즐겼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걱정이 됐으면 바로 집에 갔으면 좋잖아. 오히려 더 혼날라

 

 

 

아니, 이 편이 더 설득력 있게 위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뜻이야?”

 

 

 

 

확실히 성적이 나쁘니까 혼나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너랑 만나고 들어 가는 게 훨씬 이득이야

 

 

 

 

그러니까 어째서?”

 

 

 

 

너랑 같이 오답하면서 공부했다고 말할 거거든

 

 

 

“!?”

 

 

 

 

너 성적 좋은 거 우리 엄마도 알고 있으니까, 모범생 도움 좀 받겠다는 거지~”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감탄했다. 나랑 만나 자취방에 갔던 것도, 결과를 알았음에도 놀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이 계획이었다니...

 

 

 

“.... 할 말이 없다...”

 

 

 

헤헤~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하여튼 못 말리는 친구라니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마지막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여기만 지나치고 나면 지은이가 사는 아파트 단지다.

 

 

 

, 그런 걸로 대충 떼우면 어떻게든 넘어가지 않겠어?”

 

 

 

어련하겠어. 불 바뀌었어. 건너 가

 

 

 

 

오케이~. 바래다줘서 고맙다 친구! 그럼 다음 주에 봐~!”

 

 

 

 

여전히 상큼함이 가득한 순도 100%의 웃음을 날리며 힘차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지은이였다. 잠깐 동안 지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돌아서려는 순간, 뒤쪽에서 지은이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 그 노래 꼭 다시 들어봐! 새 앨범! 처음에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러면서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한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자취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계속 신경써주고 있었구나... 그거.’

 

 

 

 

 

 

*

 

 

 

 

 

 

기말고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 하려는 듯 벌써 밤의 기온이 높았다. 겉에 걸치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한쪽 팔에 건채, 자취방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달은 하늘 높이 만연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 노래 꼭 다시 들어봐! 새 앨범!’

 

 

 

 

 

문득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지은이의 말이 떠올랐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친구에게 빌렸던 tear's의 새 앨범을 꺼내 들었다. 그 녀석, 중학교 때부터 이런 걸 은근히 신경써주고 있고... 가끔 보면 속이 깊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은 철없긴 하지만.

 

 

 

달빛에 비춰진 tear's 의 로고가 은은하게 빛나 보였다. 다시금 들어 달라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처럼. 그래도 지금 당장은 내키지 않았다. 사람이 감동을 받는 건 한 순간이라고들 한다. 그 한 순간은 대부분 첫 인상에서 결정이 된다고 하고, 몇 번씩 마주하며 감동을 느낀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처음 들었던 그 시점에서, 이 앨범은 감동의 가능성을 잃어버린 건 아닐지. 몇 번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듣는다고, 나한테도 감동을 느낄 기회가 찾아오기는 할까.

 

 

 

 

어쩌면... 역시 그런 거 불가능한 일은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의욕이 사라지고, cd를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뭔가 무거워진 듯한 발걸음을 옮기며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

 

 

 

 

“!!”

 

 

 

 

마음속에서 뭔가 커다란 물건이 떨어진 듯,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의식이 흔들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저절로 몸이 휘청거리고 간신히 벽에 손을 대고 몸을 기대었다.

 

 

 

... 그거다.’

 

 

 

 

이제는 별 다른 의문 없이,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일을 예상했고, 그 예상은 몇 초후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전신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더불어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침을 한번 삼키고 눈을 조심스럽게 감았다가, 그렇게 눈을 뜨자...

 

 

 

 

세상은, 네거티브 필름의 색체로 바뀌어 있었다.

 

 

 

 

“...미치겠네...”

 

 

 

 

어렸을 때부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지만, 이런 현상을 자주 겪고는 했다. 눈앞의 세상이 변해버리고, 마치 나 홀로 남겨진 듯한 극심한 외로움과 공포가 엄습해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신기하게도,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부 부정적인 감정.

 

 

 

 

나는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자취방과 반대되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치 발을 거대한 사슬로 묶어 놓은 것처럼, 다리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제발... 빨리.... 최대한...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새하얗게 변해버린 골목과는 다른, 이제는 검은 빛이 되어버린 번화가를 향해 있는 힘껏 발을 내딛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어떻게든...

 

 

 

 

<안돼.... 도망 못 가...>

 

 

 

 

익숙한...마치 벽을 긁어내리는 것처럼 어둡고 갈라지는 목소리가 눈앞을 가로 막았다. 이미 골목 출구에는, 이 네거티브 필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상적인 색채를 가진 사람이 서있었다. 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눈만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눈을 가진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내 앞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또 도망치려는 거야? 그 날의 그 때처럼?>

 

 

 

 

“........”

 

 

 

 

 

뒷걸음을 칠 생각은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걸음이 뒤로 옮겨지고 있었다. 몸은 최대한 뒤로 빠진 채,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과 서로 마주치자마자, 그 걸음마저 소용이 없어진 듯 더 이상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넌 도망가서는 안돼... 그것도 그렇잖아? 그렇게 모두를 바보로 만들어 놓고... 혼자만 외면하려고 한다는 건...이기적이잖아?>

 

 

 

 

“........”

 

 

 

 

어느새 바로 내 코앞까지 걸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의식은 격하게 흔들리고 몸 전체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 무력한 기분만이 느껴졌다. 여자는 손을 뻗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넌 늘 내가 나타날 때마다 도망을 치는 구나? 그렇게 비겁자가 되고 싶었나보네? 어쩌면 내가 알려줬던 그 순간부터... 너는 도망칠 생각만 했을지도 몰라...잘도... 그런 웃음을 지어 놓고는...>

 

 

 

아니야....도망치려고 한 게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런...이런...>

 

 

 

 

 

여자의 손은 얼굴 전체에서 조금씩, 목을 향해 내려갔다.

 

 

 

 

<나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널 따라 다니며, 한 시도 그 때를 잊어본 적이 없어. 그런데 넌... 잊어버렸니?>

 

 

 

-꽈악!-

 

 

 

 

으악...”

 

 

 

 

여자의 힘이라고, 환상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엄청난 힘이 목을 조여 왔다. 있는 힘껏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손힘이 너무 세 벗어날 수 없었다.

 

 

 

 

... 왜 언제나 나타나서 날 괴롭히는 거야? 네가 누군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진짜 모르겠다고..... 도대체...?”

 

 

 

 

<정말 기억 못해!?!!!!!!>

 

 

 

 

으아악!”

 

 

 

 

목에 가해지는 힘이 더욱 세졌다. 숨이 막혀버려서 이젠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긴 시간동안...어떻게 그렇게 외면할 수가 있어? 난 널 쭉 지켜봤는데...>

 

 

 

 

“......”

 

 

 

 

<나는 너의 환상이야.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난 네가 만들어낸 누군가가 아닌, 네가 알고 있었던 누군가라고... 난 앞으로도 계속 나타 날거야. 계속...계속... 네가 기억해 줄때까지..>

 

 

 

 

 

숨이 거의 넘어가기 직전, 거짓말처럼 환상이 사라졌다. 여자아이도, 네거티브 필름의 배경도,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식은땀을 흘린 채 골목길에서 떨고 있는 나였다.

 

 

 

 

흐려졌던 의식이 다시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금 그 환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뭘 잊어버렸던 걸까, 정말 그 환상의 말대로, 나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이유 때문에 무서워하고 있는 걸까...

 

 

 

 

 

*

 

 

 

 

 

자취방으로 돌아와 겉옷을 거칠게 벗어던지고, 무거운 몸을 방 한쪽 바닥에 쓰러트렸다. 그 잠깐 동안에 느꼈던 감정에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몸이 굉장히 지쳐있었다. 멍하니 바닥에 쓰러진 채 한참 동안을 천장 전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등은 시간이 다되어 가는지, 불빛이 조금씩 깜빡 거리고 있었다.

 

 

 

 

“....뭐였던 걸까...그건

 

 

 

 

벌써 10년도 더 된 생활이었다. 그 긴 시간동안 환상은 가끔씩 내 앞에 나타나 나에게 뭔가를 떠올리라고 강요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뇌 이상이겠거니 싶어 병원을 다녀왔지만, 의사의 진단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심리적인 문제인가 싶어 정신과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이번엔 심리사 쪽에서 두 손을 들고 내 치료를 거부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어 그런 환상을 봤겠지만 어떠한 이유로 그걸 알 수가 없다고. 어떤 이유가 무엇인지는 심리사도 모른다고 했다.

 

 

 

환상의 말을 무시했던 건 아니 였다. 환상이 나타나고, 그 문제가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오랫동안 과거의 일을 떠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과거의 일을 떠올릴려고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감이 몰려들었다. 더불어 고통스럽기 까지 한 거대한 잡음이 머리에서 울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이 짜증나는 환상은...”

 

 

 

 

과거를 떠올릴 수도, 의학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젠 나 자산도 지쳐버렸고 방법이 없는지라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막상 이 일을 또 당하고 나면,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조차 사라져버린다. 복잡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꿔 돌아눕는 순간,

 

 

-타다닥-

 

 

 

 

호주머니에서 뭔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뭐지? 무의식중으로 손을 집어넣어 물건을 확인했다.

 

 

 

 

-임모훈 귀하-

 

 

 

 

이런 문자가 적힌 편지가 내 호주머니에서 끌려나왔다.

 

 

 

 

편지? 이런 편지가 있었던가?”

 

 

 

 

분명 오늘 우편함을 확인하면서 편지는 없었는데, 거기다 원래 이 호주머니, cd가 들어 있었을텐데?

 

 

“?!”

 

 

 

 

혹시나 cd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다른 옷들과 가방을 전부 뒤져봤지만 cd는 나오지 않았다. 물건을 떨어트린 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여기 오기 전에 골목길에서도 가지고 있었고, 돌아오기까지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도둑맞았다는 생각도 틀리게 된다. 거기다가 그 자리에 남아있는 건 이 편지...

 

 

 

뭐가 어떻게 된거야... 언제 이런 게...”

 

 

 

 

편지를 다시 들어 올려 유심히 살펴봤다. 안에 어떤 것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함부로 열기가 꺼려졌다. 양피지와 같은 질감의 종이에는 요즘에는 잘 쓰이지 않는 붉은색 인장이 찍혀 있었고 내 이름이 크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 문구점에 들어가 준비한 것 같지는 않은 정성인데, 이런 게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면 눈치를 챘을 것이다.

 

 

 

설마...스토커?”

 

 

 

 

내가 모르는 사이에 cd와 편지를 교환해갔다던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데.

 

 

 

 

 

-부스럭...부스럭-

 

 

 

일단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이 정황상 필요할 것으로 보여 편지를 열어 보았다. 이상한 이물질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내용물은 당연하게도 편지 한 장이었다.

 

 

 

-!-

 

 

 

 

“?”

 

 

 

 

편지를 펼치려는 순간 그 사이로 조그마한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워보니 열차 티켓으로 보이는 종이에 이번 역 : yhtapmys’ 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이건?”

 

 

 

잠깐 생각하다가 편지를 펼쳐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있어 보이는 편지지에 비해, 내용은 심심할 정도로 간단했다.

 

 

 

 

<만약 당신을 알고 바꾸고 싶다면, 이 티켓을 끊어주세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의미 모를 편지에 이상한 티켓까지. 정말 장난 같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머리가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가장 모르겠는 건 이 편지가 언제 내 주머니에 들어왔냐는 거다. cd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솔직히 편지나 티켓 같은 건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는 이런 거, 누가 진지하게 생각이나 할까? 지금은 그런 것 보다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참을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자기 직전까지 아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다. 결국 내 스스로에 지쳐 쓰러지듯 잠에 빠질 뿐이었다.

 

 

 

 

다음 주...걔한테는 뭐라고 말하냐...’

 

 

 

 

 

그런 걱정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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