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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원일기는 2002년1월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에 걸쳐 쓴, 은유시인의 앞날이 이렇게 전개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부푼 꿈을 안고 써본 ‘미래일기’랍니다.
  즉 진짜 일기가 아닌 가상의 일기라는 겁니다.
  너무나 농촌생활을 그리워한 나머지, 너무나 도시생활에서의 염증을 느낀 나머지 말년엔 꼭 농촌으로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쓰는 전원생활을 염원하여 쓴 글이라는 겁니다.




kyc_20140715_15.jpg






[田園日記]

이른바 산청거옥(山靑居屋)이라 명명(命名)하였다

- 은유시인 -






1


***********************************************************

    아주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엔 
    어머니의 자궁 같은 농촌에로의 회귀(回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자주 드나들던
    나의 이모님 댁이 충청도 어느 시골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경상도 어느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이었을까?
    특히 기차여행 중 차창에 스쳐가는 시골풍경을 바라 볼 때마다
    쉽사리 찾지 못할 두고 온 고향처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나의 고향은 대도시이지만 
    왠지 고즈넉하고 낮게 가라앉은 시골의 향취가 
    유달리 어머니 품안처럼 그립게 느껴졌다.
    대도시의 혼란스럽고 각박한, 그리고 회색빛 범벅에 식상할 때마다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어 왔었다.
    하나도 바쁠 것이 없을 것 같은……
    누구의 간섭조차 받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마냥 게으른 기지개를 맘껏 켤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었다.
    상큼한 흙냄새와 옅은 솔잎향이 코끝을 스치고……
    참새 떼와 까치무리의 부산함이 단조로움을 일깨우고……
    낮게 드리운 안개 너머로 보고 싶은 님의 인기척이 느껴질 것 같은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었다.

***********************************************************


  2004년3월30일(화요일)

  오늘은 드디어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여왔던 시골농장 조성을 위해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땅을 구입, 내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무리한 날이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117번지 및 122번지 일대, 임모 씨 소유의 임야 17,000평과 양모 씨 소유의 전(田) 6,500평 등 도합 23,500평을 4억2천만 원에 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취득세와 등록세, 각종 채권, 수수료 및 인사치레비로 나간 돈 또한 4,300여만 원이나 되었다.

  지난 2년여, 이 땅을 사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여 왔던가? 이 현장에 열댓 번 넘게 들락거려왔고, 지주(地主) 만나 협상하길 수차례.
  카탈로그 등 인쇄물 제작은 물론, 지역신문 편집과 지역 유지들의 자서전 집필로 2억8천만 원을 모았고, 모자라는 금액은 산청농협을 통해 저리영농자금의 대출로 충당하였다.

  이 지역은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등산로 입구이자 물 좋고 공기 좋고 천혜의 경관을 지닌, 내가 꿈꿔왔던 낙원 그 자체였다.


  2004년5월20일(목요일)

  오늘 나의 농장을 꾸미기 위한 ‘마스터플랜’이 완성되었다.
  전체 조감도 및 상세 설계도면도, 그리고 입체모형도도 몇 차례에 걸쳐 손질하였고, 모든 사용자재의 사용총량과 구입단가도 조사하였다.
  전형적 한국미(韓國美)를 최대한 살리면서 지리산 기슭의 정기를 살리고자 함이 최대 관심사였다.
  ‘자연 그대로!’

  농장 전체 디스플레이는 원석과 수목, 그리고 재래농가에서 흘러 다니는 고물로 치장할 것이다. 주거가옥은 통나무로 골격을 짜고 볏짚 썰어 반죽한 찰흙으로 모든 벽면을 바를 것이다. 지붕기와도 내가 직접 빗어 구워낼 것이고, 각종 창호(방문과 창문)도 내가 직접 디자인하여 만들어낼 것이다.
 
  먼저, 나의 농장은 산청거옥(山靑居屋)이라 명명(命名)하였다. 그리고 5개 동(棟)의 통나무집마다 그 명칭을 일일이 부여하였다. 5개동은 중앙부건물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개 방향에 각각 하나씩 자리하며 중앙부건물과 긴 난간으로 연결된다. 그 중앙부건물은 공동으로 사용되는 식당, 휴게실, 응접실, 외래손님의 숙소 등이 들어서며, 제일 규모가 큰 시설이 될 것이고 지리각(智異閣)으로 불릴 것이다.
  동쪽에 위치한 통나무집은 청룡각(靑龍閣)으로, 서쪽에 위치한 통나무집은 백호각(白虎閣)으로, 남쪽에 위치한 통나무집은 주작각(朱雀閣)으로, 북쪽에 위치한 통나무집은 현무각(玄武閣)으로 각각 불릴 것이다. 이들 네 개의 통나무집은 각기 침실과 거실, 욕실이 하나씩 들어선다.

  농장입구와 각 통나무집 현관마다에 걸릴 현판부터 두껍고 단단한 재질의 오동나무 목판에 예서체로 직접 조각하여 미리 만들어 놨다. 축사도 기르고자 하는 가축의 생태에 맞게 설계하였다.
  농장 중앙에는 대형의 둥근 연못을 조성할 것이고, 재배하고자할 유실수의 수종별 조성단지도 오랜 고심 끝에 배치하였다.


  2004년7월20일(화요일)

  거의 한달 여 공사 끝에 농장 기반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두 대의 포클레인과 연인원 600여 명을 동원하여 통나무가옥 5개동이 들어설 집터와 축사가 들어설 터를 정지하고, 집터 앞으론 직경 60m, 깊이는 주변 1m에서 중심부 3m에 이르는 둥근 연못을 팠다.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으로는 낮은 지대를 메우고, 연못 축대와 바닥은 자연석을 구입하여 쌓고 깔았다.
  농장입구에서부터 집터에 이르는 300여m 거리는 폭 2m정도 되게 검은색 편마암으로 깔고, 사방 물 빠짐이 좋게 하기 위해 배수로도 용도별로 구획 지어진 표시대로 충분히 조성하였다. 또 자연석의 도난을 막기 위해 차량의 진입이 용이한 농장주위를 철조망으로 둘러쳤다.
  기반 조성공사에 4,600여만 원, 자연석 등 돌 구입비에 2,000여만 원, 울타리 공사에 800여만 원, 컨테이너가옥 구입비 400여만 원 등 도합 7,800여만 원이 소요되었다.
  두 평 남짓 컨테이너가옥은 인근마을 주민 박모 씨(58세,무직)가 농장을 관리해 주면서 사용할 거처로 사용되며, 공사기간 중 수시로 드나들 내게도 잠자리로 사용될 것이다.
  박 씨의 농장경비를 위해 3개월 된 셰퍼드 강아지 암놈 두 마리도 90만원을 들여 분양 받았다.

  항차 야산에는 밤나무 잣나무 아카시아나무 참나무 두릅나무 떡갈나무 등을 심을 것이고, 농장 울타리 쪽에는 은행나무를 뺑 둘러가며 심을 것이다. 항차 이 은행나무들이 아름드리가 되었을 때 철조망을 철거하고, 이 나무들의 기둥 사이로 펜스를 설치할 예정이다.

  농장 안에는 포도나무 단지와 사과 배 자두 감 대추 복숭아 호도 살구 앵두 등 유실수를 심을 것이다.
  그리고 집터 뒤쪽 600평 규모의 텃밭에는 사시사철 식탁에 올릴 싱싱한 채소를 가꿀 것이다.


  2005년5월12일(목요일)

  거의 보름에 걸쳐 농장일대에 3,000여 그루나 되는 각종 유실수의 묘목을 심었으며, 이에 소요된 경비는 묘목구입비 650만원과 운반비, 인건비, 장비구입 등 모두 800여만 원이 소요되었다. 물론 이들 묘목을 심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지난 1년간에 걸쳐 박 씨와 내가 기울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돌멩이 골라내기, 땅 뒤엎기, 가축분뇨 걷어 들이기, 잡초 베어들이기, 거름 만들기, 거름 분포하기 등 시간만 나면 농장에 머물며 땀 흘려 일하였다.

  인터넷사이트를 검색하여 각종 수종(樹種)의 정보를 수집하였고, 이들 나무들의 재배를 위해 구입한 책도 상당했다. 앞으로 이들 나무들이 잘 자라기 위해 더 들여야 하는 공과 노력은 또 얼마만한 것이 될까? 수시로 잡초 제거하기, 비료와 농약치기, 물 대주기, 지지대 설치하기 등 어린 나무들이 아름드리 되기까지 숱한 우리의 정성을 먹고 클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7월28일(목요일)

  거의 두 달여 고생한 끝에 첫 번째 동쪽 주거 공간 '청룡각'을 완성하였다.
  통나무집을 직접 내 손으로 짓기 위해서는 상당히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했다. 내가 목수도 아닐뿐더러 더더구나 집짓는 건축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통나무집을 전문으로 짓는다는 '사람과 주거문화'와 '산집사랑', '우드피아' 등 전문업체도 찾아다니고, 그들이 시공한 통나무집들도 그 사용재질이나 외관, 내부구조 등 요모조모 꼼꼼히 살펴보았다.
  기본설계도는 여러 설계도를 참작하여 완성하였고, 이를 내가 아는 전문건축설계자 외에도 산청군청 건축과와 충분히 의논도 하였다. 또 기와공장에 직접 찾아가 기본기와의 형태는 기존 것을 이용하되 일부 문양을 위한 틀을 내가 직접 제작하여 주고, 기와의 색채는 은청색으로 지정하여 주었다. 칙칙하거나 날리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살린 것이다.

  자갈과 콘크리트로 깊이 30cm 이상 기초를 다지고, 주 기둥이 서게 될 위치 12군데에 화강암 반석을 깊숙이 묻었다.
  양질의 찰흙을 네 트럭분 사들여 짚단을 썰고 섞어 잘 반죽한 다음, 나무틀로 가로 18cm, 세로 12cm, 길이 20cm의 규격화된 흙벽돌을 3,000여 개를 찍어 만들었다.
  정제된 통나무들을 규격대로 재단하여 구입하고, 그 이음새 부위를 일일이 끌로 파내었다. 대들보, 서까래 등도 기와의 하중을 고려하여 가장 곧고 굵은 나무를 골라 사용하였다.

  침실은 콘크리트 바닥위에 진흙을 두껍게 발랐으며, 한쪽 면은 붙박이식으로 이불이나 옷가지 등을 넣을 수 있게 대형 원목 장을 짜 넣었다. 거실은 두꺼운 자작나무판으로 마감하고 외벽의 일부 마감은 레드우드로 씌웠다. 그러나 욕실만큼은 현대식으로 꾸몄다.
  문틀도 고전문양을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한 태원목재의 전통살문을 사용하였고, 유리는 사용 안하고 오로지 한지로 문을 발랐다. 전체 난방과 온수는 기름보일러로 해결하였다. 지하수개발, 상하수도 배관공사, 정화조설치, 전기전화선공사와 한전 및 전화국의 선로 개설도 끝나고 마침내 산청군청의 준공검사도 떨어졌다.

  20평 남짓 되는 이 통나무 집 '청룡각'을 짓기 위해 소요된 경비는 각종 자재구입비 2,200여만 원, 각종연장 및 장비구입 250여만 원, 인건비 400여만 원, 각종 인허가 관련세금 등 200여만 원 등 모두 3,100여만 원이 지출되었다.
 
  이 통나무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기술자들은 모두 인근에서 불러왔고, 감리는 내가 잘 아는 건축설계사가 하였으며, 내가 직접 모든 공사를 진두지휘하였다.
  세련미는 없으나 투박한 대로 100년은 버틸 만큼 견고한 면이 있었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뿌듯함에 몇날며칠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이제, 문지방마다 기둥마다 나의 손때를 묻혀 갈 것이다. 내가 이 집에서 죽는 날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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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가 한가지쯤은 어렸을 적 추억을 지녔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 품속의 배냇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향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일수록
  우리가 '군중속의 고독'같은 비애를 느낄 때일수록
  왜 문득 엄마의 품속 같은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그리고 있는 고향이라는 그림은
  도심 속의 회색빛 건물과 낮게 드리워진 '스모그'
  그리고 질주하는 차량들이 뒤범벅된 그런 그림들이 아니다.
  뭔가 막연하게 떠오르는 몽환적인 그림이 있다.
  옅은 안개가 가물거리는
  그리고 상큼한 풀 내음이 코끝을 스치는
  저 멀리서 어미를 부르는 어린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릴 듯한
  달고 습한 소슬바람이 입안에 맴도는
  물기 젖은 긴 풀들이 발에 감기는
  그런 원초적인 게으름이 배어 있는 그런 그림일 것이다.
  낮은 구릉으로 밥 짓는 연기가 낮게 깔리면
  ‘개똥아! 그만 놀고 들어와 어여 밥 묵거라!’하고 
  흰 두건을 머리에 덮어쓴 엄마의 모습이 그립게 담긴 그런 그림일 것이다.

  우리가 나서 자라고
  그리고 고향을 떠나 또 바쁘게 살아오다 보면
  문득 우리는 고향을 잊고 각박하게 살아왔음을 회한처럼 느끼게 된다.
  인생이 나이가 들어
  그 걸어온 길이 더할 나위 없이 힘들었겠거니 느낄 때마다
  앞으로 남은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 험준하게 느낄 때마다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어 왔었다.
  하나도 바쁠 것이 없을 것 같은……
  누구의 간섭조차 받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마냥 게으른 기지개를 맘껏 켤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었다.
  자연이 나인 듯, 내가 자연인 듯
  자연 속에 섞이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낮게 드리운 안개 너머에 나를 찾아올 그님 모습 보일 때까지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었다.

***********************************************************


  2007년11월14일(수요일)

  내가 산청거옥(山靑居屋) 첫 번째 주거 공간 청룡각을 완성하고, 칩거하여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하여 온지 거의 2년여가 지났다. 하는 일 없어도 항시 바삐 흐르는 것이 세월이었다.
  거의 8년여 버리지 못하고 뭉그적거렸던 마치 '계륵(鷄肋)'같은 존재 '사하신문사'를 정리하고 부산 중앙동에 출판사 '비둘기둥지'를 차린 지도 어언 1년여. 그간 유일한 나들이였다면 이 출판사에 다녀오는 정도였다. 물론 외유를 잠시 하긴 했었다. 그것도 글쓰기 위한 코스 답습삼아…….
  터키에 2개월 나갔다왔고 중국에 두 번 잠깐 다녀왔으며, 일본에 세 번, 홍콩에 한 번,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열흘정도…….

  대부분 시간은 청룡각에 틀어박혀 글 쓰다 잠들다 또 글 쓰다 잠들다……,
배고프면 밥 챙겨 먹고 또 글 쓰다…… 잠들고…….
  낮에는 허리도 좀 펼 겸 운동 삼아 농장을 한 바퀴 돌며 쓸데없이 널려있는 돌멩이도 줍고 잡초도 뽑고 가끔씩 축사 손볼 데도 손봤다. 그리고 가축들과 놀아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박 씨가 다 알아서 농장을 관리해주니 나로서는 그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맙기만 하다.
  박 씨는 나를 꼭 '선생님'이라 부른다. 나도 그런 호칭이 괜히 싫지가 않다. 그런 그가 나보다도 예닐곱 위인지라 나로서도 꼭 친형님 같은 생각이 들고 자꾸 의지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 씨가 건강하고 일 잘하니 믿음직스럽다.
  박 씨 부인 '영주 댁'도 나를 유별나게 챙겨준다. 영주 댁은 나보다 한살 위다. 그런데도 마치 누나처럼 자상하다. 수시로 들락거리며 집안일을 거들어주고 별식들을 만들어서 가져다준다.
  물론 나에게는 여자가 있다. 비록 나보다 훠얼씬 아주 많이 어린여자로 괜찮은 여자다. 많이 배웠고 내 눈에는 제법 예쁜 여잔데 무엇보다도 내게 참견을 하지 않아 그것이 마냥 고맙기만 한 여자다.

  난 그녀를 '하얀 그림자'라고 부른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한혜정'. 내 글이 좋아서 나에게로 온 나의 팬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글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제일 먼저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녀도 제법 글을 쓰기에 나 역시 그녀의 가장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그녀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작실력이 상당하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일과 중 대부분을 내 글을 영역하는데 할애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문단에 명성을 날릴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구한테 작가칭호를 받는다는 데엔 낯간지럽기도 하거니와 별로 마음 내키지도 않는 까닭이다. 간혹 얄궂은 잡지사나 방송국에서 인터뷰나 취재 때문에 찾는 일이 있어도 일체 응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얼굴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온갖 병신흉내를 다 내니 무슨 소용 있으랴. 입고 있던 웃옷을 풀어 제껴 알몸을 보인 경우도 있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날 알아본다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발간한 내 책 속에도 나에 대한 약력은커녕 내 사진 한번 박아 넣은 적 없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다. 
  ‘내 시간 투자하여 내 노력으로 내 돈 들여 내 책 만든다.'
  남이 읽든 말든 별로 상관없다. 남이 읽어주면 좋고, 재미있어 하면 더 좋고, 오직 그뿐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100여 종이 넘는다. 시집도 몇 권 있고, 수필집도 몇 권 있고, 시사칼럼집도 몇 권 있고, 소설도 무협지, 판타지, 추리소설 뿐만 아니라 애정, 폭력, 정치, 기업…… 등등 온갖 장르를 다 넘나들었다.
  말하자면 기분 내키는 대로 써 제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단에서는 나보고 
'돌팔이', '사이비', '부도덕한 인사'라고까지 매도한다. 뭐하나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것이 책만 디립다 양산하고 있다고 욕질해댄다. 그렇지만 나는 의연하다. 글 쓰는 놈이 가릴게 뭐있냐고……. 글이란 게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거지 하나만 골라서 써야 되는 것이냐고…….
  자라나는 애들에게는 한 가지 음식만을 못 먹게 하면서 무슨 글쓰기에까지 편식을 강요하는가 그 말이다. 무슨 까닭으로 시면 시, 소설이면 소설, 그것도 한 가지 장르만을 고집해서 써야 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지가 시밖엔 쓸 위인이 못되면 시나 쓰면 되는 것이고, 수필밖엔 쓸 위인이 못되면 수필이나 계속 붙잡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내 소설집이 제법 팔린다. 그래서 이렇게 먹고사는 것이고 돈도 제법 모이는 것이다. 그뿐이랴? 내 판타지 소설 세 가지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중이고, 또 공상과학소설도 영화로 제작되고 있는 것이 두 편 아닌가? 그러면 됐지 그까짓 명예가 뭔 말라비틀어진 것이랴. 그까짓 명예는 국회의원 나리들에게나 챙겨주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난 그럴듯한 간판으로 치장하고 점잖 빼고 폼잡아가면서 뒷구멍으로는 오히려 더 추접게 노는 잡놈들보다도 '즐거운 사라'로 물의를 빚은 '마광수'같은 이를 더 좋아한다. 그 사람은 빈껍데기 같은 대학교수라는 명예를 훌러덩 벗어버리고 사람들을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마 교수와도 제법 친해져서 내 농장에도 벌써 두어 번 다녀갔다.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 하여 언제든지 보따리 둘러메고 오라했다.


  2007년11월22일(목요일)

  지리산 일대는 지대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영산(靈山)을 지척에 둔 탓인지는 몰라도 겨울이 예외 없이 일찍 오는구나. 벌써 아침에는 찬물이 마냥 시려 따뜻한 세숫물을 찾게 된다.
  난 아침 세수만큼은 1년365일, 실내화장실에서 하지를 않고 이렇게 연못을 바라보며 하는 습관이 생겼다. 실내에서 글만 쓰다보면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없겠기에 일부러 붙인 습관이다. 발밑에 감기는 강아지들의 '앙양'거리는 재롱들을 즐겨가면서 말이다.

  연못에도 2년 전에 풀어놓은 비단잉어들이 한팔 길이만큼 자라있다. 이렇게 인기척이라도 낼라치면, 어느새 연못가엔 새까맣게 잉어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붉은 놈, 하얀 놈, 검은 놈, 흰 바탕에 붉은 반점들이 찍힌 놈, 붉은 바탕에 검은 점들이 찍힌 놈…….
  이 연못에는 대략 3천 마리 정도의 비단잉어들이 산다. 그리고 자라들도 꽤 많다. 자라도 그때 잉어하고 같이 넣었는데, 큰놈은 거의 몸길이가 20센티가 넘는다.
  바닥엔 미꾸라지도 엄청 많다. 박 씨가 내게 허락받지도 않고 미꾸라지들을 잔뜩 잡아다가 넣었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화를 많이 냈었던 게 생각난다. 난, 추어탕은 징그러워서 안 먹기 때문이다. 물론 장어도 안 먹지만…….
  그러나 지금은 이 연못에 미꾸라지가 있는 것이 오히려 좋게만 여겨진다. 미꾸라지 때문에 연못물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로부터 어떤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분비물이 연못 만들 때 사용된 시멘트 등 물질들의 독성을 제거하여 잉어들이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못 물위에는 수련도 제법 우거져있어 마치 황궁의 연못을 연상케 한다. 지금은 연꽃이 다 시들고 사라졌지만 지난여름 내내 수련꽃은 장관을 이뤘었다. 흰 꽃과 분홍 꽃, 그리고 붉은 꽃들이 그 넓적하고 얇게 물위로 깔린 푸른 잎사귀에 그리도 잘 어울렸었다. 
  그러고 보니 내년 봄에는 이 연못을 가로 지르는 구름다리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그 구름다리 중간에는 정자를 만들어 신선놀음에 젖어봐야겠다.
  그렇담, 그 누가 부럽겠는가? 돈 많은 이건희가 부럽겠는가? 아니면 대통령이 부럽겠는가?





3


***********************************************************

   나는 어려서 도회지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도회지의 산만하게 이어진 거리며
   날카로운 쇠창살이 끼워진 어느 부잣집 담벼락이며
   군데군데 구멍 뚫린 회색빛 아스팔트가 길게 뻗은 길이며
   왁자하게 떠들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난 그런 도회지를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고향에 대한 감회를 이런 모습에서 찾지 않듯이
   나 역시 내 고향은 
   엄마품속처럼 아늑하고 그래서 정겨운 농촌으로 관념지어 왔다.
   내가 막연히 고향 같은 농촌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이모님 댁이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읍 어드메이기에
   지지리도 못살고 궁끼가 쪄들은 시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렸을 적 방학을 맞아 이모님 댁에 가서 한 달씩 있다 보면
   당시 시골이라는 곳은 사람 살 곳이 못되었다.
   보릿고개라고 해마다 겨울이 갓 물러갈 즈음
   시골사람들은 굶기를 요즘사람 밥 먹듯이 하였다.
   난 그때 시골아이들이 올챙이배처럼 배가 불러 있는 것을 자주 보았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철이 없었던지 
   그 배를 '쿡쿡' 눌러보기도 하며 신기해했었고
   그 임산부처럼 부른 배가 밥을 많이 먹어서 쨔구 난 것으로 알았었다.
   그러나 그 부른 배는 쨔구가 난 것도 아니요
   많이 먹어서 부른 것이 아닌 
   못 먹어서 생긴 '헛배'임을 안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그만큼 피폐하고 황량했던 농촌이 
   기억 속에서나마 마냥 아름답게 비쳐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어려서는 농촌을 싫어했다.
   발 밑창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시뻘건 진흙길은
   방금 다려 입어 레지끼 선(바지를 다렸을 때 만들어진 칼날 같은 선, 
   난 어려서  반바지를 안 입었다. 꼭 긴 바지만을 입었으며 
   반드시 레지끼 선이 살아있어야 입었기 때문에 매도 많이 맞았다.)
   이 선명한 내 바지를 쉽게 더럽혔고
   노래기며 지네며 온갖 벌레들이 싫다 못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촌놈들은 나를 '서울 놈'이라 불렀다.
   마치 서울 놈들이 촌에서 전학 온 애를 가리켜 '촌놈'이라고 부르듯이……
   그런데 그렇게 불려지는 게 그리 싫었던 것이다.
   그런 가난도 지난 세월 속에 흔적 없이 녹아나고
   인생길을 '반 넘게 지나왔다' 가늠해 질 때마다
   '가야 할 길이 지나 온 길보다 짧다' 느낄 때마다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어 왔었다.
   하나도 바쁠 것이 없을 것 같은……
   누구의 간섭조차 받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마냥 게으른 기지개를 맘껏 켤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었다.
   내가 자연 속에 있고 내가 자연의 일부이듯
   자연 속에 섞이고 자연 속에 묻히어
   머지않아 찾아올 그님 위해 오롯이 나를 바칠 때까지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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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1월8일(화요일)

  간밤에 지독히 혹독한 겨울추위 속에 굶주린 듯한 멧돼지 한 마리가 우리 농장에 다녀갔다.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한참동안 이어져 눈을 억지로 떠보니, 시계는 새벽4시12분을 가리켰다. 새벽 두시 조금 넘어 눈을 붙였으니, 막 곤한 잠에 빠져 들어갈 무렵인 것이다.
  개들의 짖어대는 폼으로 보아 농장에는 뭔가 야생동물이 들어왔으리라 짐작은 했었다. 이곳은 마을 인가로부터 조금 떨어져있는 곳으로 가끔씩 멧돼지의 출몰이 있는 곳이다.
  밖은 너무 춥고 나가기도 귀찮아 창문을 통해 밖을 살펴보니 시야는 마냥 어둡기만 하였다. 그래도 개들이 짖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보아 멧돼지임이 틀림없겠다 싶었다.
  얼른 농장 안을 훤히 밝히는 24개의 할로겐 등을 모두 켜자 순간 농장 안은 대낮처럼 밝혀졌다.
  CC TV를 통해 개들이 몰려있는 곳을 확인했다. 농장 뒤 북서쪽 한켠으로 막 빠져 나간 듯, 개들은 더 이상 따라붙지 않고 짖어대고만 있는 것이다.
  장난기가 발동되어 그쪽 할로겐 등과 함께 붙어있는 스피커를 켜고 미리 녹음해 두었던 목소리를 크게 들려주었다. 여러 사람이 목청껏 욕지거리를 해대며 싸우는 소리였다. 아마 멧돼지도 사람들 여럿이 시끄럽게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고는 혼비백산하여 산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년 전 2월경에도 그쪽으로 멧돼지가 한번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도 멧돼지는 금방 도망갔는데,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곤 하여 그 후로 전투 병력을 증강시키고 여러 가지 장치들을 준비해 놨다.
  전투 병력이란 사람이 아니라 개들이다.
  첫 멧돼지 출현 땐 셰퍼드 열아홉 마리가 전부였었다. 
  처음 농장을 조성할 무렵엔 셰퍼드 암캉아지 두 마리로 그놈들은 '금강'과 '낙동'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 두 놈이 1년8개월쯤 되었을 때 인공수정으로 첫 새끼들을 보았고, 그 이듬해에 다시 두 번째 새끼들을 뱄다.
  금강이가 첫 배에 낳은 새끼는 수놈 두 마리에 암놈 두 마리로 수놈에게는 '백두'와 '한라'라고 지었고, 암놈에게는 '압록'과 '두만'이라 지었다. 그리고 낙동이가 첫 배에 낳은 새끼는 세 마리로 수놈 하나에 암놈 두 마리였다. 수놈에게는 '가야'로 암놈에게는 '소양'과 '대동'으로 지었다.
  그리고 금강이가 두 번째 배에 낳은 새끼는 수놈 네 마리에 암놈 두 마리, 수놈에게는 '지리'와 '설악' 그리고 '수락'과 '태백'이라 지었고, 암놈에게는 '한탄'과 '한강'이라 지었다. 낙동이가 두 번째 배에 낳은 새끼는 네 마리로 수놈 세 마리에 암놈 한 마리, 수놈에게는 '오대', '팔공', '무등'이라 지었으며, 암놈에게는 '임진'이라 지었다.
  그래서 셰퍼드만 모두 2대에 걸쳐 열아홉 마리로 늘어난 것이다. 이 넓고 한적한 농장을 지키기에는 이 정도의 병력으로는 뭔가 썰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전투병력 증강을 위해 먼저 불도그 강아지 암놈 두 마리를 더 사왔다. 종자가 크고 사납기로 유명한 놈들로……. 지금은 다 자라서 덩치가 얼추 송아지만하다. '나일'과 '테임즈'라 이름 붙였다. 머잖아 두 놈 다 인공 수정시킬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엔 진도까지 달려가서 그 유명한 오리지널 '진돗개' 강아지도 암놈으로 두 마리를 사왔는데, 족보까지 딸려왔다. 이놈들은 한 마리에 무려 3백만 원씩 주고 구입했다. 진도 면장까지 터억 나서서 보증을 섰으니 말이다. '에메랄드'와 '루비'라 이름 붙였다. 이놈들이야 말로 재롱덩어리들인 것이다. 
  4월쯤 인공수정 시켜야겠다. 그리고 그 후 금강이와 낙동이의 열일곱 딸네미들이 또 두 번에 걸쳐 새끼들을 낳았으니, 아마 팔지만 않았으면 3대에 걸쳐 모두 74마리로 늘었을 것이다. 그중 28마리만 남겨놓고 46마리는 팔았다. 그냥 놔두면 어미까지 모두 80마리 가까운 병력일 텐데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또 사료 값도 너무 많이 들고…… 물론 금강이와 낙동이는 평생을 함께 살 요량으로 남겨 놨다.
  이젠 3대에 걸친 셰퍼드 28마리와 불도그 2마리, 진돗개 2마리 해서 전투 병력만 모두 32마리로 늘어났으니, 이만하면 전투 병력은 막강하지 않겠는가? 조폭들 일개 사단으로 몰려와도 끄떡없을 거다.

  폐쇄회로도 12군데에 걸쳐 설치했고, 24개의 할로겐 등을 매단 기둥마다 스피커도 하나씩 설치했다. 강도라도 떼거리로 몰려오면 스피커를 다 가동시킬 요량으로……, 엄청 시끄러운 곳에서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여러 가지 성난 목소리들도 충분히 녹음해두었다. 
  폭발음도, 기관총 소리도,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까지도…….
  그리고 폭죽도 충분히 준비해 놨다. 그러나 총기류는 사려다 단념했다. 윈체스터 6연발 괜찮던데……, 내가 '헤까닥' 할까봐 포기했다. 괜히 흥분할 일 생겨 마구잡이로 쏴대다간 실수할까봐…….


  2008년3월20일(목요일)

  지루했던 겨울도 지나고 어느새 산천은 초록빛으로 물들었구나.
  긴 겨울이 출산을 위한 임신의 기간이었다면, 새봄은 새 생명의 탄생을 맞는 준비된 기간이리라.
  지난겨울이 유난히 혹독했기에 푸릇푸릇 돋아난 새싹들이 그 생명력이 돋보이고, 양지바른 잔디밭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난 지난겨울을 동면하는 북극의 곰들처럼, 산청거옥(山靑居屋)에만 눌러 지냈다. 휘몰아치던 강설과 매서운 추위도 청룡각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겐 아마 두 손을 들고 물러났나 보다.

  오늘, 드디어 지난겨울 내내 써오던 400쪽 책자 10권 분량의 판타지 소설 '녹색의 신전'을 완성했다.
  두 번에 걸쳐 교정까지 다 봤고, 더 이상 들여다보기도 지긋지긋하다.
  몇 개 내용삽화가 맘에 안 들던데 제대로 고쳐놨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모처럼 출판사에 출근하여 제작회의를 가져야지…….

  그리곤? 
  옳지! 
  혜정이랑 일본 '벳부'온천이나 며칠 다녀와야겠구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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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유행가 가사에도 고향을 그리는 내용이 많다.
    우린 고향을 그리는 사람으로
    대개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을 연상하곤 한다.
    그리고 댐건설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 이후 댐으로 인해 수몰되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고향을 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에 있어서
    언제라도 맘이 내키면 쉬 고향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고향이 더욱 애틋해지고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고향에는 정분이 묻어나는 산야가 있고
    어릴 적 발가벗고 헤엄치며 물장구치던 개울이 있다.
    흐느적이는 버들 숲이 있으며
    동네 개구쟁이들과 숨바꼭질하던 고목이 있다.
    메뚜기 떼 쫓으러 누비던 그때의 그 논들이 아직 있으며
    가재 잡던 그 계곡이 거기에 있다.
    언제라도 달려가면 그때 그 모습의 친구들이 맞을 것 같은
    그러한 기대가 고향에 있다.

    '나에 사알던 고향은~
    꼬피는 사안꼴~
    복숭아꽃 살구우꼬~옷~
    아기진~다알래~
    울긋뿔긋 꼬때궐 차리인~도옹네~
    그 속에서 놀더언~때가 그립씁~미이다~'

    막상 찾아가 보면 낯설게 느껴지고
    그토록 그리운 얼굴도 막상 만나면 서먹해 지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손아귀의 쥐는 힘이 약해질수록
    고향을 그리는 맘은 더해만 가는 것이 인생이리라.
    저 철책너머 이북에 고향을 두고 왔음도 아니요
    댐 지역에 수몰된 고향을 두지 아니하였음에도
    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어 왔었다.
    하나도 바쁠 것이 없을 것 같은……
    누구의 간섭조차 받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은……
    마냥 게으른 기지개를 맘껏 켤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었다.

    저기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구나.
    저기 내 삶의 뿌리가 날 오라하는 구나.
    저기 내 생의 마지막 역정을 쉬게 할 마지막 쉼터가 손짓하고 있구나.
    머지않아 찾아올 그님을 함께 맞자고…….
    그리고 그러한 시골에 파묻히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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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3월28일(금요일)

  오늘, 지난겨울 내내 써왔던 판타지 소설 '녹색의 신전'이 책으로 나왔다. 400쪽 분량 책자 10권으로 2만 질을 발행했다.
  우선 표지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초사실적인 삽화도 단연 최고다.
  '천개동'화백의 솜씨는 여전한 것 같다. 이 친구는 내가 '천화백'이라고 부르면 얼굴이 발개지고 '황송하다'며 사양한다. 만화쟁이가 뭔 화백이냐며……. 그렇지만 천부적인 그림실력 있으면 화백이지 화백이 따로 있나?

  '녹색의 신전'이 인쇄가 끝나고 막 제본에 들어갔을 때, 직원들 보고 우선 나오는 대로 열 질만 가지고 모두 우리 농장으로 오라고 초대했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박이식 부장과 최창민 과장 그리고 이희림 과장, 안성태 군, 정희영 양 등 모두 다섯 명에 불과하지만…….


  2008년4월2일(수요일)

  언제부터인가 마을사람들은 우리 농장을 '동물농장'이라 부른다.
  그렇다. 충분히 그런 이름이 걸맞다. 비단 가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야생동물들도 깃들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축이라면 셰퍼드나 불도그, 진돗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 개들도 가축으로 분류가 되나?
  하여튼 돼지도 십여 마리가 '꿀꿀'대며 농장 안을 헤집고 다니는데 항상 이놈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채소밭에 들어가서 난장판을 만들기도 하고, 화초들을 절단 내기도 한다. 그때마다 개들이 짖어대며 아우성치지만 돼지들은 끄떡도 않는다.
  오리나 염소, 기타 다른 동물들도 가끔씩 채소밭에 눈독을 들이지만, 개들이 그때마다 좇아주어 큰 피해는 없다. 그러나 이 돼지 놈들은 눈치가 없이 막무가내이다. 그래서 돼지들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이들 화초밭과 채소밭 둘레에 철책까지 둘렀다.
  염소도 30여 마리가 있는데 이놈들은 제일 양반들이다. 낮 동안은 농장뒤쪽 야산에서 뭘 하는지 종일 틀어박혀 있다가 해질녘에 '어저저저저……'라고 외치대면 그제서야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내려온다.

  오리도 100여 마리가 살고 있는데 이놈들은 보기보다는 식성이 왕성하다. 200마리가 넘는 닭보다도 사료를 더 많이 축을 내니 말이다. 그리고 닭과는 달리 사방 구석구석 아무데나 알을 낳아놓는 못된 버릇이 있다.
  그래도 10여 마리의 원앙과 30여 마리의 천둥오리와 함께 연못에 유유자적하며 떠있는 모습을 보면, 여기를 마치 극락처럼 느끼게 하니 개구쟁이 몫은 하는 놈들이다.
  칠면조도 네 마리가 있다. 7개월 전인가 지난 늦가을쯤 어느 정도 자란 놈을 일부러 언양까지 가서 마리당 4만원씩 주고 사왔다. 칠면조 고기는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다. 징그러워서……. 그래도 크리스마스 전후에 혹 찾아올지 모를 외국손님위해 한번 키워보는 것이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마치 타조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 놈은 제법 사나워 개들도 함부로 쪼아댔다. 그러고 보면 개들이 너무 순한가 보다.
  참, 거위가 두 마리 있구나. 이놈들은 마치 백조와 같은데……, 커다란 몸집에도 조용해서 눈에 잘 안 띈다. 꼭 어느 구석에서 단둘만 노닥거리니 외로워서 그런가? 아니면 고고해서 그런가?
  고양이도 두 마리 있는데 너무 커서 요즘은 안아주지도 않는다. 원래 세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가출을 했는지 보이질 않는다. 이 고양이들이 햄스터나 병아리를 가끔씩 잡아먹는 눈치라 병아리는 풀어놓질 않고 닭장 속에 커다란 새장을 갖다놓고 그 안에서 키운다.
  농장 입구엔 작고 아담한 집이 두 채가 있다. 각각 넓이가 4m, 폭이 3m, 높이가 2m가 되는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는 집이다. 한 집에는 토끼가 스무 마리쯤 살고, 다른 한 집에는 300마리가 넘는 햄스터와 다섯 마리의 이구아나가 함께 살고 있다. 그 두 종류는 다툼 없이 공존하고 있다.

  그 외에 우리농장에 무단 서식하는 야생동물 가족도 그 종류와 숫자가 결코 만만치가 않다.
  뒷산에는 물론 농장 안 나무마다 수백 마리의 다람쥐와 수십 마리는 족히 될 듯싶은 청설모 떼가 설치고 다닌다. 청설모가 때론 다람쥐를 잡아먹는 눈치가 보이는데 다람쥐 수효가 워낙 많다보니 그 수효가 줄어드는지 모를 지경이다. 어쨌든 이놈들도 점점 숫자가 불어나는 것이 겨울에도 매일 한차례씩 이들을 위해 도토리며 밤이며 옥수수를 수시로 뿌려주기 때문이다.
  어느 땐 이놈들이 집안에까지 들어와 뒤지는 경우도 있다. 한때는 청룡각 밑둥치를 이놈들이 갉아대기에 밑둥치마다 타르를 발라 놓은 뒤로는 갉는 일은 없어졌다.
  너구리도 서너 마리 보이고, 까치 떼며 참새 떼며 온갖 날짐승도 제법 많았다. 가끔씩 왜가리나 검정댕기해오라기며 직박구리도 다녀가고 30여 마리나 되는 천둥오리는 아예 여기서 눌러 산다.
  그리고 뭣보다 반가운 것은 소쩍새 한 쌍이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보호종인 소쩍새가 우리 농장에 깃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끔씩 군 관계공무원이 찾아와 점검하고 갔다.

  별로 반갑지는 않지만 뱀도 몇 마리 있긴 있는 모양인데, 이놈들은 집 근처론 얼씬도 못한다. 돼지 때문에라도…….
  동물들이 이 정돈데 어찌 우리 농장을 일컬어 '동물농장'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2008년4월5일(토요일)

  오늘은 식목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부터 궂은비가 내렸다. 날이 오슬오슬 춥기만 하고 몸이 찌뿌둥하여 별렀던 식수를 선뜻 나서기가 고역스러웠다.
  그러나 박 씨와 부인 영주 댁이 일찍부터 비닐우비를 걸치고 식수 준비한다고 분주히 오가는 게 보이고, 또 출판사 전 직원들도 도와주겠다며 10시쯤 농장에 도착하였으니 할 수 없이 나서서 지휘할 수밖에…….

  그러고 보니 농장을 처음 꾸밀 때 심었던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 준 것이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울타리를 대신하여 심어놓은 1,000여 수 은행나무는 거의가 다 살아 이제는 제법 한 길 반 넘게 울울창창 잘 자라주었다.
  자두나무 100여 수도 잘 자라주어 초여름이면 굵은 자두 알을 맛보게 해줬고, 200여 수 감나무나 300여 수 밤나무들도 잘 자라 그 열매가 풍성했다. 그러나 사과 배 대추 복숭아 호도 살구 앵두 포도 등은 신통치가 않았다. 특히 포도나무 200여 수는 수종을 잘 못 선택했는지, 아님 이곳 기후가 안 맞는지는 모르지만 열매 맺는 게 영 부실하고 단맛도 떨어졌다. 겨우 포도잼이나 포도주 약간 담는 정도였다.

  3년 만에 큰 맘 먹고 하는 식수라 이번 수종은 선택할 때부터 특별히 고심했다. 너른 농장이라 아직은 식수공간이 넘친다. 이번에도 너무 무리 않기 위해 3,000수 정도만 심기로 하고 뒷산에 잣나무 1,000수와 도토리나무 500수, 구릉 쪽으로 밤나무 1,000수를 심기로 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 안에는  귤나무 200수를, 새로 조성한 포도밭에는 '거봉'이라는 포도나무 300수를 심었다. 좀 추운 지대라 거봉이 잘 자랄 수 있으려는지…….
 
  식수가 끝나니 밤10시가 훌쩍 넘어섰다. 직원들과 함께 잠자기에는 협소하였지만 침실엔 혜정이와 두 여직원이, 그리고 나는 남자직원 셋과 함께 거실에서 자기로 하고 하룻밤 묵고가게 했다. 그리고 내일도 마침 일요일이고 하니 놀다가 오후에 가라 일렀다.
  많은 얘기들을 하느라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지만, 오늘은 아주 기분 좋은 하루였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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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모 일간신문의 '해외토픽'난에서 언뜻 본 것으로 기억된다.
     가톨릭교회 '바오로 2세'교황께서
     그의 조국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항공기 트랙에서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폴란드 땅에 키스를 하는 장면의 사진이 게재되었었다.
     그리고 과거 한국사회에 '족보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쿤타킨테'의 '뿌리'라는 영화 속에서도
     한 아프리카 흑인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한줌의 흙을
     자신의 목숨인양 소중하게 다루는 것을 보았다.
     굳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것이
     현대의 '금강산관광'을 통해 금강산을 다녀온
     실향노인들이 이때 가져온 북녘 땅 한줌의 흙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지
     고향에 대한 이들의 집착을 가히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고향은 단순히 어떤 특정지역에 놓여진 특정장소가 아니다.
     그리고 태어난 곳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향을 노래한 수많은 시인이나 가수들이
     한결같이 고향을 모태(母胎), 어머니의 자궁으로 묘사해 왔듯이
     고향은 내밀하면서도 생명을 준 모태인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쌓인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
     그 누구에게서도 결코 위로받을 수 없는 고통들을
     고향, 그 자신의 생명을 잉태한 그 모태로부터 
     위로받고 치료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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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5월24일(토요일)

  2005년7월경, 첫 번째 동쪽 주거 공간 청룡각(靑龍閣)을 완공한지도 벌써 3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사실 형편이 허용된다면 그 다음해쯤 나머지 3개 주거 공간, 즉 서쪽에 위치한 통나무집 백호각(白虎閣) 남쪽에 위치한 통나무집 주작각(朱雀閣) 북쪽에 위치한 통나무집 현무각(玄武閣)과 중앙의 지리각(智異閣)도 완성하리라 마음먹었었지만,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고 글쓰기에 너무 많이 바빴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청룡각에 살면서 느낀 것은 돈을 많이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머지 집 4개동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엄두가 사라졌다.

  그동안 청룡각에 머물면서 느낀 불편한 점은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하게 보냈지만, 여름엔 좀 덥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거실이 좀 더 넓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리고 아쉬운 점 또 한 가지는, 이제 본격적인 여름인데 밖에 나가 있으면 시원해도 집안은 아무래도 답답한 분위기다. 차라리 거실 쪽 두면을 아예 탁 틔워 놓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방이나 거실, 화장실은 물론 모든 살림살이에 제법 묵은 때까지 끼인걸 보며 새삼스레 정이 드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누님의 연세도 지긋하여 사는 날까지 이곳 물 좋고 경치 좋은 산청거옥에서 지내게 할 요량이다. 그래서 당분간 글 쓰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나머지 통나무집을 올 가을 안으로 완공하여 산청거옥의 완성을 보리라 마음을 먹고 시공업자를 선정했다.
  통나무집을 전문으로 시공한다는 '사람과 주거문화'와 '산집사랑', '우드피아', '통나무마을' 등 몇몇 전문 업체들에게 내가 애초에 이들 통나무집을 직접 제작하려고 만들어둔 설계도면, 입체투시도 등 관련 자료를 복사하여 한 부씩 건네주고, 이들로부터 새로 구상된 설계도면과 입체투시도, 사용 재질, 그리고 종합견적을 받았다.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수정안을 요구하는 등 까다롭게 굴었다. 대신 채택 안 될 경우 100만원씩 수고비 조로 지불하겠다고 전제했다. 그 결과 약간 비싸기는 했으나 우드피아가 제일 나아 보여 그 회사에 시공을 의뢰하였다.

  지리각은 6천4백만 원, 나머지 3개 통나무집은 각기 2천8백50만 원씩에 총 공사금액은 1억4천9백5십만 원으로 결정하고, 5개동의 연결통로는 이 금액에 포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청룡각 거실은 무상으로 변경하여 주기로 하였다.
  공사기간은 4개월로 잡았다. 9월말까지 준공검사가 떨어질 수 있도록 책임지겠다고 하였으며, 건물자체는 5년, 내부시설은 3년으로 보증기일을 정해 기일 내 하자보수를 책임지기로 하는 보증보험약정서를 제출받기로 함은 물론, 공사기일의 지연으로 인한 손해는 1일당 30만원씩 잔액에서 공제하기로 하였다. 공사대금 결재조건은 계약금 5천만 원, 중도금 5천만 원, 잔금 4천9백5십만 원으로 정했다. 
  먼저 5천만 원을 착수금으로 지불하면서 우드피아 '정수진'사장과 정식계약을 체결하였다.

  지난 3년 가까운 동안 열심히 글을 쓴 보람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글 쓰는 재미로 세월 보내다 보니 어느새 돈도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하다보면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한테는 반드시 돈도 따라 붙게 마련이다.

  언젠가 내가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을 때, 나를 걱정해 주던 누구에겐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이담에 진짜로 내 능력만으로는 내가 할일을 찾을 수 없다면 난 기꺼이 '똥장구'라도 멜 것이다. 그리고 산동네를 돌아다니며 '똥퍼!'를 외쳐댈 것이다. 그리고 내게 똥을 치우는 것을 맡기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똥을 치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똥을 다 퍼낸 다음 깨끗하게 청소해줌은 물론, 내 전화번호가 붙은 예쁜 '나프탈렌'을 선물로 화장실 벽에 걸어줄 것이다."
  똥 푸는 일 아무나 하나? 천하고 더러운 일이니 수입이라도 많을 수밖에…….


  2008년9월19일(금요일)

  오늘 지리각을 포함하여 4개동의 통나무집이 완성되었다. 5일정도 공사기간이 단축된 것이다.
  역시 분야별로 전문가는 따로 있는가 보다.
  너무 맘에 들고 너무 완벽하였다. 난, 우드피아 정수진 사장의 두 손을 잡고 진심으로 치하하였다.
  "정말 고맙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네."
  정수진 사장은 정말 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사람이다. 30대 중반의 젊은이로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실력껏 있는 정성을 다해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집을 지어 주었다.

  내가 수시로 이곳저곳 수도 없이 변경을 요구하거나 결함을 지적해줘도 불평은커녕 요구하는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수정해주었다. 그렇다고 추가금액에 대해서 단 한마디 언급조차 않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처음 계약할 당시만 해도 사장이라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코빼기도 잘 안비추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틀이 멀다않고 자주 현장에 찾아와 이것저것 직접 챙기되 아예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그의 일에 임하는 자세가 너무 맘에 들었고, 결코 뱉기 쉬운 말이 아닐 텐데도 '맘에 안 드는 곳이라든가, 다른 수정사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요구하시라'는 말도 수시로 했다.
  그는 나머지 준공검사에 관련된 수고도 마다않고 대신 처리해주겠노라 약속하였다.
  오후 늦게 시작된 자축연에 앞서 계약서에 명시된 잔액 4천9백5십만 원 외에 별도로 5백만 원을 더 얹어주었다. 처음엔 몇 번 거절하였으나 '몇 번에 걸쳐 수정된 것이 많은 만큼, 고마운 마음에 성의를 더 표시한 것뿐'이라 말해주고 '대신 1년에 한 번씩은 꼭 놀러올 것'을 당부하였다.

  지리각을 한가운데로 하여 동쪽에 청룡각을 서쪽에 백호각을 남쪽에 주작각을 북쪽에 현무각을 앉혔으며, 이들 4개의 작은 통나무집을 중앙의 지리각에 긴 난간으로 연결하였는데, 이들 난간도 통나무로 짠 구름다리로 연결시켰고 그 위로 푸른빛이 도는 둥근 유리'테라리움'을 씌워 통행 시에 눈보라나 비바람도 피할 수 있게 하였다.
  지리각엔 공동으로 사용되는 식당과 휴게실, 그리고 응접실과 외래손님의 숙소 등이 들어섰으며, 손님숙소 화장실 안에 위치한 욕조는 거품발생기가 있는 것을 사용했다.
  그리고 3개의 통나무집마다 각기 침실과 거실, 화장실을 겸한 욕실이 하나씩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 3년간 '한지'에 싸서 애지중지 보관해왔던 현판들을 꺼내 각 통나무집 현관 위에 걸어놓았다.


  2008년10월2일(목요일)

  농장 뒤쪽의 야산 양지바른 쪽에 600평 규모의 가족묘 부지를 장만했다.
  내년 한식을 전후로 새로이 분묘를 조성하여 서울 창동교우묘지에 묻혀있는 아버님유골과 충남 덕산 모 수녀원 야산에 묻혀있는 어머님유골을 모셔와 이장할 계획이다.

  오늘은 누님이 정식으로 산청거옥에 입주하는 날이다. 나머지 두개의 통나무집도 임자들이 정해져있다. 우리 사남매의 노후를 위해 설계된 산청거옥이니까…….
  이 산청거옥은 우리 사남매의 공동재산이지만 별도 비영리법인 '산청거옥'의 소유로 되어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이 산청거옥을 담보로 잡히거나, 대여하거나 결코 타인에게 팔 수 없게끔 재산권이 제한되어 있다.
  우리 사남매가 각자 사망할 경우, 각자 직계자손에게 소유권이 자동승계가 되겠지만 마찬가지로 재산권은 제한된다. 

  산청거옥은 농장 내에서는 일체의 용도변경도 할 수가 없다. 모든 건축물이나 축사 등은 현 상태에서 개축은 가능하지만 더 이상 부속건축물을 짓거나 타 용도의 부지를 이들 건축물이 잠식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산청거옥 입주조건은 각 직계가족의 경우 2인을 초과할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산청거옥 법인약관'에 명시되어 있다.





이른바 산청거옥(山靑居屋)이라 명명(命名)하였다


- 끝 -



2002/0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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