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 Quien habla!” “Somos misma parte”
외국어에도 우리네의 속담과 격언 같은 경구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위의 두 문장은 스페인어에 있는 그것들이다. 영어와 같은 언어체계, 즉 알파벳을 언어의 구성체계로 쓰지만 스페인어는 별도의 발음기호가 없어 모음을 그냥 읽으면 된다. “미라! 끼엔 아블라, 소모스 미스마 빠르떼”처럼 말이다.
무슨 뜻일까? 직역을 한다면 “미라….”는 “보아라! 누가 말하는지”일 것이고 “소모스….”는 “우리는 같은 부분이야” 정도가 될 것이다. 대충 감이 오겠지만 이것들을 의역하면 우리네의 어떤 속담들과 상당히 부합하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사돈 남 말하네”와 “우리가 남이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스페인어에서도 그 목적으로 쓰인다. 자기 행실은 생각지 않고 남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네 행실이나 똑바로 해”하는 경구로 쓰이고, 뒤의 것은 타인들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결속을 꾀할 때 쓰인다.
정국이 두 달 넘게 조국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야당도 딱하지만 집권여당의 한심함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언젠가부터는 아예 뉴스조차 보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정권창출의 공신이고 사법개혁의 적임자라 하더라도 그 흠결 많은 사람을 반 가까운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밀어 부쳐야 했을까? 자당 내 몇몇 초선들의 진심이 담긴 충정마저 지도부를 동원해 윽박지르면서까지 권위를 세워야 했을까? 청문회에서 소신발언을 한 그 초선들을 징계하진 않았으니 3공화국에서의 항명파동 때 박정희의 처신과는 다르다고 선 긋는 것으로 안주하면 되는 것인가?
결국 한 달도 안되어 내려온 것은 대통령의 인사가 잘못됐었다는 반증이고 나아가 대통령의 철학 부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대통령은 야당 아닌 국민을 상대로 오기를 부린 것이고 국민들을 서로 편가르게 만들어 놓았다.
제 아무리 잘난 인물이라도 대통령 혼자서 국정을 다 알아서 잘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적재적소에 사람을 기용해서 국정을 잘 수행하라고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다만 그 막강한 권력은 중차대한 국정수행에 조력을 받으라는 것이지 개인적 보은용으로 쓰라는 게 아니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너무나 아마추어같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갑작스러운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의 원활한 연계를 위한 인수위원회의 조력을 받지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2년여의 세월은 결코 작다 할 수 없겠다.
대통령을 중도 하차시킨 국민들의 분노를 무겁게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면 2019년 후반기의 이 혼돈은 결코 초래되지 않았을 테지만, 참모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사안의 중대함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거나 그냥 예스맨으로의 안주를 택했을 거란 말이다. 더 심각한 건 이 안이함이 참모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데 있다. 집권여당의 지도부도 이 혼돈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직을 걸고 대통령의 혜안을 밝히는데 주력하기보다 그저 대통령의 심기만 헤아리는 예스맨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을 뿐이다. 참여정부 때 총리로서 대통령의 인사권에 정면으로 맞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이해찬 당대표의 기개가 아쉬운 대목이다.
9년의 공백은 있었지만 이 정부는 참여정부와 뿌리를 같이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분당이 되긴 했지만 대통령을 만든 당이 같고 현 대통령이 과거의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로 참여정부의 맥을 이었음을 스스로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이 수렁을 조성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법개혁이 참여정부 미완의 국정과제였음도 두 정부의 동질성을 대변하고 있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설령 조국이 사법개혁을 이룰 적임자라 하더라도 이미 그와 그의 가족들이 보인 반칙과 위선은 그의 행보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시킴으로써 그 자신, 개혁의 주체에서 되레 객체로 전락해 버렸다. “조로남불” 신조어가 전통의 “사돈 남 말하네”의 대체용어가 된 것이다.
이제 대통령과 그 참모들, 집권 민주당은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추스르기 바란다. 이제 고작 반을 왔으니 아직 반 넘게 남아 있다. 과거를 반추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참여정부 수립에 공헌했던 양심적 지식인들이 얼마 못 가 지지를 철회하고 참신한 듯 보였던 측근들의 구태 닮은꼴이 속속 드러나며 민심을 이반시켰던 참여정부의 실패를 겸허히 되새기며 같은 실패를 답습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몇 개월 뒤 민의의 심판 일에, 뭐 하나 내 세울 거 없어 팍팍한 대다수 민초들에게 “그래도 3년 전 겨울, 그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선택이 마냥 헛되지는 않았구나”하는 자부심 하나라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족 한마디 붙일까 한다. “조로남불”이 ”사돈 남 말하네”를 대체하듯 “우리가 남이가”도 얼마든지 다른 말로 대체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에이! 그 나물에 그 밥이지, 뭐!”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