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Mira! Quien habla!” “Somos misma parte

by 적극적방관자 posted Nov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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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 Quien habla!” “Somos  misma parte

 

외국어에도 우리네의 속담과 격언 같은 경구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위의 두 문장은 스페인어에 있는 그것들이다. 영어와 같은 언어체계, 즉 알파벳을 언어의 구성체계로 쓰지만 스페인어는 별도의 발음기호가 없어 모음을 그냥 읽으면 된다. “미라! 끼엔 아블라, 소모스 미스마 빠르떼처럼 말이다.

무슨 뜻일까? 직역을 한다면 미라….”보아라! 누가 말하는지일 것이고 소모스….”우리는 같은 부분이야정도가 될 것이다. 대충 감이 오겠지만 이것들을 의역하면 우리네의 어떤 속담들과 상당히 부합하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사돈 남 말하네우리가 남이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스페인어에서도 그 목적으로 쓰인다. 자기 행실은 생각지 않고 남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네 행실이나 똑바로 해하는 경구로 쓰이고, 뒤의 것은 타인들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결속을 꾀할 때 쓰인다.

 

정국이 두 달 넘게 조국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야당도 딱하지만 집권여당의 한심함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언젠가부터는 아예 뉴스조차 보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정권창출의 공신이고 사법개혁의 적임자라 하더라도 그 흠결 많은 사람을 반 가까운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밀어 부쳐야 했을까? 자당 내 몇몇 초선들의 진심이 담긴 충정마저 지도부를 동원해 윽박지르면서까지 권위를 세워야 했을까? 청문회에서 소신발언을 한 그 초선들을 징계하진 않았으니 3공화국에서의 항명파동 때 박정희의 처신과는 다르다고 선 긋는 것으로 안주하면 되는 것인가?

결국 한 달도 안되어 내려온 것은 대통령의 인사가 잘못됐었다는 반증이고 나아가 대통령의 철학 부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대통령은 야당 아닌 국민을 상대로 오기를 부린 것이고 국민들을 서로 편가르게 만들어 놓았다.

제 아무리 잘난 인물이라도 대통령 혼자서 국정을 다 알아서 잘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적재적소에 사람을 기용해서 국정을 잘 수행하라고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다만 그 막강한 권력은 중차대한 국정수행에 조력을 받으라는 것이지 개인적 보은용으로 쓰라는 게 아니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너무나 아마추어같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갑작스러운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의 원활한 연계를 위한 인수위원회의 조력을 받지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2년여의 세월은 결코 작다 할 수 없겠다

대통령을 중도 하차시킨 국민들의 분노를 무겁게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면 2019년 후반기의 이 혼돈은 결코 초래되지 않았을 테지만, 참모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사안의 중대함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거나 그냥 예스맨으로의 안주를 택했을 거란 말이다. 더 심각한 건 이 안이함이 참모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데 있다. 집권여당의 지도부도 이 혼돈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직을 걸고 대통령의 혜안을 밝히는데 주력하기보다 그저 대통령의 심기만 헤아리는 예스맨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을 뿐이다. 참여정부 때 총리로서 대통령의 인사권에 정면으로 맞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이해찬 당대표의 기개가 아쉬운 대목이다.

 

9년의 공백은 있었지만 이 정부는 참여정부와 뿌리를 같이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분당이 되긴 했지만 대통령을 만든 당이 같고 현 대통령이 과거의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로 참여정부의 맥을 이었음을 스스로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이 수렁을 조성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법개혁이 참여정부 미완의 국정과제였음도 두 정부의 동질성을 대변하고 있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설령 조국이 사법개혁을 이룰 적임자라 하더라도 이미 그와 그의 가족들이 보인 반칙과 위선은 그의 행보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시킴으로써 그 자신, 개혁의 주체에서 되레 객체로 전락해 버렸다. “조로남불신조어가 전통의 사돈 남 말하네의 대체용어가 된 것이다.

이제 대통령과 그 참모들, 집권 민주당은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추스르기 바란다. 이제 고작 반을 왔으니 아직 반 넘게 남아 있다. 과거를 반추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참여정부 수립에 공헌했던 양심적 지식인들이 얼마 못 가 지지를 철회하고 참신한 듯 보였던 측근들의 구태 닮은꼴이 속속 드러나며 민심을 이반시켰던 참여정부의 실패를 겸허히 되새기며 같은 실패를 답습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몇 개월 뒤 민의의 심판 일에, 뭐 하나 내 세울 거 없어 팍팍한 대다수 민초들에게 그래도 3년 전 겨울, 그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선택이 마냥 헛되지는 않았구나하는 자부심 하나라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사족 한마디 붙일까 한다. “조로남불사돈 남 말하네를 대체하듯 우리가 남이가도 얼마든지 다른 말로 대체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에이! 그 나물에 그 밥이지, !”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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