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

by korean posted Jul 16,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kyc-20131220-03.jpg



[수필]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그 생각하는 바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 은유시인 - 
 

 
  얼마 전, 내가 사는 서민아파트 바로 이웃에 사는 40대 초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중견 한 마리를 내게 데리고 왔다. 견종은 닥스훈트로 온몸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새까만 털로 덮여있고, 주둥이도 가늘고 길쭉한데다 짧은 다리하며 긴 몸뚱이가 썩 귀여운 구석이 있는 개는 아니다. 
  “선생님이 개를 워낙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데려왔는데요, 남편 가게에서 키우던 앤데 저희가 키우려 해도 여건이 되지 않아……. 키울 여건이 되신다면 대신 키워 주십사하고……. 이름은 깜순이예요. 얼마 전 첫 새끼를 낳은 앤데 아마 두 살쯤 됐나 봐요.” 

  닥스훈트란 견종은 어쩌다 사진에서나 봤지 실제로 가까이 대하기는 첨이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그 긴 몸통이 유난하다 여겨질 뿐더러 몽톡하고 짧은 발로 땅강아지처럼 바닥에 납작 붙어있는 것이 일견 해학적이다. 몸통을 잡고 번쩍 치켜드는데 제법 통통하고 묵직했다.
  함께 살면서 부대끼다보면 아무리 못나 뵈는 개라도 정이 가는 법이요, 따라서 그 하는 행동거지가 남들 눈엔 어떻게 비치든 주인 눈에는 예뻐 보이게 마련이다. 해서 시간이 흐르면 정도 붙고 사랑도 느끼게 되려니, 하는 생각에 선뜻 입양을 받아들였다. 

  이미 내겐 지난 1월 초에 선배가 4개월 된 여아라며 데려온, 갈색털이 부수수한 잉글리쉬코카스페니얼로 ‘예삐’라 이름 붙인 중견이 한 마리 있다. 머리 양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커다란 귀하며 넓적한 주둥이하며 큰 눈망울하며……,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배기게 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예삐란 녀석의 말썽으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또 곤욕을 치루길 어디 한두 번인가. 엄청 부산하게 설치고 다니며 어지럽히기 좋아하는 녀석이라 하루 종일 녀석만 쫓아다니며 치워도 치워도 소용없는 것이 몸만 한번 부르르르 떨면 한 움큼의 미세 털들이 온 방안을 뒤덮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둥이가 닿는 곳은 모조리 물어뜯고 갉아대어 남아난 살림이 없을 정도이다. 
  처음 한동안 녀석은 물건만 물어뜯는 게 아니라 주인장인 나까지 만만하게 보았던지 두 팔이며 목이며 가슴, 허벅지, 종아리 등 녀석이 긁고 물고하여 생겨난 상처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yepee-002.jpg


  영국이 원산지로 도요새사냥에 동원되었다던 코카종이 원래 산만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종(種)이라했다. 
  예삐가 망가뜨린 물건은 그 수효를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처음 녀석이 내게 왔을 땐 겨울철이라 잠잘 땐 별도의 난방기구 없이 전기장판을 깔고 자야했다. 그런데 녀석이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아 넓적한 전기장판코드를 여기저기 갉고 끊어놓아 한동안 잠자리에 들어가서는 추위에 떨어야했다. 그리고 곧 전기밥솥코드도 잘디잘게 끊어놓아 새것으로 다시 장만해야했고, 새로 산 전화기도 오골오골한 수화기코드를 군데군데 끊어놓아 사용을 못하게 했으며, 다시 23만원인가 주고 장만한 삼성앤 무선전화기도 며칠 되지도 않아 수화기 자체를 자근자근 씹어놓아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책상위에 잠시 벗어놓고 샤워하고 나오는 그 짧은 순간에도 50만 원짜리 크리스천 디올 안경을 물어뜯어놓아 못쓰게 만들어놓질 않나, 비록 5년여 사용해온 터라 새것으로 장만했으면 했던 휴대폰까지도 잘근잘근 씹어놓아 아예 못쓰게 만들어 놨다. 
  따라서 위험천만인 전기선이나 코드 등은 책상 등 무거운 장애물로 가리고, 중요하다 싶은 물건들 특히 녀석이 탐내리라 여겨지는 물건들은 녀석의 행동반경이 못 미칠 위치에 치워놔도 잠시 자리를 비워두면 뭔가 사단내기 일쑤였다. 
  그래도 야단칠 낌새를 알아차리고 머리를 갸웃거리며 내 눈치만 빤히 살피려드는 녀석이 밉기는커녕 그 장난마저 귀엽게 느껴지니, 아무리 값진 물건일지라도 우리 예삐만이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손찌검은 물론 큰소리로 나무라는 일도 없었다. 

  내 생활이 그다지 넉넉지 않아 비좁은 집안에서 다 자란 개를 한꺼번에 두 마리씩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동물을 좋아하고 그 뒤치다꺼리에 그다지 큰 불만도 없을뿐더러 녀석들로 인해 얻어지는 더 소중하고 더 값진 것들이 더 많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살아올 만큼 살아왔다할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숱한 사람들로부터 배반당해왔으며, 숱한 사람들로 인해 숱한 피해를 입고 그로인해 곤욕을 치룬 바가 많았기에 사람한테는 그다지 믿음이나 정이 안가더라도 개에게는 예외였다. 오로지 주인이라고 따르고 오로지 주인의 눈치만 살피는 가여운 녀석들이다. 맛있는 음식에 조금 더 먹을 욕심을 낼지언정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릴 줄도 모른다. 주인을 얼마나 따르는지 잠시만 외출 갔다 와도 그리 반길 수가 없는 것이다. 

  깜순이가 들어오면서 궂은일들이 한결 늘어났다. 예삐와는 달리 깜순이는 처음엔 똥오줌을 가릴 줄 몰랐다.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싸질러놓고 다니는데 그 때문에 오줌을 밟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어허! 이러면 쓰나?”라며 머리를 한번 쥐어박았다. 큰 소리를 친 것도 아니요, 그다지 아프게 쥐어박은 것도 아닌데 깜순이는 빨빨거리며 뛰어다니던 평소와는 달리 ‘딴엔 주인이 저만 미워한다’고 느꼈던지 어두운 침대방에 콕 틀어박혀 요지부동이다. 10여분이 지나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침대방으로 들어가 보니 웅크린 채 내 눈치를 살피듯 빤히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 예쁜 깜순이를 누가 구박했노?” 
  한참을 껴안은 채 어르고 달래서야 깜순이의 서운함을 겨우 씻어낼 수 있었다.
  한번 주인한테 버려졌던 개는 새 주인을 만나면 또다시 버려질까 두려운 것이다. 따라서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환경이 바뀌고 주인까지 바뀐 깜순이의 경우 그래도 눈치 하나는 있어서 새 주인인 내 눈밖에 나는 것만큼 두려운 게 또 있으랴.  
 
yepee-005.jpg


  덩치로 보면 예삐가 깜순이보다 거의 곱절 가까이 더 컸다. 평소 저희들끼리 찧고 까불 때 보면 예삐가 완력으로나 덩치로나 분명 깜순이보다 우월했다. 그런데 묘한 것이 깜순이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면 천방지축 날뛰던 예삐는 한쪽으로 머쓱하게 물러나 앉는다. 특히 밥을 먹을 땐 더한 것이 공평하게 두 개의 밥그릇에 나누어줘도 깜순이가 양쪽 그릇을 오가며 양껏 먹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예삐 차례가 온다는 것이다. 어느덧 저희끼리도 그런 식으로 서열이 결정된 모양이다. 

  내게 있어 깜순이보다 예삐에게 더 정감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넉 달 전부터 정들여 온데다 또 멍청하여 단순하게 느껴지고 천방지축 날뛰기만 하는 예삐가 더 살가운 것이다.
  깜순이는 예삐에 비해 내 눈치를 더 살핀다. 괜한 이유로 “어허! 이놈들 봐라!” 호통을 치면 예삐는 얼른 책상 밑으로 숨어들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반해 깜순이는 내 앞으로 다가와 발랑 드러누워 배를 훤히 드러내 보인다. 이른바 순종의 표시이다. 두 살이 된, 아이까지 출산한 경험이 있는, 그래서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을 읽을 줄 아는 노련함이 예삐보다 앞선 까닭이리라.
  깜순이는 어찌나 샘이 많은지 예삐를 껴안고 “우리 예삐, 예뻐 죽겠다!”라며 쪽쪽 빨아주면 그걸 못 봐준다. 그 쑛다리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면서 예삐의 다리를 물어뜯고 마구 짖어대며 내 품에 안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깜순이를 안고 “우리 깜순이, 정말 예쁘다”고 마냥 얼러도 예삐는 그저 시큰둥한데 비해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루에 몇 번씩 그 짓을 하면서 깜순이의 질투를 자극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예삐와 깜순이를 마주할 때마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 뚱뚱하고 못생긴 아이보다 잘 생기고 날씬한 아이를 더 챙기려드는 인간세상에서 늘 겪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차별들을 생각하면 ‘두 녀석에 대한 차별만큼은 절대로 하지 말고 골고루 사랑해줘야지’ 늘 마음을 다져보지만, 그래도 예삐에게 더 마음이 쏠리는 걸 어쩌랴.

  동물이라 하여 의식이나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저를 미워하거나 예뻐하는 건 동물도 안다. 베푸는 것만큼 갚을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일진데 어쩌면 동물은 그런 점에선 인간보다 낫다 할 것이다. 
  예삐와 깜순이,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나름의 개똥철학이 정립되었다. ‘세상엔 절로 있는 게 하나도 없듯이 소중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불필요해 보이는 하찮은 것들조차 다 존재가치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깜순이를 대하는 내 눈빛이 어느덧 측은지심에 젖어있음을 깨닫는다. ‘내 마음의 간사함으로 인해 행여 깜순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그게 그리 걱정되는 것이다.



  
-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 발행, ‘아름다운 가정’ 창간호(2007년8월호)30쪽 -


- 끝 -




2007/05/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