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심연필
붉은 물감 풀은 듯한 노을과
고개숙인 벼들의 황금빛을
나는 한 때 사랑했었지
바짝세운 앙상한 몸가지와
얇게 걸친 엉성한 옷가지를
나는 한 때 자랑스러워했지
짹짹이는 참새들의 지저귐과
귀뚤귀뚤 귀뚜라미 울음을 들으며
나는 한 때 즐거워했지
십 수 년 세월
이제 난 지쳤소
사랑하지 않게 된 풍경을 보는 것과
초라한 자신을 마주하는 것과
반갑지않은 소리를 듣는 것을 멈추고
이제 그만 쉬고싶소
기우뚱하며 쓰러져버린 허수아비를 본 농부는
곧 그의 뿌리를 다시 박아넣기 시작했다
더 깊은 중심에
더욱 단단하게
허수아비는 모든 것을 그만하고싶었지만
농부는 그런 허수아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제그만
이제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