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아침 6시 53분.
칼바람들 속에서 나는 등대마냥 우뚝 솟아 있다
한 꺼풀 제 두꺼운 옷을 벗고 나신을 드러낸 하늘 끝에서부터
말갛게 단장을 한 네가 고개를 든다
난생 처음 보는 듯한 황홀한 광경에 나는 넋을 놓는다
저 하늘과 바다의 푸른 경계선 사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하얀 머릿결을 사르륵 날리며
아름다운 너는 미끄러지듯 내달려 점점 내 눈 속으로 커져 들어온다
어느새 내 발끝으로 다가 온 너는
제 존재를 알리듯 살며시 나를 간질이고
처음 낯설던 그 간질임은 어느새
익숙함으로 바뀌어져 나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 풀어진 마음으로 바라보니
너는 바닷가 지천에 깔려있는 조개가 되었다
이곳을 보아도 저곳을 보아도
너는 항시 내 주변에 있었다
나는 더욱 더 마음을 풀었다
깨작깨작
모래 사이를 뚫고 나와
내 주변을 조용히 맴돌던 너는 무심한 나를 보고
펙하니
심술궂게 집게발로 내 살을 꼬집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잽싸게 내 곁을 떠난다
아아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우리가 연을 맺었던 이 바닷가에는
이제 나 홀로 서 있는데
아니다
내 곁에는 항상
네가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