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한 바가지 퍼다 붉어진 종아리의 화를 삭인다.
연한 살갗에 번진 성난 가지의 흔적을 닦아냈다.
마루 끝에 걸쳐 앉아 꽃잎의 잔재를 짓밟았다.
가지가 지나간 자리에 피어나 지던 홍색 자국은
양 볼 위에 내려앉고 걸친 옷가지의 자수가 되어 떠나갔다.
더 이상 가지는 꺾이지 않았고 여린 종아리를 쳐 내지 않아도 되었다.
담장 한 쪽 귀퉁이에 기대어 잠연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늘
이 어린 것은 아직 낙서로 도배된 빽빽한 꿈을 꾸지 않았다.
밤새 외운 불경이 훑고 지나간 꿈엔 사람이 없었다.
흩어진 글자를 모아 몰래 숨겨놓고는 금세 또 타일러 쫓아내버린다.
질겅이며 씹던 미련은 쉽사리 뱉어 버리지 못했다.
아이는 아직 길든 품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기다린다.
잠깐 든 잠
풀 내음 따라 찾아 온 작은 짐승을 위해 처마 끝자락을 내주고
고요한 기와집이 되었다.
구속된 시선의 야유
하늘에 매달린 눈알은 땅을 향해 비아냥댄다.
뒤집어지지 않는 검은자 속에 가두려했다.
꼬아진 혀의 바짝 선 가시를 보았다.
결 따라 날리는 푸른 입술을 비틀었다.
목 아래 촘촘히 앉은 이끼는 뿌리박은 지 십 수 년.
미동도 없이 잘려나간 주둥이로 눈을 돌린다.
딱지
까칠한 가죽때기 손에 걸어 쌓인 지층의 무게를 덜어낸다.
물고 놓아 주질 않는 딱지들의 이빨을 갈아버린다.
곪아 떨어져 나간 자리에 구덩이들은 홍어 새끼들을 품었다.
닦아 뭐하나, 다한 몸뚱이.
튀어 오르는 올챙이들 매끈한 껍질 한번 만져보자 손을 뻗는다.
톡하고 터져 물속으로 번져든다.
날 피해 녹아든 숨결이라도 한번 들이켜 본다.
딱지를 낳은 껍질에는 진물, 눈물만이 맺혀 있었다
잊혀진 서랍 속
세 번째 서랍은 쓸쓸했습니다. 괜찮아요. 녹슨 손잡이에 더렵혀질까 열지 못 한건 핑계가 아니니까요.
젊은 주인은 가난했어요. 첫 번째 서랍은 금줄을 두르고 뼈마디마다 박힌 다이아로 당신을 유혹했었죠. 낙서 한 번 끼적거리면 입지 못하는 옷, 신지 못하는 신발, 들지 못하는 가방이 줄줄이 엮여 죄여왔어요.
젊은 주인의 속살이 발갛게 벗겨졌어요. 사이로 두 번째 서랍의 매정한 시선이 스며들어요. 움찔움찔 손을 뻗을 때마다 따가웠대요. 주머니사정이 궁금했던 두 번째 서랍은 당신을 작고 아주 작게 만들어 주머니 속으로 쏙 숨게 했죠.
젊은 주인의 손은 세 번째 서랍까지 닿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길어진 팔, 내려다 볼 수 있게 된 눈이 당신을 나에게로 데려다 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임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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