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차 창작콘테스트 시공모 <소금덩어리> 외 4편

by 하늘과바람과별 posted Ja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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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덩어리

 

해지는 저녁 되니

내 몸이 쩔어 있다

 

바다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하얀 소금이 내 몸에 잔뜩 묻어있다

 

삶은 거대한 바다다

 

살아가는 일은

바다위에 떠 있는 일이다

 

떠있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나는 바다가 노을빛으로

물들어감에 따라

점점 소금 한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고

 

내 몸은 바다에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한다

 

나는 그렇게 또 한 세상을 산다






생명은 땅을 탓하지 않는다

 

보도블록 좁은 땅 사이에도

생명은 움튼다

 

한줌 좁은 땅을 부여잡고

몸을 숙여서

무심히 뿌리를 내린다

 

들판에 너른 땅에 뿌리내린

다른 이들 비교하지 않고

악착스럽게

뿌리한줄 더 내린다

 

산다는 건

종교처럼 엄숙하지만

농담처럼 가볍다는 걸 알려 주려고

 

좁은 보도블록 사이 잡초는

우주처럼 넓게 뿌리 내린다

 

    



 


아버지

 

술 마시고 문득 생각나

늙은 아버지께 전화 한다

 

맨 정신엔 어색해서 전화 한통 못하는데

술 마시고 전화해도 똑같이 어색하다

 

생뚱맞게 그 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해버린다

 

아버지는 그 말이 목에 걸리셨는지

며칠씩이나 별 일 없냐고 전화 하신다

 

별 일 없다고 말하는 나는

그냥 이유 없이 슬프다

 

    



 

   

오리털 잠바

 

차가운 겨울거리에는

검정색 하얀색 오리들이 손을 주머니에 꽂고

웃으면서 돌아다닌다

집 밖으로 나온 오리들은 물이 없는 곳도 잘도 돌아다닌다

꽥꽥 소리 대신에 향기로운 비속어로 서로 이야기하고

연못에 가서 지친 몸을 담그는 대신에

술집에 가서 괜히 마른 털을 적신다

이제는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살찐 오리들은

더 이상 푸른 하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오리들은 누구의 털이 더 빛나고 많은 지를

연신 다투어 대며

연못대신 보도블록 위를 바쁘게 지나간다

 

 




바다에서

 

삶에 지쳐

땅 끝으로 가니

거기에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하얗게 웃으며

끊임없이 나를 위로 해 주었고

 

오며 가며

짠내 나는 혀로 내 상처를 핥아 주었다

 

나는 바다가 내어준 하얀 속살을 밟으며

끝없이 걸어갔고

 

바다는 내 지난 발자국들을 지우며

계속 나를 따라 왔다

 

그렇게 땅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는 새로 시작되고 있었다